전전전전편.


전전전편. 


전전편.


전편.


"음.."


닥터의 신음에 괜시리 긴장이 됐다. 그녀가 볼펜을 돌리는 소리, 시계가 째각거리는 소리, 연구실에 왜 있는지 모르는 메트로놈 소리, 하나하나가 나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그녀는 쓰고있던 보안경을 벗고 나를 쳐다보았다.


"딱히 문제는 없어."


"그런가요.."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닥터는 기지개를 키며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포트의 버튼을 눌렀다.


"한잔 마실거야?"


"아뇨. 안 마실래요."


그녀의 권유를 가볍게 거절했다. 커피는 나와 맞지 않았다. 커피대신 차를 마시는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다.

닥터는 인스턴트 커피 한 봉지를 꺼내 컵에 따랐다. 그리고 뜨겁게 끊는 물을 그 컵에 따른 다음  커피 봉지로 휘저었다.


난 그녀가 커피를 휘젓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있었다.


"근데 말야. 도대체 뭘 했길래. 온 몸에 그리 상처가 난거야?"


"그냥..넘어졌어요."


거짓말은 하지않았다. 블랙 웜의 방패와 부딫혀 넘어진 것이었으니깐.


"뭐..그럴 수도 있지.."


닥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뜨거운 커피를 입김으로 식힌 다음 홀짝였다. 


"우리 오랫만에 만난거 알아?"


"5차 수술 이후 처음이죠? 아마."


인간과 바이오로이드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골격은 모체의 오리진 더스트로 향상된 신체를 버티지 못 한다.

때문에 나는 스무살이 되는 동안 그녀에게 다섯 차례에 걸쳐 골격교체 수술을 받았다. 


상당히 고통스러웠고 떠오르고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오빠 장례식 때는 만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입은 열지 않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나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못 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그녀의 연구실에서 나오고 싶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나갈께요."


"연구소 문 앞까지만 같이 가. 어차피 난 한가하거든."


닥터는 마시고있던 커피를 내려놓고 나의 뒤를 따라왔다. 귀찮았지만 그렇다고 매정하게 찰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내 옆에 서서 나와 똑같은 걸음폭으로 걸었다.


"요새 연구소 어때요?"


나는 연구실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포츈과 아자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들은 내 모습을 보자마자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나도 그녀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뭐..바쁘지..다들 그 동안 아무것도 안했으니깐. 언제까지고 슬픔에 잠겨있을 순 없지.."


아무래도 아버지의 장례식 기간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때는 도시가 시간을 멈춘 것마냥 멈춰있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언제까지고 슬픔에 잠겨있을 순 없었다.


그렇게 아무 말없이 닥터와 복도를 돌아다니 던 중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 반짝임에 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작은 오빠?"


닥터의 부름에도 나는 그녀에게 눈길 한번을 주지않았다.


"저건 뭐에요?"


"저거라니?"


"저기 안쪽에 무언가 반짝였는데?"


나는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켰다. 어두컴컴한 연구실 안쪽으로 무언가가 계속해서 반짝였다.

그것을 본 닥터의 표정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봐서는 안되는 것을 본 것 처럼 어두워져만 갔다.


"저..저기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어...그냥 가자.."


하지만 사람이란 본디 하지말라고하면 더 하고싶어지는 성질을 가지고있었다.

그녀의 말이 내 호기심을 더 자극해주었다.


"뭐가 있는데요? 저기에."


"글쎄..아무것도 없다니깐.."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연구실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연구실의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연구실의 문을 열려면 카드키가 필요했다. 나는 닥터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머리를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오빠..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니깐.."


아무 말없이 닥터를 쳐다보았다. 


"작은 오빠..제발..그런 눈빛으로 본다고해도..나는..."


아무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결국 그녀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카드키를 꺼내들었다.


"이럴 때 보면 오빠랑 똑같다니깐.."


"고마워요. 닥터."


"단. 부탁이 있어. 여기서 본 거 다른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돼. 알았어?"


평소랑 다르게 사뭇 진지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몸을 움츠렸다.

카드키를 연구실 문에 갖다대자 굳게 잠겨있던 연구실의 문이 열리고 어두웠던 연구실의 불들이 점등되었다.


테이블에 종이상자와 먼지가 잔뜩 쌓여있는 별 볼없는 연구실의 모습에 나는 조금 실망했다.


"어지럽혀져있는 연구실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거에요?"


나의 말에 닥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턱짓으로 뒷쪽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수술대처럼 생긴 침대 위에 무언가가 놓여져있었다. 마치..아머드 메이든 부대원들이 쓰는 외골격슈트처럼 생겼다.


"이게 뭐죠..?"


닥터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CSX-007..가칭. 컴패니언 슈트.."


귀를 의심했다. 컴패니언이라면 어머니가 속하신 부대였다.


"작은 오빠도 알다시피 컴패니언 시리즈에 속한 바이오로이드들은 모두 블랙 리리스의 영향을 받은거 알지?"


고개를 끄덕였다. 페로나 하치코, 펜리르, 스노우 페더 그리고 포이. 모두 어머니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들이었다.


"아무리 바이오로이드라고 한들. 결국 인간이랑 똑같았어. 쉴 땐 쉬어야했지. 하지만 나날이 거세지는 레모네이드들의 공격에 컴패니언 시리즈의 언니들은 쉴 틈이 없었어. 이를 안쓰럽게 여긴 오빠는 내게 한가지 제안을 했어.


컴패니언 시리즈 언니들의 모든 장점을 부합한 AGS를 만들어보자고.."


나는 뒤를 돌아 그것을 다시 확인했다. 아무리봐도 AGS는 아니였다.

사람 한명이 들어가야할 것만 같은 슈트였다. 닥터는 종이상자에 묻은 먼지를 쓸어내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바로 제작에 들어갔어. 프로토타입이 하나 나왔지.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어. 블랙 리리스의 광기어린 성격이 여과없이 그대로 들어나고 말았지. 주인 이외의 것들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모습에 첫번째 실험작은 폐기되었어.


다음은 페로 언니의 데이터를 넣어보았지만..그것도 실패했어. 


또 그 다음은 하치코 언니.. 또 그 다음은 펜리르 언니.. 또 그 다음은 스노우페더 언니. 또 그 다음은 포이 언니..모두 실패했어..


여섯개의 프로토타입들이 나왔지만 모두 실패했어. 모두 블랙 리리스의 성격을 이기지 못 한거야. 그렇게 프로젝트가 무산되어갈 때 쯤. 어떤 생각이 들더라고. 통제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하고..그래서 본래 AGS 로 제작할려는 프로젝트에서 누군가가 입을 수 있는 슈트로 노선을 바꿨어. 그 결과는..?


성공이었어. 통제 할 수 있는 누군가만 있으면 아무 문제없었어. 성공의 가능성을 본 나는 바로 슈트 제작에 들어갔어.


하치코 언니가 쓰는 방패의 소재를 기반으로 해서  페로 언니와 포이언니의 단분자 클로. 스노우 페더 언니의 얼음과 날개. 펜리르 언니의 후각과 청각. 그리고..."


닥터는 말을 이어나가지 못 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그래서요?"


그녀는 검지에 묻은 먼지를 빤히 바라본 다음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블랙 리리스의 블랙 맘바와 로자 아줄을 쓸 수 있도록말이야.."


그녀의 말에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연구실에서 먼지만 먹을 녀석이 아닌데 어째서 쓰지않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좋은걸 왜 안쓰고있는거죠?"


"착용자의 성격이 점점 흉포해지는걸 목격했어..블랙 리리스의 집착과 광기. 모든게 드러났지..그 소식을 들은 오빠는 곧바로 프로젝트를 폐기처분 했어. 하지만 난 내 역작이 폐기처분되는걸 원치않았어..그래서 하나를 빼돌렸지..지금 작은 오빠옆에 있는게 몰래 빼돌린 슈트고."


그녀의 말에 나는 수술대 위에 올려져있는 슈트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거야. 이거면 그 녀석들을 이길 수 있어.'


'하지만 안 쓰는덴 다 이유가 있는거 아냐..?'


'그것들은 모두 평범한 바이오로이드여서 그런거야. 하지만 넌 어머니의 유전자를 가지고있어.'


"작은 오빠..?"


닥터의 부름에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제..나갈까..?"


"어..그..그래.."


나는 슈트에서 손을 떼고 닥터의 뒤를 따라갔다.

몸은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지만 눈은 슈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연구실을 나오자 닥터는 카드키로 연구실의 문을 다시 굳게 잠구었다.

몇번을 확인한 그녀는 카드키를 바지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본거..어디가서 말하지마..알았어..?"


"알았어. 약속할께."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새끼 손가락을 건넸다. 

그녀는 그것을 한참이나 바라본 다음 내 새끼손가락에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안아도 될까?"


"그럼.."


나는 닥터를 안아주었다. 그녀 또한 나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서로의 심장박동과 숨소리를 느꼈다.


"얼마만인지 몰라.."


"그러게.."


짧지만 길었던 포옹을 끝내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또 보자."


"응.."


손을 흔들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 다음 연구소를 나왔다.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닥터가 내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들어가. 날 춥다."


"알았어.."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갔다. 나는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있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녀가 들고있었던 카드키였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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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절에 무리수 가득한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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