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편. 


전편.


"하아..! 하..! 좀 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하앙..!"


그녀의 외침에 머리가 아찔했다. 솔직히 저 말을 듣고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난 그 사람의 봉이 될 것이다.

텐트 안을 가득매운 그녀의 신음, 외침, 그리고 열기에 난 그녀의 두텁고 탐스러운 둔부를 꽉 움켜잡고 허리를 천박하게 흔들었다.


그녀에게 나온 물과 아까부터 흘렸던 땀이 텐트를 더럽혔다. 어느새 텐트의 바닥과 벽면에는 비가 오는 것처럼 물방울들이 송글송글 맺혔다.

물방울들은 바깥의 달빛을 머금고 밝게 빛나고있었다. 


"그래..! 그렇게..!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그 누구보다도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능구렁이처럼 기어오는 속삭임이 나의 귓바퀴를 타고 고막을 지나 달팽이관을 거쳐 와우신경을 간지럽혔다.


"보고있어? 볼거지? 응..? 내가 가버리는 모습..잔뜩 봐줄거지..? 응? 말해줘말해줘말해줘..볼거지..?"


"봐줄께..그러니..조금만 천천히.."


"히히..싫.어."


하반신에 밀착한 그녀의 허리가 점점 빠르게 움직였다. 먹잇감을 머금은 파리지옥처럼 그녀는 나를 천천히 옥죄여왔다. 

더 이상은 참기가 힘들었다. 


"장화...!"


"앗...아...앙.."


그녀의 둔부에 붙잡은 손을 꽉 붙잡으며 그녀의 안에 내 모든 것을 토해냈다. 한번. 두번. 마지막으로 한번 더. 그녀의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뜨거운 무언가에 그녀는 허리와 어깨를 움찔거리며 다시 나를 옥죄였다. 그녀는 허리를 한두번 흔들어 남아있는 것들을 모두 짜냈다.


"하....하아..."


텐트 안에는 서로의 신음이 섞여 누가 누구의 신음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텐트의 벽면에 맺힌 물방울들은 아까보다 더 환하게 밝게 빛나고있었다. 어둠 속에도 밝게 빛나는 그녀의 얼굴을 본 나는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 


"너..대단했어..."


"그런가..."


내품을 파고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운을 느꼈다.

가끔씩. 정말 가끔씩은 그녀와 이런 관계를 가지는 것이 후회될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난 그녀를 내칠 수는 없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녀는 깨진 유리가 가득한 길을 걷는 것, 조금이라도 잘못 건들이면 순간 터지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불안정한 존재였다.


그녀와 매번 이런 밀회를 가질 때마다 난 그녀와의 이런 관계를 끊고싶었지만.


"장화.."


"응..?"


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아냐..아무것도.."


"뭐야. 그게.."


"저기.."


"응?"


"사랑해. 헤헤.."


"나도..."


"잘자.."


"너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그녀를 내치는 순간, 그 다음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어쩌다..이렇게 된거더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때는 작년 가을 쯤이었다.


항구도시에서의 일들을 모두 끝내고 머리를 매만지며 일련의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며 생각에 잠겼다.


장화. 


정보에 따르면 그녀는 블랙 리버 사의 홍련의 유전자를 빼돌려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라고했다.

그녀는 앙헬 리오보로스의 이복 누이인 마리아 리오보로스가 그에게 남편을 잃고 이에 대한 복수심에 창설한 바이오로이드 친위대인 엠프레시스 하운드 소속이었다.


물론, 멸망 전 인간들이 으레 그렇듯 그녀는 자신을 만들어준 마리아에게 사랑은 커녕 따뜻한 말 한마디 조차 받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녀는 홍련에게 엄청난 집착과 질투심을 보이는데 그녀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졌지만 폭력과 고통 밖에 모르는 그녀와는 달리 팀원들과 화목하고 다정하게 지내는 홍련의 모습에 어마어마한 분노를 느껴서라고 들었다.


쉽게 말하자면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한 적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적도 없는 완전 불안정한 존재였다.

항구도시에서의 일들이 모두 끝나고 홍련은 그녀에게 오르카호로 합류할 것을 권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택했다.


어찌보면 해피엔딩처럼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속 한켠에 답답함이 느껴졌다.


"으으윽..! 하아..."


머리채를 붙잡고 긁으며 소리를 지르고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소리를 질러봤자 마음 속에 있는 답답함이 풀어질리가 없었다. 


"그냥 잠이나 자자.."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를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온 몸이 무거웠다. 여자들 싸움만큼 힘들고 피곤한 일은 없었다.


"주인님?"


"어..?!"


누군가가 함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부관인 리리스였다.


"바쁘신가요?"


"아니?"


"후후..다행이네요."


함장실 문 너머에 있는 그녀의 표정이 선했다.


"용건이 뭐야..?"


"오늘 밤에 별들이 환하게 보일거라는 아르망씨의 예측이 있어서..."


"진짜?!"


피곤했던게 전부 싹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말했다.


"후후훗..네..그 때까지 편히 푹 쉬세요."


"그래!"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침대로 다이빙을 했다. 이불과 매트릭스에 가득한 솜들이 나의 모든 부위를 기분좋게 떠받쳐주고있었다.

여기서의 일들을 모두 잊고 별들을 볼 생각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


"이건...큰곰자리.."


폐건물 옥상 위에서 천체망원경을 조율하며 별자리들을 보았다. 맑은 밤하늘 위로 밝게 빛나는 별들에 눈이 반짝였다.

LRL이 참치를 받았을 때와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우유가 흐르는 강과 같았다.


"으으...괜히 반팔 입고왔나.."


갑자기 불어오는 찬바람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낮에는 여름처럼 여전히 더웠지만 밤에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찬바람과 어두운 밤은 폐건물 옥상 위에 있는 나를 무섭게했다. 철충과 별의 아이같은 끔찍한 것들을 수도없이 많이 봐온 나였지만 이런 분위기는 달랐다.


귀신따윈 없다..귀신 따윈 없어..없다고..없어야만 해..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두근두근 반짝반짝을 불렀다.


'다시 집중하자..'


마음을 다잡고 다시 망원경의 렌즈를 들여다보았다. 별과 별이 이어져 만들어지는 별자리를 찾으며 무서움을 떨쳐내보려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나는 렌즈에서 눈을 뗐다. 옥상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기 누구야...?"


괜한 무서움에 어둠만이 보이는 옥상입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있을리가 없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괜한 생각이었다고 생각하며 다시 렌즈를 들여다보려는 순간,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벼운 발걸음도 아니였다. 딱 적당한 발걸음이었다. 


그 소리에 난 허벅지에 있는 홀스터에 손을 올리고 입구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넌...?"


"안녕."


헝클어진 빨간 단발머리, 오른쪽 눈밑의 세미콜론( ; ) 모양의 눈물점, 밑가슴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짧은 셔츠, 양팔에 피어오른 장미 가시모양의 타투, 그리고 허벅지까지 올라올 정도로 긴 장화.


장화였다. 


그녀는 주위를 한두번 두리번거리곤 내 쪽으로 다가와서는 내가 가져온 과자를 자기꺼인 것마냥 입에 욱여넣고있었다.


"먹을거야? 안 먹으면 나 다먹는다."


그녀는 다리를 이리저리 꼬아가며 과자를 씹었다. 바삭한 과자가 그녀의 입에서 부숴지는 소리가 조용한 옥상에 울려퍼졌다.

그녀가 내 눈 앞에 있다는 것보단 그녀의 뻔뻔한 행동에 어이가 없어서 말 조차 나오지 않았다. 


"너..."


"떠난거 아니였냐고? 보다시피 아니네."


봉지에 남아있는 과자를 입에 전부 털어놓고 봉지는 대충 뭉쳐서 아무데나 던졌다.

뭐라 말하고싶었지만 아무 말하지않기로했다. 말을 해봤자 내 입만 아플것이 분명했다. 그냥 무시하고 조용히 별을 보기로 했다.


"......."


"......."


솔직히 그녀가 내게 뭐라 계속 말을 할 줄 알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않았다.

그저 의자에 앉아 손가락을 비비적거리며 멍하니 나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계속되는 침묵에 나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왜 다시 돌아온거지?"


결국 입을 먼저 연 것은 나였다. 무장에서 나온 와이어로 실뜨기를 하던 그녀는 나의 물음에 손이 멈췄다.


"모르겠어.."


"뭐..?"


"모르겠다고..내가 왜 다시 여기로 왔는지..홍련 그 년 때문일까...? 아니면 니 사랑을 받는 바이오로이드들의 모습이 부러워서..? 그것도 아니면 다시 혼자 남는다는 생각에 무서워서..? 모르겠어..모르겠다고.."


아무런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의기양양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어깨를 붙잡고 몸을 떠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뻗고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어깨에 손이 닿을려는 순간, 그녀는 내 손을 쳐냈다.


"꺼져..."


말은 그렇게했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녀의 건틀릿과 부딫혀 얼얼한 손을 한번 바라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눈...라비아타가 날 처음 바라봤을 때랑 같은 표정이었다.


경멸. 의심. 그리고 기타등등.


하지만 그런 그녀의 눈 뒤로 난 다른게 보였다. 애정. 

얼마전 책에서 본게 떠올랐다. 한번 파양된 강아지는 새 주인에게 끊임없는 애정과 충성을 다한다고. 그래야만 다시는 안 버려진다는 생각에 그러는거라고.


그녀의 눈이 책에서 본 눈과 똑같았다.


"......."


난 아무런 말없이 팔을 벌렸다.


"뭐하는 짓이야..?"


난 고개를 숙여 내 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썹을 한두번 튕겼다.


"하...너한테 안기라고..? 장난해..? 그런다고 내가 안길거 같아..?!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말은 그렇게했지만 그녀는 이미 내 품에 안겨있었다.


"이...이건...그..뭐시냐..그래..! 추우니깐..체온이 떨어지지않기 위해 안기는거니깐..절대..절대 너의 위로를 받고싶어서 안기는건 아니니깐..!"


"아. 네네.."


 얼굴을 붉히며 내 등을 어루만지면서 품을 파고드는 그녀의 존재를 느꼈다.

그녀가 얼굴을 비빌때마다 올라오는 담배향기에 머리가 아찔했지만 참기로 했다.


"저기.."


"응?"


"홍련도..너한테 안겼어..?"


나지막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르카호의 90퍼센트가 내 품에 안겼다. 


"나도..안아줄 수 있어..?"


"뭐..?"


"나도 안아달라고...홍련을 안았을 때처럼.."


코트를 벗어던지고 셔츠의 단추를 풀어대는 그녀의 모습에 난 몹시 당황했다.

그녀를 위로해주고는 싶었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가지고싶지는 않았다. 왠지 그녀와 관계를 가졌다간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잠깐..! 장화야..일단 진정하고..."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진정시켜보려했지만 오히려 이게 기폭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역시...난 안돼는건가..."


"뭐...?"


"역시..역시..나같은건...아무도 좋아해주지않아...아무도..."


흐르는 눈물과 코를 삼키며 말을 이어가는 그녀의 모습에 난 두 눈이 흔들렸다. 이 여자를 혼자 두었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만일이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라도 한다면..그건 전부 내 책임이 될 것이었다.


"아냐..! 넌 절대..그런 존재가 아니야..! 그러니..제발..제발.."


"그러면 날 안아줘..내가 살아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도록.."


와이셔츠의 마지막 단추를 풀자 분홍색의 유두만 간신히 보이는 속옷을 입은 그녀의 가슴이 드러났다.

별빛을 가득 머금은 그녀의 피부는 하얗다 못 해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렸다.


난 그녀의 턱을 붙잡고 입술을 포개었다. 그녀 또한 내 어깨를 붙잡고 입술을 포개었다.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날 이 후로 나는 별을 보러갈 때마다 장화와 밀회를 가졌다. 그녀와의 이런 관계를 가질 때마다 난 그만두고싶었지만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었고..무엇보다...


"다음엔 어디로 갈거야?"


어젯밤의 거사를 끝내고 다시 각자의 길로 가기 전에 인사를 나누고있었다.


"글쎄.."


"뭐. 상관없어. 너가 어딜가든 난 니가 있는 곳으로 갈꺼니깐."


그녀의 말에 살짝 소름이 돋았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이미 많이 들어본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장화.."


"응?"


"오르카호로 들어 올 생각은..."


"없어."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단칼에 내 말을 잘랐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 단칼이었기에 조금 당황했다.


"어째서지?"


"거긴 나랑 안 맞아. 그리고..난 너랑 이렇게 만나는게 더 좋아..널 독점할 수 있으니깐..."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주인에게 끊임없이 애정과 충성을 다하는 강아지..아니 사냥개의 모습이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그럼..안녕.."


모든 짐을 챙기고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고 뒤를 돌았다.


"안녕이 아니라, '또 보자'...겠지."


그녀의 말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래. 또 보자. 다음에는 몸 섞지말고 같이 별을 보자고."


"그래..그래보자고.."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 다시 각자의 길로 돌아갔다. 

우리 둘이 있었던 곳에는 진한 담배냄새와 진한 커피향이 섞인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있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커피를 넉넉하게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썼던거랑 다른 뭔가 이상한게 나왔지만 뭐 괜찮겠죠.

처음으로 써보는 장화문학이라 많이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재미도있었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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