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오면 이해가 빠를 전편 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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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멸망 전부터 철충들과 싸워오던 바이오로이드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건강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다만, 그 날 이후로 오르카 호 대원들의 행동이 약간 이상해졌다.

사령관과 마주칠때마다 다들 몸 이곳저곳을 툭툭 치고 주무르며 계속 "아이고 아이고 삭신이야."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흘끔흘끔 쳐다보다 지나가는게 아닌가?

진지하게 닥터에게 성능 좋은 안마의자를 만들어보자고 논의해야하나 고민하던 사령관은 슬쩍 고개를 돌려 방 한 귀퉁이에 서 있는 바닐라를 쳐다보았다.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저러다 어깨가 빠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바닐라는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계속 두드리며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사령관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등골이 오싹해진 사령관은 얼른 고개를 다시 태블릿 화면에 처박고 업무에 집중하려 했지만,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소리없이 의자 바로 뒤까지 다가온 바닐라가 허리를 숙여 사령관을 빤히 쳐다보며 어깨를 두드렸다.

사령관은 떨떠름한 얼굴로 바닐라를 쳐다보며 왜 그러는건지 물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오롯이 임무에 집중하도록 보좌하는 역할입니다."

이게 집중하게 하는거냐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겨우 참았다.

"하지만 최근 업무의 피로도가 너무 높아져 몸 이곳저곳이 쑤십니다. 아아 누가 안마좀 해주면 좋을텐데."

보통 이런말을 할때는 좀 부끄러워 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해야 정상이건만 바닐라는 그 큰 눈을 사령관에게 바짝 갖다대며 말했다.

거절하면 진짜 사람 하나 잡을 기세로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를 애써 외면한 사령관은 어쩔수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바닐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신하게 눈을 감고 앞쪽으로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준비는 다 끝내놨습니다. 주인님께서 가실 일만 남았습니다."

도대체 뭔 속셈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사령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닐라가 시키는대로 집무실을 나가 비밀의 방으로 향했다.

바닐라는 허리춤에 차고있던 통신기의 호출 버튼을 짧게 세번 누르고 사령관의 뒤를 따랐다. 

* * *

비밀의 방에 들어간 사령관은 난데없이 뿌옇게 들어 찬 연기에 움찔했지만, 화재가 생긴건 아니라는걸 금방 알아챘다.

방 안에는 달큰한 향기가 한번만 맡아도 머릿속이 멍 해질 정도로 진하게 돌고 있었다.

"주인님은 일단 이 옷으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바닐라는 사령관에게 통이 크고 하늘하늘한 안마사용 시술복을 안겨주며 말했다. 사령관은 풀어진 눈동자와 발간 얼굴로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께름직하긴 하지만 역시 괴물은 괴물에게 맡기랬던가, 소완이 만들어준 특제 미향의 효과는 기가 막혔다. 이미 이런짓에선 손을 땠다지만 실력은 어디가지 않았다. 물론 효과는 아주 약하게 조절했지만.

사령관은 옷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외투와 겉옷, 속옷까지 모두 다 벗고 안마 시술복을 입었다.

바닐라는 뭔가 나사빠진 사령관의 모습에 약이 너무 쌘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사워실로 들어갔다.

바닐라가 한창 씻고있던 그 때,

....아....아....아?

향에 좀 익숙해졌는지 풀린 눈으로 입을 헤 벌리고 침을 뚝뚝 떨어뜨리던 사령관이 옹알이를 하며 눈을 비볐다.

약하게 밀려오는 편두통에 관자놀이를 누르며 주변을 둘러보던 사령관은 눈앞에 왠 큼직한 구멍 하나와 홈이 나란히 파여있는 푹신한 가죽침대와 밟고 올라갈 발받침이 있는게 보였다.

그 옆에는 향기는 좋은데 도대체 뭔지 알 수 없는 끈적하고 미끈한 액체가 제각각 다른 모양의 용기에 담겨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사방을 둘러친 약간 반투명한 분홍빛 커튼과 옅게 끼어있는 안개같은 연기가 묘한 분위기를 내며 사령관의 아랫도리를 약하게 자극했다.

"정신 차리셨습니까."

바닐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사령관은 놀래서 펄쩍 뛰며 뒤로 돌았다. 샤워를 마친 바닐라는 커다란 샤워타올 한장만 걸친 체 머리도 안말려 볼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은 물기를 머금어 빛을 받을때마다 반짝였다.

"자, 그럼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바닐라는 사령관이 서있는 발받침대를 밟고 안마대 위에 올라가 나란히 움푹 들어간 홈에 가슴을 끼우고 위쪽에 있는 큼직한 구멍에 얼굴을 댔다.

사령관이 말을 더듬으며 바닐라에게 안마의 안자도 모르는데 해도 되냐고 묻자 바닐라는 헹 하고 웃으며 답했다.

"웃기는 소리하지 말고 얼른 시작이나 하시죠. 저 춥습니다."

어쩔줄 몰라하던 사령관은 일단 바닐라의 샤워타월은 그대로 놔두고, 머리부터 말리기 위해 바닐라의 앞쪽으로 다가갔다.

작은 손으로 바닐라의 머리를 손가락 사이사이에 감아 들어올린 사령관은 그대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포근한 린스 냄새가 폐 속 깊이 간질이며 두근거리던 사령관의 심장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바닐라의 향기는 좋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사령관은 심호흡을 몇 차례 반복했다.

"....너무 그러면 씻었다 해도 조금 부끄럽습니다."

바닐라가 고개를 살짝 들며 말하자 사령관의 손에 가득 쥐여졌던 머리카락들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사령관은 아쉽지만 한 손에 트리트먼트를 듬뿍 짜서 손바닥으로 비비며 바닐라의 뒤통수 음푹 들어간곳을 꾹 누르며 두피마사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