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의 바이오로이드 - 목록


"에타와 세타의 본거지가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해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쓸거리가 생각이 안 나서요." 

-글쓴이의 변명


"키로프, 리포팅."

-레드얼럿 2, 3 中, 키로프 생산시 대사



 



 커다란 흰색의 비행선들로 이루어진 공중 함대가 공중 AGS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의 호위를 받으며 과거 미국의 영토였던 땅 위를 날아갔다.


 비스마르크 코포레이션과 블라디미르 항공의 문양이 찍혀있는 이 거대한 비행선들은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인류가 지구를 지배할 당시 두 회사의 회장들이 손을 잡고 만든 물건들이었다. 


 덴세츠 사의 회장 요시미츠와 마찬가지로 온갖 공상을 현실로 만들기를 원했던 비스마르크 사의 회장과 하늘, 나아가 우주를 지배하고자 했던 블라디미르 항공의 회장은 한 가지 꿈을 공유하고 있었다. 웅장한 공중 전함들로 이루어진 공중 함대를 만들어 도시 위를, 전장 위를 위풍당당하게 날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이미 비행선이라는 물건이 비행기에게 밀려난지 백여 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고, 항공산업 및 군사 분야의 전문가들, 기술진들이 모두 두 회장의 꿈에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두 회장은 조금도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수많은 전문가들과 기술진들이 일자리를 잃고, 두 회장의 뜻을 반대하는 이들의 자리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 회장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이 대신했다.


 막대한 자원과 막대한 금액이 둘의 꿈을 이루는데 소모되었고, 다른 다섯 기업의 회장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비스마르크 회장과 블라디미르 회장의 공중 함대 프로젝트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했다.


 돈은 많고, 욕심도 많고, 할 짓은 더럽게 없는 늙은이들이 돈지랄을 하고 있다고.


 그 누구도 비스마르크 사와 블라디미르 사가 만들어낸 공중 함대에 대해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신 기술로 떡칠을 한 새하얀 비행선들로 이루어진 공중 함대가 무슨 대단한 위력이나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저 망상만 가득한 늙은이들이 자기들의 망상의 실현과 취미를 위해 쓸모 없는 돈지랄을 했다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세계의 권력 구도를 바꿔버린 1차 기업 전쟁이 터지자 그 쓸모 없으리라 생각되었던 비행선들은 쏟아지는 대공 포화를 견뎌내면서 수많은 AGS들과 폭탄들, 바이오로이드들을 쏟아내는 공중 항모이자 지상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공중 전함으로 활약했다.


 하얀 비행선들이 수많은 정부군의 거점들을 초토화시키고, 대지를 가득 채운 정부군의 지상군을 흔적도 없이 쓸어버리고, 도시의 하늘 위로 AGS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을 쏟아내면서 위풍당당하게 비행하는 것을 본 다음에야 사람들은 비스마르크 사와 블라디미르 사가 비행선의 형태를 한 괴물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옛날의 비행선과는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막강한 공중 전함의 호화롭게 치장된 함교에서 두 회장은 레모네이드들을 비롯한 바이오로이드들의 보좌를 받으면서 불타는 전장의 모습과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의 결과, 그리고 공포와 경외로 가득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시민들의 시선을 마음껏 즐겼다. 


 2차 기업 전쟁 때에도 이 공중 함대는 PECS와 블랙 리버를 위해서 큰 전과를 올렸다. 이 비행선과 공중 함대를 늙은이의 쓸데없는 돈지랄로 치부했던 다른 기업의 회장들과 블랙 리버의 앙헬 리오보로스 회장이 왜 공중 함대를 더 폭넓게 운용하지 않는 거냐면서 거세게 항의했을 때, 비스마르크 사와 블라디미르 사의 회장들, 그리고 이 비행선을 만든 인간 및 바이오로이드 기술자들이 느낀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두 기업의 공중 함대의 영광와 승리는 인류의 종말이 시작된 날 끝을 맞이했다.


 온갖 최첨단 기술로 도배된 공중 함대는 철충들에게 있어서 먹음직스러운 먹잇감들이었고, 철충들에게 침식되어 검은색의 흉칙한 모습으로 변한 공중 함대는 인류에게 파멸의 소나기를 쏟아부었다. 쏟아지는 대공 포화를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튼튼한 비행선의 선체는 철충에게 침식된 비행선을 격추시키려 하는 인류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절망과 함께 막대한 손실을 안겨주었다. 이 비행선들이 매우 쓸모있는 숙주라는 사실을 안 철충들은 비행선이 보이는 족족 눈에 불을 켜고 날아들었고, 자신들이 만든 강력한 무기가 적에게 넘어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 두 기업은 수많은 비행선들을 자폭시키거나 안전한 장소에 숨겨놓았다. 


 인류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비행선들은 다시 하늘을 날지 못했고, 냉동 수면 캡슐에 들어간 채로 영원히 깨지 못할 잠에 빠져든 주인들처럼 공중 함대 또한 지하에 잠들어 있었다.


 드디어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 공중 함대는 수십 년만에 다시 아메리카 대륙의 하늘로 날아올랐다. 중간에 공중 함대의 존재를 알아차린 철충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었지만 대공 포화를 맞고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언젠가 다시 공중 함대가 하늘 위로 날아오를 그 날을 위해 수십년간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 휘하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비행선들을 열심히 개조하고 온갖 대공 화기들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 성과였다.

  

 공중 함대의 기함인 유피테르 호의 화려한 함교 안에서 시젠은 각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돌아가며 안기면서 지상의 모습을 구경하기도 하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시젠을 끌어안기도 하고, 그녀와 함께 놀기도 하는 바이오로이드들 중에는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 람다도 포함되어 있었다.

 

 타이거샤크 일행이 에타와 세타의 본거지를 방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레모네이드 람다가 시젠 일행에게 자신의 본거지를 방문할 의향이 없는지를 물었다. 에타와 세타의 본거지를 방문했으니 그녀의 본진 또한 방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라비아타 일행은 이를 수락했고, 이를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공중 함대를 오랜만에 하늘에 띄울 기회라고 생각한 에타와 세타는 공간이동이나 비행기로 이동하는 대신에 공중 함대를 타고 이동할 것을 제안했다.

 

 "호화롭네," 온갖 장식들과 사치스러운 편의시설들이 가득한 함선 내부를 둘러보고 온 타이거샤크 레오나와 람다 레오나가 질린 듯이 투덜거렸다. "1차, 2차 기업 전쟁 당시에 돌아다녔던 비행선도 이렇게 생겨먹었어?"


 "네. 이 비행선에 탄다는 것 자체가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으니까요."


 "폭격으로 인해 불바다가 된 전장을 호화로운 함교에서 가슴과 엉덩이가 터질 것 같은 바이오로이드를 끌어안고, 고급 와인과 산해진미를 즐기면서 내려다본다라."


 그렇게 중얼거린 타이거샤크 레오나가 함교의 강화 창문 가까이 서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틀림없이 그 짓을 했던 인간들은 즐거웠을 것이다. 


 마치 자신이 지상을 기어다니는 우물(愚物)들에게 심판을 내리는 신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졌을 테니까.

 

 이 비행선들이 쏟아붓는 폭탄 소나기와 AGS들, 바이오로이드들에 의해서 처참하게 죽어나갈 이들에게, 혹은 이 비행선들이 머리 위를 지나가는 모습을 그저 입을 벌리고 올려다보는 이들에게는 이 비행선 그 자체가 신처럼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리고 자신들이 신이라고, 혹은 신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한 이들에게 그들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준 것처럼 철충들은 이 비행선의 호화로운 함교에서 지상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던 이들이 신이 아니었음을 알려주었다. 더 없이 냉혹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멸망 전의 인간들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 상상하던 타이거샤크 레오나가 씁쓸한 기분으로 몸을 돌렸다. 


 자신이 이런 비행선의 함교에 서서 AGS들과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폭격을 퍼붓는 입장이었다면 1차, 2차 기업 전쟁 당시 이 비행선에 타고 있었을 인간들보다 더 나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의 취향에 맞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녀에게 저항하지 못할 인간 남자들을 잔뜩 끌어안은 채 와인과 산해진미를 즐기면서 학살과 불타는 전장의 풍경,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을 인간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그녀를 바이오로이드라고 무시하거나 멸시했어야 할 이들이 그녀가 탄 비행선과 그녀가 지휘하는 병력에 의해서 벌레처럼 죽어나가거나 그녀를 공포와 경외가 섞인 시선으로 올려다보고 있으리라는 즐거운 망상에 빠진 채로.


  "그것 참 틀림없이 즐거운 기분이었겠지."


 피닉스의 감상도 타이거샤크 레오나와 똑같았다.


 이들의 말을 듣고 기분이 꿀꿀해진 브라우니들과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들, 지니야와 밴시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들을 먹어치우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마음속에 떠오르는 어두운 생각을 떨치기 위해서 음식들을 접시로, 곧이어 입으로 가져갔다. 


 [여기는 우라노스 호, 혹시 음식 남는 곳이 있거든 조금만...... 아니, 가능한한 많이 보내주세요. 손님들이 음식을 다 먹어버렸어요.]


 [여기는 케라우노스 호, 여기도 마찬가지에요.]


 [여기는 크로노스 호. 혹시 그...... 시젠 님 이쪽으로 보내주시면 안 되나요? 손님들이 너무 무서워요, 흑......] 


 무전을 통해서 연락해온 세 개 비행선의 승무원들의 목소리는 금방에라도 울 것만 같았다.


 시젠이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의 본거지로 간다고 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웃는 얼굴들 중 여럿이 자기들도 가겠다고 따라나왔다. 악취 문제는 이들이 현실 조작인지 뭔지 재주껏 해결했지만, 커다랗고 해괴망측하게 생긴 괴물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비행선에 근무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겪는 정신적인 피로는 엄청났다. 특히나 웃는 얼굴들의 몸에 잔뜩 달려있는, 눈동자도 눈알도 없이 텅 빈 눈의 창백한 얼굴들이 하나같이 미소나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은 이들을 보는 바이오로이드들로 하여금 소름이 쫙 돋게 만들었다. 


 세 레모네이드들과 시젠, 라비아타, 티타니아가 세피리아크들과 함께 크로노스 호로 공간이동하고, 레이라미아들은 다른 비행선들에서 남는 음식들을 우라노스 호와 케라우노스, 크로노스 호에 나눠주었다. 함교의 창문 가까이에 선 에바가 우리 싱글벙글들은 하여간 어딜 가서든 민폐라고 투덜거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켈베로스들과 브라우니들은 '민폐! 싱글벙글 씨들 비행선에서도 민폐!'라고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


 비행선에 탄 시젠 일행의 대다수가 함교에 가 있는 동안에 하르페이아들과 앨리스들, 티아멧들은 격납고와 폭탄 투하구를 둘러보고 있었다.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가 타이거샤크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마음껏 비행선을 구경해도 좋다고 허락을 해 주었기에 그 누구도 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 공중 함대가 있으면 오메가는 몰라도 델타나 감마는 이길 수 있지 않아요?"


 "델타라면 어떻게 할 수도 있지만 감마는 그렇게 쉽지 않아요. 감마가 이끄는 포세이돈 함대는 정말 강력하거든요."


 앨리스 4호의 질문에 비행선에 근무하는 포츈이 고개를 저었다. 비스마르크 사와 블라디미르 사가 만든 비행선들이 비행선의 한계를 넘어선 비행선이라면 포세이돈 사에서 만든 전함들은 수상 전함들의 궁극적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포세이돈 함대의 전함들이 가진 화력은 공중 함대의 비행선들을 격침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런 포세이돈 함대가 괴물들에게 두들겨 맞고 무력하게 깨졌다는 것은 에타와 세타 휘하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도 굉장한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이는 웃는 얼굴들을 태운 세 비행선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느끼는 공포에도 어느 정도 일조를 했다.


 "곧 호위 바이오로이드들하고 교대해야 하는데, 같이 출격해보실래요?"


 "좋지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시겠어요?"


 바깥에 나가 있는 바이오로이드들과 교대를 준비하는 비행 바이오로이드들의 편대장이 제안하자 세라피아스 앨리스들이 바로 반색했고, 그녀들과 같이 있던 티아멧들과 하르페이아들도 눈을 빛내면서 다가왔다.

  

 잠시 후 크로노스 호에서 괴물들이 무섭다면서 훌쩍거리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달래주던 시젠과 라비아타는 유피테르 호의 하단부를 통해서 출격하는 공중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서 티아멧들과 앨리스들, 하르페이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라비아타가 쟤들은 왜 저기 있는 거라니,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오랜만에 즐거운 듯이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매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에타와 세타가 그동안 처박아놓았던 공중 함대를 꺼냈다고? 꼬맹이가 좋아할 장난감이긴 하네." 


 유미로부터 보고를 받은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1차 기업 전쟁과 2차 기업 전쟁 당시에 두 기업의 공중 함대의 활약에 대해서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가 공중 함대에 대해 가진 견해는 덕질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노친네들이 만든 좀 쓸만한 장난감 정도였다. 그런 걸 만들 시간에 대형 항공기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 훨씬 실용적이었으리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철충에게 빼앗기거나 격추당할까 무서워서 못 꺼내고 있던 물건들을 에타와 세타가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는 데 꺼냈다는 것은 철충이나 괴물에게 넘겨주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과 더불어 그 공중 함대를 자신들의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한 그 꼬맹이 도마뱀에게 선물로 안겨주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래저래 골치아픈 이유로 새 주인을 맞이한 세 x들이나 그 도마뱀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빠진 오메가가 약간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유미에게 물었다.  


 "목표 지점은 람다의 본거지일 테지?"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람다 그게 오리칼쿰(Orichalcum)을 건네줄 가능성도 있겠네. 넌 어떻게 생각해?"


 "......그럴지도 모릅니-"


 손바닥이 얼굴 후려치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다. 


 오메가에게 뺨을 얻어맞은 유미가 바닥에 쓰러졌다가 금방 다시 일어났다. 쓰러질 정도로 세게 얻어맞았다고 해서 계속 쓰러져 있으면 그 다음에는 오메가의 하이힐이 날아온다는 것을 그녀는 처참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지금 나랑 장난해? 그 따위 무책임한 예상이나 듣자고 널 부른 줄 알아?"

 

 "......죄송합니다. 람다 님의 성격이라면 넘겨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오메가가 흥, 하는 소리를 내면서 올렸던 손을 도로 내렸다.


 "에타와 세타 그 게으름뱅이 뚱땡이들이 직접 움직이고 있어. 이 둘도 답지 않게 행동하는 마당이니, 람다 그 구두쇠 x도 꼬맹이를 위해서 오리칼쿰을 넘겨줄 가능성이 충분해."

 

 인류 멸망 이후 에타와 세타가 얼마나 게으르게 변했는지 레모네이드 오메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에타와 세타가 시젠에게 빠져버린 이후로는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얼마나 그게 오래 갈지는 모르지만, 만일 람다도 마찬가지로 시젠을 위해서 뭐든지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면 그 중요한 오리칼쿰을 시젠에게 덥썩 쥐어줄지도 모른다.


 비록 오리칼쿰이 실제로 쓸 일도 없고, 쓸 일이 있어서도 안 되는 사실상의 장식이라 하더라도, 그걸 어디서 굴러들어온 인간조차 아닌 꼬맹이가 가져가버리는 일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건 PECS 회장들의 물건이었고 PECS 회장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물건이지, 게으름뱅이 뚱땡이들과 하와와거리는 구두쇠가 출처 불명 정체 불명의 인간도 아닌 꼬맹이를 위한 선물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도움이라고는 곧 죽어도 안 되는 자매들을 호출했다.

 

 [이번엔 또 뭐야, 오메가?]


 "갑작스럽게 호출해서 미안해요," 연결되자마자 불퉁한 말투로 불만을 표시하는 감마를 달랜 오메가가 에타와 세타를 슬쩍 쳐다본 다음 람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근에 굉장히 신경쓰이는 일이 생겨서 말이죠." 


 [그 신경쓰이는 일이라는 게 혹시 저하고 세타하고 람다와 관련된 이야기인가요?]   


 "정확히는 시젠 아가씨와 람다와 관련된 일이지요. 혹시라도 람다가 시젠 아가씨에게 주면 안 될 물건까지 덥썩 쥐어줘버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줘, 줘서는 아, 안 될 물건이요......? 혹시 해, 핵무기 말씀이신가요오오......?] 


 "왜 이러실까요, 람다. 그게 뭔지 꼭 이야기해야 하나요? 오리칼쿰 말이에요."


 람다의 표정을 본 오메가는 자신이 정곡을 찔렀음을 확신했다. 


 나머지 자매들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람다를 쳐다보았고, 그런 그녀들의 생각이 맞다고 주장하듯이 람다가 더듬거리며 오메가의 말에 반박했다.


 [........오, 오리칼쿰이요? 그, 그건 회장님들 거잖아요오오...... 그건 제 마음대로 시젠 아가씨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오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시젠 아가씨에게 그 오리칼쿰을 줘 버릴지, 아닌지 저로서는 확신이 가지 않아서 말이지요...... 그것 때문에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답니다."


 허둥거리는 람다를 제외한 나머지 네 바이오로이드들의 머릿속에 일제히 퍽이나,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오메가의 얼굴이 불안해서 잠이 안 오는 사람의 얼굴도 아니거니와, 그녀가 잠을 자지 못한다면 그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거 잘 됐네. 차라리 불면증 걸린 김에 밤샘해서 일을 해보는 게 어때?]


 "닥쳐, 델타," 빈정거리는 델타의 말을 들은 오메가의 표정과 말투가 급변했다. "지금 네 꼬라지에 대해서 내가 읊어주길 바래?"


 [뭐랬냐, x발?]


 오메가의 독설을 들은 델타가 바로 쌍심지를 켜면서 욕설을 퍼부을 준비를 갖췄다. 그런 델타를 무시해버린 오메가가 아까 전보다 험악해진 표정으로 쳐다보자 람다가 쪼그라든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오오......?]


 "......오리칼쿰을 델타에게 보내주세요. 델타라면 최소한 당신의 시젠 아가씨에게 오리칼쿰을 넘겨줄 일은 없을 테니까요."


 [잠깐, 나보고 그 커다란 장식품을 보관하라고?]


 델타가 눈을 부릅떴다. 안 그래도 상황이 안 좋은데 오리칼쿰을 유지, 보수하고 관리할 여유 따윈 지금의 델타에게 없었다. 그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던 오메가가 이번에는 감마에게 찔러보듯 말을 걸었다.


"자신 없으신가요? 그러면 감마, 당신이 그걸 맡아줄래요?"


 [장난하냐?]


 감마의 표정에는 오메가를 한 대 갈기고 싶어하는 욕망이 떠올라 있었다. 감마에게도 오리칼쿰은 직접 감당하기도 싫고 도움도 안 되는 짐짝에 불과했다. 괴물들한테 두 번씩이나 쥐어터져서 손해가 막심한 함대를 다시 복구하는데 비용이 장난 아니게 깨지게 생겼는데 그거 유지, 보수한다고 자원과 수고를 들이고 싶지 않았다.  


 델타와 감마의 대답을 들은 오메가가 입가를 비틀어올렸고 에타와 세타도 얼굴에 비웃음이 걸리려는 것을 참았다. 저 둘은 틀림없이 람다가 오리칼쿰을 시젠에게 넘기겠다고 하면 난리를 쳤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그걸 떠맡기는 싫다고 저러고 있는 꼴이 웃겼다. 


 "제가 보관하겠다고 하면 여러분이 뭐라고 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람다와 에타, 세타가 그걸 계속 가지고 있으면 불안하고요." 


 능청을 떠는 오메가의 말에 람다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고 나머지 네 레모네이드들은 저거 속 다 보인다고 속으로 투덜거리거나 욕을 해 댔다.


 하와와거린 람다가 다른 이들을 돌아보기도 하고 오메가의 눈치를 살피기도 했지만 아무도 람다의 편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람다는 오메가에게 오리칼쿰을 넘기겠다는 약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러면 오메가한테 오리칼...... 쿰을 넘길게요오오.......]


 "진짜요? 진짜 제가 맡아도 되는 건가요?"


 [네에.......]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오메가와는 반대로 람다의 표정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좋아요. 람다가 그렇게 말한다면...... 기꺼이 오리칼쿰은 제가 보관하도록 하죠. 그러면 오리칼쿰은 여러분이 제 영역으로 배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을게요."


 [.......네에......]

 

 통신이 종료되자 오메가는 자기 예상이 맞았다면서 자축했다. 오리칼쿰을 유지, 보수하려면 자원이 많이 들어가긴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마땅히 자신이 가져야 할 물건이 자기 손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그녀와는 반대로 울상을 지은 람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세타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물었다.


 "람다, 혹시 당신 정말로 오리칼쿰을 시젠 아가씨에게 넘길 생각이었나요?"


 "......네에......"


 "......진짜로요? 오리칼쿰을요?"


 "......네에....... 이젠 오메가에게 넘겨야 되게 생겼지만요오오......"


 에타와 세타가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다시 람다의 표정을 쳐다보았다. 불신 가득한 자매들의 눈빛을 느낀 람다가 훌쩍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 제대로 들은 거 맞아요오오....... 오리칼쿰, 시젠 아가씨에게 주려고 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입을 쩍 벌린 것은 에타와 세타뿐만이 아니었다.


 비행선을 조종하던 바이오로이드들도, 애써 미소를 지으며 웃는 얼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바이오로이드들도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지, 람다가 속된 표현을 빌려 헤까닥 돌아버린 것은 아닌지를 의심했다. 

 

 라비아타도 람다가 오리칼쿰을 시젠에게 넘길 생각이었다는 말을 듣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오리칼쿰이 뭐 하는 물건인지 아는 바가 없는 시젠과 티타니아는 눈만 깜빡거렸고 웃는 얼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오리칼쿰은 구경만 시켜드릴 수 있겠네요."


 [뀨?]

 

 뭐가 어쨌든 간에 이제는 물 건너간 일이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추스른 세타의 말을 들은 시젠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오리칼쿰이란 말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뭔지는 몰랐다.


 그녀의 고향이었던 세계에서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되는 마법 금속들 중 하나의 이름이 오리칼쿰이었지만 시젠은 그 사실을 몰랐고, 당연히 그 마법 금속과 레모네이드들이 말하는 오리칼쿰 사이에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었다. 


 "이 언니들이 시젠에게 보여줄 게 있대. 내일 언니들이랑 같이 구경 가자."


 [뀨!]


 그게 뭔지는 몰라도 레모네이드들과 라비아타 언니가 구경 가자고 할 만한 것이라면 뭔가 재미있는 것이거나 볼만한 것이리라고 생각한 시젠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다른 네 자매들이 통신을 종료한 이후에도 델타와 감마는 여전히 서로간에 통신 채널을 열어놓은 상태였다. 말 없이 델타를 쳐다보던 감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메가가 왜 갑자기 오리칼쿰에 저렇게 관심을 보이는지 짐작이 가나?"


 [람다 그 녀석이 오리칼쿰을 그 꼬마 아가씨에게 넘길까봐 걱정된 모양이지.]


 "진짜로 람다가 오리칼쿰을 그 녀석에게 줄 것처럼 보였어?"


 [모르지.]


 레모네이드들 중 셋이 어디서 떨어진, 인간도 아닌 자그마한 외계 생물 꼬맹이를 주인으로 모실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상상도 못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람다가 오리칼쿰을 그 새로운 주인에게 넘겨버리는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건 없다.


 "그 세 x들은 진짜로 자기들 회장이 아니라 그 꼬맹이를 주인으로 섬길 셈인가?"

 

 [아무렴 어때. 자기들 말마따나 자기네들 회장 살려내는 거 포기하고, 나중에 그 꼬맹이 따라서 외계로 꺼져 준다면 우리에겐 이득이지.]   


 "문제는 그 x들이 자기들한테 딸린 세력들과 무기들까지 가지고 외계로 도망칠 경우지. 그 x들은 그 꼬맹이 부모인지 뭔지가 두둑하게 보상을 해줄 거라고 말하지만 그렇다는 보장이 어디 있지? 그리고 그 보상이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보장은 또 어디에 있고?"


 설령 그 꼬맹이의 부모가 보상을 두둑하게 해준다 하더라도 에타와 세타, 람다가 입 싹 닦고 자기들만 보상을 챙길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말 일이 더럽게 될 경우에는 그 꼬맹이의 부모의 지원을 받은 에타와 세타, 람다가 자신들에게 무기를 들이댈지도 몰랐다. 

  

 [그러면 그 꼬맹이를 어떻게 해볼 생각이야?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은 있고?]


 ".......젠장할," 이를 갈아붙인 감마가 힘껏 테이블을 내려쳤다. "인간도 아니고 철충도 아니고 바이오로이드도 아닌 것들은 하여간 도움이 되질 않아!"


 [오메가 말대로 어떻게든 우리에게 도움이 되도록 이용할 수밖에 없지.]


 "어떤 식으로 이용할 건데? 그리고 그 이야기 꺼낸 그 오메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지난번에도 경고를 하네 마네 했지만 결국에는 제대로 경고하지도 못했고, 그 꼬맹이를 눈 앞에 두고도 할 말도 제대로 못 했잖아!"


 오메가가 들었다면 다 니들 탓이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을 것이다. 자기들이 오메가가 이야기하는데 마구잡이로 끼어들어서 대화를 개판으로 만든 것에 대해선 감마나 델타나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랩을 하는 것처럼 실컷 오메가의 욕을 한 감마가 말을 멈추자 그녀의 말을 흘려들은 델타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오메가 그 x, 오리칼쿰을 가지고 뭔가 할 생각일지도 몰라.]


 "오리칼쿰을 가지고 뭘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지구 표면에 버려두고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지구 밖으로 튀는 거.]


 델타의 말을 들은 감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들이 생각하는 오메가라면 그렇게 하고도 남을 작자였다. 


 ".......그건 비약이 너무 심하지 않나? 그렇게 하면 제일 손해보는 건 자기일 텐데."


 그렇지만 현재 레모네이드 중에서 가장 세력이 큰 것도, 현 지구상에서 가장 큰 바이오로이드 및 AGS 세력을 거느리고 있는 것도 오메가다. 만일 오메가가 진짜로 지구 밖으로 도망간다면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한다는 이야기가 되고, 이는 곧 오메가가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연히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오메가가 그런 선택을 할 리가 없겠지만,


 [만일 상황이 엿 되거나 뭔가 일이 단단히 틀어진다 싶으면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지.]

 

 델타의 말에 돌아온 감마는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동의를 표시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메가도, 그 꼬맹이한테 붙은 x들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어. 일단 람다, 그 x에게는 우주로 도망칠 수단이 하나 있잖아?]


 "그러고보니 람다 그거, 옛날에 만든 '쇠상자'를 자기 본거지로 쓰고 있었지?"


 [그리고 에타하고 세타는 비스마르크 사와 블라디미르 사의 공장들과 기술들을 가지고 있고.]


 "......젠장."


 에타와 세타도 공개하지만 않았을 뿐, 비밀리에 지구를 벗어날 수단이 있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이렇게 되면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다른 넷은 지구를 빠져나간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반면에 감마와 델타는 무너지는 세력을 지켜보면서, 혹은 발악하다가 최후를 맞이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우주로 나갈 수단을 만들 수도 없다. 포세이돈 인더스트리가 뛰어난 조선 기술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우주 관련 기술은 부족했고, 이는 문리버 인더스트리도 마찬가지다. 


 그저 그녀들이 두려워하는 그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두 레모네이드들이 오메가와 꼬맹이에게 붙어버린 세 레모네이드들을 욕하고, 철충들을 저주하고,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와 자신들의 세력을 뜯어먹는 괴물들을 저주했다.




원래 레모네이드 애들을 이렇게 비중있게 다룰 생각이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