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형님, 몸은 좀 어때?"


"난 괜찮아. 오히려...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은데?"


감격의 재회를 마치고 나서 리디아는 머쓱하게 눈물을 닦은 뒤 안부를 물었다. 확실이 몸이 뭔가 달라졌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배고파서 비실비실했는데 지금은 쌩쌩하다. 거기다 목 뻐근하던 것도 사라졌다. 좀 전에 악몽도 안꿨었고, 이거 혹시...


"듣자하니 생체재건장치라는 걸 써서 새 몸으로 바꿨다고 하더라고. 이제 휩노스 병 걱정 안해도 된대."


"아... 과연. 근데 지금 몇 시야? 내가 얼마나 잔 거지?"


"새벽 5시 3분. 혹시 악몽이라도 꿨어?"


"아니."


"제대로 치료된 모양이네, 애들 불러도 되겠다."


리디아는 침대 옆 탁자에 올려져있던 스마트폰 같이 생긴 작은 패널을 집어들어 뭔가 툭툭 누르자 잠시후 문 밖에서 쿠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누군가 급하게 달려오는 것 같았다. 예상한대로, 익숙한 얼굴 두명이 병실 문을 벌컥 열고 들이닥쳤다.


"그대여!!"


"보스!!"


"안녕 히루메, 애니."


"눈을 떴구나... 첩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그렇지, 시장하진 않느냐? 당장 식사를 준비해달라고 할까?"


"보스, 괜찮은 거 맞지? 나 알아보겠어? 우리 기억하지?"


"괜찮아, 난 아주 건강해. 머리도 멀쩡하고. 그런데 난민들은 어떻게 됐어?"


"난민 121명 전원 무사해. 부상자가 좀 있었지만 지금은 다 치료도 받았고. 걔들도 형님 엄청 걱정하고있어."


"그래? 그럼... 트레저는?"


트레저, 그 이름이 나오자 다들 말문이 막혀버려 시선을 떨어뜨렸다.


"설마..."


"죽었냐고? 아니,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정말이야!?"


"물론, 사실이야. 다만..."


"...다만...?"


"...지금 AGS 정비실에 있어. 나중에 직접 가서 봐봐."


"정비실?"


몸이 두동강이 났는데도 살아있다면, 그럼에도 날 보러 오지 않았다면 십중팔구 휠체어 신세가 됐다거나 그런 거겠지.


"당장 가봐야겠어. 정비실로 안내해줘."


그 녀석이 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갈 수 밖에.


*


히루메와 애니는 어젯밤부터 계속 내 걱정에 깨어있었기에 내가 무사한 걸 확인하자 그제서야 잠들 수 있었다. 둘을 내 병실 침대에 눕혀놓은 뒤 리디아의 안내를 받으며 오르카 호 복도를 걷기를 몇 분, 새벽이라 그런지 오면서 아무도 마주치지 않은 채 정비실 입구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자 이 시간에도 일하고 있던 포츈과 닥터가 반겨주었다.


"어머! 두번째 인간님 아니니? 이쪽에서 찾아가려 했는데 먼저 와줄 줄은 몰랐거든!"


"아, 둘째 오빠! 잘 잤어? 새 몸은 어때? 아주 팔팔하지?"


"그럼, 난 건강해. 그보다 빨리 확인해봐야 할 게 있어서 와봤는데."


"트레저 오빠 말이지? 이쪽에-"


"형님! 저 여깄슴다 형님!"


기계음이 살짝 섞여있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봤으나 트레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정비중이던 셀주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쿵 쿵 하는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내 앞으로 걸어왔다.



"......트레저?"


"그렇슴다! 형님의 든든한 의동생! T-1 고블린, 트레저임다!"


"아니, 그 모습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 그렇지. 이제부턴 K180 셀주크, 트레저임다. 저 닥터라는 애가 노력해줬슴다."


"...닥터? 설명 좀 해줄래?"


"미리 말해두는데 오해하진 마, 본인 동의는 확실히 받았으니까."



*



어젯밤, 사령관과 리디아를 포함한 오르카호의 인원들은 지원부대가 두번째 인간과 난민들을 데리고 오길 잠도 안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마리로부터 다수의 부상자가 있다는, 그 중에서도 중상자가 두 명 있다는 보고를 듣자 오르카호는 응급수술을 위해 수복실에 의료진들을 대기시켜놨다. 보고를 받은 지 한 시간 채 안되서 지원부대가 복귀하고, 그 중상자 둘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명은 마리의 양 손에 조심스럽게 올려져있던 두번째 인간. 휩노스 병의 악몽에 빠져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대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그녀의 뒤를 따라온 상반신만 남은채 들것에 실려져있던 고블린, 트레저. 어떻게든 응급처치를 했음에도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형님!? 트레저!? 마리 대장, 이게 어떻게 된겁니까!!"


"설명은 나중에! 닥터, 두번째 인간과 트레저가 위급한 상황이다!"


"두번째 인간은 내가... 아니다, 마리 언니가 내 연구실로 옮겨줘! 거기 생체재건장치 있으니까 바로 새 몸을 만들어줘, 사용방법 알지? 트레저 오빠는 당장 수술실로! 내가 집도할게!"


닥터는 곧장 지시를 내린 뒤 다프네들과 함께 트레저를 수술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수술 동안은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기에 리디아는 마리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 뒤 그녀는 마리가 잠든 형님을 생전 처음보는 관짝처럼 생긴 기계 안에 눕힌 뒤 유리로 된 뚜껑을 닫자 일순간 당황했지만 굳이 캐묻거나 막지는 않았다. 사령관과 마리가 더이상 형님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로는 믿지 않는다면 다른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중추신경계를 제외한 육체를 재구성하는 걸세. 각하도 이 과정을 거쳐 휩노스 병에 면역인 몸을 얻게 되셨지."


마리는 리디아가 두번째 인간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고있었기에 그녀가 물어보기도 전에 그 궁금증을 해소시켜줬다.


"부작용은 없는 겁니까?"


"새 몸으로 바뀌면 면역력이 전부 사라져 잔병치레가 잦아지겠지만, 그에 대비해 필요한 백신은 다 구비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걸세, 자네의 형님이 깨어나면 병실로 옮겨주겠나? 난 보고를 위해 자리를 비워야겠네."


"그렇게 하십시오. 이젠 형님 곁을 떠나지 않을테니."


마리는 연구실에 리디아를 남겨두고 나가려 문을 열자 시끄러운 말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큿, 이 비열한 놈 같으니라고! 그이를 치료해 줄 것을 댓가로 첩의 순결을 요구할 셈이로구나!"


"아니... 그럴 생각은 없는데..."


"히루메 씨, 적당히 좀 하시죠? 대체 저희 주인님을 뭘로 보시는 건가요!"


"맞아요! 저희 주인님은 처음 보자마자 귀랑 꼬리를 마구 쓰다듬긴 했어도 순결?이란 건 달라고 한 적 없어요!"


"하, 하치코!? 잠깐만 지금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네놈, 아까부터 첩의 꼬리를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그, 그냥 보기만 했을 뿐이야!" 


연구실 밖으로 나오자 두번째 인간의 곁에 있던 히루메, 애니와 사령관, 리리스, 하치코가 마주보고 서서 옥신간신하고있는 게 보였다.


"히루메, 잠깐 진정해봐. 그, 사령관씨? 우리 보스가 착한 사람이란 걸 증명하려고 진짜 노력했거든. 위험천만한 오메가의 본거지에 몰래 들어가서 난민들을 데리고 온 거 말이야. 그러니까..."


"두번째 인간님의 치료는 이미 시작됐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다못한 마리가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그 분은 지금 이 연구실 안에 있습니다, 안에 리디아가 있으니 자세한 건 그녀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그, 그게 참말이더냐? 고맙구나, 먼저 실례하마!"


둘이 마리를 지나쳐 쏜살같이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버리자 마리는 사령관과 조용히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각하, 대체 무슨 말을 하셨길래 저 히루메란 자가 저리 호들갑 떤 겁니까?"


"아니, 난 그냥... 언제 어떻게 오르카호에 탔던건지 물어보려고 했을 뿐인데..."


"나중에 두번째 인간이 깨어나고 나서 진정되면 그 때 물어보기로 해요 주인님."


"그래야겠네. 그 고블린은 수술중이고... 살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죽는 게 당연할 정도의 부상입니다만, 닥터니까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령관도 마리도, 닥터의 실력을 잘 알고있었고, 그렇기에 그녀를 믿었다.

그러나 새벽이 되어서야 수술을 끝마친 닥터가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한 말은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완치는 불가능해. 어떻게든 목숨은 붙여놨지만..."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 건가?"


"더 심해. 저래선 살아도 산 게 아니야..."


닥터가 옆으로 비켜 수술실 안쪽을 보여줬다. 병상 위에 고정된 채 눕혀져있는 트레저는 생명유지장치를 주렁주렁 매달고 숨만 색색거리며 쉬는 상태였다. 셀주크의 포탄에 맞아 사라진 하반신을 복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생체재건장치를 쓸 순 없을까?"


"오빠, 그건 인간의 뇌파에 반응해서 작동하는 거야. 인간만 쓸 수 있다고.

차라리 새 고블린을 제조해서 거기다 기억과 의식을 옮기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지만, 지금에 와선 고블린 유전자 씨앗은 다 단종됐으니 그것도 불가능해. 저 트레저 오빠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궁금할 지경이야."


"..."


"오빠가 이런 거 싫어하는 건 아는데, 차라리 안락사를 권유하는 게..."


"트레저는 그 사람의 의형제라고 했어. 그 사람이 깨어났을 때 옆에 쟤가 없으면 상심이 클 거야."


"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닥터, 아직 방법이 남아있어요."


그녀의 말을 끊은 건 아자즈였다.


"몸이 없으면 새 몸을 만들어주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뼈와 살로 이루어진 몸이 아닌, 금속으로 된 몸 말이에요. 환자의 두뇌를 인조 신경계와 골격계에 연결하면 기계로 된 몸이라도 제 수족처럼 움직일 수 있어요."


"잠깐만, 뇌와 기계를 연결해서 움직인다고? 그런 기술이 있어?"


"가능하긴 해. 당장 내 백팩의 기계팔도 내 두뇌랑 연동되서 움직이는 거니까, 내 경우에는 무선 연결이지만. 하지만 아자즈 언니, 지금 트레저 오빠는 생명유지장치가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상태야, 의족 만들어준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그럼 거대한 기계몸을 만들어서 병상째로 집어넣으면 되겠네요. 저 분의 상반신과 생명유지장치를 넣을 공간이 되려면 대형 AGS 하나 만들어야 겠는걸요?"


"아니, 그렇게 막무가내식으로...! 해도... 될 지도...?"


닥터는 따지려다가 이내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둘 다 진정해봐, 본인 의견부터 물어봐야지... 트레저의 의식은 있어?"


"다 듣고 있슴다."


병상에 누워있던 트레저가 입에 붙어있던 산소호흡기를 뗀 뒤 말했다.


"아, 그럼 지금 물어보면 되겠네요."


그러자 아자즈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그의 의견을 묻기위해 냉큼 수복실 안으로 걸어갔다.


"쉽게 말해서 당신은 한 대의 AGS가 되는 거에요. 닥터와 제가 힘을 합치면 바이오로이드와 기계가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 있답니다. 그럼 도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뿐더러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는데, 대신..."


"다시 형님을 모실 수 있으면 충분함다. 하겠슴다."


"저기... 왜 그렇게까지 해서 그 사람을 모시고 싶어하는 거야? 뭔가 이유라도 있어?


"바이오로이드가 인간한테 충성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나 해서. 그 사람이 바이오로이드를 도구가 아닌 인격체로 봐주기 때문이야?"


"저는 고블린, 통제불능의 실패작이자 결함품임다. 명령에 잘 복종하는 것도 아니고 예쁘장한 것도 아니죠. 그 흔한 브라우니보다도 가치가 떨어지는 게 저와 제 형제들입니다. 형님이 처음 절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 것도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인 것도 알고 있슴다."


"으, 응?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그런데 형님은 지금까지도, 절 대체할 바이오로이드가 잔뜩 생겼는데도, 절 아껴주고, 절 위해 웃어주고, 울어줬슴다. 형님이 절 져버리지 않는데 어떻게 제가 형님을 져버린단 말임까."


"...그렇구나.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런데 직접 대화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인상이랑은 좀 다르네. 고블린이라고 하면 분명... 그, 있잖아."


"난폭할 줄 알았다고요?"


"오빠. 고블린이 폭주 사건을 일으킨 전례가 있긴 하지만 보통 고블린은 자극하지만 않으면 브라우니와 비슷하게 활발하고 낙천적인 성격이야."


"아참, 말이 나와서 말인데. AGS 몸을 가진 상태에서 폭주하면 큰일 나는거 아냐?"


"그건 걱정 안해도 돼. 트레저 오빠는 더이상 폭주할 일 없을거야."


"확실한 거야?"


"고블린의 폭주는 남성 호르몬과 오리진 더스트의 상성이 안좋아 발생한 일인데, 이젠 남성 호르몬의 근원지가 사라졌잖아."


"...앗."


사령관은 문득 상반신밖에 안남은 트레저를 보더니 무안해져 시선을 돌렸다.


"그, 미안..."


"뭐요, 난 딱히 신경안씀다. 이미 없어져서 그런건가."


"물론 호르몬 장애 상태로 냅두면 안되니까 추가적인 조취를 취하긴 할 거야."


"음, 알았어. 닥터, 아자즈.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지! 우리한테 맡겨줘."


"그럼 어떤 AGS를 기반으로 만드는 게 좋을까요? 희망사항이라도 있으신가요? 예를들어 기간테스라던가..."


"대빵 큰 대포 달린 게 좋슴다."



*



"...그래서 이렇게 용기병이 됐다는 거냐."


"리-시-빙."


"가까이서 보니 엄청 크네... 셀주크 크기가 몇 미터지?"


"전고 5.6m에 중량 102.6t이거든?"


트레저에게 가까이 다가가 차가운 금속 껍데기를 퉁퉁 두들겨봤다. 코코처럼 로봇 안에 탑승한 형태는 아닌지 안에서 두들기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 안에 뇌만 둥둥 남아있다거나 한 건 아니겠지?"


"둘째 오빠, 내가 매드 사이언티스트긴 해도 그렇게 인간미 없는 바이오로이드는 아냐. 셀주크 몸체를 새로 만들면서 트레저 오빠의 상반신을 통째로 집어넣기 위해 부품 들어내고 공간 확보하느라 살짝 고생했다고. 물론 이 닥터의 손에 걸리면 금방이지만!"



셀주크 몸체의 머리 부분을 향해 손을 뻗자 트레저가 한쪽 무릎을 꿇고 높이를 낮춰줘 머리 부분을 만질 수 있었다. 더이상 아무런 감각도 못느끼는 몸이지만 트레저는 형님이 자신을 걱정해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뭐...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만,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셀주크한테 맞고 그 꼴이 됐는데 용케 셀주크를 골랐구나."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슴까."


"새 몸은 어때? 잘 움직여져?"


"암요! 아무 문제 없슴다 형님!"


트레저가 들어있는 셀주크는 도로 일어서서 스모선수 발 구르기 하듯 한쪽 다리를 높게 들어올리더니 이내 쿵 소리와 함께 힘차게 발을 땅에 내려놓았다. 바닥이 흔들리자 순간 뒤로 넘어질 뻔 한걸 리디아가 잡아줘서 살았다.


"...저렇게 움직이는 셀주크는 처음 보네..."


"얘! 실내에서 그렇게 세게 찍으면 바닥 패이니까 자제해줬으면 좋겠거든!?"


"아무튼 이 정도로 바이오로이드와 기계를 융합시킨 건 전례없는 일이라서 좀 더 검사해봐야 하는데, 지금까지 검사 결과를 보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어때 트레저 오빠, 크게 불편한 점 없지?"


"팔이나 좀 달아줘요. 이래선 형님이랑 악수도 못하겠네."


트레저가 팔 대신 셀주크의 포신을 위아래로 까딱거리면서 대답했다. 아니 저기다 팔 달면 토미 워커같은 중장비 팔이 붙어야 할 텐데 그럼 팔 있어도 여전히 악수하긴 힘들지 않나?


"새 기계 파츠 붙이는 건 나중에 아자즈 언니랑 상담해봐. 그러길래 그냥 기간테스같은 인간형 골랐으면 됐잖아..."


"난 화력이 강한 게 좋단 말임다! 전에는 그 쬐끄만한 소총 들고다니느라 나이트칙이나 인터셉터도 제대로 못잡아서 쩔쩔맸었는데, 이젠 뭐든지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슴다!"


트레저가 한 쌍의 자주포를 밑으로 겨누며 마치 겁주듯 주변을 슥 흝었다.


"까불지 말고 포신 위로 올려 임마."


"헤헤, 그냥 대포 자랑 좀 하고 싶었슴다."


내가 한 마디 하니 트레저는 잽싸게 포신을 천장으로 향했다.


"근데 화력은 스트롱홀드가 더 세지 않아?"


"그거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거잖슴까. 거기 들어가면 진짜 휠체어 신세 되는 거 같아서 다리 달린 걸로 골랐슴다."


"그럼 타이런트는?"


"아가리에서 불 뿜는 거 말고 대포로 펑펑 쏘는 걸 선호함다."


"...트리톤은?"


"그게 뭡니까? 한번도 못들어본 건데."


"있어, 펙스 포세이돈 사에서 만든 화력 끝내주는 AGS."


"펙스요? 에이, 전 블랙리버에서 만든 AGS 로보테크가 더 좋슴다."


"취향 확실하구만."


"참 맞다. 둘째 오빠, 혹시 트레저 오빠 제조할 때 뭔가 문제라도 있었어?"


"응? 그건 왜? ...30분 걸려 제조해야 할 걸 제조기가 망가져서 27분만에 끝내긴 했는데."


"역시..."


"왜그래? 뭔가... 문제라도 있어?"


"그리 심각한 건 이닌데, 정밀검사해보니 두뇌 모듈에 군인으로서의 예의 범절 등 일부 데이터가 누락돼있더라고."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어, 예전에 오메가한테 잡혔을 때 기억 영상화 장치란 게 머리에 씌워진 적이 있었는데, 그거 때문 아님까?"


"아니, 이건 처음부터 필요한 데이터가 입력되지 않은 케이스야. 둘째 오빠를 형님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고.

갓 제조된 브라우니라도 마리 대장 보고 언니라고 부를게요~ 이러진 않거든."


"...그랬던 거였어?"


"야 이 제조실에 개념 놔두고 온 새꺄ㅋㅋㅋㅋㅋ"


"에이씨 너 아직도 그거 기억하고 있었냐?"


트레저와 리디아가 티격거리는 걸 보니 이런 모습이라도 예전으로 돌아간 거 같아서 묘하게 마음이 놓인다.


"아무렴 어떠냐. 형님이라 불러주는 게 더 정감가고 좋은데."


"그쵸그쵸? 크으 역시 우리 형님이셔."


"아무튼 둘째 오빠. 우리 오빠, 그러니까 사령관 오빠가 둘째 오빠랑 만나서 얘기 좀 나눠보고 싶다고 했거든. 근데 어제 새벽까지 깨있었어서 아직 자고 있을거야. 오늘 오전 중에 부를테니까 그 때까진 병실에서 기다려줄래?"


"미안한데 여기 좀 더 있어도 될까? 셋이서 얘기 좀 하고 싶은데."


"그럼! 하나도 미안해할 거 없거든? 누나랑 닥터는 밤샘작업해서 피곤하니 슬슬 자러 가봐야겠거든."


"엣, 난 아직 괜찮은데... 아직 검사도 안끝났고..."


포츈이 닥터를 끌고 나가자 정비실엔 셋만 남게 되었다. 리디아가 어디서 간이 의자를 두 개 가져오자 그 위에 앉고선 나와 리디아, 트레저 셋이 회포를 풀었다. 오랜만에 굶주림도, 적의 위협을 걱정할 필요도 없이 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얘기는 동이 틀 때까지 지속되었고, 리디아의 패널에서 메시지가 오고 나서야 얘기를 멈출 수 있었다.


메시지의 내용은, 아침 식사 후 면담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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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해피엔딩 좋아해. 사상자 0명 가즈아아아


원래 이번편에서 완결내려 했는데 트레저 얘기가 의외로 길어져서 다음편이 진짜 엔딩

참고로 엔딩 후에도 에필로그로 몇 화 더 뽑을 생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