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우리집 브닐라 모음집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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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야아아아아앍! 이제 더는 몰라! 짜장 모른당께!”

 

같잖은 구호가 새겨진 띠를 머리에 두른 인간이 울부짖었습니다. 

 

“이비 씨.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이제 제발 그만 하세요.”

 

바니 언니의 부탁에, 저는 놈의 다리에 난 구멍에서 손가락을 빼냈습니다. 언니께 놈들이 타고 온 차량을 수색해달라고 부탁드렸던 것 같은데, 그새 수색을 끝내셨는지 지금은 제 옆에 서 계시는군요. 

 

“알겠습니다. 실린 화물은 어떤 게 있었나요?”

 

제가 바니 언니에게 여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몸을 돌리며 구두굽으로 인간 놈의 환부를 짓눌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놈이 임종 직전의 노파같은 한심한 신음을 흘립니다.

 

“세상에, 화가 난 건 알겠지만 그런 건 좀 그만-”

 

“제 질문부터 대답해주세요.”

 

“.....철사 다발과 덕트 테이프, 그리고 군용 폭발물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비 언니가 가리킨 자동차에는 열린 문 사이로 가득 실려 있는 나무 상자가 보였습니다. 상자에 적힌 제식명을 보니 1차 연합전쟁 시절 생산된 세열수류탄과 지향성지뢰로군요. 

 

저는 잠시 숨을 돌릴 겸, 머릿속에 어지럽게 떠오르는 정보들을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놈에게서 얻어낸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놈들은 사태 이전부터 주변의 민간인 생존자들을 잡아들여 신도를 늘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 대부분은 ‘개종 작업’ 후 놈들 소유의 시설에서 강제 노역에 동원되고요. 주인님과 일행분들은 현재 개종을 빙자한 세뇌 과정을 거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이놈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시설에는 무장 인원 14명과 더불어 기타 비무장 인원과 납치 피해자 수십 명이 있습니다. 이들의 우두머리로 행세하는 ‘천제’라는 이름의 교주도 있군요.

 

그리고 셋째, 시설의 위치에 관해서는...아까 유미 씨에게 지형 데이터와 놈이 털어놓은 주소지를 대조해보도록 부탁드렸습니다.

 

“그게....아마 맞는 것 같아요. 그 위치에 무허가 건축물 몇 개가 보이거든요.”

 

“감사합니다. 잠시 태블릿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저는 유미 씨의 태블릿을 건네받고 나서, 주변에서 적당한 나뭇가지 하나를 찾아 들었습니다. 저 좆같은 인간 새끼를 계속해서 시선 안에 둘 수 있는 위치를 찾은 저는, 흙바닥 위에 어설프게나마 전술지도를 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군요. 주인님을 만나고 나서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제 더는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더니, 세상 살고 볼 일입니다.

 

어느새 지도가 완성되었습니다. 깔끔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제 역할은 할 겁니다. 바니 언니와 하치코, 유미 씨를 부르려고 고개를 들었더니, 그들 모두가 제가 땅바닥에 끄적이던 기호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불러 모으는 수고는 덜었네요.

 

 

 

 

 

“자, 잘 들어주세요. 현재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놈들의 병력은 총 14명. 아까 제가 사살한 세 명과 저기 있는 새끼를 제외한 숫자입니다. 인원은 이게 전부라고 하니, 외부로부터의 증원은 고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적들의 본부 -저 새끼의 표현으로는 ‘하늘궁’- 앞을 가리켰습니다.

 

“주인님께선 시설 중앙에 자리한 이 건물에 계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새로 납치된 사람들은 노동에 동원되기 전에 우선 저곳에서 세뇌받는다고 하니까요.”

 

저는 이어서 시설의 정문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이 종교시설은 버려진 채석장을 뒤에 끼고 지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출입이 가능한 곳은 이 정문뿐이라는 말인데, 이쪽은 모래주머니로 보강된 경계초소가 양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추가로, 멀지 않은 곳에 납치된 민간인들이 수용된 기숙사가 있는데, 이곳에도 경계 인원이 배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유사시 자리를 벗어나 정문 쪽 초소를 지원하게 될 겁니다.

 

또, 현재 정문 앞 공터에서는 인근에서 약탈한 물자를 하역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수의 인원이 작업에 동원되고 있다는군요. 나머지 인원들은 중앙 쪽 예배당 건물 내부에 있다고 합니다.”

 

브리핑을 계속 이어나가려던 그때, 하치코가 머리를 들이밀고 불쑥 끼어들었습니다.

 

“에엥, 나쁜 아저씨들이 너무 많아요! 우린 넷뿐인데!”

 

“으아아, 셋이에요, 셋! 전 싸울 줄 모르니까 끼워 넣지 말아 주세요! 저한텐 전투모듈 같은 것도 없다구요!”

 

유미 씨는 잔뜩 겁을 먹고서는 손사래를 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돌겠네요. 고작 셋이서 저길 뚫고 들어가야 한다니, 더군다나 하치코 씨와 저는 인간님들을 공격할 수도 없는데 말이죠. 그냥 하치코 씨 미트파이라도 잔뜩 갖다 주면서 서방님 좀 풀어주십사 애원하는 게 더 쉽겠습니다.”

 

“그 문제는 간단합니다. 두 분께서 놈들을 묶어 두시면, 나머지는 제가 처리하면 되니까요.”

 

세 명의 시선이 제게 모인 것을 확인하고, 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우선 방패를 가진 하치코가 선두에 섭니다. 바니 언니는 방패 뒤에 엄폐하신 상태에서 소총탄과 유탄으로 제가 지시하는 방향을 제압해주시면 됩니다.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해 사격한다’고 의식하지 마세요. 그냥 땅바닥에 쏘시는 겁니다. 그렇게만 이해하고 계십시오. 정 어려우시면 표적을 보실 필요도 없습니다. 제 지시에만 따라 주세요.

 

그리고 유미씨, 아까 위성 화면에서 저 시설에 공급되는 전력선을 보셨다고 했죠? 유미 씨께는 전력계통 유지보수 지식도 가지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 유미 씨는 그쪽으로 가셔서 대기하고 계시다가, 제가 신호하면 전력을 차단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어....네,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이번엔 유미 씨가 우물쭈물 운을 띄웠습니다.

 

“정문 쪽 경계가 꽤 삼엄한 것 같은데.....저긴 지나갈 방법이 있으신가요?”

 

....괜한 걱정을 하시네요. 하지만 궁금하실 만도 합니다. 

 

“You don’t have to worry about that.”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구석에서 괴로운 듯 꾸물대고 있던 인간놈에게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I’ve got something up in my sleeve.”

(저한테 생각이 하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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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으로 잔뜩 얼어붙은 상태에서 앉아있기를 잠시, 승합차는 어느새 외딴 구석에 박힌 건물에 도착해 있었다. 유리창을 덮은 가림막 사이사이로 주변 광경을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시설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고, 곳곳에 커다란 돌덩이가 쌓여있는 것이 보인다.

 

[한얼님이 굽어살피는 천제의 성전 - 겨레의 성전 학회]

 

쓸데없이 요란한 간판이 달린 정문 입구. 정문 양쪽에는 무슨 바리케이드 같은 것에 커다란 기관총까지 얹어놓고 있었다. 공사장 노동자들 숙소 같은 컨테이너 시설과 곳곳에 세워져 있는 철조망 벽까지 눈에 들어온다.

 

잠시 후, 승합차가 정지하더니 무장한 사람들이 문을 열고 우릴 끌어내렸다. 야비한 하관을 가진 남자가 자기를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그를 따라가며 고개를 돌려보니, 내 옆에서는 무장한 사람들 대여섯 명 정도가 트럭과 승합차 등에서 물건을 바쁘게 내리는 중이었다. 저 멀리 한구석에서는 총을 든 남자가 여러 사람들을 낡은 공장 건물 같은 곳에 몰아넣고 있었다. 소각장이라도 딸린 것인지, 건물의 굴뚝에서 쉴 새 없이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다.

 

소완은 그 냄새를 맡자 눈에 띄게 동요하며 몸을 떨어댔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잡아주고, 두 팔로 그녀를 감싼 채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노부부와 H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나는 긴장감과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조만간 이비와 바니, 다른 일행들이 우릴 찾으러 올지도 모르니, 그때까진 나라도 정신줄을 붙잡고 있어야지.

 

.....그렇게 다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황량한 절벽과 돌더미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게 화려하게 지어진 예배당 문이 열렸다. 내부는 나름대로 돈을 써서 웅장하게 만드려고 했던 티가 났지만, 이래저래 볼품없기는 매한가지다.

 

예배당의 정면, 꽤나 크게 지어진 연단에서는 스크린 위로 교주로 보이는 양반의 설교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냐, 자식이 부모에게 대드는 것이 잘못된 것이고, 가축이 주인에게 대드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한얼님께 대드는 것도 아주 몹쓸 일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비디오에서 “예에! 맞습니다!” 하는 함성이 울렸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조금 지나치게 자신만만해졌다, 이 말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한얼님이 당신의 모습을 본떠 우리 인간들을 지상에 창조하셨듯이, 우리 자신을 본뜬 피조물들을 우리 곁에 풀어 놓았습니다. 

 

헌데, 이 피조물들이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유혹하는 모습을 하고선, 우리 인간들의 생명을 해치고, 삶을 궁핍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을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이것이 마귀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음탕하고 추악하며,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들을 자기 것처럼 빼앗아 쓰는, 저 마귀들 말이예요! 이게 옳게 된 일입니까, 여러분!”

 

이게 뭔 씨발-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뱉으려던 찰나, 이어진 내용은 더욱 가관이었다. 

 

“결자해지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시작한 사람이 끝을 봐야 한다, 이거예요. 우리가 저 마귀들을 만들었으니, 그놈들을 지구상에서 구제하는 것도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얼님의 뜻이 실로 그러합니다. 마귀들을 항복 받아 그들의 피와 살을 취하여, 그 속에 녹아든 영약을 취함으로써- 우리는 지난날의 죄악을 청산하고, 비로소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영생을 누립시다!”

 

화면 위로 –초점에 어긋나긴 했지만- 여러 사람의 손들이 불쑥 튀어 올랐다. 그들의 손에는 초록, 파랑, 보라색 등 다양한 색의 무언가가 담긴 플라스크가 들려있었다.

 

“오리진더스트....”

 

H가 뇌까린다. 눈은 휘둥그레 뜨고, 입은 힘없이 열린 채 경악한 표정을 하고서.

 

“천제님이 나오십니다.”

 

이어서 야비한 하관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러자 연단 근처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성직자 냄새가 폴폴 나는 로브를 입은 한 노년의 남자가 걸어 나온다.

 

....솔직히 존나 없어보이게 생겼다. 저게 천제(天帝)면 나는 씨바 펙스 회장이겠다. 

 

“아아, 형제자매님들! 성전에 어서 오세요!”

 

그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우리에게 외친다. 

 

“바깥에서 얼마나 고생 많으셨습니까? 이젠 걱정하실 필요가-”

 

반갑다는 듯 뭐라뭐라 주절대며 우리에게 다가오던 그는, 내 품에 안긴 소완을 보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야비한 하관과 그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을 불러 뭐라고 귓속말을 하더니,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어르신들은 우선 좀 휴식을 취하시지요. 저 쪽 방에 편안한 쇼오파가 있습니다. 자, 어서 모셔다 드리세요.”

 

“아니 전 어르신이 아니-”

 

노부부와 함께 끌려가던 H가 항변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교주와 소완, 그리고 나 뿐.

 

“두 분께서는 저와 잠깐 말씀을 좀 나누시죠.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요.”

 

그가 제 딴에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 어색한 미소가 상당히 껄끄러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거부할 권리 같은 것은 없는 듯 보였다.

 

...

...

...

 


꽤 시간이 흘렀다. 교주, 자칭 천제라는 양반은 나와 소완을 훑어보거나, 이런 저런 서류철을 들쳐 보거나 하면서 금세 찻잔을 비웠다. 반면 소완과 나의 찻잔은 이미 식어버린 녹차로 가득 차 있었다. 

 

“저것들...바이오로이드라고 하는 것들 말입니다. 생각보다 유용한 구석이 많아요. 태우기 전에 건질게 많다 이겁니다.”


그가 보라색 액체, 오리진 더스트가 담긴 통을 흔들어 보였다.


“진시황이 찾아다니던 영약이 다른 데 있겠습니까. 이게 불로장생의 비약이지요.”


아....그...그렇습니까. 


나는 어색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한동안 또다시 적막이 이어졌다.


“옆에 계신 분은 여동생이라고 하셨지요?”

 

저 양반, 천제가 오랜 적막을 깨고 질문을 던졌다.

 

“네. 이미 아까 뵀던 분들이 에머슨 테스트인가 뭔가도 하셨습니다. 행색이 이래서 좀 그렇게 보이긴 하겠지만, 제 동생은 사람입니다.”

 

“흠...그러십니까.”

 

그가 읽던 서류 파일을 내려놓고 소완에게 눈길을 돌렸다.

 

“여동생분이 많이 과묵하신 모양입니다.”

 

“애가 겪은 것도 많고, 지금 많이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다들 그렇잖아요. 사방이 재앙인데.”

 

“하하, 맞는 말씀이십니다. 맞고 말고요. 그런데...”

 

그가 웃는 얼굴로 빈 찻잔을 들어올렸다.

 

“제가 아직도 목이 좀 마릅니다 그려. 그래서...”

 

그가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커피 한 잔 타오게.”

 

그와 눈이 마주친 소완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한 구석에 놓인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내려 그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무척이나 우아한 동작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여동생분이 어째 참 고분고분 하십니다.”

 

“애가 호텔에서 바리스타로 일한 경력도 있거든요. 솜씨 보면 아시잖아요.”

 

“하하하, 허이고, 애쓰십니다.”

 

내가 허둥지둥 둘러대자, 그가 탁자 위에 놓인 서류철을 집어 들며 내게 조소를 흘린다.

 

“....뭐라고요?”

 

“그따위 거짓말로 내가 정말 속을 줄 알았습니까?”

 

그가 내 눈앞에 서류철을 바짝 들이댄다. 흑백으로 프린트된 용지에는 여러 바이오로이드들의 사진과 스펙이 적혀 있었고, 제목에는 ‘2099 삼안산업 바이오로이드 카탈로그’ 라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가 가리킨 한 구석에는, 소완의 사진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붕대는 없었지만, 어딜보아도 의심의 여지 없는 소완의 얼굴이었다. 

 

“자네는 내가 바보로 보이는가?”

 

그가 음산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눈에 눈물까지 맺힌 소완은 이빨을 딱딱 부딪혀가며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고, 나는 여차하면 꺼내서 휘두를 심산으로 책상 위에 놓인 커터칼을 흘깃 보고 있었다.

 

그는 이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언성을 놓이기 시작했다.

 

“왜, 저기 저것이 자네 애인이나 마누라라도 되는 줄 아는가? 저건 사람이 아니야. 미물이고, 상품이고, 죄악으로 가득한 오물이지!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 순간, 문 밖에서 엄청난 크기의 폭발음이 울림과 동시에, 방 안의 불빛이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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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청년회 회장님 오십니다.”

 

“믓을 하느라 이렇게 늦으셨다냐?”

 

“아까 전화 들으니까 새 신도들을 여러 명 찾았답니다. 그래서 다들 작업도 팽개치고 모인 거 아닙니까?”

 

저는 수풀 사이로 몸을 낮춘 채, 놈들이 멀리서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잠시 기다리고 있었더니, 그 좆같은 새끼가 몰고 있는 차량이 시설의 정문으로 들어갑니다.

 

차량 주변으로 놈들이 삼삼오오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놈을 협박해 생존자를 여러 명 찾았으니 정문 앞으로 모이라고 전화를 하게 만들었지요. 정말로 먹힌 모양입니다.

 

“이비 언니. 정말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요....?”

 

몸을 바짝 엎드리고 있던 하치코가 제게 속삭였습니다. 

 

“....하치, 할아버지 할머니 다시 보고 싶어?”

 

“네!”

 

“그럼 입 다물고 있어.”

 

그렇게 말해두고, 저는 수풀 사이를 살짝 비집어 다시 놈들의 동향을 살폈습니다.

 

“형님, 싸게싸게 문 좀 열어봐요.”

 

“어, 형님? 왜 그러시오? 어어? 누가 이래 묶어뒀당가!”

 

놈들이 이변을 눈치챈 듯, 짙은 선팅이 되어 있는 창문을 두드리더니, 언성을 높이며 문을 잡아 열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음-음-우우움!!!”

 

“아따, 형님, 쪼매만 기다리쇼잉.”

 

“금방 풀어드리겠습니다! 어떤 새끼들이 이런 개같은 짓을-”

 

 

 

 

 

 

“우으으으으으으으으음!!!!!”

 

놈들이 기어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 씨발새끼의 몸 곳곳에 매달아둔 수류탄과 지향성 지뢰에 연결된 와이어들이 일제히 튕겨나갑니다. 안전핀과 안전손잡이가 공중으로 튀어오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합니다.

 

“이런 ㅆ-”

 

지향성지뢰의 살상거리는 무시할만한 것이 못 됩니다. 몸을 돌려 도망가려던 놈들은 폭발과 함께 흙먼지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붉은 기가 감도는 매캐한 폭연 아래, 바닥에는 흩뿌려진 살점과 혈흔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일체의 조명장치와 외부 CCTV 및 사이렌을 포함, 모든 장비가 일제히 가동을 멈추었습니다. 유미 씨가 타이밍 맞게 전력을 끊어준 모양입니다.

 

“Advance!”

(전진!)

 

제 신호를 따라 우리는 수풀에서 벗어나 완전히 초토화된 정문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치코의 방패를 앞세우고 달리던 와중, 저는 운 좋게 명줄이 붙은 채로 꿈틀대던 놈 하나의 등에 7.62mm 두 발을 박아 주었습니다.

 

Six down, eight to go. 

 

몸을 돌리자 기숙사 옆, 어설프게 지어진 초소 근처에서 뛰어다니는 두 놈이 보입니다. 저는 조정간을 자동으로 돌려 놈들을 주춤거리게 만들어 주며 바니 언니에게 지시했습니다.

 

“Get a 40 mike in there!”

(40mm 유탄 하나 박아넣어요!)

 

눈을 딱 감은 바니 언니는 떨리는 손으로 유탄발사기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초소의 벽에 맞은 유탄은 그대로 기세 좋게 폭발해 파편을 뿜어냈고, 근처에 있던 두 놈은 그대로 걸레짝으로 변해버립니다.

 

양심의 가책이야 어쨌든, 기술적으로 말해서 그녀는 인간을 쏘지 않았습니다. 벽을 향해 쐈을 뿐이죠. 

 

Eight down. Six more.

 

탄알집을 갈아 끼우며 발을 재촉했더니, 어느새 중앙 예배당, 놈들이 ‘하늘궁’이라고 부르는 시설에 가까이 왔습니다. 입구에서는 한놈이 유리문을 잠그더니 그대로 등을 돌려 도망치려 하고 있습니다.

 

“하치코. 문에다 한 발 갈겨.”

 

“하지만-”

 

“Just fucking do it!”

(씨발 그냥 하라고!)

 

하치코가 문을 겨냥하고 발사했습니다. 그녀의 리볼버식 유탄 발사기에서 튀어나간 고폭탄은 유리문 전체를 산산조각냈고, 도망치려던 놈의 등짝에 무수한 유리 파편이 박혀 들어갔습니다.

 

Nine down, Five left.

 

파괴된 문을 지나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생각보다 널찍한 내부에는 수많은 의자들이 가득히 놓여있었고, 전력이 끊겨 불이 나간 실내를 비추는 건 우리의 등 뒤에서 들어오는 햇빛 뿐이었습니다.

 

 

 

 

“저년들 왔다! 갈겨! 갈기라고!”

 

우리를 반기는 놈들의 총알 세례를 하치코가 받아내었습니다. 하치코와 제가 대응 사격을 하며 놈들의 주의를 끈 사이, 바니 언니는 재빨리 옆에 놓인 의자 사이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잘 막으면서 천천히 전진해, 하치. 허공에 총도 좀 쏘면서 우리랑 페이스 맞추고.”

 

하치코의 등을 가볍게 두드린 저는 하치코에게 자동사격을 가하던 인간 하나를 무력화시켰습니다. 

 

Ten down. Four remaining.

 

“바니, 전방에 제압사격!”

 

저의 외침에 바니 언니는 눈을 꼭 감고, 두 팔만 내민 채로 텅 빈 무대 쪽을 향해 소총을 발사했습니다. 아무도 맞출 수 없었지만, 놈들을 잔뜩 움츠리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저는 그 틈을 노려 바니 언니와 합류했습니다.

 

 

 

 

 

“Reload and get ready keep ‘em pinned, Vanny!”

(재장전 하시고 제압할 준비 하세요, 바니!)

 

저는 정조준을 유지한 상태로 몸을 살짝 내밀어 표적을 골랐습니다. 갑작스레 이어진 여러 차례의 폭발과 눈먼 총알 세례에 패닉이라도 일으킨 건지, 놈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나마 정신이 있어보이는 놈들조차, 아무데나 유탄을 갈겨대며 주의를 끌고 있는 하치코의 방패에 탄약을 낭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기회를 살려 표적지시기 및 스캐너로 전방 표적을 획득한 저는, 재빨리 전술 바이저를 얼굴로 내렸습니다. 

 

 

 

 

 

홀로그램 조준경과 연동된 표적지시기가 적들의 위치를 추적해 사각형으로 하이라이트 해 주고 있습니다. 지향사격 자세로 재빨리 총구 방향을 전환하며, 저는 제 앞에 있던 세 놈의 머리에 두어 발 씩을 꽂아주었습니다.

 

바이로이드용 특수탄이 군용 헬멧 따위를 그대로 관통하며 놈들의 머리를 터뜨립니다.

 

Thirteen down, one to go.

 

“히-히이이익! 천제님! 천제니이이임!”

 

가장 멀리 있던 한 놈이 무기를 내팽개치고 달려갑니다.

 

“바니 언니, 저 새끼 방향으로 갈겨요!”

 

이미 재장전을 끝낸 바니 언니. 그녀가 녀석이 달려가던 방향으로 조준도 하지 않은 자동사격을 긁어대자, 놈은 팔로 머리를 감싸며 제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지.

 

Hostile neutralized. Area clear.

 

 

저는 바이저를 다시 올리고, 긴장으로 좁아진 시야를 풀어줄 겸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실내의 모든 적들은 생명 징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태여 확인사살할 필요는 없어보이네요. 거기에 다행히 교전에 휘말린 민간인도 없어 보였습니다. 언니와 다른 자매들이 죄책감 때문에 울고불고 할 일은 좀 줄겠군요.

 

인간 지뢰가 되어 산화한 그 놈의 말에 따르면, 신입들은 강당 오른쪽 문으로 출입하는 지하 대기실에 수용된다고 했습니다. 주인님도 그곳에 계시곘죠.

 

그곳으로 향하려던 순간, 왼쪽의 문이 열리더니 웬 노인 하나가 주인님을 앞세우고 걸어 나왔습니다. 주인님의 몸으로 자신을 가린 그는, 한 손에 쥔 45구경 권총으로 주인님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습니다. 

 

“이 쒸발것들아! 총 버려! 안 버리면 이 새끼는 뒈지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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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아까의 폭발과 정전은 이비가 일으킨 것이었던 모양이다. 뭐, 이비를 다시 보게 된 건 좋은데 말이지.

 

....이거 상황이 참 뭐하게 되어 버렸다.

 

이 천제라는 할배, 폭발과 총성이 들려오자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서는 나한테 겨누더라고. 내가 뭐 어떡하겠나. 그렇게 꼼짝없이 손만 들고 있다가, 총성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니까 그대로 붙들려서는....보다시피 이런 신세가 됐지.

 

“너나 총 버려, 개새끼야!”

 

이비가 노기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이 할배도 지지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 안 버리면 너네 주인은 뒈진다! 거짓말같냐?”

 

새끼가 총으로 내 머리를 툭툭 밀어댔다. 기분도 존나게 나쁘지만 쇳덩이가 머리를 자꾸 밀어대니까 살짝 아프기도 하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소완이 나를 조심스레 건드렸다. 눈알을 돌려 그녀를 곁눈질로 바라보니, 그녀가 용케 앞치마에 숨겼던 커터칼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소완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어엇? 저건 또 언제 챙겼대.

 

나도 사이비 교주 할배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총 버리고 뒤로 가라! 진짜로 쏴버릴-”

 

그러자 몸을 낮춘 소완이 놈의 다리에 그대로 커터칼을 콱 박아버렸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악!!!!!”

 

놈이 입을 크게 벌리고 기차화통이라도 삶아먹은 듯 비명을 내지른다. 

 

 

 

 

 

할배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내 머리에서 권총을 떼어내자, 나는 잽싸게 몸을 숙여 놈에게서 벗어났다.

 

이비는 그대로 그놈의 가슴에 “타타탕” 하고 총알구멍을 내주었고. 놈은 권총을 쥐고 입을 벌린 모습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새끼 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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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과 그림솜씨가 딸리는 것을 절절히 느끼고 있습니다 ㅠ

하지만 여러분의 댓글과 개추 덕분에 어떻게든 연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