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astorigin/43650148?category=%EC%B0%BD%EC%9E%91%EB%AC%BC&p=1



“으음...”


흑갈색의 머리를 하고 뿔테 안경을 쓴 30대 전후의 남성은 찌릿거리는 관자놀이를 붙잡고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모니터로 보고 있던 지휘관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닥터와 다프네에게 물었다.


“닥터, 다시금 저 두 번째 인간에 대해 간단히 보고해봐.”


“이번에 스틸라인 언니들이 버려진 군사시설을 탐사하다가 동면캡슐이 보존된 구역을 찾았어. 8개의 캡슐 중 유일하게 기능이 작동해서 생존한 상태로 구출된 인간이야.”


“동면캡슐이 그때까지 버틴 거야?”


“아마 수명이 한계에 다한 뒤에 철충에 감염되어 있어서 작동했던 것 같아.”


“다프네, 두 번째 인간의 건강 상태는?”


“큰 건강상의 문제점은 없어요.”


“이거 신기한 일일세...”


속으로는 바라고 있던 철학 연구의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으나, 이렇게 희박한 확률을 뚫고 나타난 두 번째 인간이 멸망 전 구세대 인류처럼 인격적 쓰레기일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했기에 사령관은 마냥 안심할 수 없었다.


“깨어난 후 계속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있는데 두통이라도 오는 건가?”


“글세... 혹시 모르지. 이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는 걸지도?”


닥터도 확답을 주지 못하자 사령관은 일단은 면담을 통해 정보를 얻고 1차적 검증을 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다프네에게 지시해 두 번째 인간에게 상황 설명과 오르카호에 대해 설명해주되, 리리스를 시켜 유사시 제압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리리스는 사살하는 편이 더 낫지 않냐는 의견을 내비쳤으나, 어찌됐든 사상개조를 통해 써먹을 여지가 남는 두 번째 인간을 리리스가 함부로 제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령관은 반드시 제압에서 멈추라고 강조하여 명령했다.


물론 리리스가 불만스러워했기에, 사령관이 제압에서 멈추면 그날 밤 비밀의 방에서 승마용 채찍을 사용해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하자 리리스는 군침을 흘리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자, 다프네. 그럼 들어가.”


화면 너머로 보이는 두 번째 인간과 다프네의 접촉. 들려올 대화에 집중하며 사령관은 눈이 빠져라 화면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몸 상태는 괜찮으신가요?”


“아... 예.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존댓말. 아주 무례한 이는 아니겠군.’


사령관은 그리 판단하며 두 번째 인간의 시선을 보았다. 색욕에 목마른 일반적인 구 인류라면 다프네의 가슴과 허벅지, 엉덩이에 노골적인 시선을 보냈을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인간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잠깐 눈을 마주치더니 시선을 돌려 바닥과 벽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구 인류와 같은 부류는 아니라고 봐야하는 건가...’


이것만으로는 확실치 않았다. 사령관은 큰 그림을 꿰어 맞출 더 많은 퍼즐 조각을 원했고, 다프네에게 개인 신상부터 물어보라고 이어폰으로 지시하였다.


“저는 오르카호 저항군 소속 다프네라고 해요. 인간님께서는 이름이 기억나시나요?”


무선 이어폰으로 그 말을 들은 다프네는 즉시 응했다. 두 번째 인간의 입이 즉시 열리는 걸 본 사령관은 귀를 기울였다.


“제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요.”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자신과 같은 사례였다. 혹시 다른 기억도 자신처럼 비워져 있는 상태였는지 궁금했던 그는 다프네가 묻는 추가적인 질문에 집중했다.


“음, 그럼 직업은요?”


“그것도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저는 글 쓰는 일을 했던 것 같아요.


무언가 서류가 가득하고, 거기서 제가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는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그의 말을 들은 사령관은 즉각 마리를 호출해 두 번쨰 인간이 발견된 장소를 다시 샅샅히 살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동시에 화면 안의 두 번째 인간이 자신이 찾던 조각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희열에 젖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다프네. 그 사람 내 방으로 보내.


리리스, 너도 내 방으로 이동한다.”


“오빠 미쳤어? 아직 저 인간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오빠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가 괜히 공격의 빌미만 잡히ㅁ....”


사령관의 지시에 당황한 닥터는 그의 선택을 물려보려고 시도했으나, 그는 단호한 한 마디로 말을 끊었다.


“닥터.”


그리고 무릎을 굽혀 그녀와 시선을 맞추더니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을 이었다.


“난 오르카호의 유일한 인간이야. 인간의 명령권 때문에 휘둘릴 수 있는 다른 바이오로이드와는 달리, 인간 대 인간의 명령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지.


리리스가 내 옆에서 경호를 맡을 거니까 유사시에는 사살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약간의 기억 삭제 조치와 보고서 조작이 이뤄지겠지만, 우리 똑똑한 여동생이 잘 처리해줄 수 있겠지?”


자신에게 하는 아부임을 알면서도, 사령관이 직접 말해주는 여동생이라는 말에 닥터는 볼을 붉히며 그를 보내줬다.


“알겠어. 대신 성장약 먹고 오면 도망치지 말라고.”


“걱정 마. 도망치지는 않을게.”


“지난번처럼 아스널 언니랑 먼저 하고 있는 것도 도망의 범주에 포함돼.”


“어이쿠, 그럼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겠네.”


“오빠!!!”


소리지르는 닥터를 뒤로 하고 사령관은 사령관실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