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분들은 항구 5번 선착장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언제나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도 무전기에 대고 연설을 했다. 누구도 반응해주지않을 연설을.


연설을 마친 나는 가방에 점심에 먹을 도시락과 지루함을 달래줄 책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그리고 혹시나 모를 상황에 나를 지켜줄 무기를 챙기고 밖을 나섰다. 


4중으로 잠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건물의 외벽과 아스팔트 도로의 갈라진 틈 사이로 무성하게 자란 겨우살이들을 발로 치우며 5번 선착장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한참이나 지났지만 날은 여전히 쌀쌀했다. 두꺼운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로 위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사람들로 붐비던 마트와 카페, 그리고 가게들은 먼지와 거미줄에 쌓인채로 사람들을 기다리고있었다.


"......"


그것들을 볼 때마다 난 외롭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된다.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지독하고도 씁쓸한 외로움을 뒤로하고 5번 선착장을 향해 나아갔다. 적당한 짠맛이 느껴지는 바닷바람을 피하며 녹이 잔뜩 쓸어버린 선착장의 문을 열었다.


천장의 구멍이 뚫린 곳으로만 빛이 들어오는 넓은 선착장 안에는 책상과 모니터, 그리고 편안해보이는 사무용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져있었다.


'역시...'


누군가가 내 연설을 듣고 선착장으로 와주길 바랬지만 너무나도 큰 바람이었는가보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책상에 앉은 나는 먼지를 쓸어내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에는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았다. 전기가 들어오지않을 뿐더러 본체도 없었다. 이런 쓸데없는 물건을 여기에 둔 것은 정말 터무니없고도 심플했다.


심심해서였다.


의자에 앉은 나는 책상 위에 두손을 공손히 모으고 선착장의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문 틈 사이로 태양빛을 머금은 바다가 반짝이는 것을 보며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에는 그 어떤 것도 비춰지지않고있었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다음에 올 때는 키보드라도 챙겨와야겠다고 생각하며 가방에서 책을 꺼내 그것을 읽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지나갔다. 가져온 도시락이 텅 비워지고, 책도 전부 읽었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은 선착장의 문 밖으로 튕겨져나갔다. 공을 다시 가지러갈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생각만 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 선착장으로 찾아오면 어쩌겠는가?


시간은 또 무심하게 지나 선착장을 비추던 빛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착장의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이라고 해봤자 누가 살았는지 무엇을 했는지 모를 집에 얹혀사는 것이었지만 난 편의상 집이라고 부르고있었다. 오늘도 허탕만 쳤다는 생각을 하며 4중으로 잠긴 문을 열고 다시 4중으로 잠근 다음 가방과 옷을 대충 벗어던지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내가 하고있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지 제대로하고있는지 의구심이 들긴했지만 난 내일도 선착장에 가야만 했다.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을까 고민을 했지만 그냥 쉬기로했다. 


다음날, 나는 평소처럼 연설을 하고 가방에 도시락과 책을 챙기고 4중으로 잠긴 문을 열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도로 위에 길게 줄지어선 자동차들은 버려진 채 주인을 기다리고있었고, 사람들로 붐비던 가게는 먼지와 거미줄이 쌓인채 사람들을 기다리고있었다. 평소와 똑같은 풍경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적당한 짠맛이 느껴지는 바닷바람을 피하며 선착장의 문을 열려고했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닫혀있어야할 선착장의 문이 열려져있었다. 


"뭐야..?"


어제 분명 나갈 때 문을 닫고나갔다. 분명 그랬다. 그런데 선착장의 문은 열려있었다.

머릿속의 회로가 불타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허벅지 쪽에 있는 홀스터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들었다. 만약 저 선착장 안에 있는 것이 사람이나 동물, 그리고 바이오로이드라면 내가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을 것이고, 만약 저 안에 있는 것이 내가 생각한 것들이 아니라면. 난 죽은거나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해서 도망치고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도망을 간 사이, 내 연설을 듣고 다른 누군가가 여길 온다면 난 평생을 후회하며 살아갈 것이 뻔 했다.


숨을 천천히 고르며 권총의 방어쇠에 손가락을 올리고 선착장의 안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그것을 겨누었다.


천장의 구멍이 뚫린 곳으로만 빛이 들어오는 넓은 선착장 안에는 책상과 모니터, 그리고 긴 하얀머리를 가지고있는 여성이 편안해보이는 사무용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발을 올리고있었다.


"......"


"뭐야? 너..."


여성은 자신의 목에 휘감겨있는 하얀 뱀을 쓰다듬으며 나를 향해 미간을 찌푸렸다.

언뜻 보기엔 인간 같아 보이겠지만 그녀는 인간이 아니였다. 바이오로이드였다.


일단은 그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난 권총을 다시 홀스터에 집어넣고 천천히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내가 다가오거나말거나 뱀을 쓰다듬고있었다.


"나오십시오. 거긴 제 자리입니다."


나의 말에 그녀는 다시 한번 나를 쳐다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싫은데?"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두갈래로 갈라진 혀를 낼름거렸다.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화를 낼 순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정중하게 부탁을 해보았다.


"나오십시오. 거긴 제 자리..."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녀의 손에서 단검이 튀어나와 내 목에 들이댔다. 내가 눈치를 채기도 전에 움직인 탓에 몸을 움츠렸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표정과도 같았다. 


"싫다고..."


그녀의 완고한 태도에 난 하는 수 없이 책상 옆에 서기로 했다. 문 틈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반짝이는 것을 보며 내 연설을 듣고 찾아올 사람을 기다렸다. 바다를 바라보는게 질릴 때 쯤 옆에 있는 여성을 흘겨보았다. 그녀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뱀을 쓰다듬거나 점퍼 안에 있는 단검들의 갯수를 세거나 손수건으로 날에 묻은 먼지를 닦고있었다.


"야. 깡통."


내가 계속 흘겨보고있었던 것을 눈치챈 여성이 나를 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저 말입니까?"


"여기 깡통이 너말고 더 있냐?"


"무슨 일이십니까?"


"너, 여기 뭐하러 온거야?"


"기다리고있었습니다."


"누구를?"


"제 연설을 들은 사람들을요."


"아..."


여성이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리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너가 보내왔던거구나.."


"들으셨습니까?"


"밤낮으로 떠들어대는데 안 들을 수가 있겠냐?"


"당신도 제 연설을 듣고 오신겁니까?"


"뭐...그런 셈이지.."


여성은 점퍼 안에 있는 핫팩을 꺼내들어 마구 흔들어댔다. 핫팩의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들이 흔들리는 소리만이 선착장을 가득 채우고있었다.


"으..시발..추워라...봄인데 왜 이리 추운거야..."


그녀는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고는 나를 흘겨보기 시작했다.


"춥.다.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추우면 지퍼를 올리시면 되는거..."


"에라이! 이 븅신아! 내가 안 그래봤겠냐?! 그런데도 춥다는거 아냐?!"


화를 내며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머릿속이 울려대는 탓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내가 입고있던 것들을 벗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뭐야?"


"이거라도 껴입으십시오. 그러면 덜 추울겁니다."


"그러면 너는..?"


"저는 상관없습니다. 전 추위를 못 느끼거든요."


그녀는 내 옷을 멍하니 바라보며 혀를 날름거리고는 내게 다시 옷을 건네주었다.


"됐어. 너나 입어."


"왜 그러시는거죠? 춥다면서요?"


"내가 좀 못된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캐릭터는 아니거든?"


"그러면 제 책상에서 나와주시죠."


"하?"


다시 점퍼에서 단검을 꺼내드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옷을 입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지나가고 어느새 떠날 시간이 되었다. 나는 가방을 챙겨들고 여성에게 물었다.


"전 이만 가봐야할 거 같습니다."


"엥?"


뱀에게 먹이를 주고있던 여성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나중에 나가실 때 여기 문은 닫고 나가주시죠. 그럼 전..."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선착장을 나올려는 순간, 여성이 의자에서 일어나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있었다.


"뭡니까?"


"아냐. 그냥 가던 길 가."


그녀는고개를 가로젓고는 점퍼에서 핫팩을 꺼내 흔들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그럼.."


다시 그녀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선착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4중으로 잠긴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와 현관문을 닫을려는 순간, 누군가의 발이 불쑥 튀어나왔다.


"무슨..?"


"이야! 여기가 네 집이야?! 진짜 넓은데?!"


아까 선착장에서 만난 여성이 집으로 들어와 거실을 돌아다녔다. 그녀의 당당하고도 뻔뻔한 행동에 말문이 막혔다.


"당신..."


"아, 선착장 문이라면 닫아놨으니깐 걱정하지마."


"그런게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응..?"


제집인 것마냥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소파에 앉아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녀의 모습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여기서 봐줬다가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처럼 내가 쫓겨나게 생겼다. 나는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화가 났다는 것을 그녀에게 과시하며 큰소리로 말했다.


"여긴. 제 집입니다. 좋은 말로할때...."


이번에도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녀는 점퍼에서 단검을 꺼내들어 내 목에 들이댔다. 그녀의 표정은 아까 선착장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그 표정으로 내게 호소하듯이 말했다.


"아.아. 바깥은 너무 춥고 위험한 것들이 너무 많아. 이대로라면 얼어죽거나 강간당할께 분명해. 아.이.고 무서워라~"


그녀의 호소와 협박 사이에 있는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아..저 방에 침대 하나가 있으니 거기서 지내십시오.."


"야호~! 고마워! 깡통 너, 보기보다 아주 상냥하구나~"


단검을 다시 소매에 집어넣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집을 활보하고 다녔다.


"그나저나, 여기 보일러 돼? 난 추운건 딱 질색이라서 말이야."


"보일러는 없고. 물을 끓여서 사용하십시오."


"그럼 물 좀 끓여줄래? 깡통아?"


"네..?"


"끓여줄래?"


그녀의 소매에서 단검이 또 튀어나왔다. 그것을 본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말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네..."


"야호~! 고마워!"


소파에 앉아 뱀을 쓰다듬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다시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와 그녀의 동거아닌 동거가 시작되었다.




나는 전설이다. 보다가 떠올라서 끄적여봤읍니다.

여튼 재미에 감동도 없는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때까지 쓴 글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