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탑 출시 기념- 잿빛의 탑에서 안녕을]






작전이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딱딱해져버린 전투 건량을 한 입 베어물면서 그리폰은 처량하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아... 앞으로 어떡하지."


옷이 군데군데 너덜너덜해진 그리폰은 살짝 죽은 눈빛으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비행장비도 연료가 떨어져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지 오래다. 벗을 수가 없어 달고있을 뿐, 이제는 그냥 짐이다.

그나마 탄약은 좀 남아있지만, 그것도 앞으로 두 세번이면 바닥날 양.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절망적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작전인 줄 알았다면 좀 신중하게 생각해서 자원할 걸 그랬나보다.

그리폰은 문득 이 곳에 올 당시를 떠올렸다. 


"다들 어디있을까..."


정체불명의 철충 구조물, 철의 탑. 철충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얻고자 했던 사령관은 철의 탑을 조사하기 위해 소규모 정예 정찰대를 급파했다. 중요한 일이라면 빠지기 싫어하는 그리폰은 정찰대를 꾸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거기에 지원했고, 살짝 떨리긴 했지만 중요한 일을 한다는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의기양양하게 철의 탑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지금 결과가 현재.

대원들은 정체불명의 적습을 받아 철의 탑 내부에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통신장비도 파괴됐고, 보급 담당인 실키와 안드바리도 실종된 상태. 혼자 남은 그리폰은 적습을 받으면서 장비가 크게 손상되긴 했지만 상처는 거의 입지 않았다. 

그렇게 철의 탑을 떠돌아다니며 버려진 시설에서 물자를 충원해 버티기를 수 일.

정찰대는 수십명 단위였지만 아직까지 한 명도 못 만났다.


"...집에 가고싶다."


그리폰은 맑게 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오르카 호 생각에 잠겼다. 집보다 더 집같은 그 곳. 아무리 심한 격전을 치뤘더라도 오르카 호에 돌아가면 다 잊고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칠칠맞게 구는 LRL도, 언니처럼 자상한 콘스탄챠도... 그냥 모두가 그립다.

물론 그 중 가장 보고싶은 사람은...


"핫...! 아니지, 아니야. 지금 왜 그 녀석 생각이 나는거람."


머릿속에 뭉실뭉실 떠오르는 익숙한 얼굴에 그리폰은 뺨을 붉히며 도리도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그 사람이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마 엄청 걱정하겠지."


헤퍼보일 만큼 사람좋은 그는 틀림없이 안타까워 할 것이다. 자기 책임이라면서.

그리폰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


"좋아, 그럼 가볼까?"


마음을 추스린 그리폰은 장비를 간단하게 점검하고 쭈그려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상태가 좋진 않지만 아직 좀 더 싸울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동료를 찾으리라. 그렇게 믿었다.

-나 때문에 그가 슬퍼하는 모습같은 건 안 보고 싶으니까.

결의를 다진 그리폰은 다시금 위협이 도사리는 철의 탑 안으로 뛰어들었다.




"...거기까진 참 좋았는데 말이야."


자신만만했던 방금 전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폰은 하하, 하고 영혼없이 웃었다.


"정말 지독하게 운이 없는 거 아니야?"


<캬오오오-!!>


감시대 철충 부대를 격파한 그리폰은 뒤이어 난입해 온 적과 마주치고 가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폰 앞에 선 흉측하게 생긴 철충은 칼날처럼 생긴 긴 발톱을 번뜩이며 포악한 괴성을 내질렀다. 괴기스러운 생김새도 생김새지만, 그 악질적인 적의는 조금 강한 것에 불과한 그리폰이 견뎌낼만한 것이 아니었다.

연결체 철충인 트릭스터와 흡사한 모습. 그러나 확연히 다른 능력.

그리폰이 '추적자' 라고 이름붙인, 이상할 정도로 강한 철충이었다.


"...도망치긴 글렀네."


그리폰은 혹시 비행장비의 추진기를 작동시킬 수 있을까 싶어 슬쩍 살펴봤지만 추진기는 이미 심하게 망가져버렸다. 당장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이제 정말 끝장이라는 것이 직감됐지만 그리폰은 이상하게 무덤덤했다.

난 죽는구나.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신기하긴 했지.

미안, 사령관. 돌아가고 싶었는데.


<캬아아아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추적자를 보며 그리폰은 자신의 최후를 예감하고 눈을 꼭 감았다.

그런데, 그 순간.


"-편히 잠드소서."


<-키익?>


뒤쪽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선고에 추적자는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은발의 머리카락, 보라색의 눈동자. 메이드의 그것같아 보이면서도 묘하게 다른 옷.

그리고 화기가 빼곡하게 채워진 채 문이 열려 있는 거대한 관-

추적자의 시선이 그걸 알아보는 것과 동시에 관에서 무수히 많은 총과 대포가 불을 뿜었다. 


<캬아아아아---!!>


우레처럼 쏟아지는 포화에 추적자는 비명을 지르며 처참하게 찢겨나갔다. 수십명이 한 번에 집중 사격을 쏟아붓는 것을 방불케 하는 격렬한 폭발. 포화가 끝나고 연기가 걷히자 추적자는 흔적도 없고, 새까맣게 그을린 폭심지만 나타났다.

폭격 세례도 한 수 접고 갈 반칙적인 포화.

추적자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증발' 되어버렸다.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화기가 수납된 관을 닫은 은발의 메이드 바이오로이드가 그리폰에게 고개를 돌렸다.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 어딘지 모르게 상냥한 목소리. 그녀를 알아본 그리폰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분명, 이 바이오로이드는...!

그리고 뒤이어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훌륭해, 이터니티."


"황송하옵니다. 주인님."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야, 그리폰.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어."


"...!!"


살짝 드레스 끝자락을 들며 예법을 갖추듯이 자세를 낮추는 이터니티에게 다가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리폰과 눈을 마주치고 반색을 했다. 그리폰은 순간 자기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자신의 감각은 아까 위기를 넘긴 탓인지 어느 때보다 쌩쌩했다.

마음속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그 사람.

인류 저항군을 이끄는 최후의 인류-

오르카 호에 있어야 할 그가 어째서, 여기에.


"일어설 수 있겠어?" 


"너, 어떻게...?"


"정찰대랑 연락이 두절돼서 직접 대원들을 찾으려고 왔지. 네가 마지막이야, 그리폰. 다른 대원들은 이미 돌아갈 비행선에 타고 있어."


사령관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그리폰에게 손을 건넸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에 그리폰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폰의 손을 살며시 잡은 사령관은 그리폰에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집에 가야지."


"으흑...! 으아아앙!!"


"어이쿠, 그래. 그래."


그리폰은 눈물을 왈칵 터뜨리며 사령관에게 안겨들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바람처럼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다니. 치사할 정도로 멋있었다. 사령관은 아이를 타이르듯이 그리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마 이 날은 그리폰에게 최악이 될 뻔한 최고의 날로 기억되겠지.

지금만큼은 누구보다 솔직하게 사령관이 와 준 것을 기뻐하며 그리폰은 사령관의 품을 오랫동안 꼭 껴안았다.











이렇게 보니까 또 추억이네

철탑 나올때만 해도 와! 라오그라이크! 그랬는데 ㅋㅋㅋ

뭐든지 길게봐야 아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