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오르카호는 목적이 달리 있지 않는 이상 태평양 끝자락, 지도로 치면 일본, 한국 근처 언저리를 돈다. 아메리카에 굳이 가까이 있을 필요도 없고 이곳 저곳을 마구 옮겨다니면 부상할때마다 시차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혼란을 느끼기도 해서이다. 어차피 오르카호의 속도면 지구 어느 곳이던 길어봐야 하루 안에 항해 가능하기도 하고 말이다.

비록 심해에는 햇빛이 닿지 않지만, 오르카호는 간간히 수면 위로 부상한다. 바깥 공기를 쐬고 싶은 인원이 있다던가, 창문에 어두운 바닷물 대신 햇빛을 들이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동이 트기는 조금 이른 새벽 4시, 오르카호가 거대한 물보라와 함께 수면 위로 부상한다.

오르카호 내에서는 각 층별로 당직을 서는 병과 간부 하나씩이 있다. 물론 보통은 잠자다 층 내에서 생기는 이슈 정도를 처리하는 정도이고 부관급 이상의 바이오로이드가 사령관이 잘 때 함 내의 이슈를 처리하는 구조였다.

그날 오르카호의 당직사령인 나이트앤젤이 잠시 일어나 각 층별로 돌아다닌다. 오르카호의 기상시간은 꽤나 늦은 편이기에 아직 일이 끝나려면 이 지루한 당직을 몇 시간은 더 지내야했다.

생활관이 있는 층은 당직병과 사관이 있으니 빼고, 다른 층들을 둘러본다. 오르카호 자체가 워낙에 큰 지라 둘러본다는 핑계로 이곳 저곳 잠깐 걷기만 해도 시간이 훌쩍 지난다. 

적당히 기지개를 켜며 복도를 걷던 나이트앤젤의 눈에 이상스레 불이 켜져있는 방 하나가 보인다. 사령관이 또 잠 안자고 이상한 플레이를 한다면 훈계를 빌미 삼아 시간을 좀 보낼 생각이었던 나이트 앤젤이 문을 연다.

누구 있습니까”

미닫이 문에 id카드를 대고 문을 열자 디지털 테이블에서 나오는 소리와 누군가의 숨소리가 섞여 들린다. 바이오로이드 한 명 이었지만, 사령관이면 테이블 밑에 숨어있거나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뭐야 이건…”

테이블에는 오르카호의 cctv 영상처럼 보이는 것이 재생되고 있었다. 짧은 파트들이 빠르게 넘어가며 여러 영상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리제?”

영상 내내 시저스 리제가 찍힌, 혹은 메인이 되어 찍혀진 영상들이 내내 재생되고 있었다. 지루한 찰나에 묘한 흥미거리를 찾은 나앤이 몸을 돌려 천천히 들여다 보던 찰나에 레아가 번뜩 일어난다.

어, 일어났어요?”

아, 그, 지금 몇시죠?”

새벽 5시 12분이네요. 여기서 잔거에요?”

아, 한 시간 정도…”

당직사령 명함을 찬 나이트앤젤이 있단 걸 알자 레아가 급하게 영상들을 정리한다.

아니 뭐, 레아 씨라면 계속 있으셔도 됩니다만”

아뇨, 그래도…이제 들어가야죠”

나이트앤젤도 요 며칠 리제 때문에 있던 소동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었기에, 레아가 왜 리제의 영상과 자료들을 보고 있었는지 눈치를 못채진 않았다. 레아의 성격이라면 저러고도 아마 방에서 남은 자료들을 또 검토하고 분석할 게 뻔했다. 나앤이 딱히 말릴 생각도, 말릴 이유도 없었지만, 그래도 잠깐은 그녀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바람이나 쐬러 가시죠. 마침 함도 부상했는데”

아, 괜찮은데…”

제가 심심해서 그런겁니다”

너를 위한 게 아닌, 나를 위해서 그런 것이다. 하는 뉘앙스를 풍기자 레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갑판 위로 올라가자 멀리 검은 하늘이 스러져감에도 아직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바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검은 지평선이 미묘한 색감으로만 구분 될 뿐이었다. 난간 쪽으로 걸어가자 아직은 좀 서늘한 바닷바람이 설렁설렁 분다. 머리가 워낙에 풍성한 레아의 머리는 조용했지만 나이트앤젤의 생머리는 조금씩 바람결에 날린다.

담배, 피우시겠습니까?”

아, 아뇨”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곽 하나를 꺼낸 나이트 앤젤이 불을 붙인다. 바이오로이드용으로 나온 담배가 아닌 멸망 전의 인간용인듯 했다. 가끔 탐색을 나가면 저런 물건들이 들어 올때가 간혹 있었다.

인간용이네요?”

아, 네…근무중이니까요”

바이오로이드용의 담배는 인간용 보다 훨씬 독한 편이다. 그래봐야 바이오로이드의 강화된 신체에 장기적으로도 폐를 끼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인간용 담배에 비해서는 좀 더 각성효과가 있었다. 반대로 인간용의 담배를 바이오로이드가 피워봐야 아무리 깊게 머금어도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다.

나이트앤젤이 검지와 중지 사이로 집은 담배를 잠깐 떼고 깊은 숨을 뱉는다. 어두운 밤 하늘에 담배연기가 금새 흩어진다.

리제씨 문제인가요?”

그렇죠, 뭐…”

나앤이 고개를 살짝 돌려 레아와 눈을 마주한다. 레아도 굳이 부정 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굳이 이상한 소문이나 없는 말을 지어낼 타입은 아니라 생각했다. 

나이트앤젤씨는, 동생쪽이죠?”

뭐,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오히려 저보다 나이트앤젤씨가 리제한테 더 공감할 수 있으려나요”

설마요”

나이트앤젤이 픽 웃는다.

제 생각엔 리제씨랑 레아씨쪽에 누가 더 가깝냐고 묻는다면 전 레아씨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요”

왜요?”

아니 뭐, 언니나 대장이라고 있는 것들이…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타 부대 사람에게 자기 상관이나 언니 흉 보는 것도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 한마디만으로도 레아는 나이트앤젤의 말의 의미를 파악 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둠브링어에서 전투상황이 아닐 때 오히려 언니스러운 모습을 보인건 나이트앤젤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힘드시겠어요. 리제씨에 티타니아씨, 드리아드씨, 뭐 다른 동생들도 있고…타 부대 입장에서 이러니 저러니 말해도 의미는 없겠지만”

힘들긴요. 제 일인데요”

난간에 기댄 레아의 무거운 가슴이 난간 아래로 축 처진다. 나이트앤젤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지지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른 부대처럼 전투상황에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동생들 관리하는 걸 못하면 안돼죠”

저는 대장이 한참 뻗댈 때 미치는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런가요”

리제와 레아 얘기, 부대 얘기, 다른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다 보니 나이트앤젤의 담배가 벌써 필터까지 타버린다. 묘하게 남아있는 듯한 두 사람의 공감대도 완전한 것은 아니다. 완전할 수 없었고,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이런 가벼운 대화만으로도 레아는 만족할 수 있었다.

들어가시죠. 좀 주무시고요”

그럴까요”

두 사람이 갑판에서 내려간다. 해가 곧 떠오를 시간이었지만 각자의 이유로 그것을 볼 여유는 없었다. 어린 아이라면 자주 오지 않는 기회에 꼭 보자고 보챘겠지만 두 사람들은 딱히 어리지도 않았고, 책임감도 있었다. 점점 주황빛으로 물드려하는 갑판을 등 뒤로 하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간다.

 

기상시간 3시간 전, 오전 5시. 원래대로라면 저녁식사 전후 할 때쯤 세탁이 끝나거나 밤에 나온 세탁물들은 아침에 정리되는게 정상이었지만, 숙소에도 가지 않고 세탁실에 하루 종일 앉아있던 리제가 그냥 손에 잡히는 일거리를 모두 끝내버렸다. 그것도 벌써 몇 시간 전에 끝내놓았다. 빨랫감을 층별로, 혹은 생활관별로 개어놓고 카트에 정리해두면 아침이 되었을 때 누군가가 모두 가져다 둘 것이다. 개중에는 당연히 리리스의 것도, 소완의 것도 있었다.

리제의 눈에는 모두 같은 옷이었다. 모양이 다르건, 면적이 크건 작건, 재질이 어떻건, 그저 모두 같은 옷이었다. 누구의 것인지 구분 할 필요도, 구분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세탁기와 건조기 마저 구동을 멈춘 지하층은 미세한 진동 하나 느낄 수 없을 만큼 고요하다. 저장고, 창고등이 있는 지하층은 기계장치라 부를 것도 없었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이 멈춘 느낌이다. 바닥에 엎어진 리제가 천장에 붙은 led등 하나를 멍하니 쳐다본다. 바닥은 딱딱하긴 하지만 그다지 차지는 않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 시간이 흐른다고 파악 할 무언가가 아무것도 없었다. 비단 시계 뿐 아니라 동작하는 무언가, 움직이는 누군가, 감각을 자극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이 아침인지, 아니면 낮인지, 밤인지, 새벽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업고 구분하고 싶지도 않았다.

순간 led등이 꺼진다. 동작 감지장치의 타이머가 다 되자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고 불을 꺼버린다. 물론 리제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 해도 빛은 다시 돌아오겠지만, 세탁실은 그대로 어둠에 묻혀버린다.

세탁실인지 아니면 어디 우주공간의 한 가운데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숨소리만 미약히 들리는 어떤 어두운 공간, 그 공간의 한 가운데에 리제가 있었다. 천천히 눈을 감는다. 소리가 들리지 않음은 주변이 고요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청각이 마비되었기 때문인지, 눈이 보이지 않음은 방의 불이 꺼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눈이 멀었기 때문인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음은 방 안이 밀폐된 공간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감각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인지, 구분 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였다. 리제의 삶의 가치가 없어져버린건, 단순히 그녀가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가치가 없어져버린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리제의 생각으론 이제,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다.

포티아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걸까, 역겨운 구토감과 분노, 자기부정의 혐오감에 빠지게는 해줬지만 최소한 이틀만에 처음으로 자신에게 삶의 의지를 붙잡게 해주었단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보답은 살의를 동반한 위협으로 해버렸지만, 최소한 그 순간 만큼은 아직까지 리제는 자신의 존재를, 가치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반나절이 흐른 지금은 그런 자극을 받더라도, 의지를 되돌릴 수 없을 듯 했다.

만약 포티아를 공격했다 하더라도 변하는 게 있었을까, 없었을 것이다. 잠시나마 주인의 시선을 끌었다 해도, 결국 끝은 같았다. 주인의 눈에는 들 수 없었다. 성관계나 데이트 같은 일차원적인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잠시나마, 주인의 눈에 자신이 주목되길 바랬다. 언제나 그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 믿음이 깨져버렸다.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리제 자신이 주인의 아가페적인 사랑에 의심을 품었을 뿐이었다.

언제나 주인이 쳐다봐 준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더더욱 주인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설령 타인과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 했었다. 그렇게라도 주인이 자신을 봐준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주인의 시선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고 생각해버린 순간 모든 것이 부질없어졌다. 그저 주인의 눈에 들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더라면 상관 없었다. 칼로 찌르던, 칼에 찔리던 주인의 눈을 돌릴 수만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난, 장식품이었어…”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고 뭐라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갈라진 목소리, 리제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살아있음을 표현하는 증거는 그 짧은 한마디였다.

세탁실은 그렇게 완전한 고요에 잠긴다.


사실 원래는 나앤이 주인공이었음

근데 나앤이 내가 접기 전에 비해 캐릭성의 변화가 생겨서 리제로 턴


아 그리고 좀 궁금한게 있는데

내가 라오SS)라고 제목에 쓰는게 원래 일본에서 2차창작 소설을 SS라고 불러서 그렇게 붙인게 있거든, 문학이라 쓰기엔 좀 문학 수준이 아니고, 라오SS라고 검색하면 그냥 쭈르륵 뜨니까 편하기도 해서


근데 라오SS) 라고 하면 제목만 봤을때 소설 말고 이상한 글 처럼 보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