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남자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 


 순례란 본디, 종교적 의무를 취하고자 떠나는 여행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막중할 그 의무를 취하기 위해,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도달하는 것이야 말로 순례일 것이다. 난 순례의 첫 고난을 마주했다. 자신을 브라우니라 소개한 여성에 관한 문제이다. 그녀는 매사에 긍정적이며, 두루뭉술했다.


 문제는 남에게 하는 설명 또한 두루뭉술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내뱉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에서, 쓸 만한 정보를 간추려야 만 했다. 이는 우리의 출발을 더디게 하는 걸림돌이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양 답답하다는 식의 그녀의 의향과 언동을 이해 못하겠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정보를 날 것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왜곡이 많은 듯 했다.


 저항군 통령을 맡고 있는 ‘라비아타’ 라는 여성의 정보를 예로 들자면, 날 것으로 정보를 받아들였다가는 저항군의 통령은 키는 3미터가 훌쩍 넘고, 자신보다 세배는 긴 대검을 손쉽게 휘두르며 그럼에도 겉모습은 좀 살집이 있지만 역사상 제일 갈 미녀라고 한다.


 머릿속에 별 내용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건 좀 아닌가 싶을 정도의 과장, 왜곡이 넘쳐나는 프로필이다. 한순간이지만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지금 유일한 정보원은 그녀이기 때문에, 난 미간을 짚으며 그녀에게 계속해서 설명을 요구했다. 그녀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건지, 어떻게든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긁어내는 듯이 보였다. 그런 모습은 어딘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를 그녀에게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 보냈다. 그리고 정리된 내용은 절망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불리한 전황이었다. 인류는 멸망했다. 남은 것은 인류가 만들어낸 유산인 바이오로이드와 멸망의 원흉인 철충 뿐, 그런 상황에서 난 최후의 인간으로 깨어났고, 바이오로이드 세력에서 가장 작은 편인 저항군의 군단중 하나, 스틸라인의 말단 바이오로이드 브라우니를 만난 것이다. 서늘한 감각이 식은땀과 함께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듯하다. 아무래도 난 좆 된 것 같다.


 살아남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꼭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멸망한 인류가 살고 싶던 미래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은 아닐 테니 말이다. 난 정보를 말하는데 온 힘을 다하고 곯아떨어진 브라우니를 보며 생각했다. 우선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저항군과의 합류지만, 브라우니가 낙오 되었다는 상황을 들어보면 그렇게 까지 가까운 미래는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마실 것이다.


 바이오로이드는 어떨지 모르지만, 인간은 물을 마시지 못하면 확정적으로 죽는다. 난 일단 살겠다고 정했다. 이런 좆같은 상황이여도 일단 살아야 좋은 꼴이라도 하나 보지 않겠는가. 복잡한 건 내일의 해가 뜨면 생각하기로 하고, 브라우니의 옆에서 잠에 들기로 했다.






마녀여왕 기다리면서 심심해서 2편 짧게 끄적였음. 읽어줘서 고맙고 본 챈럼들 모두 좋은 밤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