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추격자의 앞에 있는 건 인간 하나와 바이오로이드 셋, 최종적으로 제거해야 할 건 인간 뿐이지만 그러기 위해선 자신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두 바이오로이드를 먼저 치워버려야 한다. 하얀 것과 빨간 것 중 약해보이는 빨간 것부터 치우겠다고 목표를 정한 추격자가 사냥을 개시했다.


추격자가 짐승같은 괴성을 지르며 라비아타와 장화를 향해 네발로 뛰어왔다. 거리가 좁혀지자 라비아타가 횡방향으로 대검을 휘둘렀으나 추격자는 검이 닿기 전 수직으로 뛰어올랐고, 자신의 몸이 천장에 닿자 이번엔 천장을 박차고 그 반동으로 라비아타가 아닌 장화에게 뛰어들었다. 장화는 옆으로 몸을 굴러 그 낙하공격을 회피했지만 눈으로 그녀가 움직인 방향을 계속 주시하고있던 추격자는 곧바로 땅에 박힌 손톱을 빼내 장화에게 달려들었다. 미처 태세를 갖추지 못했던 장화는 추격자가 휘두른 손에 맞아 넘어지면서 땅에 거칠게 머리를 찧었다. 


추격자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장화를 끝장내려했으나 뒤에서 거대한 대검이 그것의 옆구리를 강타하자 그 반동으로 멀리 날아가 벽에 쾅 부딪혔다. 수많은 철충을 일도양단한 대검인데도 추격자의 몸통을 베지 못하고 때리는 데 그쳤다. 아직 부족하다고 여긴 라비아타가 다시 대검을 들고 달려오자 추격자 또한  몸을 추스르고 라비아타한테 돌진했다. 추격자는 라비아타의 매서운 검격을 이리저리 피하더니 어느새 그녀의 뒤로 돌아 손톱으로 라비아타의 등을 베었다. 등에 그어진 내 천(川)자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왔으나 다행히 척추까지 다칠 정도로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라비아타가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려 대검을 내리쳤으나 추격자는 이미 멀찍이 피해버려 애꿏은 바닥만 음푹 패일 뿐이었다.


추격자가 다시 공격하려던 때에 장화가 달려와 추격자의 등을 가격했다. 고개를 까딱 돌리니 장화가 거리를 벌리기 위해 그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게 보였다. 아프기는 커녕 뭔가 닿았다 수준의 공격이었지만 눈에 거슬리다 여긴건지 추격자가 목표를 바꿔 장화한테 달려들었다. 그러려고 했었다.


장화가 손을 당기자 손끝에 걸려있는 와이어가 당겨졌다. 추격자가 라비아타와 싸우는 사이 설치해둔 강화 와이어가 팽팽해지자 추격자는 거미줄에 걸린 벌레마냥 몸이 묶여버렸다. 그래봤자 잠깐동안의 포박일 뿐이다, 손톱으로 끊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장화도 그걸 알고있었고, 당연히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아하하하! 죽어! 죽어버려, 벌래새끼야!!"


이마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던 장화가 실성한 듯 웃으며 손에 들린 격발 스위치를 누르자 어느새 추격자의 등에 붙어있던 원격 폭탄이 폭발했다. 그 충격으로 인해 동굴 안이 흔들리며 천장에선 돌조각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녀의 바램과는 달리 코앞에서 폭탄이 터졌어도 죽지 않았던 추격자는 폭발의 연기가 걷히기도 전에 튀어나와 장화를 베려 했으나 라비아타가 있는힘껏 휘두른 대검에 맞아 홈런당하고 또다시 멀리 날아가 벽에 쳐박혀버렸다.


이번건 충격이 컸던 모양인지 추격자도 바로 일어서진 못했다. 허나 저 앞에서 장화와 라비아타가 다시 달려오는 게 보이자 추격자는 벽에 박힌 몸을 끄집어내 응전하려했다. 장화가 라비아타가 들고있는 대검의 넓적한 면 위에 올라서고 라비아타가 검을 휘두르자 장화는 포물선을 그리며 추격자의 위를 날아가고선 이내 그것의 반대편에 착지했다.


장화와 라비아타가 추격자를 사이에 두고 포위한 상황, 정면의 라비아타가 대검을 들고 공격하려하자 추격자는 본능적으로 피하려했으나 그 순간 발을 헛디뎌 그녀의 묵직한 일격을 허용해버리고 말았다. 이어지는 공격에 추격자는 이번엔 팔을 들어 방어하려했으나 뭔가가 팔을 잡아당기자 방어도 못하고 또다시 두번이나 대검에 얻어맞았다.



추격자는 이제야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의 뒤에 있던 장화가 추격자의 사지에 와이어를 걸고선 실로 인형을 조종하듯 추격자의 모든 행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막거나 반격하려 하면 팔에 묶인 와이어를 당겨 가드를 내리게 하고, 피하려 하면 다리에 묶인 와이어를 당겼기에 넘어지지 않게 균형 잡고 서있는 게 고작이었다. 물론 이런 와이어 쯤은 얼마든지 끊어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라비아타한테 샌드백처럼 쳐맞느라 바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추격자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으나 장화가 간과하고 있었던 게 있었다. 보통 사람은 팔다리만 묶으면 충분히 제압했다고 할 수 있기에 그녀는 추격자의 사지에만 와이어를 걸었다. 덕분에 추격자의 목 위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문자 그대로 짐승이었던 그것에겐 팔다리가 없어도 이빨과 치악력이 남아있었다.


라비아타가 추격자의 머리에 검을 내리치기 위해 팔을 들어올린 그 때 추격자는 목을 쭈욱 내밀어 라비아타의 팔을 깨물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깨물듯 라비아타는 예기치 못한 반격에 당황했다. 장화가 팔다리에 건 와이어를 당겼으나 추격자가 입에 문 라비아타의 팔을 놓게 할 순 없었다. 팔이 으스러질듯한 격통에 라비아타의 손에서 검을 놓치자 추격자는 목을 휘둘러 라비아타를 던져버렸다. 그 다음 이빨로 한쪽 팔의 와이어를 끊고, 풀려난 팔로 두 다리의 와이어를 끊었다. 남은 한쪽 팔은 여전히 와이어에 묶여있었는데 추격자가 그 팔을 당기자 역으로 와이어의 끝에 있던 장화가 끌려왔다. 


장화가 급하게 코트 안에서 수류탄을 꺼내 던졌으나 추격자는 손짓 한번으로 수류탄을 튕겨냈고, 그 수류탄은 애먼 천장에 부딪혀 터져버렸다. 추격자가 팔을 휘둘러 와이어에 매달린 장화를 라비아타에게 던져 맞춰서 둘을 동시에 쓰러져버렸다. 그 둘이 일어나지 못한 틈에 추격자는 본래 임무를 수행하려 했다.


추격자의 시선이 더치걸을 자신의 뒤에 숨긴 사령관에게 고정되자 사령관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각 삼켰다. 꽤나 부상을 입긴 했어도 아직 싸울 힘이 남아있는 추격자와는 달리 라비아타와 장화는 더이상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더치걸은 드릴도 폭탄도 아무런 무기도 없는 상태다. 


추격자가 뛰기는 커녕 기다란 손톱을 까딱거리며 걸어오는 게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 위에서 흙먼지와 돌조각이 몇 개 떨어졌다. 위를 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천장에 금이 가있었다. 장화가 일으킨 폭발이나 라비아타의 대검이 바닥과 벽을 가격하면서 생긴 충격으로 동굴에 무리가 간 모양이다. 더 충격을 주지 않는 이상 동굴이 당장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추격자는 여유부릴 때가 아니라고 느낀건지 더 지체하지 않고 손톱을 치켜들어 사령관의 숨통을 끊으려했다.


그 때, 주변이 확 밝아졌다.

사령관과 더치걸의 등 뒤에서 강력한 빛이 비추더니 그들을 마주보고 서있던 추격자는 느닷없는 정면의 빛에 눈부셔 팔로 얼굴을 가리며 주춤했다.




"토미 워커, 기동."


노란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거체의 로봇이 천천히 그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간혈적으로 깜빡거리기만 하던 초록빛 램프는 이제 끊임없이 빛나고 있었고, 몸통 양 옆에 달린 대형 조명 장치가 동굴 안을 환하게 비췄다. 아직 눈이 밝은 환경에 적응되지 않은데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한 추격자가 정신 못차리는 사이 토미 워커가 중장비가 움직이는 듯한 기계소리를 내며 한쪽 팔을 들어올렸다.


"규소-금속 중합 자생적 유기체, 확인. 목표: 파괴."


굴착용으로 쓰이는 거대한 팔을 무서운 기세로 내려치자 추격자는 피하지도 못하고 바닥에 쳐박혔다. 팔을 떼자 추격자가 움찔거리기에 토미 워커가 한번 더 내려치자 추격자는 드디어 잠잠해졌다.


"토미...? 일어난 거야?"


"...더치, 자네인가?


토미 워커가 더치걸을 확인하자 아까까지만 해도 기계적이던 말투가 변했다. 기분탓인지 모르겠으나 사령관은 그 목소리에서 반가움이 느껴진 것 같았다.


"내가 기동정지된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다른 더치걸들은 어디있는 건가?"


"대충 100년 정도 지났대. 살아남은 건 나 한명 뿐이고..."


"..."


더치걸이 말 끝을 흐리자 토미 워커는 침묵했다. AGS인 그에게도 충격적인 소식이었던 걸까. 사령관은 둘 사이에 얘기가 길어질 것 같자 먼저 본론부터 꺼내기 위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 저기..."


"신원 미상의 거수자 발견. 즉시 더치걸로부터 떨어질 것."


"엑."


"괘, 괜찮아 토미! 이 인간은... 좋은 인간이야!"


"...알겠네."


토미 워커가 다시 기계적인 말투로 말하자 잠깐 놀랐으나 더치걸이 팔을 붕붕 내저으며 친구라고 소개해준 덕에 도로 사람스런 말투로 돌아왔다.


"토미 워커 치곤 자연스럽게 말하는구나..."


마침 라비아타와 장화도 다친 몸을 이끌고 사령관이 있는 곳까지 왔다. 장화가 바닥에 널부러진 추격자를 발로 툭툭 치는 한편 의외로 고등 AI가 탑재된 토미 워커에 내심 놀란 라비아타가 중얼거리자 더치걸이 자기 일처럼 자랑스럽다는 듯이 받아쳤다.


"헤, 이정도로 놀라면 안되지. 토미는 말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음. 그건 그렇고, 우리가 지금 이 폐광을 탈출하려 하고 있거든. 네 뒤에 있는 통로로 가고싶은데, 비켜줄 수 있을까?"


"알았다."


순순히 수긍한 토미 워커가 무거운 발을 들어올려 자리를 옮겼다. 이동하던 중 토미 워커의 발이 추격자를 밟히려던 순간 추격자의 눈에 불이 들어오더니 잽싸게 뛰어올라서 사령관 일행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뭐야? 저거 아직도 안죽은거야!?"


장화가 지겹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살아있긴 해도 중상을 입은 건 분명했다, 세 쌍의 눈알 렌즈 중 반이 깨져서 불이 안들어오는 상태였는데다 왼팔은 손톱도 부러지고 팔꿈치도 반대방향으로 꺾여있었다.

 

그럼에도 추격자는 도망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머리 끝까지 열이 뻗쳐서인지, 아니면 인간을 무조건 없에야 한다는 무슨 사명감 때문인지 아직도 사령관 일행을 포기하지 않은 듯 했다. 이에 사령관 일행도 응전할 준비를 했다. 라비아타와 장화가 부상을 입은 상태더라도 토미 워커까지 합류한 마당에 호락호락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추격자가 다시 몸을 낮추며 공격 태세를 갖추더니 땅을 박차고 튀어올랐다, 사령관 일행이 아닌 옆에있는 벽을 향해서. 뜬금없이 전력을 다해 벽에다 몸을 부딪히나 싶더니 이번엔 천장을 향해 뛰었다. 계속되는 이상행동에 사령관 일행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왜 엉뚱한 데다가 몸통박치기를 하고 난리야? 눈이 안보이는 건가?"


"아냐! 저 녀석, 이 광산을 무너뜨리려는 거야!"


추격자의 속셈을 눈치챈 더치걸이 소리쳤다. 아니나다를까, 추격자가 여기저기 몸을 부딪힐수록 기둥이 무너지고 천장에 금이 쩍쩍 가고있었다. 라비아타가 추격자를 막기 위해 나서려했으나 그녀 앞에 떨어진 사람 키보다 커다란 바위에 발이 멈춰버렸다. 기둥과 천장이 무너지며 좀 전에 떨어지던 돌맹이와는 비교도 안되는 바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가다간 사령관 일행과 추격자가 다같이 매몰되기까지 시간문제였다.


이러는 동안에도 추격자는 자신의 몸이 부숴지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굴 안에서 날뛰고 있었다. 계속 상황을 관찰하며 추격자의 이동경로를 계산하던 토미 워커가 추격자가 벽에 붙어 멈춘 순간 작업용 앵커를 발사했다. 와이어에 연결된 거대한 집게가 추격자의 몸통을 포획하자 토미 워커가 집게를 당겨 추격자를 벽에서 떼어낸 뒤 앞으로 끌고왔다. 그것도 아무런 계획없이 몇 미터 끌고온 게 아니었다, 광산 작업용으로 개조된 토미 워커는 천장의 낙석을 관찰하며 바위가 떨어질 대략적인 위치를 예측했고, 그 중 거대한 바위가 떨어질 지점에 추격자를 배치한 것이었으니까.


추격자가 바위에 깔리고나서야 움직임이 멎었다, 그러나 동굴의 붕괴는 멈추지 않았다. 땅이 흔들리고 낙석이 거세지며 얼마안가 천장이 통째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더치걸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쭈그려앉고, 사령관은 몸으로 더치걸을 감싸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기다려도 그들은 돌에 깔리지 않았다. 슬쩍 눈을 떠보자 사령관 일행 주변만 낙석이 멎어있었고, 그들을 향해 내려오던 천장은 토미 워커가 양팔로 떠받치고 있었다.



"토미 워커...!?"


"내 뒤에 있는 통로에 광차가 준비돼있다. 더치를 데리고 나가라, 인간. 내가 천장을 받치고 있겠다."


"시, 싫어...! 그럼 토미 넌 어쩌고! 100년 만에 겨우 만났는데...!"


"나는 광부들을 지키도록 프로그램되었다. 희생이 요구된다면 기꺼이 응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네 자매들의 몫만큼 살아라, 더치."


더치걸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은 어떻게든 토미 워커를 데리고가라고 외쳤으나 현재 상황에선 불가능하다. 토미 워커는 이 근처의 붕괴만 멈췄을 뿐 다른 구역의 붕괴까지 막진 못한다. 오히려 꾸물대다 죽으면 토미 워커의 결단에 먹칠하는 꼴밖에 안된다.


"주인님! 더치걸! 빨리 이쪽으로!"


라비아타의 재촉에 더치걸은 눈물을 머금고 사령관과 함께 통로 안쪽으로 뛰었다. 넷이서 바닥의 녹슨 선로를 따라 뛰자 노란 구식 기차 형태의 광차를 찾을 수 있었다. 문짝을 뜯어내 안에 탄 뒤 시동을 걸었으나 묵묵답답이었다. 다급해진 더치걸이 발로 한번 걷어차자 그제서야 광차에 불이 들어왔다.


"더치걸, 운전할 줄 알아?"


"내가 여기서 돌만 캐며 산 줄 알아?"


더치걸이 능숙하게 광차의 기어를 조작하자 광차가 전속력으로 선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자잘한 낙석은 광차의 지붕을 뚫지 못했는데다 가속이 붙자 제법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던 덕에 사령관 일행은 무사히 어두운 통로 끝에 하얗게 빛나는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사령관, 라비아타, 장화, 그리고 더치걸은 마침내 폐광에서 벗어나 햇빛과 재회할 수 있었다.


"밖이야! 드디어 나왔어! 더치걸, 이제 광차를 세워! ...더치걸?"


"이익...! 고장났어! 기어가 말을 안들어!"


더치걸이 기어를 당겨 정차시키려했으나 뻣뻣하게 굳어버려 움직이질 않았다. 보다못한 라비아타가 다가와 기어를 잡고 힘껏 당겼지만-


우지끈!


"...어?"


"어머나..."


-정신차려보니 광차에서 뜯겨져나간 기어가 라비아타의 손에 들려있었다. 무안해하던것도 잠시, 광차를 세울 수단도 없는 채 눈앞에 선로가 끊겨져있는 게 보이자 사령관 일행은 휑하니 열려있는 문으로 뛰어서 광차에서 내렸다. 바닥을 한두바퀴 구르게 됐지만 고속주행하던 상태에서 탈선해 넘어진 광차 안에 남아있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사령관은 손으로 옷의 흙먼지를 털면서 일어선 뒤 기지개를 쭉 폈다. 그의 옆에 선 더치걸은 머리에 쓴 안전모를 벗어 땅에 떨어뜨리고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밖... 오랜만이네... 제조되고 나서 냅다 지하에 쳐박혀서 바깥 구경할 틈이 없었는데... 굉장히 밝구나..."


화창한 낮의 바깥 풍경을 실컷 눈에 담은 더치걸은 다시 자신들이 빠져나온 폐광의 출입구로 시선을 향했다. 어느새 통로가 바위로 막혀버린 상태였다.


"...토미..."


"휴... 이래선 다른 더치걸들의 시신을 수습하는데 애먹겠는걸. 그 아이들이 누워있는 곳까지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


쿵.


폐광 안에서 울려퍼진 소리였다. 지칠대로 지친 사령관 일행은 그 소리를 듣자 저도모르게 몸이 위축되었다.


쿵.


또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보다 더 크게. 저 안에서 무언가가 바위를 부수고 있다.


쿵.


이 소리의 원인으로 예상되는 후보는 단 하나 뿐이었으며, 불길한 예감은 항상 틀리질 않았다.


쾅!


날카로운 주황빛 손톱이 바위더미를 산산조각냈다. 이윽고 어두운 굴 속에서 추격자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령관 일행은 왜 저것이 아직도 안죽었냐는 한탄보다도, 지옥끝까지 자신들을 쫓아올 것 같은 저 집념에 경악했다. 


현재 추격자와 사령관 일행 양측 다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플라즈마 제너레이터는 전력이 바닥을 보이는데다 팔의 부상 탓에 무기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는 라비아타, 와이어는 다 끊어져 사제폭탄 몇 개밖에 안남은 장화, 원래부터 바이오로이드나 AGS에 비하면 직접전인 전투능력은 전무했던 사령관과 무기라고 할만한 건 잃어버린 지 오래인 더치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격자 또한 만만찮은 중상을 입은 탓에 이런 상대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귀어진은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추격자와 사령관이 나란히 죽는다면, 철충은 연결체 한마리를 잃는다 해도 아직 충분한 군대가 남아있으니 문제없는 반면 머리를 잃은 오르카호는 얼마못가 몰락할 것이다. 추격자는 이미 자신의 목숨 따윈 안중에 없었다, 어떻게 되던 간에 저 인간을 죽이기만 한다면 무조건 이득이다.


마음을 굳힌 추격자가 눈을 번뜩이며 사령관 일행을 향해 발을 할걸음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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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파트 이번화에서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좀 길어졌다. 다음화에서 정리될듯

스토리 수정하다보니 등장하자마자 칼퇴장하게 된 토미워커에게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아직 사령관vs추격자의 판세를 뒤집을 변수가 남아있으니 안심하십시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