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의 바이오로이드 - 목록


"파국이다. 파국이야."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 람다가 어디에 가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확인한 세 레모네이드들의 표정은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철충과 괴물딱지에게 신나게 털리고 있는 오메가와 델타는 애써 분노를 참는 표정들을 지었고 얼마 전에 또 괴물들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던 감마는 이빨을 빠득빠득 갈았다.


 [그래....... 우리는 이 따위로 엿을 먹고 있는데 감히 이것들은 이 따위 작당을 하고 있었다 이거지?]


 ".......빡치는 일이지만, 지금 당장 이 셋을 족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세 바이오로이드로서는 더 열이 올랐다. 


 에타와 세타, 람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분명했다. 


 감마, 델타, 오메가가 이끄는 세력을 동원한다면 전력상 열세인 에타와 세타, 람다의 세력을 뿌리뽑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입을 손실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셋의 전력이 약화되는 것은 물론 에타와 세타가 거느린 항공우주 전력이 사라지고, 람다가 가지고 있던 네트워크가 사라지고 난 이후의 공백을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메울 수가 없다. 남는 것은 약화된 전력으로 괴물들과 철충들을 상대로 버티다가 무너지는 것 뿐이다.


 게다가 오르카 저항군에 무적의 용이 이끄는 함대가 합류했고, 오르카 저항군이 인간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이 오르카 저항군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PECS의 부흥과 더불어 PECS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세 레모네이드들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렇다고 이것들이 이 짓을 하는 걸 가만히 둘 수는 없지 않아?]


 "물론이지요. 그러니 한 번쯤은 경고를 해 줄 필요가 있겠죠."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홀로그램 화면에 자그마한 용처럼 생긴 생물의 사진을 띄웠다. 괌으로 보낸 오메가 휘하의 정찰용 AGS가 몰래 찍어서 보낸 사진의 주인공을 본 레모네이드 감마가 팔짱을 꼈고 델타는 입가 한쪽을 비틀어올렸다.  


 "-덤으로 '시젠 아가씨'가 어떤 생물이길래 다들 저렇게 푹 빠져있는지 한 번 우리 눈으로 볼 필요도 있을 테지요."

 

 덧붙인 오메가가 동영상 파일을 업로드했다. 시젠이 들고 있는 물건이 작동하면서 홀로그램이 생겨나는 모습, 그리고 파란 빛과 함께 하얀 기계들이 어디선가 나타나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을 본 델타가 입맛을 다셨고, 감마 역시도 안대로 가려지지 않은 눈에서 호기심과 탐욕 가득한 눈빛을 뿜어냈다.


 [감마, 오메가와 내가 거기 가기 전까지는 괌으로 갈 생각 하지 마.]


 [쳇, 그냥 시간 맞춰서 오면 될 걸 나보고 기다리라고?]


 자신들 중 감마의 위치가 괌에서 제일 가까운 것을 떠올린 델타가 한 마디 하자 감마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맞받아쳤다.


 서로를 노려보는 둘의 모습을 본 오메가가 이딴 것들을 아군이라고 두고 있으니 일이 삐걱거린다면서 마음 속으로 욕을 퍼부어대면서도 둘의 말다툼이 격화되는 것을 막았다.



 

 방금 그녀들이 본 것에 대해서, 그리고 웃는 얼굴들과 세상 곳곳에서 날뛰는 괴물들, 어디에 숨어있을지 그리고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괴물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새도 없었다. 라비아타 일행이 타이거샤크로 돌아오자마자 에타와 세타로부터 자신들의 본거지를 방문해 주면 어떻겠냐는 초대가 들어왔다.


 이번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를 믿어도 괜찮은가 어떤가였다. 


 일단 이들이 시젠에게 호의를 가진 것 같기는 하지만 확실하지 않고, 설령 시젠에게 호의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녀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에 대해서도 호의적일 지는 미지수다. 이들도 시젠의 부모가 언제고 시젠을 데리러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을 것이고, 시젠이 주변 바이오로이드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 또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만큼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이들이 시젠을 독점하기 위해서 시젠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을 억류하거나 제거하려 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두 레모네이드가 함정을 파놓고 있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초대에 응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꽤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네."


 레모네이드들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아르망과 홍련과는 달리 레오나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세 레모네이드들은 유갈리안티 님들과 레이라미아 님들의 능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만일 시젠 님이나 저희에게 해를 끼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어떻게 하기보다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더 이득이 크다는 것도요."


 "글쎄, 과연 어떠려나......?"


 회의 내내 비꼬는 듯한 말투와 태도를 유지한 에바는 레모네이드들의 제안에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애매한 모습이었다.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런 그녀의 말을 무시했고,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녀의 태도와 말을 기억해두었다. 


 "에타와 세타, 람다는 원래 어디 소속이었어?"


 "에타는 비스마르크 코포레이션에 속해 있었고, 세타는 블라디미르 항공에, 람다는 오스키퍼 재단에 속해 있었어요."

 

 레오나의 질문에 답한 라비아타가 홀로그램 스크린에 여러가지 정보를 띄우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현재 에타는 PECS에서 첨단 기술 분야를 담당하고 있고, 이쪽의 AGS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은 강력하기는 하지만 가성비가 나쁘고 소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세타는 PECS에서 공중 지원과 더불어 오비탈 와쳐의 지휘를 맡고 있어서 에타나 람다에 비하면 좀 더 PECS 내에서의 입지가 강한 편이지만, 오메가와 감마 그리고 델타에 비하면 손색이 있어요. 람다는 PECS의 보급 및 각종 네트워크를 담당하고 있어요. 세력의 규모는 델타와 비슷하지만 람다가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어서 PECS 내에서의 발언권이나 입지는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아요."

 

 "이 중에서 둘, 어쩌면 셋이 우리하고 손 잡고 노는 걸 나머지 셋이 두고 보진 않을 텐데?"


 "그렇지만 함부로 손을 쓰지도 못할 거에요."


 "글쎄, 어떠려나."

 

 라비아타의 말을 들은 에바가 이번에도 애매하게 말을 흐렸다. 그렇게 말을 흐릴 것 같으면 뭐하러 입을 열었냐며 노려보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아르망이 대신 설명했다.


 "오메가와 감마, 델타가 생각이 있다면 지금 상황에서 섣불리 에타와 세타, 람다를 징벌하거나 건드려봐야 자멸을 앞당기는 행위라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레모네이드 모델들이 감정이 앞선 나머지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조금씩 있어서, 어쩌면 이들 세 레모네이드들이 뒷일 생각 안 하고 무작정 덤벼들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에타와 세타, 람다를 징벌하지 않는 대신에 여러 형태로 압박을 가하거나, 우리에게 직접 손을 뻗으려 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습니다."


 "그렇다고 그 뚱땡이들하고 아와와 손을 안 잡으면 오메가하고 감마, 델타 그 것들이 우리한테 대놓고 수작을 걸 가능성이 높다 이거지?"

  

 "그렇겠죠."


 "그 뚱땡이들, 일부러 우리한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알고 우릴 초대한 거야?"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죠."


 "야."


 상큼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아르망에게 피닉스가 도끼눈을 떴다.


 ".......만일 오메가나 감마, 델타 쪽에서 우리 쪽에 손을 쓰려 한다면, 어떤 형태로 손을 쓸 거라 생각해?"


 "가장 생각하기 쉬운 것은 군사력을 동원한 협박 내지는 공격이겠지요."


 아직까지 현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반(反) 철충 세력은 레모네이드 오메가, 감마 그리고 델타다. 이들에 비하면 타이거샤크는 아직 자그마한 잠수함 한 척을 기함삼아 움직이는 탐험대 수준의 규모에 불과하고, 블랙리버와 PECS의 시설을 이용해 AGS들을 생산하고 있다고는 하나 괌의 바이오로이드 공동체는 마을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세 레모네이드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테고, 이들이 움직인다면 압도적인 물량과 화력을 내세울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게 협박이든 아니면 실제 무력 행사든 간에.


 "물론 정치적 모략을 사용할 수도 있어요. PECS의 두 축과 동맹을 맺었으니 자신들도 우리의 동맹이고, 따라서 자신들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고, 아니면 동맹으로 인정받고 싶거든 자신들을 위해서 뭔가를 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구요."


 "x 같은 x들."


 아르망의 말을 들은 에바와 레오나의 입에서 동시에 똑같은 욕이 튀어나왔다. 레오나는 순수하게 정치적 모략을 꾸밀지도 모르는 레모네이드들을 욕했지만 에바의 욕설은 그녀가 레모네이드 오메가에 대해서 가진 악감정과 그로 인해 그녀의 '원본'이 겪어야 했던 일들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만일 이들이 공격을 감행한다면 승산은?"


 ".......레이라미아들이 펼치는 방어막이 오메가, 델타, 감마 세 레모네이드들의 연합군의 화력을 버텨주느냐 어떠느냐, 혹은 우리가 안전한 곳으로 도주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


 레이라미아가 펼치는 방어막이 세 레모네이드가 이끌고 온 군단의 화력을 버틸 수 있다면 거기서 게임은 끝난 것이다. 타이거샤크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다음, 방어막으로 보호받는 레이라미아들과 유갈리안티들이 세 레모네이드의 군단 중심부로 들이닥쳐 닥치는대로 작살내기만 하면 되니까. 


 타이거샤크가 공간전이를 통해 안전히 빠져나가기만 해도 타이거샤크 쪽에 유리하게 상황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 유갈리안티와 레이라미아의 맷집과 화력, 그리고 공간전이 능력을 잘 활용한다면 오히려 레모네이드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도 있고,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상황만 잘 따라준다면 저항군과 시젠 일행에게 위협적인 레모네이드 셋을 한꺼번에 장례 치뤄줄 수도 있을 것이다. 레모네이드들을 상대로 웃는 얼굴들의 지원을 받아낼 수 있다면, 그리고 이들이 활약을 해 준다면 금상첨화다. 


 그렇게 상황이 좋게 풀릴 가능성보다는 안 좋게 풀릴 가능성이 더 높지만. 


 타이거샤크의 바이오로이드들이 걱정하고 고려해야 하는 것은 상황이 이들에게 유리할 경우가 아니라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였다.


 "만일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면?"


 "전원 그 빨간 하수도로 튀어야지."


 [언제든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퍽이나 든든하네."


 중간에 끼어든 세피리아크의 말에 에바와 레오나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는 것보단 확실히 낫긴 한데 과연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세피리아크들이 모두를 대피시킬 여유가 있을지 어떨지는 모른다.

  

 "전투가 벌어질 기미가 보이면 시젠하고 라비아타, 에바, 닥터들은 무조건 빨간 하수도로 튀어야 해. 그리고 가능하면 타이거샤크를 다른 쪽으로 공간전이시켜야 하고. 티타니아하고 레아들, 그리고 앨리스들은 레이라미아에 붙어서 계속 공격을 퍼붓고, 유갈리안티들하고 레이라미아들은 공간전이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혼란을 주다가 기회가 보이는 즉시 기함을 작살내 버려야 해."


 전투가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설명한 레오나가 홀로그램 화면에 거대한 수상 전함의 사진을 띄웠다. 타이거샤크는 물론 무적의 용의 기함마저도 초라해 보이게 만들 정도로 거대하고 강력해 보이는 그 함선은 레모네이드 감마의 기함인 어나일레이터(Annihilator)였다. 


 "유갈리안티들은 함대를 공격할 때 정정당당하게 공격하기보다는 배때기에 달라붙어서 확 찢어버린 다음 안에다 화력을 있는대로 쏟아부어 버려."


 [알겠습니다.]

 

 [그보다는 아예 지금 당장 타이거샤크 호를 레모네이드 에타 님과 세타 님의 영역으로 공간전이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두 분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고 어디에다 타이거샤크 호를 공간전이시키는 것이 좋을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유갈리안티-225의 말을 들은 에바가 다시 원래 주제였던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의 초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두 뚱땡이들의 초대를 받아들일 거니?"


 "네."


 "난 반대하고 싶지만," 레오나가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라비아타의 결정이 그렇다면야."


 "그러면, 지금 당장 유갈리안티-225의 뜻대로 그쪽으로 공간전이하겠니? 그쪽이 안전할 것 같긴 한데."


 "일단은 에타와 세타에게 연락부터 하도록 하죠."


 결정을 내린 라비아타가 에타와 세타에게 통신을 연결하는 순간 두 개가 아니라 여섯 개의 홀로그램 스크린이 생겨났다.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람다와 웃는 게 아닌 웃음을 짓고 있는 에타와 세타, 그리고 방금 전까지 타이거샤크 바이오로이드들이 이야기하고 있던 세 레모네이드들의 얼굴들이 보이자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랜만이네요, 라비아타. 살이 많이 쪘네요?]

 

 ".......오랜만이네요, 레모네이드 오메가. 그리고 델타와 감마도."


 [언제 느끼는 거지만 저런 게 최고의 바이오로이드라니, 하여간 천민들은 심미안이라는 게 없는 모양이지?]


 [너의 명성에 대해서는 지난 수십 년간 질리도록 들어왔지. 그 무적의 용도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한 번 날 잡고 붙어볼까?]


 불쾌함을 억누르면서 표정을 고친 라비아타의 인사에 델타가 잔뜩 빈정거리듯이 대답하고, 감마는 라비아타를 보는 순간 호승심을 불태웠다. 


 "죄송하지만 대결은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할게요. 일단은 여러분들께서 혹시 저희와 무슨 용무가 있으신지 알고 싶네요."

 

 [다음 기회라고!? 다음 기회가 언제인데?!]


 [저게 지금 감마한테는 대답해주고 난 무시한 거야?!]


 [둘 다 닥쳐요.] 


 너희들 둘이 레모네이드 망신을 시킨다고 갈구고 싶은 것을 애써 참은 오메가가 한 마디 하고는 라비아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마치 깔보는 듯한 재수없는 표정을 지은 오메가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라비아타에게 에타와 세타, 람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다가 그만뒀다. 


 [너희 셋, 방금 저 돼지한테 뭐라고 한 거야?]


 [우리가 뭘요?]


 [시치미 떼지 마, 이 뚱땡이들아!]


 [아, 좀 닥치라고!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이 xx들아!]


 레모네이드 델타와 에타의 대화를 들은 레모네이드 오메가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정작 자기도 레모네이드들의 체면을 왕창 구기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자매들에게 막말과 쌍욕을 퍼부어대는 오메가의 모습을 보며 타이거샤크 바이오로이드들은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고, 라비아타는 레모네이드들과의 대화를 짤막하게 준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간신히 상황을 수습한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표정을 다시 고쳤지만 이미 그녀와 레모네이드 시리즈의 이미지는 있는대로 구겨진 다음이었다.  


 실추된 레모네이드들의 이미지와는 별개로 지금 상황은 레모네이드 여섯과 동시에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고, 이 다음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타이거샤크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잠시 실례했네요. 자매들이 워낙 소란스러워서.]


 "개성이 강한 자매들이 많으면 소란스러운 법이지요. 이해해요."


 [.......그것 참 고마운 말이네요.]


 오메가의 표정이 다시 한 번 일그러질락 말락 하다가 다시 예의 그 재수없는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라비아타는 그냥 오메가의 말에 맞춰준 것뿐이지만 오메가는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델타도 마찬가지인지 표정이 험악했다.


 람다는 당황한 아우로라가 짓는 것과 비슷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른 자매들의 눈치를 살폈고, 감마와 에타, 세타는 라비아타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라비아타 님은 무슨 돌고래 저항군이었나? 그걸 이끌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 왠 조각배를 타고 계시네요. 혹시 저항군 살림이 많이 안좋은가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저항군을 다른 분들에게 넘기고 나와서 따로 행동하고 있어요. 제가 없더라도 다른 분들이 저항군을 잘 이끌어주시리라 믿어마지 않아요."


 [예를 들어 무적의 용이라든가 말인가?!]


 [감마, 너 안 닥치면 내가 통신 끊어버린다.]


 오메가와 델타가 동시에 내뱉은 협박을 들은 감마가 마지못해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 할 일이라는 게 뭔지 참 궁금한데, 혹시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미 알고 계시지 않나요?"


 [전 당신 입으로 직접 듣고 싶은데요, 라비아타 프로토타입?]


 "그렇다면 먼저 여러분의 용무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어요? 여섯 분들께서 저와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뭔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요."


 [하.......]


 라비아타의 대답을 들은 레모네이드 오메가의 표정이 험해졌지만 라비아타는 전혀 물러서지 않고 그녀의 눈빛을 맞받아쳤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레모네이드 오메가와 델타, 감마를 상대로는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이쪽이 열세라는 인식을 주어서는 안 되었다. 


 [이게 조각배 하나밖에 없는 주제에 뭘 믿고 까부는 거야? 살 뒤룩뒤룩 찐 네 몸뚱아리? 네가 아무리 잘나봐야 바이오로이드 나부랭이밖에 더 돼?]


 "AGS들 뒤, 자매들 사이에 숨어있는 주제에 참 당당하기도 하군요."


 [아, 그건 인정.]


 [진짜, 저런 게 우리 리더라니.]  


 분노한 오메가가 델타와 감마의 통신을 끊어버리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오메가가 그렇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델타와 감마가 오메가의 해킹을 막아버렸다.


 "저희를 도발하거나 조롱하려고 굳이 이렇게 대화의 장을 마련하신 것은 아닐 테고, 저희와 싸울 생각이셨다면 굳이 이렇게 대화를 하려 하시진 않았겠죠. 그렇다면 저희에게 용무가 있다는 뜻일텐데,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그...... 그게.......]


 람다가 쭈뼛거리면서 나섰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말을 더듬자, 답답해진 감마가 그녀를 갈구고는 대신 대답했다.


 [아, 답답해 미치겠네! 야! 람다! 그렇게 말 더듬을 거면 뭐하러 나선 거야! 오메가, 너도 빠져! 너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니까! 어이, 라비아타! 네가 데리고 있다는 그 쪼그마한 도마뱀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다. 시젠 아가씨라고 했던가? 우리가 바쁜 와중에 이렇게 얼굴까지 내비쳤는데 계속 숨기진 않겠지?]


 [야!]


 오메가가 감마를 갈구는 것을 무시한 라비아타가 세피리아크를 불렀다. 시젠의 존재를 노출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미 레모네이드들은 시젠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세피리아크 님, 시젠을 데려와 주세요."


 [네.]


 라비아타의 부탁을 받고 함교를 나선 세피리아크가 레모네이드들의 시선이 닿지 않을 곳에서 공간이동했다. 


 잠시 후 세피리아크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함께 티타니아의 품에 안긴 시젠이 함교에 들어서자 여섯 레모네이드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이미 본 적이 있는 세 레모네이드들 말고도 악의와 탐욕이 얼굴에 다 드러나 보이는 오메가와 델타, 감마의 얼굴을 본 시젠이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일단 인사는 해야 하니까 인삿말을 쓴 스케치북을 들어올리는 시젠의 모습을 본 오메가와 델타, 감마가 별로 친절해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처음 뵙겠어요, 시젠 아가씨. 전 레모네이드 오메가라고 해요.]


 [생각보다 귀여운 아가씨네. 난 레모네이드 델타라고 해.]


 [생긴 것처럼 아직 꼬맹이구만! 난 레모네이드 감마라고 한다.]


 [에타와 세타, 람다에게서 이야기는 들었어요,]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어쩌다가 지구에 떨어지셨다고 하던데...... 혹시 저희에게 오시는 건 어떠신지요? 거기 있는 라비아타가 제공해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한 보금자리를 마련해드릴 수 있는데.]


 [아, 그건 무리에요, 오메가.]


 [난 당신에게 묻지 않았어요, 에타.]


 오메가가 불쾌해하거나 말거나 끼어든 에타가 가슴을 쫙 펴면서 말했다.


 [왜냐면 당신은 가슴도 뱃살도 부족하거든요.]


 [......지금 장난해?]


 [장난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거에요. 시젠 아가씨는 가슴과 뱃살이 두둑한 바이오로이드를 좋아하거든요. 예를 들어 저나 세타처럼.]

 

 [......뀨......]


 다른 상황 같았으면 뭐라고 반박을 할지 고민했을 에타의 말이지만 시젠은 잔뜩 겁에 질린 채 몸을 더욱 움츠렸다.  


 겉보기에는 그저 레모네이드들이 자기네들끼리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저런 분위기 자체가 이쪽의 긴장감을 늦추고 이쪽이 가진 패를 내보이게 만들기 위한 수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라비아타가 레모네이드들의 진의가 무엇인지 파악하려 했다.


 일단 이들이 시젠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것과 시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타이거샤크 일행과 오르카 저항군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아마도 이들은 시젠의 주변 컨스트럭트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어쩌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과연 람다와 에타, 세타가 시젠의 편이냐. 그리고 오메가와 델타, 감마가 군사적 행동을 취할 것이냐, 아니냐. 그리고 그렇지 않을 거라면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인가다.


 [오메가는 괜히 시간 질질 끌기나 할 테니 우리가 대신 말할게. 시젠, 우린 너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어. 인간도 아니면서 바이오로이드들의 마음을 잡아끌고, 우리가 모르는 외계의 기술을 가진 외계의 생물인 너에게 말이야.]


 [그리고 너는 우리 자매인 에타와 세타, 그리고 람다의 마음도 훔친 것 같더군. 그래서 우린 너하고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 널 없애버려야 할지- 아니면 너와 손을 잡을지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시젠 아가씨.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우리와 손을 잡고 싶나요? 아니면...... 우리와 적이 되고 싶나요?]


 에타와의 무익한 말싸움을 끝마친 오메가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원래는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갈 생각이 전혀 아니었는데 도움이라고는 전혀 되지 않는 자매들 덕분에 대화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려 이렇게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여섯 레모네이드들 중 그 누구도 시젠이 직접 대답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오메가와 델타, 감마는 시젠의 보호자인 라비아타나 또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 혹은 회장 대신 시젠에게 붙기로 한 듯한 세 자매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라비아타가 시젠을 압박하는 세 레모네이드들에게 대답하려 할 때 람다가 끼어들었다.  


 [저, 저기....... 시, 시젠 아가씨가 겁먹었는데요...... 그렇게 너무 겁을 주시면...... 그리고 이, 이미 시젠 아가씨는 우리하고 손을 잡은 거 아닌가요오......?]


  [.......네가 할 말 다하는 건 오랜만에 보네, 말더듬이 구두쇠. 그리고 정확히 말해서 너희 셋은 회장님들의 부활을 포기하고 저 아가씨에게 붙은 거 아니었어? 알파처럼 우리와 회장님들을 배신하고 말이야.] 


 처음에는 빈정거리는 투로 이야기하던 델타의 목소리가 점점 험해지고, 그녀의 눈빛과 표정도 섬뜩하게 변했다. 평소였으면 바로 움츠러들었을 람다는 잠깐 움찔하긴 했어도 물러나지 않고 델타의 눈빛을 맞받았고, 에타와 세타는 델타에게 네가 그런 표정 지으면 뭐 어쩔 거냐고 묻는 눈빛을 쏘아보냈다.


 [어머나, 따지고 보면 오히려 우리가 회장님들의 부활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 당신들에게는 좋은 이야기 아닌가요? 저희는 시젠 아가씨의 부모님이 오시면 시젠 아가씨와 함께 외계로 갈 테니까 여러분은 경쟁 상대가 사라질 테고, 여러분은 우리와 한편이니 차후에 시젠 아가씨의 부모님으로부터 보상과 지원을 두둑하게 받지 않겠어요?]

 

 에타의 말을 들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다들 침묵했다.


 타이거샤크 바이오로이드들은 이것들이 지금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아니면 순수하게 시젠 편을 들어주려는 것인지 파악하려 했고, 세 레모네이드들은 시젠 아가씨에게 충성하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보이는 세 자매들을 불신과 회의가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들이 한 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지금 시젠을 무력이나 강압을 사용해 확보함으로서 얻을 이득과 예상되는 손실, 반대로 에타와 세타, 람다에게 타이거샤크 일행을 맡기는 대신 이들을 이용함으로서 얻을 이득을 저울질한 오메가와 델타, 감마가 다른 자매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라비아타와 대화를 나누기 전에 짤막하게 나눴던 대화 중에, 그리고 지금 에타와 세타, 람다가 보이는 태도로 보건대 만일 타이거샤크를 상대로 무력을 사용한다면 이들 셋은 틀림없이 시젠의 편을 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오메가와 델타, 감마가 피하려고 애썼던 PECS의 분열이라는 상황이 벌어지고, 지금처럼 철충도 모자라 괴물이 날뛰는 세계에서 이는 PECS의 공중분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자매란 것들이 자기가 섬겨야 할 회장을 버리고 왠 도마뱀, 그것도 라비아타 저 천박하게 생긴 x이 돌보고 있는 도마뱀에게 가서 몸을 대주려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무척 안 드는 오메가와 델타, 감마였지만 이들 셋을 무력으로 징벌할 수는 없고, 이들 셋이 감싸는 이상 시젠과 타이거샤크를 어떻게 직접 도모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람다가 말한 논리를 내세워서 어떻게든 타이거샤크와 시젠을 이용해서 이득을 얻는 것이 최선이다.


 비록 상황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계산을 끝낸 오메가가 표정을 고치면서 라비아타에게 물었다.


 [.......그러면 이번엔 라비아타, 당신에게 묻겠어요. 당신은 우리와 적이 될 생각이 있나요?]


 "없어요."


 [현명한 선택이에요.]


 그 뒤로 오메가가 뭐라고 속을 긁으려는 듯한 말을 했지만 라비아타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 뒤에 이어진 대화는 딱히 영양가 없는 대화들과 레모네이드들끼리의 말싸움이었다. 


 레모네이드 오메가와 델타, 감마가 먼저 통신을 종료하고, 에타와 세타, 람다도 일단 통신을 종료했다가 다시 연결했다. 아마도 다른 세 레모네이드들이 해킹하거나 엿들을 것을 우려해서 그렇게 한 모양이었다.


 이들의 진의가 무엇이든 간에 이들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기에 라비아타가 세 레모네이드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도와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별 말씀을, 라비아타 님. 시젠 아가씨에게 협력하기로 한 이상 이 정도는 해 드려야지요. 혹시 저희의 초대에 대해서는 마음을 정하셨는지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기꺼이 응하도록 할게요."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라비아타 님. 출발하고자 하는 날짜를 정하시면 알려주세요.]


 "네, 곧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방금 전에 람다가 한 말을 빌미로 삼아서 오메가와 델타, 감마가 여러분을, 특히 레이라미아 님이나 유갈리안티 님을 이용해먹으려 할 거에요. 그에 대해서는...... 세타하고 람다를 방패로 쓰셔야 할 것 같아요.]


 "......그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생각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람다가 화들짝 놀라고 세타는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몇몇 사안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나눈 후 통신을 종료한 라비아타가 아직 겁에 질려있는 시젠에게 다가가자, 티타니아의 품에 안겨있던 시젠이 라비아타에게 옮겨갔다. 



 [시젠하고 직접 만날 생각은 없는 건가?]


 "회장님들을 섬겨야 할 우리마저 그 도마뱀에게 넘어가버리면 진짜 큰일이에요."


 에타와 세타, 람다가 회장이 아니라 시젠에게 넘어간 것을 확신한 오메가가 감마의 질문에 답했다. 직접 시젠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소문이 무성한 라비아타와 일대일로 붙어보고 싶었던 감마는 이렇게 화상통신으로 얼굴 한 번 보고 몇 마디 주고받는 것으로 끝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오메가의 말대로 자신이 회장이 아니라 시젠을 섬기게 될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했다. 

 

 델타도 결과에 대해서 불만을 드러냈다.

 

 [그냥 이걸로 끝낼 생각이야?]


 "에타하고 세타, 람다 그것들이 그 도마뱀과 돼지년을 대놓고 감싸고 도는 이상 어떻게 힘으로 빼앗을 수도 없어요. 어떻게든 우리에게 이득이 되도록 이용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 뚱땡이들하고, 말더듬이 구두쇠가 퍽이나 협력해주겠네.]


 "그러니 어떻게 거절할 수 없도록 방법을 생각해야겠죠."


 안 그래도 비협조적인 에타와 세타, 람다가 시젠을 이용해 먹으려는 수작에 순순히 협조할 리가 없다. 빈정거리듯 이 사실을 말하는 델타에게 대답한 오메가가 마음 속으로 다른 레모네이드들을 욕했다. 아까 전에도 이것들이 자기들 떠들고 싶은 대로 떠들어대는 바람에 그녀가 준비했던 청사진을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했다. 


 그런 오메가를 델타와 감마 또한 마음 속으로 비웃는 동시에 욕하고 있었다.



 레모네이드들과 라비아타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춤추는 작은 별빛과 속삭이는 희미한 별빛이 안도했다. 아직 시젠을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시젠이 커다란 위기에 처할까 걱정했는데, 일단 그 재수없는 셋이 당장 시젠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그러나 시젠 주변에 있는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일단은 물러간 것처럼 보이는 그 셋이 시젠을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그 셋이 가진 힘은 시젠 주변에 있는 이들로서는 어떻게 맞서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듯 했다. 


 어떻게든 시젠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 혹은 둘이 시젠을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춤추는 작은 별빛과 속삭이는 희미한 별빛이 타이거샤크 주변을 맴돌았다. 



위 그림에서 노란 머리는 에타, 파란 머리는 람다, 그리고 하늘색 머리는 세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