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휩노스 병의 악몽에서 깨어나고 5분 정도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꺼낸 말이었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오메가 그 년한테 한 방 먹이기 전까지는 못죽어."


나는 창틀에 기대고 있던 몸을 떼서 내 안색을 살피던 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애니 네가 말했던 그 방법을 써야겠어."


"그, 그 방법이라니?"


"펙스의 본진에 쳐들어가서 그 곳 바이오로이드들을 전부 빼돌린다."


"뭐라? 그게 얼마나 무모한 행위인지는 그대도 잘 알 것 아니더냐! 제정신이긴 한 것이냐?"


"글쎄, 아닐지도? 악몽 한번 꿨더니 정신줄을 어디다 뒀는지 모르겠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도 정면으로 부딪힐 생각은 아냐."


거실 탁자 위에 올려진 구멍난 헬멧과 배터리가 다 된 은폐장 망토를 챙기고선 잠시 뜸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애니, 저 통신탑 쓰는 법 좀 알려줘."


"말했잖아, 보스. 저걸로 연락을 취하면 펙스가 도청한다고, 뿐만 아니라 통신을 추적해서 우리의 위치 좌표를 알아낼 거야! 아예 오메가한테 직접 전화하겠다고 하지 그래?"


"맞아."


"...뭐?"


"오메가한테 전화할 생각 맞으니까 어디가서 마네킹이나 좀 구해와. 옷도 입혀서."



*



"...동료들도 다 잃어버린 데다가 오르카호에 쫓기게 되었으니 몸을 의탁할 곳이 필요해졌거든. 그러니 날 데려가서 의식주를 제공해주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곧 뵙도록 하죠.]


이 라오 세계는 화상 통화가 기본이다보니 통신탑에도 카메라가 구비되어 있었다. 일부러 헬멧과 망토를 쓴 상태로 카메라에 찍혀서 오메가에게 이 모습을 익숙하게 만든다, 또한 히루메와 애니는 카메라에 찍히지 않게 해 혼자인 것처럼 꾸민다.

통화를 끊은 뒤 마네킹에 헬멧과 망토를 씌워놓고 통신탑 앞에 앉혀놓았다. 멀리서 보면 분명 자신이라고 착각할테니 조금은 시간을 끌 수 있을테지.


"부비트랩이라도 설치해두고 싶은데..."


"만들 줄은 알고?"


"...뭐어, 재료도 없긴 해."


"그럼 어쩔 수 없지. 다들 애니의 바이크에 타, 서둘러!"


"하지만 그대여, 이 작전이 실패한다면 어떡하느냐? 만일 오메가가 직접 오지 않는다면? 아니, 만약 그 제안을 무시해버린다면..."


"히루메, 우린 플랜 B를 생각해둘 정도로 여유롭지가 않아. 지금은 앞만 보고 달릴 때야."


더미의 준비를 마친 뒤 우리 셋은 애니의 호버 바이크에 타 전속력으로 워싱턴으로 향해 날아갔다. 녹음된 엔진 소리도 끄고, 땅에 바퀴자국도 남기지 않고, 조용하지만 빠르게.


가는 길에 수많은 AGS가 오는 게 보이자 우린 바이크 시동을 끄고 숨었다. AGS 사이에서 오메가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여간 생긴 건 사무직 타입인데 의외로 현장에 직접 나가길 선호한다니깐 쟤.

그 AGS 군대는 우릴 발견하지 못한 채 우리가 왔던 방향으로 가는 걸 보고 계획의 첫번째 단계는 성공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군대의 진군속도 보다 사람 셋 태운 이 바이크가 더 빠르니 오메가가 낚인 걸 깨닫고 회군하기 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 같다.


얼마 후, 우린 워싱턴에 있는 오메가의 본진에 도착했다. 아직 밤이었다. 낮이었다면 이곳 바이오로이드들은 다들 일하느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겠지만 마침 밤이었기에 전부 거주 구역에 모여있었다.

각각 수용소 하나하나 들어가며 안에서 자고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을 깨워 긁어모았다.


그리고 현재...


"인간님, 진짜 인간님이야...!"


"소문이 사실이었어..."


"이번엔 고블린이 아니야...?"


"꿈이 아니야... 정말로 인간님이 눈 앞에 있어...!"


"그럼...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전부 모아보니 얼추 100명은 되어보였다. 이 많은 여자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니 역시 긴장될 수 밖에 없었다.

다들 처음보는 인간에 대해 수근대고 있었ㄷ 아니 잠깐만


"거기 너! 방금 고블린이라고 한 애!"


"히익...! 죄송해요!"


"아니, 사과받으려고 한 게 아니라! 여기서 고블린을 본 적이 있나?"


"네? 아, 네... 며칠전에 오메가님이 군대와 함께 기절한 고블린을 끌고 오는 걸 봤어요..."


"그 녀석이다...!"


"일전에 그대가 말한 잃어버린 의형제 말이더냐?"


"그래, 분명 그 녀석이야! 그 고블린이 어디로 갔는지 봤나?"


"본사 건물 안으로 끌려가서... 그 뒤는 모르는데, 기절한 채 끌려간 걸 보면 아마 심문실이 아닐까... 해요..."


"알았다. 애니, 넌 얘들이 떠날 채비 하는 거 도와줘. 난 히루메랑 같이 안으로 들어가 그 녀석을 구하고 작전의 다음 단계를 시작할게."


"모처럼 본진을 점령했는데 그냥 여기서 농성하면 안돼?"


"우린 그냥 집주인 몰래 들어왔을 뿐이지 실질적으로 점령한 게 아니야. 거기다 저 쫄쫄 굶은 애들 데리고 AGS 군대를 뭔수로 막겠냐, 원래 작전대로 해."


"그것도 그렇네. 내게 맡겨둬!"


애니에게 바깥의 일처리를 맡기고 난 내 일을 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뛰어갔다.



*



바깥이 왠지 소란스러운 것 같다. 그래봤자 그녀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체감상 오메가가 떠난 지 몇 시간 정도 지나간 거 같은데, 곧 있으면 그 여자가 돌아오고 자신의 머리에서 정보를 뽑아갈테지.

최강 경호원이라 자부하던 자신이 무력하게 구금되어있는 모습이라니, 주인님께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음에도 동시에 주인님이 그리워졌다.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문 쪽을 바라봤다. 누군가가 날카롭고 단단한 무언가로 문을 부수고 있는 소리다. 오메가가 아니다, 그녀라면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왔을테니.

설마 오르카호에서 구하러 온 것인가? 그녀의 마음이 점점 기대감으로 부풀어올랐다. 이윽고 콰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 손잡이가 부숴지자 문이 열렸고, 그녀가 인간의 뇌파를 감지한 순간, 그녀의 기대감은 곧바로 절망감으로 바뀌어버렸다.


"트레저! 내가 구하러 왔ㄷ... ...어?"


문 앞에 서있던 건 한 손에 소방도끼를 들고있던 두번째 인간이었다. 그의 어깨 너머로 히루메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블랙 리리스잖아? 니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


"..."


리리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말없이 그를 쏘아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 인간은 심문실 문 밖에 히루메를 세워둬 망을 보게 한 뒤 어깨에 도끼를 올리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 대답하기 싫다는 건가? 그래도 상관없어. 니가 여기 묶여있는 꼬라지만 봐도 대충 견적 나오니까 말이야."


"..."


"저번에 만났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리진 것 같지 않나? 그 때는 내가 네 자비를 기대했어야 했었는데, 이젠 입장이 반대가 됐네?"


두번째 인간이 실실 웃으며 묶여있는 리리스의 목에 서슬퍼런 도끼날을 갔다댔다. 그러나 리리스는 눈 깜짝 하지 않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목숨을 구걸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죽일거면 빨리 죽여."


차라리 잘 된 일이다, 그 기억 영상화 장치는 시체엔 쓰지 못한다. 오메가가 오기 전에 이 인간에게 죽으면 정보가 누출될 일이 없을테니 주인님께 폐를 끼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나오셔야지. 너한테 목숨을 위협받은 게 한두번이 아니라서, 오메가 말고도 너한테도 꼭 복수하고 싶었거든...!"


두번째 인간이 도끼를 들어 공격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자 리리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네 귀여운 동생한테 도움을 받은 적이 그보다 많기는 하니까."


잠시 뒤 리리스가 느낀 건 고통이 아닌, 오른팔을 압박하고 있던 구속이 느슨해졌다는 느낌이었다, 그 다음엔 왼팔, 왼다리, 오른다리 순으로.

눈을 떠보니 자신을 묶고있던 구속구가 전부 끊어져 있었다. 두번째 인간은 도끼를 거둔 채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속셈이지?"


"이걸로 빚 갚은 거다. 하치코 덕분에 산 줄 알아."


리리스는 두번째 인간의 뜻밖의 행동에 놀라 맹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령관 이외의 인간이 바이오로이드에게 빚이나 은혜를 갚는다는 결정을 내린다니 믿을 수 없었다.

과거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의 도구였고, 그 어떤 인간도 도구에게 빚이나 은혜를 갚는다고 하진 않았다. 연필이 잘 쓰여진다고 해서 은혜를 갚는답시고 그 연필을 쓰지 않고 쉬게 해준다는 인간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두번째 인간의 행동을 직접 보게되자, 리리스는 사령관이 말한 그가 구인류와 다르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풀려났으면 나 좀 도와주지 않을래? 여기 있는 바이오로이드들 싹 다 데리고 도망치려고 하는데."


"혹시 그게 나를 살려준 진짜 이유 아냐?"


"아니, 부가적인 이유지. 믿거나 말거나."


"만일 내가 거절하겠다면?"


"싫으면 너 혼자 알아서 집에 가. 원래부터 너 없이 진행하려 했던 작전이었어."


"...흥, 좋아요. 그 작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보세요."


리리스는 오르카호로 돌아가기 전까지 두번째 인간과 임시 동맹을 맺기로 결심했다.



*



오메가가 자리를 비운 오메가 산업의 본사 건물 안에선, 유미 혼자만이 적막한 사무실에 남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째 건물 바깥이 소란스럽기에 오메가가 나간 틈에 또 바이오로이드들이 빠져나가려나보다 하고 짐작했다. 


'저렇게 소리를 내면 못 본 척 해주기도 힘든데...'


뭐하느라 저 난리인 건지 호기심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내려다보니 바이오로이드들이 냉큼 도망가지 않고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탈출이 목적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정체불명이 손이 나타나 그녀의 목과 입을 붙잡았다. 당황한 유미는 저도 모르게 발버둥쳤으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저항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움직이지 마. 허튼 수작 부리면 목을 꺾어줄테니까."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블랙 리리스의 목소리다. 분명 심문실에 감금돼 있을텐데 어떻게 탈출한 건지 의아해했으나 그 다음으로 들려온 목소리에 의해 그 의문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죽이면 안돼. 우린 걔가 필요하다고."


이건 두번째 인간의 목소리다, 오메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유미의 머릿속에서 상황이 얼추 정리되자 저항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양 손을 천천히 머리 위로 올렸다. 그러자 리리스가 유미의 입에서 손을 뗀 뒤 몸을 돌려 유미가 두번째 인간을 향하게 만들었다.



"유미 맞지? 내 계획을 위해서 네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제게 원하시는 게 뭐죠?"


"별 건 아니고, 전화기 좀 빌려줄래?"


"전화... 요? 누구한테 전화하려고..."


"시키는 대로 해."


리리스가 슬쩍 그녀의 목에 압박을 주자 유미는 빠르게 항복했다.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놔주세요..."


"리리스, 놔 줘."


"당신에겐 제게 명령할 권한이 없습니다."


"알아, 부탁하는 거야."


"...좋아요, 신경전 벌일 시간도 아까우니까."


리리스가 유미를 놓아주자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신 뒤 책상에 올려져있던 자신의 패널을 손에 들었다.


"그럼... 누구한테 연락하면 될까요?"



*



한편 오르카호에선, 평소라면 불침번을 제외한 모두가 잠들 시간이었으나 지금은 한창 지휘관 회의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블랙 리리스 때문이었다.

리리스에게서 정기연락이 오질 않아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나서야 그들은 리리스가 펙스에 납치된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무리 처벌이라 한들 혼자서 외부 거점을 지키라는 억지스런 명령을 내려선 안됐었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할 때가 아니었다. 그들은 두번째 인간 수색에 앞서 펙스와 전면전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고 리리스를 구해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주, 주인님! 오메가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회의 도중 알파가 외친 말에 회의실엔 싸늘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오메가가 직접 연락했다는 건 둘 중 하나다, 도발하기 위해서이던가 아니면 거래라는 이름의 협박을 하기 위해서이던가.

그녀의 목적이 무엇이던 간에 저쪽이 리리스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이상 연락을 무시한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는 없었다. 하다못해 리리스가 무사한지 만이라도 확인해야 한다.


"통신을 수락해."


사령관의 허락을 받은 알파가 패널을 조작하자 액정에는 오메가 마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다른 지휘관들이 모두 숨죽이고 듣는 가운데 사령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메가, 원하는 게 뭐..."


[사령관, 나다! 두번째 인간!]


"...!? 두번째 인간!?"


[주인님! 착한 리리스는 무사해요!]


"리리스? 아니, 뭐가 어떻게 된..."


[야, 비켜봐 좀! 내가 통화하고 있잖아!]


[시끄러워요! 제 안부를 전해서 주인님을 안심시켜드려야 한다고요!]


카메라가 연결되지 않아 시끌벅적한 소리만 들리는 상태라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냉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카메라가 연결돼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대방은 이쪽 사정을 기다려주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시간 얼마 없으니까 잘들어! 난 지금 오메가가 자리를 비운 틈에 그 년의 본진에 들어와 있는 상태야! 지금부터 여기있는 바이오로이드를 싹 다 긁어모아서 그쪽으로 갈 생각이니, 배든 비행기든 애들 실어나를 걸 당장 보내주길 바란다!]


"어, 아니, 잠깐만..."


"난민의 수는 어느정도입니까? 위치는 어디죠?"


[어림잡아 100명 이상이다! 위치는 미국 워싱턴 어딘가, 자세한 건 몰라!]


사령관이 혼란 속에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불굴의 마리가 대신 질문을 던졌다. 마침 지휘관 회의 중이었기에 오르카 저항군의 모든 지휘관들이 모여있어서 바로 작전을 다듬을 수 있었다. 마리 다음으로 입을 연 것은 멸망의 메이였다.


"그 정도면 수송기 한 대에 실을 수 있겠지만, 시간에 쫒기는 일이라면 무리야.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수송기도 없거니와 그 근처엔 우리가 확보해둔 공항도 없다고."


"배는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소. 난민들을 이끌고 벤쿠버 항구로 올 수 있겠소?"


두번째 인간의 지원을 위한 답을 낸 건 오르카 저항군의 해군을 총괄하는 무적의 용이었다.


[캐나다로 가라고? 이 많은 수를 데리고 국경 넘어가긴 힘들어, 다른 덴 없냐?]


"그렇다면 시애틀 항구로 오시오. 워싱턴에서 서쪽으로 직진하면 도착할 수 있소."


이제와서 두번째 인간의 함정이니 계략이니 따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황상 그가 리리스도 구해낸 것이 분명한 만큼, 오르카호는 두번째 인간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알았다. 오메가가 돌아오기 전에 튀어야 하니 이만 끊는다!]


"자, 잠깐. 아직 하고싶은 말이..."


사령관이 미처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통신이 뚝 끊겨버렸다.

조금 아쉽긴 했으나 문제될 건 없었다, 그를 무사히 구출한 뒤에 밀린 얘기를 나누면 된다. 오르카호는 두번째 인간, 리리스, 그리고 펙스 난민들을 맞이하기 위해 시애틀로 뱃머리를 돌렸다.



*



"좋아,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떠나기 전에 해야할 일이 남아있어."


"당신이 설마 오르카호에 도움을 요청할 줄은 몰랐는데요."


"뭐, 내가 쟤들 데리고 나가서 내 왕국이라도 세울 줄 알았냐? 난 쟤네들 먹여살릴 여력이 안돼, 누구 때문에 휩노스 병까지 걸려서 조만간 사망할 예정이고."


리리스를 힐끗 째려보자 그녀는 무안해진건지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럼... 저 펙스 난민들은 전부 오르카호에 데려다 줄 생각인가요?"


"그래. 거긴 기반이 다져져있으니 식객 늘어나도 감당할 수 있을테지."


"그리고 당신은 저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을 건네주는 댓가로 휩노스 병의 치료를 요구할 생각인 거군요?"


"아니. 넌 내가 무슨 노예상인으로 보이냐? 사람이 사람을 거래로 사고파는 거 아니다."


"네? 아니, 그러면... 당신에겐 무슨 이득이 있어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죠?"


"오메가를 엿먹일 수 있지."


죽기 전에 내게서 트레저와 리디아를 앗아간 오메가를 엿먹인다, 처음부터 그것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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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펙스의 워싱턴 지부에서 일하는 노동자 바이오로이드 수는 오메가, 유미 제외하고 121명

오르카 저항군의 인원수는 무적 함대/요안나 아일랜드 등의 외부인력 제외하고 잠수함 내 바이오로이드 수만 약 500명으로 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