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자, 여기까지! 이 뒤를 이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분은 누구신가요?”

 

생소한 멸망 이전의 노래에 다들 주저했으나, 단 한 명만이 당당히 손을 들었다.

 

“내가 해보겠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눈에 들어온 건 아자즈였다. 리마토르는 그녀에게서 걸걸한 목소리가 나왔다는 걸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사령관은 그녀가 들고 있는 패드 안의 검은 AGS를 정확히 주시했다.

 

“그래, 알바트로스. 너한테 노래를 부르는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모든 분야에서 최강인 내가 노래를 못 부르는다는 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아이고, 우매한 분이 타인의 평을 위해 뛰어다니시네요.”

 

“입 다물고 있어라, 로크.”

 

패드 너머로 알바트로스와 로크가 서로 티격태격하기 시작하자 사령관은 재빨리 알바트로스에게 마이크를 쥐어주라고 아자즈에게 말했다. 아자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알바트로스에게 말했다.

 

“좋아요 알바트로스. 이제 부르면 돼요.”

 

“알겠네. 모두 이 최강 AGS 지휘관의 노래를 똑똑히 경청하도록!

 

그런데 무슨 노래인가?”

 

“하아...”

 

당당하게 묻는 알바트로스의 질문에 사령관은 한숨을 내쉬었고 화면 밖의 로크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엌ㅋㅋㅋㅋㅋㅋ 최강의 ‘무슨 노래인가?’라는 말 잘 들었습니다 최.강.의. AGS 지휘관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 웃지 마라 로크! 모르는 걸 배우려는 자세 역시 중요한 지휘관의 덕목이다!”

 

“잘 알겠습니다. 저물어 버린 지평선 뒤의 태양은 검은 암막이 내린 시간의 달빛 지도자를 찬미하시길. 저는 무슨 노래인지조차 완벽하게 파악했으니 말이죠.”

 

알바트로스로부터 마이크를 채간 로크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화면에 나오는 모습을 조정하더니 잔뜩 긁는 목소리로 외쳤다.

 


“용-서해-주세요-!

 

벌하-신다면 저 받을게요-!!”

 


본인 입장에서는 최대한 잘 부르기 위해 노력했지만, AGS 특유의 전자음이 섞인 목소리로 불러도 괜찮았을 노래를 억지로 긁으니 문자 그대로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를 저음으로 낮춘 게 되었다. 로크의 노래가 이어지자 그 자리에 있는 인원은 전부 귀를 싸매쥐었다.

 


“허나 그녀만은,

 

제게 그녀 하나마아안-!! 허락해 주소서-!!”

 


“상뱀! 고막이 찢어진 것 같슴다!”

 

“햇츙!!!!”

 

“아자즈 언니! 당장 그 패드 분해해버려!”

 

“뭐라고요? 귀에 피가 차서 잘 안 들려요!”

 

“야!!! 로크! 애시당초 그 노래가 아니라고!”

 

사령관이 로크에게 멈추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이미 로크의 노래를 빙자한 괴성에 점령당한 대강당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통과하는 걸 허가받지 못했다. 

 

사령관은 뮤즈에게 앰프를 전부 끄라고 지시하려고 했으나, 뮤즈는 이미 기절한지 오래였기에 그가 돌아봤을 때는 너무 늦은 후였다.

 

삽시간에 아비규환이 된 대강당에서 리마토르는 무엇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뇌를 닦달했다. 그의 뇌는 저 죽음의 패드를 파괴하라고 말했으나, 자칫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빗맞으면 그의 입지만 더 흔들리는 꼴이었기에 그 방법은 기각되었다.

 

차선책을 찾던 그는 결국 괴성을 괴성으로 상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마이크를 집어들었다. 로크가 연 지옥문 앞에 흔들리는 다리를 가누며 일어선 그는 남자가 낼 수 있는 고음의 끝에 도전하는 노래를 선곡했다. 그의 주문을 받은 뇌는 기억의 서랍장을 뒤져 가사와 멜로디를 떠올렸고, 입은 발성과 함께 노래를 시작했다.

 


“인 마이 라이프- 데얼스 저스트 언 엠프티 스페이스-

 

올 마이 드림스 알 로스트- 아임 웨이스팅 어웨이-

 

포 깁 미....

 

                                                     어어어얼↗!

                                    어어어어↗

                  어어어어↗

거어어어↗                                                         ”

 

 

로크의 신경질나게 긁는 저음과 리마토르의 쥐어짜는 고음. 분명 리마토르는 상쇄를 노리고 한 짓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문과였기에 음역대가 같을 때만 상쇄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정반대의 음역이 섞이자 나온 결과물은 상쇄가 아니라, 활짝 열린 지옥문에서 황천이 범람해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을 쓸어가는 정도였다.

 

귀에서 실제로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하자 사령관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극약처방을 사용하는 것 외에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방안이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공격한다는 것이 애석한 일이었으나, 리마토르의 사상이 안전한 것은 둘째 치고 억지로 짜내는 가성은 음파병기 수준이었기에 그는 오르카호 사령관으로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사령관은 생각을 마친 즉시 바로 앞에서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는 브라우니에게 뭉친 냅킨을 던져 자신을 보게 하더니 손짓발짓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한 손으로는 리마토르를, 다른 손으로는 술병을 가리킨 그는 병나발을 부는 자세를 하며 ‘리마토르에게 술을 먹여라’라는 뜻을 전달했다.

 

브라우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자신이 로크만 처리하면 된다는 생각에 재빨리 티타니아가 얼려두었던 얼음 장식을 투척했다.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신체 덕분에 얼음은 한 치의 빗나감도 없이 정확히 아자즈 앞의 패드를 산산조각 냈다. 칠판 긁는 소리가 사라지자 고통은 한층 덜어졌고, 이제 리마토르만 막으면 된다는 생각에 사령관은 브라우니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브라우니는 잘 알겠다는 엄지를 들어 보이며 단상 위로 올라가 술병을 들어올렸다. 뚜껑을 깐 그녀는 병나발을 불더니 그대로 리마토르의 머리를 내리쳤다.

 


“어?!”

 


리마토르는 단말마도 내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엎어져 의식을 잃었고, 사령관은 불과 1초 전에 벌어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황망히 브라우니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브라우니는 환하게 웃으며 병나발을 불더니 그에게 따봉을 날렸다.

 

멈췄던 사고회로가 돌아온 사령관은 다급히 단상에 올라가 리마토르의 상태를 확인했다. 의식을 잃은 그가 호흡까지 없자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핏기가 가셨다. 


그 와중에 눈치 없이 다가온 브라우니가 ’저 잘했슴까?‘라고 물으며 칭찬을 기다리자, 사령관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소리를 질렀다.

 


“브라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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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니라는 캐릭터가 참 만능인 것 같아.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으로 집어넣으면 전부 개연성이 되더라.


댓글로 펍 헤드를 지목한 라붕이들이 많았는데, 아쉽게도 답은 알바트로스였어. 차후 스토리 진행을 위해서는 이런 곳에서 포석을 깔아두어야 해서 어쩔 수 없었으니 양해 부탁할게.


이제 쉬어가는 에피소드도 끝났으니 다시 본편으로 가봐야지. 리마토르의 과거도 슬슬 풀 차례가 된 것 같아.


모두 부족한 글 읽어줘서 늘 고맙고, 로크와 리마토르가 부른 노래가 뭔지는 대략 감이 올지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