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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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목 없소. 본관이 좀 더 확실하게 놈을 잡았어야...”

 

“아냐아냐, 용 언니는 충분히 해줬어!

일단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으라고! 팔 다리 멀쩡한 건 다행인데 몸 안은 아주 작살이 나있단 말이야!”

 

“그 정도 몸 상태는... 쿨럭! 쿨럭!

... 제길... 속이려는 것도 쉽지 않군...”

 

 

 

사령관을 지키고 있는 오르카 호. 용은 연신 기침을 내뱉으며 내상을 치료하는 중이었다.

추기경의 묵직한 대검에 부러진 갈비뼈만 해도 4개. 그 밖의 잔뼈와 찢어진 힘줄까지 세려면 수십 개는 되었을 게 분명했다.

 

분명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몸 상태였으나, 오르카 호의 사정은 용의 몸 상태보다도 심각한 것이었다.

 

전투의 여파였느냐고? 아니. 거대 철충은 둠 브링어의 활약으로 무력화되었고 추기경 역시 용과 미믹의 협공에 무릎을 꿇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미믹이 부서지긴 했으나 오메가가 합류한 작금의 오르카에겐 더 이상 자원은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일순의 방심이 일을 그르치는 법.

미믹 30마리 분량의 나노머신으로 구성된 감옥 우리 안에 추기경을 가두고 잠시 한숨을 돌린 사이, 눈을 떠보니 추기경의 몸이 녹아 내리고 있었다.

그대로 바닥에 흡수되어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나버린 추기경. 용이 미친 듯이 인근을 수색했으나 검은 액체 방울조차 찾지 못했다.

 

그렇게 포기해야 하나 싶었던 찰나, 080 기관의 전자 미로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내부를 지키고 있던 컴패니언과 발할라 대원들은 속수무책으로 추기경의 검에 무력화되었고 놈이 사령관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다행히 사령관에게만 관심이 있었기에 대원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아직 아무도 이 일에 대해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 사령관도 우릴 분명 믿었을 진데... 일이 이렇게 될 필요도 없었을 거란 말이오.”

 

“에이, 원래 일이 이렇게도 될 수 있고 저렇게도 될 수 있는 거지.

내가 오빠한테 갈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볼 테니까 그렇게 자책하지 마.”

 

“닥터는 참... 명랑하군.”

 

“오빠한테 배운 게 그런 것뿐인 걸. 이럴 때라도 웃고 다녀야지.”

 

 

 

가냘픈 팔로 용의 빠진 뼈를 맞춰주다 보니 어느새 닥터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으나 스스로 할 수도 없을 만큼 다친 용은 그런 닥터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봐야 했다.

 

 

 

“... 밖에 대원들의 상황은 어떻소.

분명 정상은 아닐 텐데...”

 

“단순히 정상이 아니라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겠지.

... 언니도 알잖아. 어쩔 땐 비명 소리가 나는 것보다 적막한 게 더 무서운 거란 걸.”

 

“... ...”

 

 

 

오르카 호는 지금, 한없이 고요했다.

 

 

 

“... ... 읏차, 이제 왼팔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을 거야.

나머지 팔도 금방 고쳐줄게. 수술 몇 번 정도는 해야겠지만 아프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고맙소. 그토록 작은 몸을 가지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에이, 마지막까지 남은 건 용 언니 혼자였잖아. 부상자도 별로 없는 걸.

뭐, 부서진 미믹들까지 부상자로 치자면 조금 많으려나? 헤헤.”

 

“아무리 그래도 홀로 다니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다른 닥터는 어디 간 것이오?”

 

“아... 그게...”

 

 

 

문 밖, 서버실이 있는 방향으로 닥터는 손가락을 올렸다.

 

 

 

“저~기, 오빠가 있는 데에 있어.

추기경인지 뭔지 때문에 우리가 준비했던 신경 감각 동기화 장치가 무용지물이 됐거든.

그거 고치려고 나보다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지.”

 

“... 그렇군.

...

... 미안하오. 괜한 걸 물어봐서.”

 

“아, 아냐~ 나야 쉬운 일 받으니까 좋지.

... 좋아. 나도 좋다고. 뭔지도 모를 외계 생물체의 기술을 해석해야 하는 것보단 빠진 뼈 맞춰주는 게 훨씬 낫지.

오빠 옆에 있지 못하는 건 좀 아쉽지만...

...

... 괜찮아! 난 진짜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닥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나왔다.

비록 머리는 한없이 비상할 지라도 본디 마음은 여린 아이 같은 닥터.

감정을 숨기는 방법은 그토록 똑똑한 머리로도 쉽게 소화할 수 없는 것이었다.

 

 

 

“... 미안하오. 본관이 괜한 걸 물어봤군.”

 

“... 아니! 나 괜찮아!

빨리 언니 몸이나 고쳐줘야지. 그래야 빨리 가서 오빠를 도와줄 수 있을 거 아냐?

우리 중에선 제일 잘 싸우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니까... 그렇지?”

 

“...

... 그래. 그래야지.

갈 수만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가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응! 가서 추기경인지 뭔지, 그 검은색 덩어리를 아예 찢어버리고 오라고!

저번에 200번 죽였으면 이번에는 2000번을...”

 

 

 

드르륵!

 

닥터의 말을 끊는 소리가 문에서부터 들려왔다.

 

 

 

“... 용.”

 

“메이 언니...?

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분명 쉬고 있으라고...”

 

“용. 나 좀 봐.”

 

“쉬고 있으라고 했는...”

 

 

 

용이 말없이 닥터의 어깨를 잡았다.

 

 

 

“본관이 처리하겠소. 닥터는 잠시 쉬고 있으시오.”

 

“아... 아니, 메이 언니 몸 상태가 어떤 지 알고 그렇게 말하는 거야?

뼈는 물론이고 시신경도 전부 개판이 됐어!

얼굴에 뼈 맞추느라 내가 무슨 짓을 했는 지 알아?! 지금도 오른쪽 눈 희끄무리 하잖아! 일시적이긴 하지만 실명된 거라고!”

 

“그래. 아팠겠지.

하지만 종종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플 때가 있소.

오늘이 그런 날이라 생각해주시오. 닥터.”

 

“... ... 무리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내가 가만 안 놔둘 거야.”

 

 

 

저벅 저벅, 닥터는 분을 삭히며 수복실 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몸 속에서 부서진 메이의 뼛조각을 찾아 헤매느라 몇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이제 와서 겨우 다 맞췄는데, 눈을 뜨자마자 하는 게 잔뜩 울상인 얼굴로 여기까지 찾아오는 거라니. 

우는 얼굴을 만드느라 움직일 얼굴 근육이 겨우 맞춘 코뼈를 자극할 게 뻔했다.

 

하지만 그러는 메이에게 차마 한 마디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얼굴엔 부서진 뼛조각이 찌르는 아픔보다 더한 고통이 서려있었으니까.

 

 

 

“... 용. 대체 저게 왜 저기 있는 거야.”

 

“본관을 탓하고 싶은 거라면... 그래, 그렇게 하시오.”

 

“내가 지금 누구 탓을 하는 게 아니잖아!

저 빌어먹을 화면이 왜 저기 저렇게 둥둥 떠있는 거냐고!”

 

 

 

그래. 단지 지키지 못한 것뿐이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발할라와 컴패니언을 따돌린 추기경이 사령관에게 접근한 다음, 컴퓨터의 자그마한 전선 접속 포트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사령관이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오르카 호 위쪽으로 대원 모두가 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화면 홀로그램 창이 띄워졌다.

 

그 속에선 아직 멀쩡해 보이는 사령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던 그 때, 네오딤의 강철 말뚝이 사령관의 복부를 찔러 넣었다.

아니, 넣었다 하기엔 너무 약소한 표현이리라. 복부의 5할 이상이 아예 사라져버렸으니까.

 

불행하게도 그 모습을 오르카 호의 네오딤 역시 보고 있었다.

반군으로 있었을 때도 사령관을 막기 위해 공격했던 전적이 있던 네오딤은 말 한 마디 내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거품을 물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재발한 탓일까, 아니면 사령관을 공격한 VR 세계 속 네오딤에 자신을 투영했던 것일까, 어느 쪽이건 네오딤은 정신을 차린 지금까지도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령관과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티아멧 역시 마찬가지. 그나마 사령관이 아니라 지나가던 행인을 공격한 모모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다만 다들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바이오로이드가 언제 게임 속에서 사령관을 죽일 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허나 가장 괴로워했던 건 그 중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지킬 수 있다면서!! 오르카 호가 쓸 수 있는 병력이란 병력은 다 썼다면서!!

근데 왜... 왜 저기에 저 인간이 저러고 있는 건데!”

 

“... 미안하오.”

 

“내가... 내가 그렇게 시간을 벌면 될 거라면서...

시간만 벌면 지킬 수 있다고 했으면서...”

 

“... ...”

 

“저렇게... 저렇게 되면 안 되는 거잖아...

안 되는... ... 안 되는 거잖아..!!!! 왜 저 사람이 저렇게 죽어야 하는 건데!!”

 

 

 

메이. 반군의 수장이었던 자.

그녀만큼 괴로워 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 ... 미안하...”

 

“그럼 말 해줘 봐.

나 같이 천박하게 무기나 쓸 수 있는 년의 대가리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테니까 전술의 귀재인 네가 설명해 봐.”

 

 

메이가 덥썩, 용의 멱살을 잡았다.

 

 

“내가 뭘 더 했어야 해? 거대 철충의 95%를 잡고, 서기관까지 죽인 다음, 너희가 올 때까지 추기경과 싸운 내가 뭘 더 했었어야 저 사람이 저 꼴이 나지 않았던 거냔 말이야!”

 

“그대는 충분히 잘 해주었소. 메이.

모든 게 본관의 불찰이오. 미안하오.”

 

“미안... 미안... 그 놈의 미안하단 소리만 하지 말고 제발...!!!”

 

“그대가 이 이상 잘해줄 수는 없었을 것이오.”

 

“전술의 귀재라면서!! 블랙 리버의 모든 전략 전술은 다 네 머리 속에 있다면서!!

그럼 저 작은 애새끼 한 마리는 죽일 방법이 있었을 거 아냐!!”

 

“... ...”

 

“말 좀 해봐...!!

제발... 부탁이니까 제발...!!”

 

“... 없었소.”

 

 

 

용의 말에는 일말의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비참한 현실에 굴복하여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게 아니었다. 정말로 이 이상의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단 뜻이었다.

 

그 말에 메이가 바닥에 주저 앉았다.

울고 싶어 하는 볼이 자꾸만 움찔거렸으나 추기경이 때린 후유증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조차 막아버렸다.

 

 

 

“아냐... 아냐...!! 으아아아!!!!”

 

 

 

메이는 울지 못해 비명을 내질렀다.

사령관이 말했듯이, 울음이 비명이 되어, 비명이 울음이 되어 땅바닥에 쏟아졌다.

하지만 너무나 깊게 응어리진 마음은 한없는 비명으로도 전부 뱉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똑. 똑.

 

“... 누구오.”

 

“카르디아입니다. 용 님. 들어가도 될까요.”

 

“... ... 그러시오.”

 

 

 

쓰러진 메이를 자신이 부축해줄 수 없었기에 용은 작게 승낙의 뜻을 밝혔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카르디아는 침대를 하나 끌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에서 절규하고 있는 메이를 가볍게 안아 침대 위에 놓였다.

붉은 머리카락에 묻은 먼지들을 흘겨 내며, 카르디아는 말 없이 침대를 용의 옆자리에 놓았다.

 

 

 

“... 카르디아, 저것에 대해 아는 것이 없소?

아무 거나 좋소. 어떻게 사령관의 VR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건지 같은...”

 

“기술사관. 교황 밑에 있는 수십 명의 서기관 중 한 명의 능력이죠.

벌레 칼날. 마찬가지로 교황 밑에 있는 수백 명의 집행관 중 하나의 힘이에요.

추기경이란 원래 그런 존재에요. 수십, 수백 개의 능력을 한 몸으로 견뎌낼 수 있는 자.

... 괴물이죠.”

 

“괴물이란 건 직접 칼날을 맞대보며 느껴봤소.

하지만 저것은... 단순한 괴물 같아 보이지 않더군. 뭔가 광기 같은 것이...”

 

“제대로 보셨네요.”

 

 

 

카르디아가 고개를 돌려 용을 쳐다 보았다.

 

 

 

“저건 교황의 첫 번째 추기경. 이름은 따로 알려진 바가 없죠.

애초에 워낙 베일에 쌓여진 존재라 여왕님이나 교황을 제외하면 알고 있는 사람이 아예 없을 거에요.”

 

“그럼... 후우, 정보로 앞설 수 있는 방법은 없겠군.

스콸로르라는 서기관처럼 이름을 부르면 우리 쪽으로 눈길을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추기경은 자아가 확실한 자들이죠. 아마 이름을 알았더라도 그럴 순 없었을 거에요.

다만 제가 부르는 이름은 따로 있죠.”

 

“그게 뭐지?”

 

“미치광이.

솔룸에 있던 그 어떤 존재보다도 많은 크레아투라를 죽인 존재가 저기 있는 첫 번째 추기경이에요.

자신과 똑같이 생긴 크레아투라들을 다섯 자리가 넘게 학살했죠.

그러니 광기에 서려 있다고 본 용 님의 말씀이 맞아요. 그 누구보다 괴물에 걸맞는 존재죠.”

 

“... 크레아투라라는 것이 우리 바이오로이드와 같다고 했던가?

... ... 괴물 같군. 그런 것이 우릴 보고 무섭다니 어쩌니... 전부 다 농락하는 거였어.”

 

“그랬을 지도 모르죠... 피조물로 만들어진 존재에 한에선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는 자니까.”

 

 

 

용은 말없이 생각했다.

다섯 자리. 못해도 만이 넘는 존재를 학살한 자.

 

칼이 움직여 하나의 궤적을 만드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

허나 만 개의 생명을 죽이기 위해선 족히 그보다 더한 궤적을 그려야 하는 법.

칼을 쓰는 자로서 그 광기는 짐작조차 하기 싫은 것이었다.

 

그 때 옆에서 메이가 어렵사리 화두를 꺼냈다.

 

 

 

“그럼... 그런 미치광이가 지금 사령관이랑... 있다는 거야...?”

 

“... 그렇죠.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령관님 같이 창조자인 존재들에겐 쉽게 마음을 연다고 했으니까.”

 

“마음... 마음을 열어?

지금 저 미친 놈은 이미 사령관을 죽였어! 그런 놈이 무슨...”

 

“저게 ‘말’을 했어요.”

 

“말...?”

 

 

 

순간 바뀐 카르디아의 어조에 방 안의 공기가 적적해졌다.

 

 

 

“여왕님께서 말씀해주셨겠지만 교황이 이곳에 온 이유는 외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에요.

하지만 외신도 바보는 아니었어요. 저희의 존재를 눈치챌 때마다 다시 심연 속으로 끌고 가버렸죠.

단번에 데려가는 것은 아닐 지라도 조금씩, 천천히 심연 깊은 곳으로 인도하는 거죠.”

 

“... 그게 뭐 어때서.”

 

“추기경이 ‘말’을 했다는 건 그 때문에 이상한 거에요.

‘말’을 하는 건 추기경이 가진 본래의 힘이에요. 다른 것도 아니고 교황 바로 밑 계급의 힘이니 외신 역시 그걸 눈치챌 수 있겠죠.

그 때문에 말을 하면 할 수록 추기경의 힘은 약해져요. 외신이 앗아가 버리니까.”

 

“... ...”

 

“그게 의미하는 바는 둘 중 하나에요.

그렇게 약해져도 사령관님을 죽일 자신이 있다는 거거나...”

 

“... 마음을 열었다? 사령관한테?”

 

“아마도. 물론 힘이 아니라 말로 해야 하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일 지도 모르죠.

하지만 여왕님께서 알려주신 첫 번째 추기경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말보단 힘으로 해결하는 걸 좋아하는 존재죠.

어째선지 메이 님께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용 님을 보자마자 벌레 칼날을 꺼내 들었던 걸 보면 그런 놈인 건 확실해요.”

 

“... ...”

 

 

 

주변이 고요해진 탓에 메이의 입은 계속해서 무거워졌다.

눈 앞에 들리는 것이 희망인가, 아니면 썩은 동아줄인가, 분간할 수 없었던 탓에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용이 메이를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왜 여왕의 서기관들은 본래의 힘을 쓸 수 있는 거지?

철의 왕자를 잡을 때도 우니투스인지 하는 자가 본래의 힘을 끌어 쓰지 않았나.”

 

“서기관들의 힘은 외신의 눈길을 살 만큼 강하지 않으니까요.

여왕님이 추기경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죠.

힘을 썼다가 외신의 눈에 닿으면 안 되니까.”

 

“... 그래. 이해가 되는군.

하지만 저것의 방식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소.

왜 굳이 VR 세계로 들어가 스스로 주도권을 잡은 거지?

단순히 사령관을 죽이려고 한다면 그 벌레 칼날이라는 것을 사용해도 충분하지 않겠소?”

 

“그러겠죠. 애초에 VR 세계를 자기 손아귀에 넣은 이상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죽일 수 있겠죠.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 걸 보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요.

그리고 그게 사령관님을 구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르죠. 추기경이 당장 죽이진 않을 테니까.

다른 건 몰라도 지금까지 한 짓을 보면 사령관님을 마음에 들어 한 건 분명해요.”

 

 

 

그 말에 용은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고통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들에겐 칼날을 들이댔지만 사령관에겐 ‘말’을 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팽팽하게 얽혀 있던 긴장의 끈이 조금 느슨해진 기분이 들었다.

 

카르디아가 옆에 물 한 컵을 가져다 놓고 인사를 건넸다.

쉬어야 할 사람들한테 괜한 말 꺼내고 싶지 않다는 둥, 밖에 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거두러 가야 한다는 둥, 각양각생의 말을 꺼내며 돌아간 것이다.

 

일전에 사령관에게 했던 것을 보면 남의 감정을 빼앗아 가는 능력이 카르디아에게 있던 것은 분명했다.

오늘따라 말을 하는 카르디아의 눈이 그늘져 있던 건 그 때문이었을까? 족히 수십 명 분의 슬픔을 담아낸 듯한 모습이었다.

 

 

 

“... 오늘따라 무리하는 자가 여럿이군.

닥터도 그렇고, 카르디아도 그렇고... ... 나도...”

 

 

 

그 때.

 

 

 

콰과광!!

 

 

 

패널로 중계되던 사령관의 모습이 환한 빛으로 감싸였다.

 

핵.

기어코 그것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옆에선 메이가 자신의 패널로 그걸 보고 있었다.

아니, 보고 ‘말았다’ 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렸을 것이다.

 

 

 

“... ...”

 

“메... 메이... ...”

 

 

 

우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울음을 참는 것이었다.

 

 

 

“... 나지...”

 

“...”

 

“나였...지...?”

 

 

 

메이는 기어코 눈물샘을 찢어냈다.

찢겨진 틈 사이로, 눈물이 비집고 나와 메이의 뺨으로 흘렀다.

 

 

 

“내가... 내가... 쏜 거겠지...?”

 

“아... 아니오!! 저 안에 있는 메이는 그대가 아닐...”

 

“내가 쏜 거 맞잖아... 내가...”

 

“... ...”

 

“내가 사령관한테 쏘려고 했던 거... 그거잖아...”

 

 

 

반군과 오르카의 싸움, 그 종장을 장식할 뻔했던 사건.

그녀가 사령관에게 무기를 겨누었을 땐 천운으로 핵을 발사하는 단계까지 가진 않았지만 화면 너머의 세계에선 그러지 못했다.

 

자신의 무기가 사령관을 죽였다.

핵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방사능에 몸이 절여져 죽어가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메이였기에 그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대체 왜... ...”

 

 

 

과거가 겹쳐진다.

과오가 겹쳐진다.

 

자신의 기억을 엿봤을 괴물은 잔인하게도 그 때의 실수를 화면 속에 온전히 그려내었다.

너무도 완벽하게.

 

 

 

“... 흑... 흐윽...”

 

 

 

때론 비명 소리보다 잔잔한 흐느낌이 더욱 잔혹하다.

낡은 자신의 방에서 곰팡이 냄새로 전부 지워낸 줄 알았던 과거는, 그렇게 무자비하게 머리 속에 흘러 넘쳤다.

 

 

 

“왜에... 왜 그렇게 죽는 거야...

왜...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허나 더욱 가슴이 저며지는 것은, 그렇게 죽은 사령관의 모습 때문이었다.

 

차라리 피했다면, 차라리 자신을 원망하며 죽었다면.

그러면 이리도 가슴 시리진 않았을 텐데.

 

그는 너무도 당당하게 폭심지를 향해 걸어갔다.

그것으로 죽을 이가 자신 하나뿐임을 보자마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걸어갔다.

떨리는 팔을 붙잡고, 요동치는 다리에 힘을 주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갔다.

 

자신이 그를 죽였음에도 그는 말했다.

 

-사랑한다.

 

보여준 것이다. 자신이 그를 그 때 죽였더라도 여전히 그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음을.

단지, 오르카 호를 지키기 위해 분노했다는 것을.

 

 

 

“왜... 왜 그냥 그렇게 죽는 거야...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데... ...”

 

“... 메이... 분명 사령관도 생각이 있어서...”

 

“... ... 화염구의 잔열은 수백 도가 넘어. 방사능 낙진은 또 어떻고...?

피폭되다가 죽는 게 어떤 건지 알아?! 뼈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피부가 허물 벗겨지듯이 찢어지는 고통이 어떤 건지 아냐고!!

생각이... 생각이란 게 있었으면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고...”

 

 

 

못 해도 수십 번. 사령관은 그만큼 죽을 것이었다.

열 손가락이 몇 번이나 셈을 해야 할까? 한 번의 죽음마다 괴로워 손을 꽉 쥐는데, 그럼 열 손가락은 앞으로 얼마나 움직여야 할까?

 

차라리 그냥 그 때 사령관을 죽일 걸. 그냥 자신이 모든 죄를 짊어지고 세상을 끝내버릴 걸.

그럼 적어도 이 사람이 이렇게 고통 받지는 않았을 텐데.

 

메이는 결코 하고 싶지 않았던 상상을 하며 얼굴을 폈다.

고장 난 얼굴의 근육에 그녀의 감정을 담기란 너무도 힘겨웠던 탓이었다.

 

무표정으로 말 없이 정면을 응시했다.

눈에선 눈물만이 끝없이 흘러 내렸다.

양갈래도, 포니테일도 하지 않은 풀어진 장발이 침대에 대중없이 널려져 있었다.

 

 

 

“... ... 사령관...”

 

“... 너무 마음 쓰지 마시오. 저 안에 있는 것은 그저 게임일 뿐이니까.”

 

“대신 고통이 느껴지는 게임이지... 생생하게.”

 

“... 이 말이 위로가 될 지는 모르겠으나 사령관은 현재 애매하게 저쪽 세계에 발을 걸친 상태요.

로그아웃 프로세스가 50% 정도 진행되어 있었다고 했지. 그러니 느껴지는 고통도 그만큼 덜할 것이오.”

 

 

 

애초에 사령관은 오르카 호 안에서 총알 한 방 맞아본 적 없던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피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존재. 그런 사람이 두 번의 죽음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50%라도 진행된 로그아웃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게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두 번의 죽음이 스무 번이 된다면, 서른 번이 되고 백 번이 된다면?

그 때부터 사령관의 정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신력 하나뿐이란 얘기다.

 

 

 

“... 너무 몰두해서 보지 마시오. 괜히 그렇게 있다간 마음의 상처만 깊어질 테니 이 참에 한숨 자는 게...”

 

“... ... 아니.”

 

 

 

그 사실이 메이의 마음을 짓눌렀지만 지휘관이란 존재는 그렇게 쓰러지는 것을 용인 받지 못한 자들이다.

하물며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령관을 피해온 사람으로서, 더 이상 그 사람을 눈 밖에 두고 싶지 않았던 메이였다.

 

추기경과의 싸움으로 한쪽 눈이 일시적으로 실명되었지만 반대쪽 눈은 멀쩡했다.

멀쩡한 한쪽 눈으로 반 쪽짜리 세계를 어렵사리 담으며, 메이는 사령관의 모습이 담긴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가능한 한 사령관의 모습이 많이 담긴 반쪽 세계를.

 

 

 

“... 힘들면 말하시오. 본관이 마실 거라도 가지고 올 터이니.”

 

“... ...”

 

“... 미안하오. 일이 이렇게 되기 전에 본관이 나서서 그대를 변호했어야 했는데.”

 

 

 

용도 안다. 지금 메이가 밖에 나갔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당하게 될 지.

안 그래도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가던 자가 밖으로 나가면 무슨 눈길을 받게 되겠나? 돌팔매질이라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렇게 되기 전에 변호를 해줬어야 했는데,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추기경이 이런 장면을 연출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까? 메이의 기억을 엿보았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굳이 자신이 죽이지 않아도, 오르카 호의 모두가 죽이러 들 테니까.

 

 

 

“이제 와서 옛날 기억 들추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됐어.”

 

“... 미안하오. 사령관이라면 잘 버텨낼 것이오.”

 

 

 

축 늘어진 목소리. 잔뜩 물을 머금은 걸레처럼 지저분한 희망이 그 말에 담겨 있었다.

앞으로 사령관이 얼마나 죽을까, 언제부터 그가 피폐함에 눈을 뜰까.

사랑하는 이가 망가져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은 평범한 각오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메이는 사령관의 세 번째 회차를 말없이 보았다.

들리지 않을 응원을 마음 속으로 수천 번 메아리쳤고, 진작에 했어야 할 사과를 수만 번 외쳤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내가 미안해... ...’

 

 

 

울었다. 울라 하였기에 울었다.

영영울어라. 그랬기에 메이는 울었다.

 

마음 속에 응어리들이 더 이상 살집을 불리기 전에 쏟아내었다.

길에 풀어진 장발이, 허리까지 내려온 붉은 머리칼이 한없이 검은색에 가까운 남빛의 물로 젖어 들어갔다.

 

눈물은 어느새, 메이의 심상(心傷)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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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