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대로 이곳은 펙스의 버려진 공장지대였다. 그 말은 아자즈의 놀이터나 마찬가지란 뜻이었고, 우리는 생각 이상으로 허무하게 공장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기이이익


 “…해바라기?”


 그리고 이중으로 된 방호문이 열리자마자 우릴 맞이해준 것은 생각지도 못한 해바라기의 무더기였다.


 “해바라기가 잔뜩 있네요.”


 아르망조차도 이건 예상 못했는지(하긴 그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도 해바라기, 저기도 해바라기. 복도며 창틀이며 할 것 없이 온통 해바라기 천지였다. 크기도 다양했는데 개중엔 사람 얼굴 두 개를 합친 것보다도 큰 해바라기도 있었다.


 [아자즈 언니, 거기 방사능 오염도는 어때?]


 “수치상으로는 바깥보다 현저히 적네요. 방호복을 벗어도 될 수준이에요.”


 [벗기 전에…잠깐, 잠깐만! 언니!]


 “아자즈!”


 닥터가 채널로 소리 빽 지르고 내가 외쳤을 땐 이미 아자즈는 방호복을 벗은 상태였다. 아까 공장 시설을 해킹하면서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닌 탓인지 아자즈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휴, 한결 낫네요. 더워서 죽을 뻔했다고요.”


 [언니! 안에 공기 상태도 모르면서 함부로 방호복 벗으면 어떡해! 그 꽃들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수치상으론 이상이 없는 걸요? 그리고 공기가, 아…….”


 원래부터 나른했던 아자즈의 한층 더 나른해지자 별로 느슨하지도 않던 분위기가 다시 조여들었다. 설마 유독 가스라도 퍼져 있는 건가? 제길, 아자즈에게 그렇게 신신당부해놨는데……!


 “꽃향기가 섞여서 아주 좋네요.”


 “…….”


 아자즈는 그런 내 다급함을 가볍게 발로 차듯 낭랑하게 말했다. 골이 딱딱 아파오는 와중에 다시 통신이 날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닥터뿐만 아니라 알파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대기 성분 분석도 다 이상 없어. 다만 그 안쪽만 그렇게 오염도가 낮은지는 몰랐는데, 그건 알파 언니가 설명해줄 거래.]


 “알파가?”


 [네, 주인님. 아무래도 그 해바라기, 펙스의 실험작인 거 같거든요.]


 “왜, 꽃이 방사능이라도 정화해주는 거야?”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


 어떻게 알았긴. 찍었지. 어쩌다 얻어 걸린 내 대답을 토대로 알파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예전부터 식물을 이용해서 방사능 오염지대를 회복하는 기술은 연구되어 왔어요. 특히 골든 폰 사이언스가 추진하는 주요 미래 산업 중 하나가 바로 그거였죠.]


 골든 폰 사이언스. 확실히 레모네이드 시리즈의 어머니뻘 되는 보르비예프 박사가 세운 회사라고 했지. 알파와 보르비예프 박사의 관계를 생각해보니 입에서 쓴맛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방사능 오염 정화 식물로 가장 각광받던 건 해바라기였어요. 가장 중금속 흡수율 등이 뛰어난 식물이었거든요. 그런데 여러 사건들이 겹쳐 일어나면서 폐기된 프로젝트인 줄로만 알았는데…설마 이런 곳에서 문자 그대로 꽃을 피우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와, 심어두기만 해도 오염지대를 중화할 수 있는 꽃이라고? 완성했으면 비싸게 팔았겠다.”


 [후훗, 그러진 않았을 거예요. 생산 단가가 워낙 비싸서 경제성이 없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멸망 전 인류가 다들 주인님처럼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랍니다. 특히 기업의 회장이란 놈들은 더욱 그렇죠.]


 목소리만 들려오는데도 일그러진 알파의 얼굴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스스로 약간 핀트가 어긋난 얘기를 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그 뒤에 알파는 ‘아무튼 그래요’라는 식의 얘기만 남기고 다시 닥터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럼 방호복 벗어도 되는 거야?”


 [원래 리리스 언니랑 하치코 언니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안 된다고 하려 했는데……. 됐어. 아자즈 언니가 확인해줬으니까. 하지만 아자즈 언니! 다음에 또 이러지 마! 오빠가 거기 가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 터지겠는데 언니까지 그러면 나 힘들어!]


 “알았어요, 닥터. 혹시 나 이 꽃씨 좀 가져가도 돼요?”


 [알아서 해! 정말 애 둘을 기르는 거 같아!]


 “…….”


 애는 너잖아, 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다가 겨우 가라앉았다. 아마 그 말을 꺼냈다간 닥터가 화면 너머로 날 때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어쨌든 아자즈의 희생(?) 덕에 우리는 이곳이 안전하다는 걸 알았고, 그제야 몇십 킬로그램짜리 방호복을 벗어 던지고 몸을 좀 가눌 수 있게 됐다.


 그때 내 눈에 방호복을 벗는 데 어려운 듯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용의 모습이 들어왔다. 좋아 자연스럽게 말 걸 찬스…….


 “용 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폐를 끼쳤구려. 고맙소, 아르망.”


 “…….”


 가 아니네. 몸이 작은 덕분인지 방호복을 제일 빨리 벗은 아르망이 이미 용을 거들어주고 있었다. 내 사랑스러운 아내들이 참 사이가 좋아 보이네……. 저번 주까지만 해도 저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에고 내 신세야. 처량하게 혼자 방호복을 벗자니 홀아비 같은 느낌이 나서 더 서글퍼졌다.


 아무튼 잠시 뒤 우리는 방어 진형을 짠 채 건물 안을 탐사해나갔고, 얼마 가지 않아 드디어 귀에 익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라라라라…….”


 [그 통신에서 들려왔던 노래야. 음성 파장 확실히 일치해.]


 “전원 전투 준비.”


 닥터의 말이 끝나자마자 리리스는 모두에게 그렇게 지시했다. 확실히 이 앞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지라 나도 그런 리리스를 굳이 제재하진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내 마음속에선 긴장보단 궁금증이 더 앞서고 있었다.


 대체 뭘까. 무슨 이유로, 누가 이런 곳에서 노래하고 있는 걸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마침내 우리가 모퉁이 하나를 돌았을 때…그 의문은 한 꺼풀 베일을 벗었다.


 -라라, 라라……. 돌아올 때는 그 무기를 던져버려요.


 그곳은 해바라기의 동산이었다.


 노랫소리는 그 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당신께 다가갈 때 그것에 비치는 내 모습이 절 가슴 아프게 한답니다.


 눈부실 정도로 맑은 목소리. 유리잔을 부드럽게 두드리는 것만 같은 깨끗한 목소리가 해바라기만으로 가득 찬 광장을 울리고 있었다.


 -그대가 날 처음 품에 안을 때 사실 전 놀라지 않았답니다.


 작은 동산 위엔 한 명의 여성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마 바이오로이드겠지. 해바라기를 닮은 금색의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마치 물결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려 있었다.


-제 가슴속에는 이미 당신의 사랑이 살고 있었거든요.


 노래는 계속됐다.


 그녀는 눈을 감고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만히 감은 눈동자는 달의 곡선처럼 휘어져 있었고, 떨리는 노랫소리는 연약하면서도 올곧았다. 가녀리고도 아름다운 모습. 동화 속에서 요정이 튀어나온다면 정말 저런 모습일까. 노랫소리와 함께 아스라이 풍겨 오는 꽃내음은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노래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 표현 말고는 어떻게 더 말할 수가 없었다…….


 -당신은 나의…….


 “…거기 누구세요?”


 그리고 그 감동은, 미지의 그녀가 노래를 뚝 끊으면서 깨져버렸다.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어서!”


 어느새 내 앞에는 리리스가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의외로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설마 리리스도 방금까지 나와 똑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나? 그럼 저쪽에 적의가 없다는 건 알 텐데…….


 “리리스, 저쪽은 공격할 의사가 없어 보이지 않아?”


 “아니에요! 정신에 간섭하는 특성의 바이오로이드일지도 모릅니다. 순간이지만 방금 노래를 듣고 있을 때 저도 긴장을 놔버릴 뻔했어요. 하치코, 주인님을 지켜요!”


 “네, 언니!”


 리리스는 선두에 나갔고 하치코가 방패를 든 채 내 앞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용 역시 긴장한 기색으로 칼을 뽑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자즈는…어라?


 “아자즈?”


 “저기요! 저희 여기 있어요오!”


 “…….”


 무슨 대놓고 광고라도 하듯 손을 높이 들고 휘적이고 있었다. 순간 팽팽했던 긴장감이 탁 풀리며 다들 아자즈를 쳐다봤다. 심지어 리리스는 거의 혐오스러운 것을 쳐다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자즈는 내가 뭘 잘못했냐는 듯 미지의 바이오로이드를 향해 손을 흔들 뿐이었다.


 “여기 있다니까요, 가수 아가씨?”


 “…거, 거기 계신 건가요? 죄송합니다, 제가…꺄악!”


 “이런!”


 “주인님!”


 “폐하!”


 해바라기의 동산 위에서 성급히 일어서던 그 바이오로이드가 쓰러진 것과, 내가 뛰쳐나간 것과, 서로 다른 호칭으로 날 부른 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쿵!


 “아야야……. 괜찮아?”


 달려간 덕택에 간신히 내 몸을 쿠션으로 삼는 형태로 그녀를 받아낼 수 있었다. 물론 바이오로이드니까 이 정도로 크게 다치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일어서려다 휘청거리는 모습이 워낙에 불안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눈을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군!”


 “폐하! 괜찮으세요? 폐하!”


 “괜찮아. 호들갑 떨 거 없어. 여기 이쪽 아가씨나 좀 살펴 줘.”


 “호들갑 떨 게 없단 게 대체 무슨 소리요!”


 진짜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또 용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아차 하는 얼굴로 바라봤을 때 이미 용의 미간은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채였다.


 “이미 그대가 이곳에 직접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하단 말이오! 계속 그렇게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할 거요?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요, 아니면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요?”


 “미, 미안. 난 그냥 여기 아가씨 좀 살펴 달라는 거였어. 그, 눈이 안 보이는 것 같아서…….”


 “……!”


 그제야 내 품에 안긴 바이오로이드의 눈이 여전히 감겨 있단 걸 본 듯 용은 흠칫했다. 물론 그렇다고 내 행동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먼저 재빨리 사과했다.


 “뛰쳐나간 건 정말 미안해, 용. 앞으론 주의할게.”


 “…….”


 용은 입술을 깨물더니 내 시선을 피했다. 휴, 싸운 뒤에 처음으로 하는 대화에서 또 언성을 높이게 해버리다니……. 나도 참 희안한 재주를 가진 모양이네. 내가 받아 낸 여자애는 이미 리리스가 떼어내서 몸 이곳저곳을 수색하고 있었다.


 “저, 저기…누구신지…앗, 거긴…….”


 “갑자기 불쑥 온 주제에 이래서 미안해. 그…네 노랫소리를 듣고 왔어.”


 “제 노랫소리요? 그럼, 앗, 아아…….”


 “…….”


 색다른 자극인 건지 리리스의 몸수색에 소녀의 신음은 점점 더 열기를 띠고 있었다. 걸치고 있는 건 달랑 원피스 한 장. 눈 씻고 찾아봐도 무기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리리스는 만지고, 뒤집고(?), 누르고, 심지어 냄새까지 맡아보고나서야 겨우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이제 얘기해도 돼?”


 “죄송해요, 주인님. 하지만 검사를 안 할 수가 없어서요. 내장형 무기나 폭탄은 없는 걸로 확인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리리스의 눈빛은 맹수처럼 번득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자기 앞에 있는 바이오로이드의 팔뚝에서 칼이 튀어나오지 않나 의심하는 눈빛이었다. 이런 말 하면 미안하지만 차라리 눈이 안 보여서 다행일 수도 있어……. 안 그러면 기절했을지도 몰라. 나는 오늘 처음 만난 바이오로이드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애도를 표했다.


 “저, 저기……. 죄송하지만 당신께선…….”


 “인사가 늦었네. 난 오르카 저항군을 이끄는 사령관이야. 아마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지.”


 “이, 인간 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저는…….”


 편히 있어도 돼, 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소녀는 몇 번이나 발이 미끄러지면서도 일어났다. 방금 전 동화 속에서 나온 듯한 평온함은 온데간데없이, 여기엔 그저 가여울 정도로 바들거리는 한 명의 바이오로이드만 있을 뿐이었다.


 어찌나 몸을 떨던지 리리스가 반사적으로 어깨를 빌려주려 할 정도였다. 하지만 용케 일어난 그녀는 그대로 나를 향해…정확히는 내 목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허리가 거의 꺾일 정도로 깊이 숙였다.


 “퍼, 퍼블릭 서번트의 시험기인 아리아드네라고 합니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인간 님.”


 “만나서 반가워, 아리아드네.”


 일단 최대한 불안감을 없애주려고 일부러 악수를 했다. 물론 나만 손을 내밀면 안 보일 테니까 손을 꼭 잡아서. 아리아드네는 내 손길에 화들짝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이윽고 손을 마주 잡으며 얼굴을 붉혔다.


 “…….”


 등 뒤에 따가운 시선이 하나…아니 두 개쯤 박히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어쨌든 내 시도가 효과가 있는 모양인지 아리아드네는 많이 진정된 듯했다. 목소리도 훨씬 덜 떨었고 몸도 제대로 가누고 있었다.


 “설마 누군가가 정말 오실 줄은 몰랐어요. 나갈 수도 없어서,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며 노래만 계속하고 있었는데…….”


 “노래를 계속한 보람이 있는 거지 뭐.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곳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게 된 거야? 아무리 봐도 공장 소속의 바이오로이드로는 안 보이는데.”


 “아, 그건, 저…….”


 아리아드네는 뭔가 말하려고 하다가 말고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보였다. 심성이 약한 모양인지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그녀는 겨우 입을 열었다.


 “저기, 얘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실례지만 식당으로 모신 뒤에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여기 식당도 있어?”


 “후훗, 그럼요. 이 건물은 펙스 VIP분들을 위한 방공호거든요. 보존식과 식수는 저 혼자 다 먹지도 못할 만큼 쌓여 있답니다. 그럼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아리아드네는 그렇게 말하더니 벽을 짚으며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걸음은 위태로웠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힘이 더 들어가 있었다.


 그때 알파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주인님, 알파에요.]


 “아, 알파. 방금 봤지? 퍼블릭 서번트의 아리아드네라던데.”


 [네. 그거에 관해서 말인데……. 일단 제가 아는 바로는 펙스에 ‘아리아드네’라는 모델명으로 제조된 바이오로이드는 없어요.]


 “본인 말로는 시험기라도 하던데, 그래서 없는 거 아냐?”


 [시험기라도 데이터베이스에는 등록이 돼요. 물론 저라고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철컥


 “제가 나설게요, 주인님.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자기 유전자 씨앗 식별코드까지 다 불게 할 수 있어요.”


 “…….”


 알파가 말꼬리를 흐리며 곤란해하자 리리스는 기다렸다는 듯 총을 들어 올리며 으스스하게 말했다. 혹시 대화 수단이 그 총이니? 제발 급발진 좀 하지 마, 리리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리리스를 달랬다.


 “일단 따라가보자, 적의는 없는 거 같으니까. 뭘 하려고 했으면 벌써 했겠지.”


 “하지만…….”


 “나도 주군의 생각에 동의하오. 조심하는 건 좋지만, 너무 의심할 필요는 없지.”


 “그래도 주변 경계는 필요해요. 통신은 제가 계속 체크하고 있지만……. 아자즈 님, 좋은 수가 없을까요?”


 내 말을 용이 받고, 그 다음 아르망이 보조해주고,


 “드론 몇 개 가져왔는데 이걸로 이 건물 내부를 탐색해볼게요. 통제실 같은 게 어딘가 있을 테니까, 거기만 찾으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거 괜찮네. 그럼 굳이 우리가 따로 떨어질 필요는 없으니까. 수고 좀 해 줘, 아자즈.”


 “맡겨두세요, 사령관.”


 “좋아요. 그럼 전 하치코랑 주인님의 경호에 집중할게요.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뛰쳐나갈 거예요. 주인님도 아시겠죠?”


 “내가 우리 경호실장님 안 믿으면 누굴 믿겠어. 부탁해, 리리스.”


 “네에, 주인님! 리리스는 착한 리리스에요!”


 그걸 아자즈에게 토스, 마지막에 내가 리리스를 달래는 걸로 마무리. 좋아, 완벽해. 박자가 딱딱 맞는 게 꼭 우리 회의 잘 돌아가는 때랑 똑같네. 내가 씩 웃으며 슬쩍 눈짓을 하자 용과 아르망도 웃어주…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두 분이랑 사이가 좋네요, 사령관. 서약의 힘인가요?”


 “넌 지금 이게 사이가 좋은 거로 보여…?”


 왜 불난 데에 기름 뿌리는 짓을 하냐고 따지고 싶었는데, 의외로 아자즈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야 저렇게 속상하단 표현도 대놓고 하잖아요. 사령관을 동등하게 보고 있단 뜻이죠. 부럽네요. 저도 언젠가 사령관하고 그런 사이가 됐음 좋겠어요.”


 “그럼 평소에 머리랑 꼬리 다 떼고 가운데 토막만 얘기하는 버릇 좀 고쳐 봐…….”


 “음, 그건 생각해볼게요.”


 “…….”


 아자즈의 특기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핵심을 쿡 짚는 말만 골라서 한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하도 기행을 많이 하는 터라 자주 까먹기는 하는데, 이럴 때 보면 정말 머리 하난 좋은 거 같았다.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아까 아리아드네한테 왜 아는 체 한 거야? 설마 눈이 안 보인다는 거 눈치챘던 거야?”


 “아뇨, 몰랐어요. 하지만 너무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


 “이 꽃들, 그냥 자란 건 아닐 거잖아요. 이런 꽃들을 다 관리하고 키우려면 보통 정성이 아닐 텐데, 전 그런 분이 나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생각도 못한 부분을 말하자 순간 벙찌는 건 내 쪽이었다. 아자즈는 그렇게 제 할 말 다 하고선 아리아드네를 따라 휭 가버렸다.


 “아자즈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슬쩍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나도 모두와 함께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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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길어지네요

중간에 나온 노래는 마비XX의 '서큐버스의 노래' 가사를 살짝 바꾼 겁니다

노잼삘 나는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