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안녕."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지만 그 아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무런 말없이 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두꺼운 외투를 뚫고 들어오는 바람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기다려봐. 의자 꺼내줄테니깐.."


멍하니 서있는 그녀를 위해 가방 쪽으로 손을 뻗었다. 가방 안에는 접이식 의자가 하나 더 들어있었다. 


"아니. 됐어."


"뭐..?"


그녀는 짧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곤 내가 덮고있는 담요를 치우고 내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야. 잠깐.."


의자가 '끼긱'거리는 알루미늄이 찌그러지는 소리를 내며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무게까지는 감당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 여파로 인해 들고있던 커피를 쏟을 뻔 했지만 다행히 많이 마셔둔 덕분에 넘치지는 않았다. 


"너.."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화가 났다. 하마터면 가장 아끼는 의자가 무너지고 커피로 샤워를 할 뻔 했으니깐 말이다.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화난 표정으로 그녀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나의 표정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내 품을 더 파고들었다.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그녀는 나를 한번 째려보곤 아무런 말없이 담요를 덮었다.

멸망전 티비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사춘기 청소년처럼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녀가 이런 행동을 하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화났어..?"


내 품에 머리를 박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역시나 였다.

사실 그녀와 약속한 장소는 여기가 아니였다. 갑자기 약속장소를 바꾼게 삐쳤던 모양이었다.


"미안해."


사과를 해보지만 그녀에게서 아무런 말은 없었다.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삐친 여자를 달래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었다. 마저 남아있던 커피를 전부 입 안으로 털어넣으며 그녀를 달랠 방법을 찾았다.


커피에는 달달함은 사라지고 씁쓸함만이 남아있었다.


"키스해줘.."


내 눈앞에 있는 작은 동굴에서 들려온 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키스..해달라고.."


작은 동굴에서 그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의 얼굴은 붉다 못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볼을 붙잡고 입술을 포갰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감각에 살짝 놀랐다. 온기를 빼앗기는 기분이었지만 참을만 했다.


"윽..?!"


하지만 그 감각의 뒤에 오는 것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바로 담배냄새였다. 오기 전에 담배를 피웠던 모양이었다.

매캐하고 독한 냄새에 떨어지고 싶었다. 담배를 피지않는 나에게 있어선 이는 고역이었다. 


"장화야...잠시..쉬었다가..."


"싫어...좀만 더..."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말려보았지만 그녀는 내 볼을 붙잡고 계속해서 입을 맞추었다.


"읏...응..."


"장화야..우읍.."


그녀의 혀가 내 입 안으로 들어와 입천장, 그리고 치아를 한번씩 쓸고 내 혀를 휘감았다. 진한 커피향으로 가득했던 입안이 그녀의 진한 담배냄새로 더럽혀지고있었다.


"읏...으응..."


혀와 혀가 얽히고 설켜 누가 누구의 혀인지 알 수 없을정도였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튜브형 아이스크림을 빨 듯이 내 혀를 빨아댔다. 입안에 마저 남아있던 커피향이 전부 그녀에게로 갔다.


"푸하..! 하아...하..."


"하...."


입술을 떼자 입김과 함께 서로의 타액이 실로 이어졌다. 타액은 별빛들이 내뿜는 빛을 머금은 탓에 반짝였다.

그녀와 난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서로의 존재와 온기 느꼈다.



"진한..커피향이었어..."


그녀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아까 그 거칠고 차가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여리고 부드럽고 연한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진한..담배냄새였어.."


그녀의 말을 되받아주며 입꼬리를 올렸다. 


"싫었어..?"


그녀는 여린 손으로 입을 살짝 가렸다. 담배냄새라는 말이 신경쓰였던 모양이었다.


"아니. 싫진 않았어."


솔직히 말해서 조금 괴로웠다. 하지만 그녀가 상처받는 모습을 보는 쪽이 더 괴로웠다.

그녀는 뭐랄까..나도 대하기가 조금 무서웠다. 깨진 유리들이 가득한 길을 걷는 것, 조금이라도 잘못 건들이는 순간 터지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그만큼 그녀는 불안정한 존재였다. 


"장화.."


"응..?"


조심히 그녀를 불러보았다. 자수정 색 눈빛은 그녀의 뒤에 반짝이고 있는 별들보다 더 환하게 빛나는거 같았다.

거칠고 차가웠던 그녀의 눈은 어느새 부드럽고 따뜻하게 변해있었다.


"아냐..아무것도.."


"뭐야.."


그녀는 피식 웃으며 나의 어깨를 살짝 토닥여주고 다시 품 속을 파고들었다.

난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뒤에 별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밝게 빛나는 별들을 보는게 얼마만인지 몰랐다.


조용히 그녀의 온기를 느끼며 별들을 감상할려던 찰나.


"저기.."


"응..?"


그녀의 부름에 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뭐랄까..뭔가를 바라는 눈빛이었다.

지금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애정.


"저기..텐트로..가..면..안될까..?"


그녀는 여린 손가락으로 의자 옆에 쳐둔 텐트를 가리켰다. 혹시나 모르는 사태에 대비해 쳐둔 것이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는가보다.


"나..오늘은 별 보고싶은데.."


"나랑 있는게 싫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있었다. 그녀의 눈가에 일렁이는 눈물로 인해 그녀의 자수정빛 눈은 더욱 더 반짝였다. 그녀의 표정을 보지않기위해 귀를 막고 눈을 꼭 감았다. 저 표정과 말에 한번 휘말리면 이 별들을 감상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나랑 있을 때 만큼은 나만 바라봐주겠다면서..? 너가 그랬잖아..내게 사랑을 주겠다는거..거짓말이었어..?"


외투를 움켜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더 애절했다.

눈을 감았지만 그녀가 어떤 표정인지 눈에 선했다.


"역시..내가 싫은거지..? 날 싫어하지말아줘..제발..부탁이야..버리지말아줘.."


"하아.."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타고있는 모닥불을 주위의 눈으로 덮어 그것을 껐다. 나를 따뜻하게 데워진 모닥불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텐트로 향했다.


텐트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길을 만들어내고있었다.

그리고 그 이어진 길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봐줬으면 하는 것처럼 밝게 빛나고있었다. 


우유가 흐르는 강 같았다.


지금 많이 봐둬야했다. 텐트 안에 들어가면 또 다른 별을 봐야했기 때문이었다.


"저기..."


내 품에 안긴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응?"


"미안..화내서.."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을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아까 내가 마셨던 진한 커피향이 풍겨왔다.


"아냐. 내 잘못인걸."


"후후.."


"왜 웃는거야?"


"네 입에서..진한 담배냄새가 나서 말이야.."


그녀의 웃음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가 웃으면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난 그녀를 더욱 꽉 안으며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허리 아파서 여기까지만 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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