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천사들에게 등을 떠밀려 나온 엔젤이 제일 먼저 꺼낸 말은 자신의 모습이 이상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평소의 수도복과 다른 청순한 느낌의 옷이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솔직한 내 감상으론 오히려 너무 잘 어울려서 가슴이 설렐 정도였다.


"아냐, 정말 잘 어울리는데? 너무 보기 좋아."

"에헤헤.. 그, 그런가요?"


평소 다른 옷차림은 커녕 가벼운 화장조차 하지 않았기에 더욱 어색함을 느끼는 것일까. 엔젤은 이리저리 옷을 둘러보며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오늘은 다른 분들께서 꾸며주셨지만.. 이게 평소의 제 모습이 아니라서.."

"천사들의 패션 센스는 정말 감탄만 하게 된다니까."


그저 옷차림이 바뀌고, 평소 하지 않았던 화장을 조금만 한 것 뿐인데 이렇게 바뀔 줄이야. 평소의 차림도 귀여웠지만 오늘의 모습은 귀여움을 넘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아무튼, 이제 데이트를 시작해 볼까?"


데이트라는 말에 엔젤의 어깨가 심하게 들썩였고 저토록 긴장하는 모습이 마치 처음 다른 아이들과 데이트를 할 적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심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기에 얌전히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데, 데이트라고 하는 건.. 어떤 것들을 하면 되는 걸까요..?"

"응?"

"그냥.. 같이 시간을 보내면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힘을 주면서 엔젤이 큼직한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어 보이는 무구한 모습에 일순간 이렇게 순수한 그녀에게 어른의 지식을 마구 주입하여 타락 시키면 어떨까 같은 생각도 들었으나, 만약 그랬다가는 사라카엘이나 베로니카 등에게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기에 얌전히 설명해주기로 결정했다.


"별것 아니야. 그냥 서로 사랑하는 연인처럼 손도 붙잡고~ 이것저것 이야기도 나누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 돼."

"여, 연인이요?"

"응."

"구원자 님과 제가 연인이요?! 그런 불경한 생각은..!"


그저 엔젤의 긴장을 풀어줄 요량으로 떠든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심하게 당황하며 고개를 내려 깔고, 손을 꼼지락 거리며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아하니 조금은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려줘야 하겠지.


"뭐 어때? 내가 구원자라며, 구원자는 신도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거야~"

"그럴..까요..?"

"그렇다니까! 그리고, 솔직히 그런 생각 한번도 안 해봤어?"

"그, 그게.. 아주.. 조금은.."


제 아무리 교단의 천사이며, 평소 신실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천사라고 해도, 그 나이대의 소녀와 같은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사실 언제나 경건한 모습을 강요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며 솔직하게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을 나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언제나 계속 교리에 얽매이지 말고, 솔직하게 오늘의 시간을 즐겨줬으면 좋겠어. 그게 내 바램이야!"

"구원자 님의 뜻이 그렇다면..."


그 후 결국 못이기는 척, 엔젤이 내 손에 이끌리듯 팔짱을 끼웠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사진을 찍거나 이것저것 활동을 하다 보니 금세 시간이 흘러 붉은 노을이 하늘을 덮기 시작했다.


"와아~ 노을이 정말 아름다워요! 구원자 님!"

"정말이네~"


'솔직히 엔젤이 더 예쁘지만 말이야.'


"앗.."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엔젤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허나, 무엇을 숨기랴. 엔젤이 지금 노을보다 예쁘게 보이는 것은 내 솔직한 생각이니까. 차라리 당당하게 밀고 나가자 결심이 섰다. 거짓보다는 솔직한 마음이 더 좋지 않겠는가.


"내 감정을 읽은 거야?"

"네.."

"이거 좀 낯 뜨겁네.. 그래도 솔직한 내 마음이야. 노을보다 네가 더 예뻐."


엔젤의 얼굴이 이제 더 이상 붉어질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올라 마치 폭발할 것 같았다. 그런 엔젤의 모습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 웃으며 그녀를 살며시 끌어 당겨 품에 안았다.


"꺄앗!"

"미안, 놀랬어?"

"네.. 그, 그래도 괜찮아요! 구원자 님의 품.. 정말 따뜻해서.."


살며시 품에 안긴 엔젤의 가녀린 어깨를 붙잡고 떼어내며 그녀의 시야에 눈높이를 맞추자 엔젤 역시 다음의 일을 예상이라도 한 듯 천천히 눈을 감고 내게 몸을 맡겨왔다.


"으읍.. 음.. 츄읍.."


짧지만 짙은 키스를 받은 엔젤이 수줍은 듯 다시 내 품에 안겨 들며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중얼거렸다.


"구원자 님은 정말 치사해요.."

"응? 내가 치사하다고?"

"네.. 전 이렇게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데.. 구원자 님께선 평온하시니까요.."


엔젤의 귀여운 투정에 그녀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고 다시 품에 안아주자 엔젤 역시 내 허리에 손을 두르고 안겨 왔다.


"슬슬 시간이 오래 지났네.. 아쉽지만, 이제 돌아갈까?"

"네.. 저기 구원자 님.. 다음에 또 같이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될까요?"

"물론이지! 언제나 환영이야."


이렇게 유쾌한 시간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귀여운 엔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내게도 여러모로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고, 나 스스로부터 그녀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에헤헤.. 돌아가면 구원자 님이 제 옷을 칭찬해 주셨다고 전해 드려야겠어요."

"아~ 오늘 다른 천사들이 도와줬다고 그랬지?"

"네! 오늘 아침에도 천사 님들께서 저를 도와주셨... 응?"


그때 엔젤의 시선이 한쪽 구석으로 향하고 그곳에는 하얀 깃털과 검은 깃털이 이리저리 흩날리며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말! 사라카엘! 들키겠어요!"

"아자젤! 혼자 망원경을 독차지 하는 건 좋지 못하다! 나도 볼 권리가 있다!"


아무래도 사랑스러운 막내 동생의 기념비적인 첫 데이트를 훔쳐 보려던 건어물 천사들이 소동을 벌이는 듯 했지만, 엔젤과 내 시선에는 서서히 그녀들에게 향하는 거대한 낫을 든 수녀가 보여왔다.


"아무래도.. 피바람이 불겠지?"

"네.. 베로니카 님의 감정이.. 엄청나요.."


엔젤의 오피셜로, 베로니카의 감정이란 격렬한 폭발을 동반하는 화산과 같은 모양이다.


"구원자로써, 저 어린 양들에게 애도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란 이것 뿐이리라. 무슨 깡으로 저렇게 빡친 베로니카 마망을 말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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