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은 트랜지스터라는 게임 엔딩씬인데 그냥 뭐 대충 이리 생겼다 정도만...)





#. 희미한 옛 사랑의 기억


 [올해 여름은 20년만에 역대 최고치 기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전국 각지에 혹서 주의보가 내려졌으니 노약자와 어린이들은 외출할 때 각별히 주의를…….]


 ‘더워요.’


 그게 이 폐차 직전의 자동차를 타고 있는 아리아드네의 생각 전부였다.


 “더워요. 매니저 님…….”


 “물 먹어.”


 “아까 다 먹은 지가 언젠데 그러세요. 그러니까 하나 더 사자니까…….”


 아리아드네가 물방울 하나 남김없이 마신 500ml짜리 생수병 하나를 흔들었지만, 매니저라 불린 남자는 그저 개가 짖나 하며 운전에 집중할 뿐이었다.


 “안전띠나 매라. 저번처럼 턱 찢고 나 째려보지 말고.”


 “이렇게 느리게 가는데 뭘 턱을 찢어요. 사고 나라고 기도를 해도 사고가 도망치겠네…….”


 자동차가 느린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너무 낡은 차를 빌려서였다. 당연히 좋은 차를 빌리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을 중의 을인 아이돌 바이오로이드와 그 매니저에게 그런 호사가 주어질 리가 없었다. 그나마 지금 타고 가는 차도 매니저가 사비를 털어서 겨우 마련한 것이었다.


 아리아드네는 땀을 훔치는 척하며 자신의 옆자리를 슬쩍 훔쳐봤다. 거기엔 대충 넥타이를 동여맨 와이셔츠 차림의 남자가 팔 다 걷어붙인 채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왁스를 잔뜩 발라 넘긴 머리에 어울리지도 않는 선글라스.


 턱에서부터 입가까지 난 베인 상처. 그리고 더덕더덕 근육 붙은 다부진 팔뚝. 담배 하나만 꼬나물면 이건 아이돌 매니저라기보단 수금하러 가는 동네 조폭이나 건달 같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바들바들 떨었는데. 이제 아리아드네는 그랬던 과거 따위 깨끗이 잊었다는 듯 대놓고 부루퉁한 표정이었다.


 “…이럴 거면 매니저 님이라도 따로 오셨으면 됐잖아요. 비행기표도 받으셨으면서.”


 “니가 화물칸에서 징징거릴 게 뻔한데 내가 미쳤다고 그러겠냐.”


 “와, 그거 저 걱정해주시는 거 맞죠?”


 “화물칸에 귀신들린 바이오로이드 있다고 소문이라도 나봐라. 그럼 내 밥줄도 끊기고 너도 살처분 행이야.”


 “아니 제가 뭐 구제역 걸린 돼지에요, 살처분을 당하게?!”


 “돼지는 고기라도 맛있지 넌…….”


 “아이 진짜! 노래! 잘! 부른다고요!”


 이 더위를 감수하면서까지 주먹질을 하게 하려면 대체 얼마나 짜증을 북돋아야 할까? 아무튼 매니저는 짜증 돋게 하는 데는 아주 비상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리아드네의 힘없는 주먹질을 슬슬 쳐내다가 꿀밤 한 대 먹이고선 강제로 다시 의자에 앉혔다.


 “아얏!”


 “오리진 더스트도 좁쌀만큼 주입한 애가 무슨 주먹질은. 빨리 안전띠 안 매? 공장 다 와가잖냐.”


 “씨이…….”


 일부러 머리를 감싸는 척 엄살 피우는 아리아드네였지만 사실 아프진 않았다. 매니저의 꿀밤이란 으레 팔만 크게 휘두를 뿐 슬쩍 만지는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얌전히 안전띠를 맸지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부루퉁했다.


 더워서도 아니었다. 이 낡은 자동차 때문도 아니었다. 하물며 꿀밤 따위로는 더더욱 아니었다.


 “…제가 또 사고 쳐서 이런 곳까지 오는 거죠? 저 때문이죠?”


 “너 내가 그 소리 그만하랬지. 한 대 더 맞을래?”


 “하지만, 그때 제가 조금만 참았어도…조금만 참았으면 됐는데…….”


 “야!”


 천둥 같은 고함과, 매니저가 선글라스를 벗은 것과, 차가 끼익 하고 멈춰 선 것은 동시였다.


 매니저의 왼쪽 눈엔 섬뜩한 칼자국이 있었다. 아마 선글라스는 그걸 가리기 위한 방편 중 하나이리라. 매니저는 차라리 선글라스를 썼을 때가 더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흉악스러운 면상을 아리아드네에게 들이밀고 있었다. 물론 아리아드네는 살짝 눈물기가 있는 눈을 하고 있었지만, 매니저의 얼굴을 무서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니 일이 노래부르는 거지 몸 파는 거냐, 엉? 그걸 왜 참아! 내가 언제 너한테 그렇게 해서 돈 벌어오랬냐? 노래 부르는 걸로 돈 벌 생각을 좀 하라고, 좀! 멀쩡한 몸 축내서 그따위 짓거리 참니 뭐니 하지 말고!”


 매니저가 외친 ‘그따위 짓거리’는 대략 한 달 전 정도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에게나 그녀에게나 그저 저주스러운 과거였다.




***




 한 달쯤 전, 조금씩 주가를 올리던 그녀에게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 같은 건수가 하나 들어왔다.


 [제, 제가 초대 가수라고요?]


 [그것도 뭐라더라, 어디 백화점의 꽤 높으신 분의 파티랜다. 가서 열심히 한번 해 봐. 혹시 아냐, 그쪽이 네 굿즈라도 만들어주겠다고 할지?]


 매니저는 무슨 주머니에서 라이터 꺼내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그녀는 알았다, 매니저가 그 일을 따내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노력했는지를.


 매니저는 갖은 모욕과 조롱을 받아도 얼굴빛 하나 안 변했다. 오히려 헤실헤실 비굴할 정도로 웃었고, 그러면서도 그녀 앞에선 힘들었단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 자기는 컵라면 따위로 끼니를 때울지언정 아리아드네의 식단 관리는 철저하게 했고, 손바닥만한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는 한이 있어도 아리아드네의 일정에 구멍이 생기는 일은 없도록 했다.


 [네! 저 열심히 할게요! 정말 열심히 할게요! 감사합니다, 매니저 님!]


 그래서 그녀도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열심히 연습했고, 몇 배나 노력했다.


 하지만 파티 당일 그녀가 마주한 건 무대가 아니라 퇴폐적이고 으슥한 밀실이었다. 


 차라리 벗는 게 나을 정도로 가릴 곳 없는 의상.


 겨우 구색 갖춰 놓은 조그마한 무대 앞엔 섬뜩할 정도로 빛을 발하는 수술 도구 따위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덩치 큰 개도 여러 마리 있었고.


 [벗어라.]


 손님은 그렇게 말했다.


 넥타이를 풀고, 시계를 벗어놓고,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그녀를 봤다.


 그 눈.


 동등한 인간 취급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 눈빛은, 그녀를 살아있는 생물로도 취급하지 않는 듯한 무기질적인 눈빛이었다.


 문자 그대로 개만도 못한 취급에 아리아드네는 얼어붙었다.


 [벗으란 말이다. 못 들었나?]


 얇은 휘장 너머로 들려오는 살 부딪히는 소리.


 간간이 섞여 들려오는 비명. 쾌락에 젖은 걸까, 아니면 고통에 겨운 걸까. 그녀는 몰랐다. 그걸 이해할 정도로 이성이 유지되진 않았다.


 [매니저 님…….]


 그저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노래를 부를 때 그 열기가 좋았다.


 가장 앞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매니저의 눈빛이, 그 남자의 눈빛이 좋았다. 


 매니저는 자신을 위해 노력했다. 그것에 보답하기 위해 더 멋진 무대에 서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의 단 하나뿐인 소망이었다.


 그 소망이 방아쇠가 되었던 것인지,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한발 물러났다.


 […허.]


 그것을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느꼈던 것일까.


 ‘손님’은 한번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더니, 그런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아리아드네는 한참 뒤에 뭔가 여기저기 엉망인 모습으로 매니저가 들어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얼어붙어 있었다.


 [매, 매니저 님…….]


 [나가자, 어서.]


 그날 그녀는 처음으로 매니저의 눈에 맺힌 눈물을 봤다.




***




 그 결과가 이 꼴.


 그 ‘손님’이 바이오로이드를 고문하면서 동물과 강제로 교미하는 걸 보고 즐기는 미친 사이코 색마일지라도, 어쨌든 손님의 흥을 깨버린 책임은 그대로 이쪽으로 돌아오는 법이었다.


 아리아드네는 그 뒤로 한동안 매니저의 얼굴조차 못 보며 지내야 했다. 좁디좁은 사무실에서 나가지도 못한 채, 간식거리로 있던 과자를 조금씩 갉아먹으며 일주일을 꼬박 버티고 나서야 매니저는 돌아왔다.


 일주일 전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던 그는 그 험상궂은 몰골에 어울리지 않게 사색이 되어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자신을 안아 드는 그의 팔이 떨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좋았다. 기뻤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다시 돌아와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녀는 견딜 수 없이 기뻤다. 그가 있는 일상을 다시 하게 되어 기뻤다.


 그런 기쁨에 비하면, 머나먼 어느 공장에 가서 위문 공연을 하라는 일 따윈 해맑게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였다.


 “죄송해요…….”


 “너 내가 한번만 더 그 일로 사과하면 어디 있든 밖으로 집어던진다 했지, 엉?”


 “그래도 죄송해요……”


 “됐어! 그때 만약 그 쌍놈의 새끼가 너 건드리기라도 했으면 내가 그놈 반 죽이려고 했다. 빌어먹을, 정말 요즘엔 정말 저게 같은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사람 새끼가 없다니까…….”


 매니저는 분한 듯 핸들을 내려치려다 빌린 차라 차마 그러지도 못하고 가슴만 쿵쿵 쳤다.


 “이번 일은 펙스 공장지대 어느 곳인데, 하여간에 거기가 워낙에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너보고 위문 공연이라도 해달랜다. 마침 거기 내가 아는 형님도 있고…하여간에 이상한 일 아니니 넌 안심하고 노래에만 집중해.”


 “…이번엔 꼭 잘 할게요.”


 “넌 잘하고 있어. 걱정 붙들어 매라. 네 노래는 최고니까. 매니저 겸 팬 1호인 내가 보증한다.”


 매니저의 무뚝뚝하지만 따스한 말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을 녹였다. 따뜻한 욕조에 어깨까지 들어간 것처럼 온몸에 열기가 돌았다.


 그녀가 무대에 서면, 그는 언제나 맨 앞에서 그녀를 지켜봤다. 함성도 안 지르고 그 흔한 응원봉 하나 안 흔들면서 그저 무뚝뚝하게 서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시선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팬의 열정보다도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줬다.


 그는, 매니저는 그녀의 구원자였다.


 그녀는 한낱 실험용 바이오로이드에 불과했고, 첫 무대가 그녀의 마지막 무대였다. 수익성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든가, 하여튼 그대로 폐기 처분될 운명이었다. 그 마지막 순간에 손을 뻗어 준 사람이 바로 지금의 매니저였다. 막무가내로 사무실까지 밀고 들어온 그는 아리아드네의 매니저를 자청하며 폐기만은 미뤄달라고 간청했다.


 그 이후로 그녀는 그를 위해 노래 불렀다. 그에게만큼은 마음을 터놓았고 자신을 숨기지 않았다. 그것은 신뢰를 넘어선 무언가의 감정이었다.


 무언가의 감정. 아리아드네는 그 감정의 이름을 알았다. 하지만 절대로 입밖으로 낼 생각 따윈 없었다. 그가 그녀를 아끼는 만큼 그녀도 그를 아꼈다.


 그녀는 바이오로이드가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문자 그대로 뼈에 새길 정도로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자신의 존재가 매니저의 족쇄가 되는 것 따윈 더더욱 원치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숨긴 채 빈정거렸다. 가볍게.


 이 감정이 들키지 않도록.


 “저 기운 나게 해주려고 그런 말 한 거면 이쪽 좀 보고 해주세요. 정말 사람이 귀여운 구석이 하나 없다니깐.”


 “야이 너 진짜, 일감 물어와 주는 하늘 같은 매니저 님께 하는 말 꼬락서니하곤. 어휴, 내가 이걸 언제 날 잡고 버릇을 고쳐야지.”


 “근데 우리 하늘 같은 매니저 님은 제 노래에 뭐가 그리 좋으신 거예요?”


 “왜, 나처럼 양아치같이 생겨 먹은 놈이 네 노래 좋다니까 떫냐?”


 “떫진 않고 참고 좀 하려고요. 그래도 명색이 팬 1호라고 자칭하는데 제가 특별히 맞춰드려야죠.”


 아리아드네는 가슴을 펴고 어깨를 으쓱거렸지만 그걸 보는 매니저의 눈빛엔 그야말로 한심함을 넘어선 무언가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운전에 집중하는 척 앞만 보던 그의 입이 열린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그럼 너 처음에 무대에 섰을 때 불렀던 거나 불러줘.”


 “또 그러신다. ‘서큐버스의 노래’ 그거 말이죠? 그런 거 말고 히트곡도 많은데 왜 그것만 찾으시나 몰라.”


 “그 노래 덕분에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거니까 그런다, 왜.”


 “어휴, 겨우 노래 한 곡 가지고…….”


 “사람이 구원받는 데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더라. 내 경우엔 네 노래가 그거였고.”


 대체 자신의 노래에 어떤 점에 구원받았다는 걸까, 그녀는 몰랐다. 여러 차례 넌지시 물어봤지만 그는 대답해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신 늘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내가 느꼈던 이 기분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 넌 할 수 있어. 내가 반드시 널 세계 무대에 세울 거다. 그러니 그때까지 포기하지 마라.”


 “네, 열심히 할게요.”


 포기할 리가 없었다.


 옆에 그가 있는 한, 그녀는 절대로 포기할 생각 따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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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식힐 겸 쓰려고 했던 게 왜 이리 길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