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그래서 있죠 저 혼자 이 위험천만한 미국에 외근나가느라 무지무지 외롭고 힘들었는데 임무 막바지긴 해도 부사령관님이 여기까지 직접 마중나와 주셨다니 저 진짜 감동했던거 있죠!? 이 시대의 의리남! 그렇게 생각했죠! 근데 이유가 뭐랬는지 알아요!? 글쎄, 저 혼자에게 일 맡기기엔 영 못미덥다고 하는 거에요! 제가 그 말 듣고 얼마나 배신감 느꼈는지 상상도 못할거에요! 여태까지 잘 해왔는데 막판에 와서 뭐가 불만인거래요 대체? 아니 물론 그렇다고 절 너무 믿어서 앞으로도 혼자 일 시켜달란 말은 아니지만! 어떻게 사람 마음을 이렇게 들었다놨다 하는 거래요? 이것도 재주에요 재주! 이 시대의 밀당남! 흥!"


"저 분 뭐랄까, 굉장히... 기운 넘치시네요... 평소에도 저런 텐션이에요?"


"나도 직접 만난 지 하루도 안되서 장담은 못하는데 아마 그럴걸."


벤쿠버 국제 공항으로부터 멀지않은 곳에 있는 숲 속. 원래대로라면 오렌지에이드와 펙스 유미가 한참 대화하고 있을 장면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인간 한명이 그 사이에 끼어있다. 바로 두번째 인간이자 오르카호 부사령관인 내가 말이다.

프로젝트 오르카에 이어 흑자젤, 장화 이벤트도 무사히 지나온 뒤 9지역 시점에 들어섰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위해 이렇게 현장에 나와있는 상태다.


"오메가한테 들키지 않고 미국 전산망을 해킹해서 스카이나이츠 아이돌 공연 영상을 퍼뜨린 것도 모두 다 저, 오렌지에이드의 뛰어난 실력 덕분이라고요, 엣헴! 물론 알파님도 종종 원격으로 도와주시긴 했지만요. 아무튼 덕분에 펙스 난민들도 본격적으로 저희와 합류하려고 했고, 여기있는 유미씨의 도움덕에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펙스 난민분들을 모을 수 있었죠! 이제 난민들의 마지막 그룹도 도착했으니 다들 출발하죠! 벤쿠버 공항에서 수송기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분들과 함께 거기 타서 저희도 빠져나가면 되겠네요!"


"...빠른 배경설명 고맙다."


"부사령관, 시간 아까우니까 그만 꾸물거리고 이동하죠."


호위역으로 따라온 리리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사령관이 나 호위하라고 붙여주긴 했어도 주인은 변치 않으니까 빨리 끝내고 사령관한테 돌아가고 싶다는 거겠지. 오렌지에이드와 유미는 후열을 지키겠다고 했기에 나와 리리스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난민 대열의 맨 앞으로 갔다. 숲의 출구가 보일 즈음에 전열에서 난민들을 이끌고 있는 리디아와 합류할 수 있었다.


"늦지 않았네 형님. 이제 곧 공항이 보일거야."


지금쯤이면 둠 브링어와 아머드 메이든이 공항을 확보해놨을거다. 나와 리디아, 리리스는 난민 대열의 맨 앞에 서서 걸었다. 숲을 벗어나고, 도로를 지나 텅 빈 벤쿠버 공항을 향해 계속 걸었다.

예상했던대로, 공항은 텅 비어있었다. 근처에 철충이나 펙스의 병력같은 건 안보인다.


"잠깐, 전원 정지... 뭐야 이거...?"


반면 예상하지 못했던 점은-


"수송기 어디있어!?"


-공항이 진짜로 텅 비어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와중에 상황은 내가 한가하게 당황하고 있도록 허락해주지 않았다.


"형님, 숙여! 포격이다!"


당황하던 중 리디아의 외침에 고개를 드니 하늘 멀리서 인터셉터 몇 대가 이쪽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지상에는 멀리서 우리 편이 아닌 게 분명한 AGS 군대가 이쪽으로 진군하는 것 또한 볼 수 있었다. 바로 레모네이드 제타의 병력이다.


시벌 하여간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니까...



*



(24시간 전, 오르카호)


내가 라오 세계에 전이하기 전 평범한 라붕이었을 시절, 마지막으로 깬 게 9지역이었다. 즉, 여기까지의 라오 원작 줄거리는 다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저번에 스카이나이츠 아이돌 영상을 선전전에 써먹자고 한 것도 그렇고, 무슨 내용이 일어날 지 아니까 회의할 때마다 은근슬쩍 힌트 던져주는 식으로 전개가 수월해지도록 도와줬다.


근데 그게 말이지, 내가 회의때 좀 많이 나댔나보다. 무슨 말이냐면 사령관과 지휘관들의 날 보는 눈빛이 점점 기대감으로 부풀어오르는 것 같다. 대놓고 스포일러 하진 않아서 날 미래를 꿰뚫어보는 예언자 그런걸로 보진 않지만 대신 나를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망할. 나한테 그리 거창한 기대하지 말라고.

당분간 눈에 띄지 않게 입다물고 있어야지 했는데 어느덧 9지역이 시작됐다. 


머릿속으로 원작의 9지역 줄거리를 정리해봤다. 블랙 리버 부대들과 오렌지에이드가 미국의 펙스 난민들을 데리고 오는 대작전. 레모네이드 감마가 난입한다는 변수가 생기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작전 성공으로 끝난다.

아니, 완벽한 성공은 아니다. 감마는 용이 커버가능한 페이크 변수고, 진짜 변수는 바로 레모네이드 제타였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채 제타의 군대가 난민 대열에 폭격을 가하고,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생겨 펙스 유미가 멘붕할 뻔한걸 오렌지에이드가 겨우 수습했지.

막바지에 철충 사이에서 내전이 일어나 우리한테까지 영향을 끼치긴 하는데 난민 구조 다 끝난뒤에 일어난 일이니 그건 신경쓸 부분이 아니다.


요점은, 난 그 모든 사실을 알고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타의 군대가 난입할 예정이니 대비하라'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걸 어떻게 알고있냐고 하면 답할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뭔가 해야만 한다,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수많은 난민들이 무방비한 상태로 제타의 폭격에 목숨을 잃겠지. 그 사실을 아는데도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나라는 두번째 인간이 이 라오 세계에 끼어듦으로서 정해진 스토리를 바꿀 수 있다는 건 이미 증명되었다.

어차피 내가 아는 내용은 9지역이 끝이니 밑천 바닥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나서야지.



*



"...따라서 이번 작전은 둠 브링어, 아머드 메이든, 호라이즌, 앵거 오브 호드가 나서게 될 거야. 이견 있어?"


"없습니다."


"문제없어 보이는군."


"맡겨만 둬."


출전을 앞둔 지휘관 회의, 오르카호가 캐나다 서해안에 도착하고 작전이 시작되기까지 하루도 안남았다. 마지막으로 작전을 가다듬고, 모든 지휘관들이 OK 사인을 보냈다. 그러나 부사령관은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도 있는건지 표정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부사령관, 네 생각은 어때?"


사령관은 직접 부사령관의 의견을 물어봤다. 부사령관은 그동안 프로젝트 오르카 때는 물론이고 코헤이 가고시마 지부에 갔을 때도, 장화를 제압할 때도 직접 나서진 않았지만 조금씩 조언을 줬었고, 그의 조언은 대체로 들어맞았다. 그런 부사령관이 저리 안절부절 하고있다는 건, 어쩌면 자신과 지휘관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맹점이 있다는 걸지도 모른다.


"...난민들이 무방비한 상태로 남겨지는 게 마음에 걸려서 그래. 저대로 적과 마주쳤다간 속수무책이잖아."


"방금 말한 작전 못들었어? 우리 부대가 사전에 공항 일대의 펙스 병력을 전멸시킬테니 난민들이 적과 마주칠 일은 없을거야. 아님 뭐야, 지금 둠 브링어를 못믿겠다고 말하는 거야?"


"물론 확인된 적은 확실히 잿더미로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미처 확인하지 못한 적이 있다면? 그런 변수를 고려해야 하잖나."


"정찰부대와 오렌지에이드가 발견하지 못한 적이 있을거란 뜻이오?"


"걔들이 확인한 건 근처의 철충과 오메가의 병력 뿐이잖아. 다른 레모네이드 시리즈가 난입한다는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지."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오메가의 통신망을 마비시킬테니 다른 레모네이드한테 지원을 요청하긴 커녕 우리가 왔다는 걸 알아채지도 못할텐데 굳이?"


"부사령관 각하. 설령 그렇다한들 난민들은 가능한 한 은밀히 움직여야 하는데 군대를 호위로 붙이면 너무 눈에 띕니다, 오히려 표적이 될 수도 있죠. 현장에 나가있는 오렌지에이드가 잘 이끌겁니다."


"미안하지만 걔만 믿고 맡기기엔 불안해서 말이지."


작전대로 가자는 지휘관들과, 계속해서 난민 호위를 위한 추가병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부사령관. 

모든 게 계획대로 된다면 난민들이 위험할 일은 없지만 부사령관이 말한대로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변수에 대비한다 쳐도 수많은 난민들과 같이 조용히 움직이면서 동시에 호위를 해낼 수 있는 부대는 한정돼있다.


"다들 진정해봐. 부사령관,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어? 컴패니언을 보낼까?"


"걔들은 너 지키느라 바쁠 예정이잖아."


"그럼 누가..."


"내가 가야지 뭐."


부사령관의 말이 끝나자 잠깐동안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부사령관 각하, 그게 무슨..."


"야, 너 제정신이야?" 


"네가 직접 현장에 나가겠다고? 어째서? 넌 부사령관이잖아?"


"누군가는 해야할 일인데 마땅한 애들이 없잖아. 내가 낸 의견이니까 내가 가야지 어쩌겠어."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계획대로 되면 위험할 일 없다며?"


"그럼 유사시엔 어떻게 난민들을 지키겠다는 거야?"


"리디아랑 트레저 데려갈테니 걱정마. 난 걔들 지휘할 필요가 있어서 나가는거고. 거기다, 살아있는 인간이 눈앞에 있으면 난민들 이끌기도 더 수월하지 않겠어? 내가 전에 해봐서 알아."


"하지만..."


"겸사겸사 옛 친구도 만나고 싶고."


"...? 친구라니, 누구?"


"오렌지에이드가 말한 내부 협력자가 누군지 짐작가는 애가 있거든."


그리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보게될 지 모르기도 하고 말이지.



*



"그래서 형님이 직접 최전선에 나가겠다고 했다고!? 제정신이야?"


리디아, 히루메, 애니, 그리고 통신기 너머의 트레저까지 다 모아서 회의 내용을 들려주자 리디아가 버럭 소리쳤다.


"최전선은 아니지, 블랙 리버 애들이 길 닦아줄 테니까. 난 오렌지에이드랑 만나서 유미하고 난민들 챙겨오기만 하면 돼."


"근데 형님이 이렇게까지 나선다는 건, 난민들이 공격받을거란 확신이 있어서임까?"


"...왠지 예감이 안좋아서 그래. 리디아와 트레저는 나랑 같이 간다. 히루메, 애니 너흰 예비대다. 일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서 여기 남아있어."


내가 참가하는 목적은 제타의 기습에 난민들이 희생하는 걸 막는 것. 그러기 위해선 남들을 지킬 수 있도록 방어력에 치중해야 한다.

트레저의 셀주크 몸은 더 튼튼한 장갑판으로 강화하고, 리디아에겐 노움이 쓰는 발포 콘크리트 수류탄을 잔뜩 챙겨두라고 했다.

그렇게 해도 나 빼고 둘, 그 많은 난민들을 지키기엔 부족하다. 전력증강이 필요하다.


내가 오메가 밑에서 데리고나온 펙스 바이오로이드 중에서 차출해갈까? 아니, 그 중에는 포탄을 막아낼 정도의 방어력을 지닌 애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군용 바이오로이드는 블랙 리버가 전담했으니까.

아무래도 새로 하나 제조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사령관네 애들이 내 명령권 밑에 있는 바이오로이드가 늘어나는 걸 꺼려할까봐 한번도 내 손으로 제조 돌린 적은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먼저 사령관한테 가서 딱 한번만 제조해도 되냐고 허락 받아야지, 안되면 땡깡 부려서라도 허락 받고.

목표는 중장형 보호기다.



*



내가 옛날에 라오에 입문한 계기 중 하나가 기간테스였다. 찌찌 큰 여캐들 외에도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중갑 떡대 로봇이 있다니 이걸 어떻게 참냐. 그래서 이 참에 나도 기간테스 하나 얻고 싶었다. 난민들을 효율적으로 지키기 위해 내 명령권 밑에 둘 중장 보호기가 필요하단 명목이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기간테스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었지. 멋있잖아.


문제는 사령관한테 제조 허락을 받긴 했는데 전쟁 준비하느라 자원이 부족해져서 S급 이상은 안된다고 했다. S급 AGS인 기간테스는 못얻는다는 뜻이다. 

슈벌 지는 안드바리한테 등짝 스매싱 맞는 한이 있어도 맘대로 제조 돌리면서... 아니다 내가 두번째 인간인게 죄지. 죄많은 인생 죄많은 인생


그렇게 해서 차선책으로 제일 보호 면적이 넓은 녀석을 고르게 됐다.


"CT-103 포트리스, 합류합니다."


"음, 만나서 반가워. 이번 작전에선 네 아군 보호 능력에 기대하고 있어."


"제가 지켜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펙스에서 우리 쪽으로 도망치고있는 난민들이다."


"무엇으로부터 지켜야 합니까?"


"혹시 모를 위협으로부터... 너무 추상적인가?"


"문제 없습니다. 언제든지 출격 가능합니다."


이로서 트레저, 리디아, 포트리스, 그리고 나까지 총 4명 모였지만... 아직 살짝 부족한 느낌이다..


"부사령관, 출전 준비는 끝났습니까?"


이대로 괜찮나 고민하고있던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건 블랙 리리스였다. 더이상 예전처럼 날 죽이거나 추방하려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하치코처럼 친하다고 부를 수는 없는 사이였다. 그런 사령관 직속 경호실장인 그녀가 무슨 볼일이 있어서 사령관도 없이 혼자 날 찾아온 거지?


"나야 몸만 가면 되니까 준비할 것도 없지. 왜?"


"이번 임무에서 당신 호위를 맡게 되었거든요. 저도 같이 갑니다."


"...방금 내가 잘못 들은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요. 주인님만의 리리스가, 주인님의 명령을 받아서, 당신 호위를 하게 됐다고요. 솔직히 저도 달갑지 않지만 주인님 명령이니까 하는 거에요, 안심하고 갈 준비나 하세요."


"니가 제일 불안해요 이 씨밤바야."


"주인님한테 가서 명령 취소해달라고 하기 전에 닥치세요."


뭐 어찌됐든 간에 사령관이 이렇게 최강경호원 붙여주는 거 보면 걱정되긴 했나보다. 딴마음 품고 있지 않다면야 든든한 전력이긴 하지. 그렇게 리리스까지 포함해서 총 5명이 출전하게 됐다. 


하필 작전개시 직전에 레모네이드 감마가 사령관을 깜짝 방문한 덕분에 리리스가 게거품 물고 사령관 옆을 지켜야한다고 날뛰었지만 리리스를 제외한 컴패니언 전원+히루메를 제외한 배틀 메이드 전원이 사령관을 경호하는 걸로 타협봐서 겨우 말릴 수 있었다.


둠 브링어가 먼저 폭격을 퍼부은 뒤, 아머드 메이든이 공항을 확보하는 동안 내 팀은 오렌지에이드와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유미와도 만나고, 난민들을 차례차례 수송기에 태워보냈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난민 그룹과 함께 내 팀이 나가려는 순간, 일이 꼬여도 대차게 꼬였다. 

우리가 타야할 수송기는 어디에도 없었고, 둠 브링어와 아머드 메이든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원작대로 제타의 군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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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인간의 오르카호 밖에서 살아남기 시즌2 스타트!


2부는 9지역 배경인데 보다시피 원작이랑 전개가 좀 달라질거임


현재 라붕이 파티 상태 (총 7명)

파티 리더 외 고정맴버 3명과 임시맴버 3명의 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