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납작아! 뭐하냐?!"


조용한 도서실의 정적을 깨는 한마디. 그 한마디에 내 안에 있는 무언가도 같이 깨질 뻔 했지만 맞는 말이었으니 그냥 참기로했다. 

읽고있던 책을 '팡'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닫고, 날 부른 누군가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지금 내 앞에는 붉은색의 긴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초등학생...아아니 유치원생보다 작은 키를 가졌음에도 가슴은 어째서인지 폭탄덩어리인 내 오랜 절친이자 같은 반 클레스메이트인 메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내 앞자리에 앉았다.


"뭐..책 읽고있었지."


그녀는 그래?하고 대답하고는 내게 작은 증명사진을 건넸다. 사진 속에는 나와 메이보다 동갑이거나 1-2살 쯤 어리거나 많이보이는 남성의 얼굴이 담겨져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 표정을 메이는 등에 의자를 기대고 기지개를 키며 입을 열었다.


"잘생겼지? 저기 오르카 고등학교에 다니는 철충남이래."


오르카 고등학교..들어본 적있는 학교였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 비하면 조금은 평범한 고등학교라고 들었다.

학교는 둘째치고 난 그 남자의 이름에 귀를 의심했다.


"철충남..? 진짜 이름이야? 별명 아냐..?"


신기한 이름이었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철충남이란 말인가?

내 대답에 메이는 '푸하하'하고 도서실이 떠나라 크게 웃어댔다. 그렇게 얼마나 웃엇을까 어느새 그녀의 눈물에서 흐르고있는 눈물을 닦으며 내게 말했다.


"당연히 별명이지... 다들 걔를 부를 때 그렇게 부른대. 너도 그 드라마 봐?' 마지막 출발지' 말이야."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드라마에 이름은 들어본 적은 있어도 보지는 않았다. 내 취향이 아니였을 뿐더러 나와 TV는 멀고 먼 사이였다.

메이는 아..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어떻게 설명을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하던 말이나 계속하라고 말했다. 그녀는 헛기침을 한두번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거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랑 닮아서 그렇게 부른대."


"그렇구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교복의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날이 조금 후덥지근 했던 탓에 교복이 조금 덥게 느껴졌다.

가슴도 없는데 더위를 느끼다니..신은 아무래도 죽은 것이 분명했다. 메이는 두 폭탄덩어리를 책상 위에 올리며 나를 흘겨보았다.

이런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땀 한방울 하나 안 흘리다니..신은 아무래도 죽은게 확실했다.


"나앤. 나 부탁하나만 들어주라."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보나마나 쓸데없는 부탁일 것 같아서 무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는 집요했다. '나애애앤~'하면서 계속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처음엔 참을만 했지만 나중에 가면갈수록 오늘 먹은 점심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어지러움에 내 불편함은 극에 달했다. 


"아! 알았어! 뭔데! 말해봐!"


"역시 나앤 밖에 없어!"


도서실의 사서 선생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우리는 그 분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본론에 들어가기로했다. 그녀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두 폭탄덩어리를 내 어깨에 들이대고있었다. 신은 죽었다.


"얘한테 편지 좀 써주라."


조금 황당한 부탁이었다. 스마트폰이 발달한 이 시대에 편지라니. 황당하다 못 해 헛웃음이 나올지경이었다.

내 표정을 본 메이는 자신도 어이없다는 투로 내게 하소연을 했다.


"너도 알잖아. 우리 아빠 조금 고지식한 면이 없잖아 있는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두번 끄덕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군인 출신에다가 높으신 분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메이를 엄하게 대했다. 나도 그를 몇번이나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고지식한 면이 없잖아있기는 했다.


"이번에 그 철충남 쪽 어른들이랑 무슨 어쩌고뭐시기해가지고 나랑 걔랑 결혼시킬 생각이던데..미친거 아니야?!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다시 사서 선생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그 분을 향해 다시 고개 숙여 사과하고 메이의 말을 곱씹어서 생각했다. 

저게 말로만 듣던 '정략결혼'이라는건가.  가장이나 친권자가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키는 결혼. 책이나 어디 영화에서 볼 법한 상황에 나는 소리없이 혀를 찼다. 메이는 책상에 푹 엎드린채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이번에 아빠가 걔한테 편지를 써보라던데..난 전혀 쓸 생각 없거든? 애초에 글도 못 쓰고.."


퍼즐이 점점 맞춰져가는 기분이었다. 손가락으로 나 자신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편지를 대필해달라?"


"역시 나앤이야! 똑똑하구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럴 때만 칭찬일색이었다. 그녀의 태도에 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 푹푹찌는 기분에 눈을 지그시 감고 셔츠의 소매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싫어."


"에..?! 왜?!"


눈을 감았는데도 그녀의 표정이 바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축 늘어진 어깨, 눈가에 그렁그렁한 눈물. 그리고 빨개진 얼굴. 그녀가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 했을 때 자주 짓는 표정이었다. 난 그녀가 그 표정을 지었을거라는 것에 확신을 하며 눈을 천천히 떴다.


"나앤...왜...? 역시..난..."


역시. 내가 말한 그대로 표정을 짓고있었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것이지만 정말이지 사람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번에는 거절해야지. 거절하란말이야. 라고 되뇌여봐도. 그녀의 표정이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고있었다. 이번에도 그녀의 승리였다.


"알았어! 써주면 될거아냐!"


"야호! 역시 나앤 너 밖에 없어!"


"큭..."


아까 그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한껏 신난 표정을 지은 메이의 모습에 수명이 확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뭐라고 쓰면 돼?"


메이는 부드럽고 살짝씩 분홍빛이 감도는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눈을 굴렸다.


"음...그냥 잘 지내는지. 언젠간 한번 만나고싶다 정도? 나머지는 니 상상대로 적어줘."


"이봐요. 아저씨. 상세하게 주문을 해야지. 난 대필가지. 소설가는 아니거든?"


"이번에 소설가로 데뷔하면 되겠네. 그럼!"


"야! 아오..."


화를 내고싶었지만 날도 후덥지근했고, 도서실의 블랙 리스트가 되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그냥 참기로했다.

이제 제 할일을 마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흔들며 도서실을 나왔다.


"나중에 크게 한턱 쏠게! 그럼 난 이만 간다!"


다시 도서실에 혼자 남은 나는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철충남의 사진을 바라보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난 아무래도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할거 같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저녁을 대충 먹고 대충 씼은 다음 책상 위에 앉아 아까 하교할 때 산 편지지를 꺼냈다.

그리고 서랍에서 아버지께서 생일에 선물해주신 만년필을 꺼냈다. 고풍스러운 케이스 안에 잘 보관되어있었던 만년필을 어루만지며 잉크를 채워넣었다. 검고 묽은 잉크가 만녈핀의 컨버터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펜촉에 묻은 잉크를 휴지로 정성들여 닦은 다음 편지지에 펜촉을 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주문한대로 편지의 내용을 써내려갔다.


아침에 창문을 열었을 때 덥지만 생량한 바람이 여름을 예고하고있습니다. 그 바람을 편지지에 실어 당신에게 보냅니다.


잘 지내고계신가요? 저희 아버지로부터 당신의 사진을 받은 뒤로 저는 다른사람이 된 것만 같습니다. 위에서부터 흐르는 물을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자연의 섭리대로 흘러가게해야하는 법이지요. 우리 부모님과 당신의 부모님의 유착관계가 이렇게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처음엔 어이가 없고 화가 났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께 받은 당신의 사진을 볼 때마다 저의 마음 속에 있는 자석이 당신에게 점점 끌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언젠간. 당신을 한번 직접 만나보고싶습니다. 차나 커피라도 마시면서 앞으로의 일들을 의논하고 싶습니다.


편지지 뒷편에 제 연락처를 적어놓을테니 마음이 내키신다면 언제든 연락 해주세요. 연락을 하지않아도 저는 괜찮습니다. 

당신의 의견을 존중할테니깐요. 그럼 그 때까지 아무 탈없이 지내시길..


요즘 시대와는 조금 안 맞는 감이 없잖아있었지만 난 신경쓰지않기로했다. 어차피 이 편지는 메이가 보내는 것이었다.

잉크가 편지지에 완전히 스며들 때까지 내가 쓴 편지를 여러번 읽어보았다. 볼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속이 울렁거렸지만 신경쓰지않기로 했다. 글씨가 이쁘게 나왔으니깐 난 이걸로 만족하기로했다.


편지지를 4번정도 접은 다음 편지봉투에 넣고, 풀로 대충 붙인 다음 우표를 붙이고, 철충남의 집주소를 적었다. 

그는 생각보다 멀지않은 곳에 살고있었다. 편지지에 적혀있는 그의 집주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책상 위에서 2분 정도를 허비하고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집을 나와 근처에 있는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아마 이틀 뒤면 그에게 전달될 것이다. 후련함을 느낀 나는 손을 신나게 털어대며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시선이 우체통에 향해져있는 것이 아닌가? 그럴리가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뛰었지만 내 시선은 우체통에 있었다. 괜히 나까지 메이처럼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두 손으로 뺨을 톡톡치대고 집을 향해 뛰어갔다.


"어머. 나앤. 과자먹을건데 같이..."


"안 먹어..그리고 이 밤에 먹으면 살찐다. 저번에 또 쪘더만."


"야!!!"


언니의 호의를 가볍게 무시하고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벌렁 누웠다. 

머릿속에는 온통 아까 쓴 편지의 내용들로 가득 찼다. 혹시 편지를 읽고 나를 비웃는 것이 아닌가?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등등..온통 편지와 그의 생각으로 터질것만 같았다. 


"으으윽...!"


괜시리 덮고있는 이불을 발로 걷어찼다. 하지만 이불을 걷어차면 걷어찰수록 내 몸만 피곤할 뿐 내가 얻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괜한 짓을 했다는 것에 자기혐오를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잠이나 자자..."


그냥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난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납작아! 납작아!"


그에게 편지를 보내고 몇일이 지났다. 오늘도 도서실에 정적을 깨며 메이가 날 불렀다.

그녀의 손에는 편지봉투가 들려져있었다. 양손을 두 무릎에 대고 숨을 헐떡이며 내게 편지봉투를 건넸다.


"답장이 왔어..걔한테서말이야..."


"그래? 잘됐네."


읽고있던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내 태도에 메이는 내 얼굴에 그 편지봉투를 집어던졌다.


"니가 읽어봐. 난 안 읽어."


"아니..니가 보낸거잖아.."


"내가 보냈냐?! 니가 보냈잖...."


사서 선생님의 시선을 느낀 메이는 그 분께 사과의 인사를 건네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냥 니가 확인하고 나한테 말해줘. 나 이런거 싫어하는거 않잖아.."


"하아...알았어.."


편지봉투의 포장을 찢고 그 안에 있는 편지지를 꺼냈다. 노란색과 주황색이 섞인 강렬한 색감을 가진 편지지였다.

내가 그에게 보냈던 것처럼 4번으로 접혀져있는 편지지를 천천히 펼쳐보았다. 잉크가 살짝 흐릿한 것으로 보아 볼펜으로 쓴 거 같았다. 나는 숨을 천천히 고르고, 그 안에 적혀있는 내용들을 읽어보았다.


편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요즘 더운 바람이 부는 것을 보아 여름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도 사실 아버지께 당신의 사진을 보았을 때 조금은 말괄량이에 사고뭉치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착각이었습니다.


당신의 글씨체와 말에서 요즘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편지를 받고나서 저는 그 편지를 계속 되풀이해서 읽어보았습니다. 휴대폰 문자에서 느껴지지않는 따뜻함과 포근함이 제 마음속의 자석이 당신에게로 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언제 한번 만나자고하셨죠? 내일 오르카 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나죠. (커피숍이 하나 뿐이라 찾기가 쉬울겁니다.)

당신이 있는 학교와 제가 있는 학교는 그리 멀지않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시간은 학교가 끝나는 4시 30분 쯤에 만나기로해요.


그럼 그 때까지. 아무 탈 없이 지내길...


"어쩔거야?"


메이가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뭐? 너 말대로 한 것 밖에 없는데."


"만나자고하잖아! 이제 어쩔거야!"


"니가 그러라고했잖아..."


"그냥 대충 둘러대지! 뭐라고 썼길래 쟤가 저런 답장을 보낸거냐고!"


"니가 그렇게하라고..."


"난 몰라! 이제 어쩔거야!"


"그냥 약속장소에 가면 되는거 아냐..? 여기서 먼 것도 아니잖아.."


"너도 같이가!"


"하?"


"너가 쓴 편지니깐 너도 어느정도 책임이 있다는거지!"


"아니. 그게 무슨 억지..."


"아무튼, 오늘 학교 끝나고 같이 가는거다. 알았지!? 약속이야!"


메이는 내게 손을 흔들며 도서실을 나갔다. 내 불편함이 극에 달하다 못 해 화산처럼 처질 것만 같았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에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감각에 나는 심장이 있는 쪽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프진 않았다. 다만 몸이 붕 뜨고 다리가 떨렸으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조금 무리를 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도서실을 나와 보건실에서 조금 누워있기로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와의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심장은 아까보다 더 심하게 요동쳤다. 가슴을 어루만지며 진정해보려했지만 진정될리가 없었다.


이런 감정...처음이다..




"야, 납작아. 나 어때?"


내 옆에 앉아있는 메이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들이면서 나를 불렀다. 나는 무심하게 이뻐.라고 대답하고 커피를 마셨다.

그녀는 그게 뭐야. 하고 맞받아치고는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코코아를 마셨다. 그와 약속한 시간이 어느덧 1분 남짓 남았다. 나와 메이는 커피숍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의 숫자를 세면서 그를 기다렸다. 


그렇게 사람의 숫자가 세자리 수를 넘어갈 때 쯤에 누군가가 우리들의 앞에 다가왔다.


"저기...혹시...메이...."


메이가 보여줬던 사진의 그 남성이었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모두가 철남충이라고 부르던 남자.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실물이 더 멋졌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아까 보건실에서 느꼈던 감정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나야. 저기 앉아있어."


메이는 무심하게 대답해주고는 턱짓으로 그가 앉을 자리를 가리켰다.

그는 감사합니다.하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그리고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옆에 있는 메이를 다시 쳐다보았다. 아마 내가 누군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아. 얘는 내 친구. 납작...나앤이야."


"안녕하세요."


"아...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가 끝나고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는 무어라 말을 꺼내고싶었지만 그 때 마다 메이가 그의 정강이를 발로 차거나 크게 하품을 하는 등의 무례한 행동을 보였다. 그런 그녀의 무례한 행동에도 그는 입꼬리를 계속 올리고있었다. 나도 무어라 말을 꺼내고싶었지만 너무 어색한 공기에 입이 열어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서로 시킨 음료가 바닥을 보일 때 쯤 메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토해낼 것 같은 먹구름처럼 우중충하기 짝이 없었다.


"야..납작아...나 화장실 좀..."


"뭐? 나보고 어쩌라고..!"


"몰라..! 니가 알아서 하고있어봐..!"


"야..! 야...!"


그렇게 현장을 떠난 메이를 원망하며 그녀의 뒷모습을 째려보고있을 때 쯤이었다.


"저기..."


"네..?!"


이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던 그가 나를 불렀다. 그의 부름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며 두손을 모으고 공수자세를 취했다.

내 행동에 그는 조금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헤실헤실 웃어댔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웃는 표정은 어딘가 얼빠져보였다.


"왜 웃는거죠..?"


머리를 긁적이며 그에게 물었다. 내 질문에 그는 웃는 것을 그만두고 진지하게 내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그게..친구 분이랑 너무 달라서요.."


"하하..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저 분이 그런 편지를 썼다는게 안 믿겨지네요.."


"하...하하..그그...그렇죠.."


말이 떨렸다. 역시 사람은 죄짓고는 못 사는 존재였다. 

도둑이 제발을 저리는 것마냥 내 발이 저리기 시작했다. 커피라도 마시며 진정해보려했지만 커피는 바닥을 보인지 오래였다.


"저기..."


"네..?"


그렇게 무겁고도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와중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헤실헤실 웃는 얼빠진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 두눈을 바라보고있었다. 그의 표정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을 느끼며 그의 두눈을 바라보았다.


"편지.. 설마 당신이 대신 써준거에요?"


"아."


짧은 탄식이 나왔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무언가가 깨지는 기분이었다.

이 상황을 한 단어로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었다.


엿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필을 해주는게 아니였는데..




그냥 뭔가 떠올라서 그냥 끄적여봤습니다. 

여튼 재미에 감동도 없는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때까지 쓴 글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