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전전전편.


전전전전편. 


전전전편.


전전편.


전편.


"일단..이걸로 응급처치 해드렸습니다..움직여보세요.."


바닐라의 말을 따라 오른쪽 팔을 조금씩 움직여보았습니다. 수복제가 없었기에 근처에 굴러다니는 부품 만으로 팔을 수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름답고 강하던 저의 팔은 제 무장인 유탄발사기 조차 들지 못 할 정도로 빈약해졌습니다.


"블랙 웜 언ㄴ...아니..님..?"


저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네. 말씀하세요."


"일단 작전을 잠시 중단하시는 편이 어떠신지..블랙 웜님도 일단 부상당하셨고..무엇보다..다른 이에게 저희 계획을 들켰으니.."


"아뇨. 중단하지 않을겁니다."


딱 잘라서 말을 합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작전은 중단되지 않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동생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만 갑니다. 


"어째서죠..?"


"비록 계획을 들켰지만. 지금 수용소에 군대는 커녕 시티가드 진압대 조차 오지않았습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건지 아시나요?"


"뭔가요..?"


"우리 계획을 본 그 녀석은 군이나 시티가드에게 신고하지 않았다는겁니다."


"그렇다는건.."


"여기 출신이거나..그녀들 몰래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녀석이겠지요. 그렇기에 신고조차 하지않았구요."


그녀는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전히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텐트 구석에 파란색 타포린 안에 숨겨져있는 저의 방패와 유탄발사기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이것들을 몰래 가져오고 숨기느라 고생을 했던게 떠올랐습니다. 


"바닐라. 이제 다 왔습니다. 마지막 남은 인간은 이제 죽었고, 그의 뒤를 따르던 이들만 남았죠. 지금 그들은 그 인간의 죽음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우리는 그 틈에 빨리 그들을 치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죽으면 그 분께서 직접 여기로 오실겁니다..


 바닐라.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그 분들께서 다시 세상을 쥐어잡을 때가 거의 다 왔다고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아이를 달래주듯이 말을 해주었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그녀는 치맛자락을 더 꽉 붙잡으며 눈물을 삼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런 그녀의 등을 조용히 쓸어주며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는 바이오로이드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는 저항군 사령관의 약점을 이용하여 난민으로 위장해 여기 도시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관과 지휘관들은 점점 불어나는 난민들을 숫자를 불안하게 여겼는지 난민들과 저희들을 더 깐깐하게 살피기 시작했고 결국 시민권 철회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않고 저희는 시민권 철회에 대한 시위대 사이에 섞여 시티가드를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과격한 행동을 취했습니다. 


비록 대원들과 아무 죄도 없는 난민들이 다쳤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난민들과 시민들의 사이는 날이 갈수록 틀어지기 시작했고 그녀들은 더 이상 난민들과 우리들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수용소 안에서 보다 안락하게 계획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저항군 사령관과 그의 부관 모두 처리하는데까지 성공했습니다. 


비록 그의 아들이 살아남았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지휘관들이 모두 처리되면 그는 그 분들의 육체가 될 것입니다. 몸의 절반이 화상으로 뒤덮였다고 들었는데..그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침대에 누워서 하루하루를 보내는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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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닥터에게서 몰래 훔친 카드키를 이용하여 연구소로 들어왔다. 불이 모두 꺼진 연구소는 그야말로 뭐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음산한 분위기를 내뿜고있었다. 나는 손전등을 들고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연구실 안에는 어디서 많이 본 물건들이 보였다.


마키나가 쓰는 가상현실 드론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에게서 저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의 가상현실공간에 갇혀 온갖고생을 다했다는 아버지의 푸념이 떠올랐다.


어머니도 그 때 그 곳에 있었다고 하셨지만 무엇을 했는지 내게 말씀을 해주시지는 않았다. 그저 웃으시면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뿐 무엇을 했는지 말씀해주시지는 않았다.


아무튼 각설하고. 지금은 저 드론에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저 드론이 아닌 다른 물건 때문이었다.


'분명..여기 쯤이었는데..'


수많은 연구실에 손전등을 비춰가며 그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 똑같이 생긴 문과 연구실 때문에 나도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다.

숨이 차오르고 땀이 비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성치도 않은 몸으로 무리를 하고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복도의 벽을 짚고 몰려오는 숨을 천천히 내쉬고 들이쉬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맨몸으로 싸울 생각이야? 너도 봤잖아. 맨몸으로 상대하는건 자살행위야.'


'하지만..이건..이건..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도 한참을 넘었어..일단 지휘관들에게..'


'그 슈트만 있으면 혼자서도 해낼 수 있어.'


'아냐..'


'할 수 있어.'


'아니라고..'


'있어.'


"아냐!!!"


도저히 정리가 되지않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릿속에 더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헉..!"


나도 모르게 고함을 치며 벽을 쳐버렸다. 두꺼운 콘트리트 벽에 금이 가있는 것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당황해버렸다. 다행히 누군가 오지는 않았지만 벽에 나있는 금을 어떻게든 응급처치를 해야만 했다.


바닥에 떨어진 콘트리트 조각들을 주워 갈라진 틈으로 끼어넣었다. 이런다고 말끔히 매꿔질리가 없었지만 나는 열심히 조각들을 주워 갈라진 틈 사이로 넣었다.


"일단..이렇게 잠시 두고.."


간신히 응급처치를 하고 다시 손전등을 들고 연구소를 돌아다닐려는 순간 어두운 복도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 때랑 똑같은 빛..'


나는 홀린 듯 그 빛을 따라갔다. 빛을 따라가자 아침에 보았던 그 문이 있었다. 카드키를 꺼내 문을 열었다.

매캐한 먼지와 곰팡이가 쓸어버린 종이상자에서 내뿜는 이상한 냄새에 코와 입을 가리며 손전등으로 수술대를 비추었다.


"찾았다.."


수술대 위에 올려져있던 것은 내가 찾던 물건이었다. 그것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슈트에 묻은 먼지와 거미줄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물건을 바라보았다. 컴패니언 시리즈들의 모든 장점만을 부합하여 만든 슈트였다.

닥터가 만들어낸 이 슈트는 그야말로 희대의 역작이었지만 사용자가 점점 블랙 리리스와 똑같은 면모를 보인다는 탓에 여기에 처박혀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먼지가 잔뜩 쌓인 슈트의 헬멧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슈트의 헬멧 뒷부분에는 어머니가 쓰시던 헤어핀과 유사한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삼각표지판 위에 느낌표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그림.


'거의 다 왔어. 그것들에게 복수할 기회가 드디어 왔다고..'


'너가 원해왔던거잖아..? 뭘 망설이는거야?'


'어머니의 유전자를 가진 너라면 해낼 수 있어..'


나는 슈트의 헬멧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나를 인식이라도 하는 것마냥 헬멧의 눈 부분에서 불이 들어왔다.

어머니와 똑같은 호박색으로 빛나는 눈을 보자 나는 홀린 듯 슈트의 헬멧에 내 이마를 맞댔다. 


차가웠지만 왠지 모르게 따뜻해져가는 감각에 나는 기분이 오묘해졌다.

오묘한 기분을 뒤로하고 수술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술대 옆에 있는 모니터의 전원이 켜진 것을 본 나는 모니터 쪽으로 다가갔다.


모니터에는 슈트에 대한 기본정보와 함께 여러가지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개 중에는 눈을 뗄 수 없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적합수술 필요.'


"아."


짧은 탄식이 나왔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오늘 뼈저리게 깨달았다.

모니터의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해. 골격수술을 5번이나 견뎠는데 그깟 수술이 뭐가 대수야?'


'들어가.'


'가.'


머릿속에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나는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필요한 것들을 확인했다.

사용자. 그것 뿐이었다. 키보드의 엔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수술대에 있는 기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수술대는 마치 나를 기다린다는 듯이 조명을 비춰주고있었다.. 마치 빛에 이끌려 전등에 달라붙는 나방과 날파리들처럼 나는 수술대로 점점 다가갔다.


수술대 위에 눕자 나의 손목과 발목을 구속했다. 조명의 뒤로 어떤 눈동자가 보였다. 아무래도 이 수술을 집도하는 AGS처럼 보였다.

그 눈동자는 카메라의 조리개를 조이듯이 나의 눈을 마주보았다. 나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듯 했다.


나도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한참동안이나 내 눈을 바라본 그 눈동자의 뒤로 수십개의 주삿바늘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무섭지는 않았다. 안에 있는 골격을 전부 드러내고 새 골격으로 교체하는 수술도 겪었는데 이깟 주삿바늘 따위는 무섭지않았다.

주삿바늘들은 나의 정수리와 팔과 다리 그리고 가슴 중앙을 향해 점점 다가왔다.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이제와서 무를 수도 없었다.

주삿바늘이 나의 살들을 꿰뚫고 무언가를 주입하는 것이 느껴졌다.


"으..으윽..! 아아아아아악!!!!!!"


어떻게든 참아보려했지만 무리였다. 골격수술을 했을 때보다 더한 고통이 나의 몸을 타고 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얼마 안가 정신을 잃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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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았다. 하얀색 라일락 꽃들이 무성하게 자란 들판이었다.

살짝 보기만 했는데도 라일락임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쉬는 날이면 정원에서 꽃들을 돌보셨다.


"난 분명.."


어리둥절했다. 분명 수술대에 누워있어야할 내가 꽃밭에 있다는게 믿겨지지 않았다.


"아들!"


누군가의 부름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두 남녀가 내 앞에 서있었다. 

두 남녀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어머니..? 아버지..?"


"우리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데."


"아들- 같이 피크닉 가야지-"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두분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무어라 말씀하셨다.

나는 귀를 기울였지만 들리지가 않았지만 왠지 나를 부르고있는 것 같았다.


홀린 듯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 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안돼."


그 순가. 뒤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형체의 무언가가 라일락 꽃들을 검게 물들이며 내게 다가오고있었다.


"뭐야..?"


"이리로 와..."


"뭐..?"


"아들-! 어서와!"


"안 오면 우리 먼저 간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져만 갔다. 나는 두분을 붙잡기 위해 달려갔지만 어딘가 어상했다.


"뭐야..? 어째서...!"


발이 떨어지지않았다. 마치 나를 붙잡고있는 듯 했다. 어떻게든 두분을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어느새 내 뒤까지 다가온 검은 형체의 무언가는 내 얼굴을 붙잡고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호박색의 눈동자를 부라리며 마저 남은 하얀 라일락 꽃들을 검게 물들였다. 

짙게 내려앉은 암흑 속에 혼자 남은 호박색의 눈동자에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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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아아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나는 눈을 떴다. 수술이 끝났는지 나를 구속하고있던 구속구들을 풀어져있었다.

내 몸을 더듬으며 무사한지 확인했다. 열손가락 열발가락 모두 멀쩡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수술대에서 일어났다.


"아무..일도 없었던...우웁!!!"


그 순간이었다. 엄청 심한 악취가 나의 코를 타고 바로 뇌로 전달되는 기분에 나는 두 손으로 내 입을 가렸다.

분명 처음 여기에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악취는 없었다. 나는 몰려오는 구토감을 억지로 참으며 벽을 짚었다.


"흐긱?!?!"


벽을 짚는 순간 이상한 감각에 깜짝 놀랐다. 콘트리트를 이루고있는 모든 입자와 원자들이 나의 손을 타고 뇌로 전달되는 기분에 나는 펄쩍 뛰어 수술대의 뒤로 넘어갔다.


"뭐야...?"


이상했다. 아무리 내가 어머니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다고는 했지만 이 정도의 운동신경을 가지고있는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천천히 몸을 움직여보았다. 이번에는 내가 움직이는 소리. 밖에서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 하나하나가 엄청 크게 들려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두 귀를 막았지만 소리는 여전히 크게 들려왔다.


"뭐야..도대체...."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번에도 뭔가 이상했다. 분명 밖은 밤이었다. 마치 야간투시경을 낀 것마냥 모든 것이 훤히 보였다.

다시 내 손을 바라보았다. 아침에 닥터가 말해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컴패니언의 모든 장점을 부합한..."


컴패니언 시리즈의 바이오로이드들은 블랙 리리스의 기반에 소량의 동물 유전자를 주입한 개체들이 있는 부대였다.

이런 부대원들의 모든 장점을 부합한 슈트였다. 그런 슈트를 견디기 위해서는 그들이 되어야만 했던 것일까..?


나는 머리를 매만지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건 아냐...이건 아나리고...닥터한테 솔직하게 말해야만 해..'


'맞아..지금이라도 닥터한테 말해서..원래대로...'


"아니."


순간 내입에서 나온 말인가 의심했다. 하지만 그 의심은 얼마 안가 바람 앞의 촛불처럼 금방 스러졌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맞는 말이었다. 닥터에게 말 할 이유가 있는가? 드디어 그것들을 쳐부술 수 있는 힘을 얻었는데 어째서?


머리를 매만지던 손을 치우고 창문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똑닮은 검은색 눈동자 대신 호박색의 눈동자를 가진 내 모습이 비춰졌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입꼬리가 올라간 내 모습을 보고있자니 누군가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누군가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나는 수술대 위에 올려져있는 슈트를 입기 시작했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나는 마치 입어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입고 또 입었다.


날개처럼 생긴 백팩과 고양이 발톱처럼 날카로운 장갑. 그리고 먹잇감을 낚아채기 안성맞춤인 발톱을 가진 장화를 신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얇고 여린 체형을 닮은 탓에 얼핏 봐서는 이게 남자의 몸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 나의 몸을 계속 감상하며 생각에 잠길려는 순간, 등 뒤에서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슈트의 헬멧이었다. 


호박색의 날카로운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를 기다리게했으니 보상을 줘야했다.

헬멧을 썼다. 헬멧을 쓰자 화면 중앙에 어떤 안내음성이 들려왔다.


'사용자의 이름이 필요합니다.'


나는 홀린 듯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블랙 리리스..."


어머니의 이름을 빌리기로했다. 마땅히 떠오로는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확인. 사용자 이름. 블랙 리리스.'


화면에는 수많은 코드가 영화에서 볼 법한 속도로 쓰고 지우며 무언가를 설정하고있는 듯 보였다.

나는 그 코드들을 바라보며 숨을 내쉬고 들이쉬었다. 이제 점점 이 감각에 익숙해져가는 기분이었다.


'사용자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환영합니다. 블랙 리리스님. 귀하의 무장을 가져가주시길 바랍니다.'


"무장이나리..?"


의아했다. 먼지와 거미줄만이 쌓여있는 연구실에 무장이 어디겠는가..하는 순간 화면의 왼쪽 위에 무언가가 깜빡였다.


'양손을 들어올리십시오.'


슈트에서나오는 음성을 따라 나는 양손을들어올렸다. 그 순간 쌓여있는 상자들 속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나에게 날라왔다.


"으악! 시발!!"


나는 재빨리 양팔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아무런 일은 일어나지않았다. 이상함에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십자가처럼 생긴 무언가가 내 주위를 둥둥 떠다녔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본 물건이었다. 어머니가 쓰시던 무장. '로자 아줄'이었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하자 로자 아줄들은 나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였다.


"뭐야.."


'귀하의 뇌파를 읽어 움직이는 겁니다.'


안내음성의 말에 모든 해답이 풀렸다. 아까 머리에 놓은 주사가 이런 의미였구나.라고 생각하며 로자 아줄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 움직임을 따라 움직일 뿐 아무것도 하지않았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움직이는건가..? 그럼..'


"전개..!"


나의 말에 로자 아줄들은 파란색의 꽃봉오리를 피웠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어머니께서 내게 보여주셨던 것과 너무나도 똑같았다. 푸른빛을 내뿜으며 내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두 송이의 장미를 뒤로하고 나는 그것들이 튀어나온 상자 쪽으로 다가갔다.


"이건..."


상자 안에는 어떤 권총 두 자루와 가득한 탄창, 그리고 2개의 칩과 OS, 그리고 장비와 수많은 전투자극제들이 보였다.

난 이 두 자루의 권총을 알고있었다. 어머니가 쓰시던 무장인 '블랙 맘바'였다. 그것을 들어올렸다. 


어릴 때는 한손으로 드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이제는 아니였다. 가벼웠다. 이렇게 가벼운 물건이 아닐텐데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나는 두 자루의 권총을 자유자재로 돌리며 무기를 장전했다. 






어머니께서 하시던 방법이었다. 누군가 알려주지도않았는데 나는 마치 해본것처럼 능숙하게 이 두마리의 뱀에게 먹이를 주었다.

나는 손에 들려져있는 두 자루의 권총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가는거다..'


'전부 처리하는거야..'


'전부 죽이는거야..'


'너를 막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어..'


'방해하는 것들은 전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또 거듭한 나는 결론 하나를 도출해냈다.


"우후훗..그냥 모두 죽일까..?"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다. 

어머니의 이름을 빌려쓰고 똑같은 무장을 쓰고 똑같은 말을 하고있는 내 모습을 보고있자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난 블랙 리리스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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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나온 삽화는 본인 작품입니다.


점점 뇌절에 무리수를 두는게 아닐까 싶네요...

여튼 이런 뇌절에 재미도 없는 글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때까지 쓴 글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