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


나를 부르는 여린 속삭임에 뒤를 돌아보았다. 빛이 반사될 정도로 눈부신 은발의 머리칼과 황옥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진 블랙 리리스가 치맛자락을 들어올려 내게 인사를 했다. 마시고있던 음료를 내려놓고 그녀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무슨 일이야?"


"주변을 탐색한 결과. 여기엔 철충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래?"


다행이었다. 세상은 기계에 기생하는 이상한 벌레와 영원한 잠을 빠지게하는 이상한 괴물에 의해 멸망했고, 인간은 그들에게 멸종했다.

난 그런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인간이었다. 바이오로이드라 불리는 인간과 똑같지만 인간과는 다른 이들을 이끌고 새로운 문명을 재건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있었다.


"그리고.."


리리스가 눈을 두손을 공손히 모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별들이 환하게 보일거라고 하더군요."


"정말?!"


나도 모르게 조금 큰소리로 말해버렸다. 그런 내 목소리에 리리스의 어깨가 살짝 들썩이는게 보였다.


"미..미안..조금..들떠버렸네.."


"후후..괜찮아요. 가실 생각이신가요?"


"당연하지.."


"알았어요. 그럼..주변을 정리해야겠네요.."


그녀는 허벅지에 있는 권총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따뜻함과 귀여움, 그리고 웃음기가 쏙 빠진 그녀의 목소리와 차갑디 차가운 눈초리에 소름이 살짝 돋았다.


"그래..부탁할께."


"후후..방해하는 것들은 모조리 없애버려야죠..후후훗.."


그녀는 웃으면서 함장실을 나왔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웃음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을 때 쯤 책상 밑에서 가방 하나를 꺼냈다. 그 가방 안에는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 있다.


"오랫만이네.."


가방의 지퍼를 열어 그 안에 있는 물건을 꺼냈다. 천체망원경이었다.

사실 나에겐 소소한 취미가 있었다. 


바로 별들을 관측하는 것이다. 


철충과 레모네이드,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더미들, 그리고 오르카호의 일상을 잠시 잊기 위해 취미를 찾던 도중 코코가 내게 알려준 것이었다.

지루하고 추웠던 탓에 재미가 없었지만 밤하늘을 가득 매운 수많은 별들을 본 순간 그 생각들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별들로 가득차 하얗게 빛나는 하늘은 마치 우유가 흐르는 강과도 같았다. 난 그 환상적이고 경이로운 풍경에 사로잡혔다.

처음엔 오르카호에서 별들을 관측했지만 대원들의 뜨거운 관심때문에 제대로 관측하지 못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잠수함에서 나오는 불빛이 별들의 빛을 빼앗갔다.


그래서 난 오르카호가 정박을 할 때면 오르카호를 벗어나 혼자서 별들을 관측했다. 처음엔 지휘관을 비롯한 모두가 반대했지만 나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그녀들이 허락을 해주었다. 


요 몇일 우중충한 날씨 탓에 별들을 관측하지 못 한지 오래였다. 

기대가 되었다. 얼마만의 관측인가. 입꼬리가 귀에 걸쳐지다 못해 정수리에 닿을 듯 했다.


"빨리 밤이 왔으면..!"


천체망원경을 확인하고 난 침대에 누웠다. 이따 밤에 관측을 하기 위해선 낮잠을 자둘 필요가 있었다.

따뜻한 이불을 덮고 눈을 감고 별들을 관측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벌써부터 눈 앞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상상에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그러고보니..'


별관측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잊고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오늘 밤 누구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것이 생각났다. 뭐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였다. 그 아이에겐 그 쪽으로 오라고 나중에 따로 연락을 주면 되는 일이었다.


두리뭉실한 정신을 이끌고 난 꿈나라로 떠났다.




"그럼. 다녀올께!"


따뜻하게 옷을 입고 천체망원경이 들어있는 가방의 끈을 더 꽉 조이며 리리스에게 인사했다.

그녀 또한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녀의 뒤로 수많은 대원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마 내가 나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각하. 무슨일 생기시면.."


"알아. 이거 누르라는거."


난 가방에 매달려있는 부저를 마리에게 보여주었다. 부저의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녀들이 내가 있는 쪽으로 뛰쳐올 것이다.


"사령관. 혹시 누가 사령관을 납치하려고한다면 뭘 하라고?"


"음..이거?"


허벅지에 묶여있는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것을 본 레오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아. 나도 이제 성인이야..."


"하는 짓은 아이여서 문제지요.."


"뭐라고했나?"


"아무것도 아닙니다..후후.."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슬슬 가야할 시간이었다.


"그럼...갈께."


"다녀오세요!!"


모든 대원들이 큰 목소리로 내게 인사했다. 그녀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오르카호 주변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있던 새들이 깜짝 놀라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난 그녀들을 뒤로하고 아까 정박할 때 점찍었던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텐트도 쳤고..모닥불도 피웠고..망원경도 펼쳤고..의자도 있고..커피도 있고...다 됐다!'


이제 조용히 별들을 관측할 일만 남았다. 뜨거운 커피를 '호호'하는 소리를 내며 식히고 입으로 가져갔다.

쌉싸름하며 달달하고 따듯한 커피가 입을 걸쳐 식도, 마지막으로 위까지 닿는 기분에 몸이 풀어졌다.


날씨가 풀리고있었지만 밤에는 여전히 추웠다. 리리스가 한땀한땀 정성스레 짜준 담요 안으로 몸을 더 집어넣었지만 그래도 추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오르카호로 돌아가 따뜻한 전기장판에 누워 귤이나 까먹고싶었지만 별들을 볼려면 이 정도 쯤은 감수해야만 했다.


커피 한번 마시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리리스의 말대로 별들이 환하게 빛나고있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그 모습은 마치 우유가 흐르는 강과도 같았다. 어찌나 밝게 빛났는지 내가 마시고있는 커피에도 별들이 비춰보일 정도였다.


"그러고보니..이제 슬슬 됐는데..."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그 아이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고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아이의 모습은 커녕 개미새끼 한마리 조차 없었다. 


'뭐. 기다리다보면 언젠간 오겠지..'


다시 커피를 마시며 별들을 감상했다. 손가락으로 별들을 이으며 별자리를 그렸다.

별자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지라 대충 아무렇게나 이으고 대충 아무렇게나 이름을 지었다.


"이건..이건 그리폰이 LRL에게 꿀밤때리는 자리..이건 이프리트가 임관 했을 때 표정 자리.."


그렇게 아무 별자리를 만들며 그 아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약속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지만 그 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아이디어가 고갈 되어갈 때 쯤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뽀드득'거리는 눈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보폭이라던가 중량감을 얼핏 들어보았을 땐 그 아이처럼 들렸다.

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다가오고있었다.


손전등을 들어 그 쪽을 비춰보았다. 


"역시.."


그 아이였다.



"안녕."


그 아이는 아무런 말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의자에 앉은 나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머리 아파서 여기까지만 씀. 더 이어갈지는 몰?루 

이거 쓴다고 저 배경 삼. 내 25참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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