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글


------------------------------------------------------------------------------------------------------------------------ 

154)

 

 다프네, 그녀는 그녀 스스로 자신이 유약하다고 할 만큼 소심한 성격의 여성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닥쳐오면 언제나 그것을 타개할 방안보다는 어떻게 해야 무마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기에 다프네는 그런 자신이 때때로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성격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이곳 안드바리의 선행 탓에 촉구된 보급 물자 탈취 사건 이후였다.

 

“...저기. 언니..?”

 

“...”

 

툭-! 툭!

 

 자신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홀로 으슥한 숲속의 공터에 서 있는 여성, 그녀의 언니 개체이자 그녀가 근무하는 식량 생산 설비의 팀장을 맡은 시저스 리제는 가뜩이나 동공 빛이 옅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선 하염없이 흙바닥을 응시한 채 애꿎은 등 뒤의 나무를 군화의 뒷굽으로 두들기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의기소침한 모습에 백사장에서 단숨에 그녀를 찾아 연설장까지 날아온 다프네의 양팔에 힘이 꾸욱 들어갔다.

 

“언니. 이..이거. 리리스씨가 언니에게 건네주라 하셨어요.”

 

“...”

 

 자신이 듣기에도 볼품없는 음색이 입술 밖으로 나와 자신의 귓가로 되돌아오자 다프네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살짝 떨구었다.

 

‘내가 이렇게 힘이 빠지면 안 되는데..’

 

 이렇게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 얼마 만일까. 다프네는 과거의 나약했던 자신으로 돌아온 것만 같아 더욱더 자신을 채찍질했다.

 

“어..언니의 가위는 아쿠아랑 드리아드들이 가지러 갔어요. 그러니..”

 

“...내 가위에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

 

“읏-”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려던 자신의 노력에 여태껏 묵묵부답으로 대응하던 그녀가 낮게 깐 목소리로 답해오자 다프네의 어깨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가위에는 손대지 말라고 경고했던 거, 잊었어?”

 

“...그..그래도. 상황이 급박해서 그만..”

 

“...”

 

“...”

 

 겨우 두 마디의 대화가 오고 간 뒤, 그녀들 사이의 기류는 아까보다 더욱더 탁해져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못 건넬 상황까지 오고야 말았다.

 그 침묵 속에서 하얀 비키니 위에 기껏해야 투명한 가디건을 걸치고 나온 다프네의 안색은 자신의 비키니 색처럼 새하얗게 질려갔다.

 

‘어쩌지? 언니가 정말 화난 것 같아. 이렇게 화내는 건...아니. 이렇게 나에게 화내는 건 처음인데.’

 

 그녀의 삶에서 가장 충격적인 경험을 선사한 인물은 단둘뿐이었다.

 

『자, 앞으로 이 팻말 무시하는 녀석은 곧장 내게 보고해. 다프네, 아쿠아. 알겠지?』

 

 첫 번째는 이곳에 갑작스레 등장한 두 번째 인간, 라붕이 작전관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남성이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이뤄지는 파견 부대의 횡포에 인상을 굳혔던 그는 결과적으로 ‘극기훈련’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의 복수를 대행해주었다. 그런 대장의 행보는 이곳의 다프네에게 있어 최전선의 사령관보다 더욱더 정감이 갔다. 유독 노출을 꺼리는 그녀가 오늘 오드리가 건넨 새하얀 비키니를 걸친 것도 반쯤은 그를 의식해서였다.

 

『해충!』

 

 그리고 두 번째는 눈앞의 언니, 시저스 리제. 말로만 혹은 영상으로만 접했던 언니 개체가 라붕이 작전관과 마찬가지로 갑자기 등장해 당혹스러웠던 것도 잠시. 그녀의 언니는 소문대로 특유의 위압감과 공격성으로 초코바 및 다른 부식 거리를 훔치러 온 알비스들을 단숨에 해치웠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자매들을 위해 알게 모르게 항상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에 다프네는 본대의 다프네 못지않게 그녀를 케어하고자 애썼다. 물론 자기 딴에는 케어한다고 케어하던 것이 커뮤증에 걸린 리제에게는 항상 고역이긴 했지만.

 

‘..언니의 기분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이..이대로 이야기를 끝맺어서는 안 돼. 응.’

 

“...”

 

꿀꺽-

 

 새소리도 옅은 깊은 산속, 바스락거리는 수풀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산속에서 다프네는 생애 가장 큰 용기를 내어 달싹이는 입술을 움직였다.

 

“저기, 언니. 혹시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주제넘은 걸지도 모르지만요.”

 

“...뭔데?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그, 혹시. 어젯밤에 대장님과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

 

 질문을 마친 다프네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침묵을 유지하는 언니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물어서는 안 되는 민감한 질문, 특히 그녀의 언니이기에 함부로 물어서는 안 되는 질문. 그러나 확실히 넘겨짚고 가야 하는 문제였기에 다프네는 언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로비에서 사라지시고 난 뒤부터 언니가 이상해 보였어요.”

 

“...뭐가?”

 

“기운도 없으시고. 말씀도 없으시고. 밤마다 몰래 대장님 숙소로 올라가시지도 않으셨고.”

 

“-!!”

 

“언니는 언제나 대장님이 최우선이셨잖아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그토록 고대하시던 수영복도 그대로 두시고 지금 복장으로 산행으로 향하셨다길래..”

 

“-그..그만! 그만 말 해!”

 

“네? 아, 네!”

 

 리제의 당혹스러움이 한가득 묻힌 포효가 다프네의 귓가를 후려치자 다프네는 화들짝 놀라 감았던 눈을 뜨곤 그녀의 언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마치 활짝 핀 동백꽃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리제가 그녀를 향해 왼손을 휘적대고 있었다.

 

“너, 너! 어떻게 내가 밤마다 주인님의 숙소로 향하는 걸 아는 거야?”

 

“네? 아니. 그게, 가끔 밤에 숙소를 나가시길래..”

 

 갑작스럽다면 갑작스러운 리제의 얼굴색 변화에 다프네 역시 당혹스럽다는 얼굴로 말을 다급하게 이어갔다.

 

“그, 조심스럽게 쫓아가니 언니가 대장님 방의 창문이 보이는 나무 위로 살며시 올라가시길래.”

 

“-이이익! 해..햇츙! 너 스토커야?!”

 

“스, 스토커요?”

 

 스토킹이라니, 자기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언니는 달랐나 보다. 이제는 아예 양팔을 허우적대며 당황하다 못해 패닉에 빠진 언니의 외침에 다프네 역시 우왕좌왕 대기 시작했다. 

 

“아-아뇨! 언니가 여기 적응 못 하시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어서..!”

 

“나...내가 왜 적응을 못 해?! 해충!”

 

“하지만! 가끔 제가 뭔갈 권유할 때마다 리리스씨를 통해서 받으시길래..!”

 

“그..그건 네가 참견이 많아서 그런 거야! 해충!”

 

“차..참견..”

 

털-썩!

 

 리제의 분기 아닌 분기 섞인 외침에 다프네는 그만 자신의 무릎을 땅바닥에 내리꽂고 말았다. 자기 딴에는 언니를 걱정한다고 했던 것인데, 그녀에게는 그저 귀찮은 동생의 스토킹 정도로 느꼈다니.

 

‘아아, 저는 언니에게 있어 참견쟁이였군요.’ 

 

“해? 해충?”

 

“...죄송해요. 언니. 여태껏 저는 언니에게 있어 불필요한 동생이었나 봐요.”

 

“아-아아니잇.”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리제가 황급히 몸을 움직이려 들었으나 이미 제풀에 무너진 다프네의 시선은 품 안에 안긴 플라스틱 덮개에 고정되어 언니의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언니 가위에 씌울 덮개에요. 이것만 있으면 언니도 게임에 참가 가능하다고 익스프레스양들이 말했어요.”

 

“에? 에에?”

 

“저는 언니가 어젯밤부터 힘이 없으시길래..대장님과 불화가 생긴 줄로만 알았어요.”

 

“으..으으.”

 

“저에게 두 분은 모두 소중한 분들이에요. 저의 환경을 송두리째 바꾸어 주신 분들이니까요. 언니나 대장님이나.”

 

“...해..아니. 그..”

 

“하지만 언니들에게는 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미처 자각하고 있지 못했어요. 미안해요. 언니.”

 

“-으읏”

 

 넋두리에 가까운 다프네의 독백에 리제의 안색은 점차 붉은색의 동백꽃에서 새하얀 백동백 꽃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자포자기한 다프네의 어깨 떨림이 멈춘 것과 반대로 이번에는 리제의 양팔이 허우적대는 것은 덤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다프네는 한눈에 봐도 축 늘어진 어깨를 힘겹게 끌어 올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 들었다.

 

“...이제는 그만 참견할게요. 언니. 못난 제가 언니를 돕는다는 건, 어쩌면 주제넘은 짓이었던 것 같아요.”

 

“아, 아니..”

 

“그래도 이것만은 받아주세요. 언니. 이게 없으면 게임 참가가 불가능하다고 언질을 들었어요, 그리고 아쿠아가 가위에 손을 댄 건 제 탓이니 그 아이에겐 화내지 말아..”

 

“-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네?”

 

 다급하다 못해 아까와는 다른 방향으로 당황스러워하는 리제의 외침에 다프네는 푹 떨궜던 고개를 번쩍 들어 세웠다. 그리고 그제야 그녀는 아까와는 반대로 새하얗게 질린 리제의 안색을 눈치채었다.

 

“어..언니. 안색이..”

 

“-나는 괜찮아! 괜찮다고!”

 

“네? 그게 무슨..”

 

 주어니 목적어니, 그런 품사는 일절 찾아보기 힘든 리제의 발악과도 같은 외침에 다프네는 아리송한 얼굴로 그녀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 와서 괜찮다고! 너희가 날 귀찮게 해도 나는 괜찮다고! 이 해충!”

 

“...”

 

“주인님의 명령이라던가! 주변의 조언이라던가! 그런 거 들어도 나는 잘 몰라! 애당초 나한테는 주인님만 즐거우면 그만이라고! 해충!”

 

“...”

 

“그런데! 너는 맨날 날 챙겨주기 바쁘고! 아쿠아는 매번 들러붙고! 드리아드들은 매번 싱글싱글 웃고 있고!”

 

“...”

 

“처음에는 귀찮았어! 주인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해온 행동에 계속 달라붙어 오는 너희가 귀찮았어!”

 

“...아.”

 

 씩씩거림이 잔뜩 묻어나오는 리제의 고백에 다프네의 눈망울이 옅게나마 글썽였다. 이제껏 자기들이 얼마나 그녀를 귀찮게 만들었는가, 그녀의 본래 성격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얼마나 그녀에게 과중한 기대를 해왔던가. 그리고 그걸 주인 탓에 가만히 소화하기만 해야 했던 눈앞의 언니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제야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되돌아본 다프네의 양팔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언니..”

 

“..그래도 그 망할 해충이 그랬어. 동생들을 보살피는 건 언니의 역할이라고. 그리고..내가 부럽다고 했어.”

 

“...”

 

“나는 동생들을 돌볼 줄 몰라. 너희가 어떻게 해야 행복해하는지 잘 몰라. 그래서 귀찮았어.”

 

 아까와는 달리 조금씩 음색 톤을 낮추며 고백하는 언니의 모습에 다프네는 울먹임을 최대한 참아가며 여태껏 그녀에게 맡겨온 짐의 무게를 가늠했다.

 나약한 자신들 탓에 짊어진 그 무게에 그 어떠한 불평불만도 하지 않은 채 말없이 소화해내기만 하던 그녀의 언니는, 자신이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걸. 다프네는 그것에 감사하며 또 미안해했다.

 

“...네. 죄송..”

 

 그리고 다프네는 이 모든 감정을 진심 어린 사죄로 표출하려 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문을 턱 막은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 묻힐 정도로 작디작은 리제의 또 다른 고백이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이 멍청한 해충.”

 

“...네?”

 

“괜찮다고. 주인님이 시켰든, 그 망할 해충이 사사건건 참견해오든. 그리고 서툰 네가 날 챙기려 들든. 괜찮았다고. 해충. 이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

 

“...정말요? 정말요? 언니?”

 

“...흥.”

 

 자신의 되물음에 입술을 작게나마 삐죽대는 리제의 모습에 다프네는 양팔에 들린 플라스틱 덮게도 잊은 채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언니를 귀찮게 해도 괜찮나요?”

 

“...적당히 해.”

 

“..그러면 대장님과 사이가 틀어진 건 제 착각이죠?”

 

“그..그건.”

 

“후훗. 이건 제 예상이 맞았나 보네요.”

 

 제 물음에 리제가 부루퉁한 얼굴로 흙바닥을 팍팍 걷어차자 다프네는 침울했던 아까의 기색을 완전히 젖힌 채 품에 안겨 있던 플라스틱 덮게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요. 언니. 오늘 제 참견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흥. 아쿠아들은 오지도 않았-”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오는 다프네와 달리 리제는 애써 시큰둥한 얼굴로 그녀가 내미는 플라스틱 덮개에 손을 얹으려 들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노리며 하늘 위를 부유하던 작은 벌꿀이 나뭇가지를 해치며 그녀의 등을 향해 날아들었다. 

 

팍-!

 

“-언니! 리제 언니!”

 

와-락!

 

“햇-츙!”

 

 예고도 없이 날아든 벌꿀의 몸통 박치기에 리제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러나 아직 언니의 품이 그리운 소녀는 그런 그녀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이 땀내가 물씬 올라오는 리제의 검은 티셔츠에 뺨을 부비적 댈 뿐이었다.

 

“헤헤-! 언니들 화해한 거지? 그치?”

 

“화..화해라니. 아쿠아 너 설마..”

 

 아쿠아의 두서없는 물음에 다프네는 행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 아이가 들은 것일까를 염려하며 발버둥 치는 언니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는 동생에게 손을 뻗으려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 손은 재차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구의 여성들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다 들었어요. 위에서.”

 

“드..드리아드.”

 

“헤헤.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끼어들기 어려운 분위기였던지라.”

 

“...으응.”

 

 미안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미소와 함께 리제의 거대한 가위를 품에 안고 내려선 두 드리아드의 대답에 다프네의 자유로워진 양손이 그녀의 정수리를 가린 밀짚모자로 향했다.

 

‘아으으. 동생들에게 못 보일 꼴을..’

 

“해-아니, 아쿠아! 떨어져!”

 

“싫어! 리제 언니가 귀찮게 해도 괜찮다고 했잖아!”

 

“이익!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야! 해충!”

 

“아쿠아 오늘부터 해충할래! 해충!”

 

“어머. 저희도 그럼 해충할까요?”

 

“그래도 될 것 같네요. 리제 언니도 저희 같은 해충 정도는 봐주시고. 후후.”

 

 한적한 숲속 공터에서 온 비명을 질러대는 리제와 그녀의 등에 매달린 채 싱글벙글 웃고 있는 아쿠아,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드리아드들.

 그 광경을 눌러쓴 밀짚모자의 작은 틈 사이로 바라보던 다프네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걸렸다.

 

“후훗.”

 

“...예상보다 훨씬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끝나셨군요. 다행입니다.”

 

“그러게요. 저도 중간에는 어떻게 언니 얼굴을 봐야 할지 조마조마 했는..에?”

 

 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프네는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내뱉으려다 그 목소리가 드리아드가 아님을 눈치채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것은 그녀의 곁에 서 있던 드리아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삭-파삭

 

“어..아..아르망님?”

 

“예. 아르망입니다.”

 

 작은 체구로 우거진 풀숲을 해치며 공터로 걸어 나오는 붉은 수단을 걸친 금발 소녀, 아르망.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세 여성의 어안이 벙벙해질 무렵, 힘겹게 막내를 떼어낸 리제는 씩씩대는 숨소리와 함께 거친 걸음으로 그녀들에게 걸어왔다.

 

“해..해충. 내 가위. 이리 줘.”

 

“아, 네! 언니.”

 

“동생분들에게 해충이라고 하시면 폐하께서 눈썹을 찌푸리실 확률이 높습니다. 리제양.”

 

“-이익. 이..익충! 내 가위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위야! 앞으로는 내 허락받고 손대!”

 

“헤헤. 네.”

 

 리제의 일갈에 드리아드들은 방긋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들에게 하기에는 조금 거친 언동이었으나 여태까지 무관심으로 일관해오거나 혹은 자신들과 거리를 두려던 언니가 조금 거칠지만 솔직하게 다가오는 것이 그녀들에게는 더욱이 좋은 변화였기에.

 

“언니! 이거, 이거!”

 

“...굳이 이런 흉측한 걸 내 소중한 가위에 붙여야 하는 거야?”

 

“안 붙이면 가위에 닿은 사람들이 반으로 썰립니다. 안전을 위해 탈착해주십시오.”

 

“-흥!”

 

“그러고 보니 언니 가위는 기존 모델의 가위랑 디자인이 조금 다른 것 같네요. 무게도 기재된 무게보다 더 가벼운 것 같고.”

 

“그러게요. 오늘 들어보고서야 눈치챈 거지만 외관에 비해..”

 

 입술을 삐죽인 채 플라스틱 덮개를 노려보는 리제 탓에 드리아드들이 서로 깨달은 바를 담소하려 할 때, 다프네가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것보다 언니. 아무리 언니가 강하다지만 본대 분들까지 참여하는 이벤트인데 파티를 안 꾸리셔도 되겠어요?”

 

“맞다! 리제 언니! 같이 파티할 사람은 있어?”

 

“그러고 보니..”

 

 아까야 서먹서먹한 분위기 탓에 미처 물어보지도 못했던 근원적인 문제점. 시저스 리제는 같이 파티할 사람이 없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더해 이번 이벤트의 참가 인원이 그녀들에게 난제였다.

 

“이번 이벤트는 전투 모듈을 장착한 본대 분들이 다수 참가하는 것 같은데..어쩌죠?”

 

 이곳에 있는 생산 인원들은 몇몇을 제외하곤 전투 모듈을 반납한 채 이곳으로 왔다. 그렇기에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령관과 함께 전선을 누벼온 본대의 정예 인원들에게 싸움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걸 그녀들은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본대 분들은 아마 저희를 피해서 하실 것 같기는 한데..”

 

“우으..그래도 리제 언니라면 어떻게 안 될까?”

 

“아쿠아. 리제 언니가 강한 건 맞지만 동시에 본대 분들도 강해요.”

 

 자기들이 참여할 수 있다면 참여하겠지만 A랭크 지원기인 다프네나 B랭크의 아쿠아는 그녀들 스스로 리제의 발목만 잡는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나마 그녀들 중 가장 기본 전투력이 강한 드리아드들은 S랭크로 책정된 바이오로이드였기에 참가 자격에 제외.

 

“어떡하죠? 아직 백사장에 가면 비참가 인원분들이 몇몇 있을까요?”

 

“으으-! 차라리 아쿠아가-!”

 

찰-캉!

 

 저마다 머리를 맞댄 채 차선책을 궁리하던 그녀들의 귀로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이닥쳤다. 그리고 뒤이어 생각 외로 담담한 당사자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

 

“네?”

 

 기다란 가윗날의 가운데 부분을 해체해 쌍검처럼 쥐어 잡은 리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제 가윗날 위에 달린 플라스틱 덮개를 째려보았다.

 

“...파티는 이미 있어.”

 

“저..정말요?”

 

 설마 저 커뮤증 언니가 이미 파티를 짰을 줄이야. 다프네와 아쿠아들은 저마다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선을 교환하다 이내 묵묵히 곁에 서 있는 금발 소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단숨에 시선을 독점한 아르망은 미소를 곁들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제양은 저와 함께 파티를 짰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똑바로 주인님을 못 찾아내면 네가 베일 줄 알아. 흥.”

 

샥-!

 

 고수의 검은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하던가. 옅은 바람 소리와 함께 일순간 허공에 하나둘 떨어지던 나뭇잎 위로 분홍빛 페인트가 흩날렸다. 그리고 그 광경에 다프네들은 말문을 잠깐 잃다 이내 양 주먹을 꽉 쥔 채 흥분의 도가니에 올랐다.

 

“어..언니와 아르망씨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저, 저희는 백사장으로 가죠! 헤헤.”

 

“리제 언니! 아르망 언니! 이기고 와! 꼭!”

 

사박-사박

 

 동생들이 서 있는 곳과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리제를 향해 여동생들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향해 리제는 말없이 어깨 위로 가윗날 한 자루를 흔들어 보이며 거칠게 목을 풀어대었다.

 

뚜둑-뚜둑

 

사박-사박

 

“...오랜만의 전장이네요. 리제양.”

 

“흥-! 주인님과 나의 낙원에 멋모르고 흙발을 내딛든 해충들을 박멸하는 것뿐이야.”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저희의 협약, 아직 유효한 거겠죠?”

 

“...”

 

사박-사박

 

 나뭇잎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던 리제는 아르망의 물음에 잠깐 침묵했다. 허나 이내 날카로운 눈초리로 곁에 따라붙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아르망을 노려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만이야.”

 

“후훗. 이 부분은 예측하지 못했는데. 불행 중 다행이네요.”

 

“...칫.”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치고는 담담하게 자신의 살기를 넘겨 버리는 아르망의 모습에 리제는 불평불만 가득한 얼굴로 짧게나마 혀를 찼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들의 걸음은 숲속을 벗어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바깥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박-사박

 

“...분명 그 바보 같은 망할 해충이나 음흉한 해충은 주인님의 목을 노리고 있을 테니까.”

 

사박-사박

 

“...이번에야말로. 내 손으로 주인님을 해충들로부터 지켜내 보이겠어. 흥.”

 

“훌륭한 충성심입니다. 리제양. 그리고..훌륭하게 성장하셨어요. 후훗.”

 

 오늘 아침까지 눈앞의 드잡이 아가씨 덕택에 골머리를 싸매던 아르망은 그 어느 때보다 홀가분한 눈빛으로 어깨 위에 쌍칼을 짊어진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 이 섬의 학살자 파티가 결성되었다.

 

챠-캉!

 

“-그 썩을 해충! 반드시 찾아내서 이번에야말로..!”

 

“또 사령관님에게 사적인 감정으로 손대면 폐하가 어제보다 더 화냅니다. 참으세요.”

 

“...해추우웅.”

 

155)

 

짹! 짹짹!

 

바스락-! 바스락!

 

 발을 내디딜 때마다 들려오는 나뭇잎이 으스러지는 소리, 그리고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새들을 합주. 언제부터였을까. 이 숲속의 소음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건. 분명 도시에서 살 때는 별로 들을 일도 없었던 소음이었다.

 

‘끽해봐야 군대에 있었을 때나 들었지. 그 이후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에게 익숙한 소음은 이런 종류의 소음이 아니었다. 시끄러운 차의 배기음 소리나 아니면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팝송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곳에 온 지 어언 한 달째, 나는 이 백색 소음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짹-! 짹짹!


'이게 자연인가..'


 가끔 TV에 나오곤 하던 자연인들이 왜 이런 곳을 찾아 헤매는 지는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겠다. 확실히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 오니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깨우친 달까.


'...흐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차분한 공간 속에서 내 머릿속은 여태껏 잊고 살았던, 아니면 눈을 돌리고 살려고 노력했던 나의 환경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이쪽 세계라.’

 

 언젠가부터 내 삶의 공간이 된 이 땅, 아니. 정확히는 이 세계에서 나는 종종 원래 살던 동네를 회상하곤 했다. 그립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그립다고 정확히 답할 수 있다. 그곳에는 내 부모님도, 내 친구들도 있으니.

 

‘아버지, 어머니는 잘 계실까? 아니. 애당초 내가 여기 넘어온 시점에서부터 나 거기서는 실종 상태겠지?’

 

 하루아침에 타지에서 자식이 뿅하고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의 심정은 어떨까. 얼굴 보기는 어려웠어도 항상 연락하고 지냈던 친구들은 내 소식에 어떤 얼굴을 지을까.

 다들 날 찾느라 정신이 없을까. 어머니가 드러누우신 건 아닐까. 아버지는? 회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태껏 정신없었던 일상 탓에 뒤로 미루고 있었던 생각들이 봇물 터진 것처럼 한꺼번에 밀려오기 시작하자 내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바스락-! 바스락!

 

“...하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져 간다. 청량한 산속 공기와는 다른 무거운 한숨이 내 폐 깊숙한 곳에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인생사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지만..

 

“...이건 경우가 없어도 너무 없긴 하지.”

 

 연유도 모른 채 게임 속 세상에 툭 떨어졌다는 말을 누가 믿어나 줄까. 만약 꼴초뱀이 내 지금 상황을 봤다면 배꼽 잡고 쓰러졌겠지. 진짜 경우가 없어도 이렇게나..

 

“? 네? 대장님? 무슨 경우요?”

 

 내 답답한 한숨 소리 탓일까, 아니면 내 짤막한 걱정 섞인 목소리 탓일까. 나보다 이곳에 더 오래 살아 산길에 빠삭하다는 노움이 앞서 걷다 말고 날 향해 고개를 돌리자 나는 하던 생각을 멈추곤 재빨리 내 가슴팍에서 데롱데롱 매달려 있는 총기를 가리켰다.

 

“...이 경우요. 예.”

 

“아..하하하. 그렇네요. 헤헤.”

 

“...하아.”

 

 뭔갈 말하려다 말을 목구멍 안으로 쏙 집어넣는 노움의 모습에 나는 하던 상념을 멈추곤 방탄모 아래의 내 이마를 턱 짚었다. 분명 높디높은 나무들의 그늘막 탓에 햇빛이 그리 강렬하게 느껴지지도 않건만. 내 이마는 그 어느 때보다 후끈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이마를 후끈하게 만드는 건 가슴 깊이서 올라오는 향수 때문인지, 아니면..

 

‘그 망할 사령관 때문인지. 하여튼 우선 이 개판을 헤쳐 나가는 게 먼저다. 씨발..’

 

 개같은 상황에 개같은 판은 만들어준 어느 한 남성을 향한 분노로 깊은 향수를 덧씌웠다. 이렇게 보니 이 새끼가 진짜 내 향수병을 억제하는 데에 탁월한 효력을 가졌다. 뭐 상념에 빠질 겨를도 안 줘요.

 

“노움. 근데 이 길로 쭉 헤쳐 나가면 비축창고가 나오는 거 맞냐?”

 

 괜히 대화가 짧게 끝난 것이 걸려 나는 이 거친 숲길을 시원하게 헤쳐 나가는 부하의 등에 대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노움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웃음기가 살짝 섞인 목소리로 내 물음에 대답해왔다.

 

“아, 네! 대장님.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헤헷.”

 

“그래?”

 

“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비축창고가 보일 거예요.”

 

 얼굴은 안 보여도 배시시 입꼬리를 올리고 있을 부하의 얼굴에 일그러져 있던 내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알기 쉬운 녀석. 저렇게 사람 좋으니 매번 부탁받는 일을 거절도 못 하지.

 사람 좋기로 이름난 부하의 뒤통수를 빤히 바라보길 몇 초, 나는 문득 이 앞뒤 구분도 잘되지 않는 이런 숲길을 익숙하게 헤쳐가는 부하의 모습에 괜히 말을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너 용케 이런 험한 길을 타박타박 걸어나가네?”

 

“아, 그게요.”

 

바스락-!

 

 익숙하게 우거진 풀숲을 옆으로 걷어치우며 작은 돌계단을 내려간 노움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돌계단에 들어서려던 내게 살포시 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여기에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이렇게 숲길을 헤쳐 나갈 일이 많았기도 했었고. 옛날에 철충과 싸울 때는 이런 산길에서 여러 날을 숨어있어야 했던 때도 있었으니까요.”

 

“...어째 가벼운 질문에 무거운 대답 돌아온 것 같은데.”

 

“다 지나간 일인걸요. 뭘.”

 

 노움의 부축 아닌 부축을 받으며 돌계단 아래로 내려선 나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뺨을 긁적이는 부하의 위아래를 가만히 훑어보았다. 확실히, 꽤 긴 산행인데도 불구하고 노움의 숨은 헐떡이지도 않았다. 조교용 검은 티셔츠 군데군데에 나뭇잎이 붙어있긴 하지만 그거야 이 녀석의 흉부에 달린 무기가 무식하게 커서겠지.

 

‘나야 뭐 이 녀석이 뚫어준 길 따라 걸음 따라 왔다지만.’

 

“확실히 마리 대장님이 너흴 칭찬하는 이유가 있긴 있구나? 백전노장의 노움 조교님?”

 

“아..으으. 대장님도 참!”

 

 비꼼이 섞인 내 칭찬에 노움은 손부채를 파닥이며 다시 앞으로 후다닥 나아가기 시작했다. 역시 놀려먹기 좋은 부하다. 물론 이전 내 화장실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 때문에 이렇게 놀리는 건 아니다. 절대 아니다.

 

“노움. 그러고 보니 너 이제는 화장실 어디 쓰냐?”

 

“...으으으. 대장님!”

 

“크크크.”

 

바스락-! 바스락!

 

 아까보다 숨을 크게 내쉬는 듯 어깨를 들썩이는 부하의 뒷모습에 나는 짓궂은 미소를 머금은 채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확실히 인기척이 없는 조용한 산길, 아무리 바이오로이드라 할지라도 굳이 이런 길을 택하지는 않겠지.

 

‘애당초 이런 길로 들어선 이유가 내 삽질 탓인게 크지만..’

 

 오전에 어떻게 하면 본대 녀석들을 더 처참하게 굴릴까 고민하던 찰나에 떠오른 아이디어. 정비된 길목 곳곳에 파견 애들을 배치해 둔 것이 내게는 역으로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파견 애들은 엄연히 따지면 내 휘하의 애들이 아니다. 각자 본대 혹은 북, 동, 남쪽 전선에서 파견 나온 녀석들이다. 근데 오자마자 내 손에 극기훈련이라는 명목으로 굴려졌으니 아마 속으로는 이빨을 갈고 있겠지. 그러니 지금 내가 처한 이 개같은 상황에서 날 발견하면 복수라는 명목하에 재깍재깍 그 오르카 뭐시기하는 커뮤니티에다가 내 위치를 곧장 나불댈 터였다.

 

‘시발. 내가 내 목에 족쇄를 건 꼴이잖아.’

 

 그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내 육체의 자유를 뺏고자 하는 녀석들이 이 섬에 한둘이 아닐 테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고 싶은 걸 꾹 참고선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곧장 눈앞에 든든한 여성의 등판이 눈에 확-하고 영거리로 다가왔다.

 

“엥?”

 

퉁-!

 

“악-!”

 

 미처 걸음을 멈출 새도 없이 노움의 널따란 등판에 부딪힌 나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찍고야 말았다.

 

“아, 대..대장님!”

 

“아이고..무슨 등판이 전봇대 같냐. 너..”

 

“에..헤헤헤..”

 

 뭔가 여성에게 되게 실례되는 말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방탄모 덕분에 콧등이 안 나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즈음, 내 눈에 노움이 걸음을 멈춰 세운 원인이 들어왔다.

 

“...뭐야? 저거.”

 

“그..그게 말이죠.”

 

“저거 우리 동네 드론 아냐?”

 

 그렇다. 노움이 걸음을 멈춰 세운 이유는 언제나 비축창고에서 봐왔던, 우리 동네의 몇 안 되는 AGS 탓이었다. 그리고 노란색의 몸체에 동글동글한 카메라 몸체가 인상적인 녀석의 집게발에는 작은 은색의 상자가 내 눈길을 끌었다.

 

“분명 개체명이..드론08. 맞지?”

 

-반갑습니다. 라붕이 대장님. 요안나 아일랜드 소속 AGS 드론08입니다.

 

“너가 왜 이런 데에 있는 거냐?”

 

 사실 이 녀석을 볼 기회는 몇 없다. 애당초 대다수 운반 물자들은 익스프레스들이 들고 옮기거나 트럭으로 이송하니까. 가끔 익스프레스들이 운반하기는 무겁고, 트럭으로 이송하자니 작은 물자들을 종종 옮기는 게 녀석의 주 업무였다.

 

 그런 녀석이 대뜸 인적이 드문 숲 한가운데서 모습을 드러내니 노움이 멍하게 서 있었던 거겠지. 나는 허겁지겁 날 일으켜 세우는 노움의 부축을 받으며 녀석의 은색 케이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는 건 뭐고?”

 

-본 개체는 현재 요안나 아일랜드에서 행해지는 특별 이벤트의 물자 운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물자 운송?”

 

 예상치 못한 드론의 대답에 나와 노움은 서로를 바라본 채 눈을 껌벅였다. 대체 이 녀석 뭐라고 하는 거냐?

 

-백문이 불여일견. 라붕이 대장님이 저를 제일 먼저 발견하신 인원이기에 본 개체가 담당한 물자는 라붕이 대장님의 소유입니다. 받으십시오.

 

“어..어어.”

 

 행여 산불이라도 날라 평소보다 훨씬 옅은 부스터 불길을 내며 다가온 드론08은 내게 선뜻 예의주시하고 있던 케이스를 내밀었다. 물론 의심부터 하고 보는 내 성격상 물건 수령은 노움이 대신했지만.

 

“노움. 얼른 그 가방 까 봐.”

 

“네. 대장님.”

 

딸-깍!

 

 작지않은 케이스의 크기에 노움과 나는 무슨 물건이 튀어나올지 몰라 조금은 긴장한 기색으로 케이스의 잠금장치를 열어 재꼈다. 그리고 열린 케이스의 내용물을 확인한 나는 후-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님. 이거 전투복 같은데요? 이건 탄창 같고..”

 

“...뭐야. 그런 거였냐. 아이고.”

 

“짐작 가는 거라도 있으세요?”

 

 케이스의 내용물을 보자마자 의도를 알아챈 나와 달리 이런 경험은 완전 처음인 노움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나는 그런 부하의 물음에 손사래를 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배틀 로얄이라고 했잖냐. 예의 랜덤 박스다. 이거지.”

 

“음..그런 건가요?”

 

“그래. 어.”

 

 노움의 손에 들린 나와 같은 녹색 패턴의 전투복을 둘러보던 내 시야에 상자의 밑바닥 위에 놓인 물품이 들어왔다. 이건 군복이 아닌데?

 

“뭐야. 이거? 왠 쫄쫄이가..”

 

샤-샥!

 

“? 엥?”

 

 뭔가 반짝반짝한 전신 슈트를 미처 집기도 전, 뭔가 바람이 휙 일더니 그 전신 슈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일순간에 벌어진 일에 나와 노움이 멍하니 서 있자니 우리의 머리 위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짬 타이거. 그거 네 전투복이었냐?”

 

 소리가 들리는 진원지로 고개를 들어봐야 보이는 것은 나뭇가지들과 나뭇잎에 가로막힌 하늘뿐이었지만 아무것도 없던 허공 위로 후줄근한 나시티와 바지가 휙휙 튀어나오는 모양새가 내 물음이 곧 정답이라는 소리 같았다.

 

“무슨 나무에 매달려서 탈피하는 곤충 같네. 근데 저게 왜 여기서 튀어 나와..아, 맞다.”

 

 그러고 보니 쟤 전투복, 내가 오드리한테 수선만 맡겨 뒀지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안 알려줬구나. 그래서 이번 전투 물품에 섞여 있었던 건가. 경황이 없어서 저 녀석 수선 맡긴 것도 잊고 있었다. 나는 이내 탈피를 마친 듯한 녀석이 있는 곳을 향해 목청을 돋웠다.

 

“얌마! 언제까지 삐져있을 거야? 너 어젯밤에 네 입으로 짬 타이거라 불러도 된다며!”

 

“-모르겠다고 했지 된다고 한 적 없다!”

 

“얼씨구. 자기도 목청 세우네.”

 

“에..헤헷.”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반항기인가. 자기를 잊고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짬 타이거라 불러서 그런 건지 아니면 둘 다여서 그런 건진 몰라도, 독기가 한가득 서린 짬 타이거의 외침이 조용한 산림 안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래도 쫄래쫄래 따라오는 모양새가 웃기니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나는 들어 올렸던 고개를 다시 낮추어 이번에는 멀뚱히 전투복을 들고 서 있는 노움에게 시선을 돌렸다.

 

“노움아. 너도 그거 걸치고 그 뭐냐. 그..암튼 그 총이랑 탄약 챙겨라.”

 

“네, 네! 대장님. 헤헤. 이렇게 전투복을 입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말마따나 전역 이래로 처음 입어보는 전투복의 감회가 새로웠는지 노움은 밝은 얼굴로 검정 티셔츠 위에 전투복을 껴입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곁을 슬쩍 지나치며 농을 내던졌다.

 

“좋아하긴. 이제 네가 내 총알받이 신센데.”

 

 듣기에는 조금 지나칠 정도로 너무한 농이긴 하다만. 노움은 그걸 밝디밝은 대답으로 받아쳤다.

 

“대장님은 제 가족이니까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가족이라. 흐흐.”

 

 그러고 보니 그런 설정이었던가. 나는 여전히 곁에서 둥둥 떠 있는 드론의 딱딱한 머리 부분을 쓰다듬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노움의 한마디 덕택인지, 조금 전에 들었던 향수가 옅어진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정신을 딴 데 돌리기 어려운 동네라니까.’

 

“이 앞으로 쭉 나가면 비축창고지?”

 

“네, 네! 잠시만요! 대장님. 저 다 갈아입었어요.”

 

“아서라. 네 선임이 조금만 합류 포인트 늦어도 난리 치겠다고 엄포 놓고 갔는데 발 빨리 움직여야지.”

 

바스락-!

 

 확실히 안쪽보다 수풀이 덜해진 느낌이다. 이 정도면 나도 헤치고 나갈 수 있으니 속도에는 문제가 없을 터. 나는 노움보다는 미숙한 움직임으로 조심히 수풀을 헤쳐 나갔다. 그러자 옷과 장비를 챙긴 노움이 뜀박질을 해가며 내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사령관님은 괜찮으실까요?”

 

“? 응? 사령관ㄴ..이 왜?”

 

 갑자기 좋아진 기분에다가 찬물을 끼얹는 노움의 물음에 나는 전혀 성인답지 않게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그런 내 기분은 모르는 노움은 조금 걱정 섞인 말투로 뒷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게, 대장님은 저희나 리리스씨들처럼 협력을 구할 수 있는 인원이 있다지만. 본대 분들은 전혀 안 그러실 것 같아서..”

 

“아서라. 본대 애들 지금쯤이면 눈에 불을 켜고 그 양반 찾으러 다니고 있을걸.”

 

“그러니까요. 아무리 사령관님이라지만 위험하실 것 같아서..”

 

바스락-!

 

“으엑?”

 

 노움의 흐릿한 뒷말에 앞으로 나아가던 내 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그러자 방금과 입장이 반대된 노움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대장님? 왜 그러세요? 앞에 뭐가 있나요?”

 

“...흐음. 아니. 그 녀석이 위험하다라..”

 

“네?”

 

 문득 궁금해졌다. 사령관 녀석이 이런 일을 벌인 건 분명 녀석 나름대로 뭔가 승산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녀석이 아무리 이벤트를 즐기는 놈이라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룰이 너무 세세한 것 같은데..

 

“...아닐걸? 아마도. 음.”

 

“?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아니. 어젯밤에 그 녀석 말리려고 중장님이랑 내가 녀석의 양팔에 매달...아, 아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

 

 불과 반나절도 더 전에 벌어졌던 녀석의 난동을 가벼이 입에 담으려던 나는 그 자리에 합석하고 있던 인원들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손바닥으로 입을 턱 막았다.

 

‘행여 잘못해서 사령관의 추태가 밖으로 나돌았다가는 내가 제일 먼저 의심받겠지.’

 

 그렇게 되면 닥터한테 한 소리 듣거나 무적의 용에게 단칼에 썰릴 게 뻔했다. 전자는 사양이지만 후자는 일어났다가는 내 목숨이 위험하다.

 

“대장님. 어젯밤에 혹시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일들이겠지. 응. 하여튼 그 녀석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가 문제지 뭐.”

 

“사령관님한테 그 녀석이라뇨..그렇게 부르는 게 더 큰 문제인 것 같은데..”

 

“시꺼. 너랑 나만 있는데 뭘. 야, 저기 앞에 숲이 더 없는 것 같은데. 저기 맞지?”

 

“아, 네! 대장님. 저기가 출구에요!”

 

 실제로는 우리 머리 위에 한 놈 더 있지만. 딱히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간밤에 벌어졌던 몇몇 일들은 임금님 당나귀 귀다. 떠벌여봐야 그 녀석한테도 나한테도 좋을 게 없다.

 나는 그렇게 잠정 결론을 내리고는 노움이 말하는 출구 쪽으로 곧장 걸음을 옮겼다. 오늘 중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진 걸음에 나는 수풀을 거두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앞으로 뛰어나갔다.

 

바스락-! 바스락!

 

“그럼 얼른 가자. 에고. 비축창고에서 안드바리 몰래 쥬스나 좀 빼내 마셔야겠다.”

 

“헤헤. 제 것도 있을까요?”

 

“대장 권한이다. 맘껏 꺼내 먹자. 뒷수습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딘가 글러 먹은 사령관이나 할 법한 소리를 지껄이며 나와 노움은 창고의 천장으로 보이는 것이 드문드문 비치는 수풀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그 끝에는-

 

파삭-!

 

“-도착이다!”

 

“도착!”

 

 끝없는 지평선과 언제나 봐왔던, 하지만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비축창고의 지붕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이제 보니 여기 비축창고의 뒤편에 있는 절벽 쪽이었구나.

 

파삭-!

 

“...걸음 한 걸음만 더 내디뎠다면 나 아예 세상 하직할 뻔했잖아!”

 

“그래서 제가 선두에 서겠다고 한 건데. 헤헤..”

 

 높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낮지는 않은 절벽 아래로 후두둑 떨어지는 흙모래를 바라보며 내지른 내 비명에 노움은 어색한 웃음을 회답했다. 하지만 이게 당장에 중요한 건 아니지. 내가 여기 온 건 지휘봉의 증폭기도 있지만, 더욱이는 내 편이 되어줄 든든한 우군을 찾으러 온 거니까.

 

“하아, 리리스가 여기 있어야 할 텐데..”

 

 태양 빛에 환하게 빛나는 비축창고의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있을지 모를 희망 사항을 중얼거렸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그녀가 내 적이 된다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156)

 

 요안나 아일랜드의 몇 안 되는 포장도로 위, 4륜 오토바이를 멈춰 세운 한 무리가 포장도로의 왼편에 놓인 가파른 숲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부-웅! 부웅!

 

“..여기에서 사령관의 뇌파가 느껴진다. 맞냐?”

 

 무리 중 가장 선두의 바이크의 핸들을 잡은 여성이 엔진 소리를 키우며 그녀의 뒤에 탄 갈색 머리 병사에게 물음을 내던졌다. 그러자 거친 엔진 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물음을 낚아챈 병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당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중사님! 저희도 느껴짐다!”

 

“...그래. 우리 귀여운 사령관이 꽤 먼 곳으로 도망가지는 않았나 보네?”

 

부웅!

 

 브라우니의 확신에 찬 대답에 임펫은 조용히 자신을 뒤따라 온 자신의 부하 일동을 세밀히 살펴보았다.

 이곳 파견 경험이 있는 브라우니 6명, 레프리콘 3명, 이프리트 3명. 거기에 더 해 노움 2명까지. 본래라면 20명을 꽉 채워도 룰에 위반하지 않겠지만 묘하게 차출 인원수를 낮게 잡으려는 대장들의 지시에 따라 총 15명만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이 정도 머릿수라면..

 

‘우리 귀여운 토끼 한 마리 잡는 것 정도야. 식은 죽 먹기이니까♪’

 

 기본적으로 사령관의 주된 업무는 사무 및 지휘업무다. 그가 몸을 쓰는 것은 기껏해야 밤일 정도. 물론 그렇다고 밤의 사령관이 대단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이건 나름대로의 실전 경험을 요구하는 이벤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실전의 스페셜리스트들이고 말이야.”

 

부웅-!

 

 임펫은 각오가 서린 병사들의 눈빛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며 한 번 더 오토바이의 배기음을 키웠다. 지금 여기서 덜덜 떠는 것은 그녀들이 타고 있는 이 ATV 정도가 다였다.

 

“애들아! 오늘 우리의 적은 누구냐!”

 

“저희를 제외한 오르카 전우들입니다!”

 

 자신의 외침에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일동들, 그녀들의 말마따나 오늘 그녀들의 적수는 다름 아닌 그녀들과 함께 지내는 타 부대의 전우들이었다. 그녀들 역시 사령관의 목에 걸린 포상을 노리고 지금쯤 곳곳을 뒤지고 있을 터, 한시라도 빨리 그녀들보다 앞서 사령관을 포획해야만 했다.

 

“그럼 우리의 사냥감은 누구지?”

 

“사령관님과-!”

 

“-과?”

 

“-라붕이 대장님입니다!”

 

“크크. 그래. 맞지. 우리는 이제 인간님이 한 명 더 있었지.”

 

 사령관을 외칠 때보다 어딘가 억센 감정이 한껏 들어가 있는 일동의 외침에 임펫은 그제야 바이크의 시동을 끄며 운전석에서 도로 위로 내려섰다.

 

‘세상에 몇이나 있는지 모를 인간님들이 둘이나 있다니. 정말이지. 우리 군대는 축복이라도 받았나?’

 

덜컹-!

 

 오토바이의 옆에 매달아 둔 자동소총을 점검하는 와중에도 임펫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처음에야 이래저래 근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옛적에 전역한 부하들의 대답에서 그의 됨됨이를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흐흠. 애들은 잘하고 있으려나. 그 대장님이라는 인간님도 대담하네. 설마 수풀 속이라지만 애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연설장 근처까지 오고 말이야.”

 

“? 네? 중사님. 뭐라 하셨슴까?”

 

“아니다. 게임을 좀 길게 즐기고 싶어서 그런다.”

 

철-컥!

 

 이프리트한테서 뺏었던 담배의 연기 너머,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들썩거리던 녹색의 둥그런 물건. 임펫은 그것이 무엇인지 단박에 눈치를 채었으나 굳이 게임 시작 몇 분 만에 그 방탄모를 낚아챌 정도로 흥을 즐길 줄 모르는 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걸 두 번이나 눈감아줄 정도의 위인은 아니겠지만.

 

“브라우니, 그러고 보니 너 여기 1기 수료생이라고 했지?”

 

 각자의 총기를 점검하던 중, 임펫은 그녀의 뒤에 타 있던 브라우니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었다. 그러자 브라우니는 담담한 어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옙. 저 1기 수료생이지 말임다.”

 

“그래. 그럼 대장님에 대해서 우리 중에 제일 잘 알고 있겠네. 어때, 라붕이 대장님. 무섭디?”

 

“...음. 무섭슴다. 엡. 저랑 제 동기는 아직도 트럭 컨테이너 퉁퉁 두들기는 소리 들으면 기겁하지 말임다.”

 

“..컨테이너 소리?”

 

 어딘가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을 내놓는 브라우니였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그 남자는 어쩌면 사냥하는 맛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것 참. 간만에 재미 하난 제대로 볼 것 같네?’

 

“중사님. 개인 화기 점검, 완료했습니다.”

 

“..오냐. 그래.”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노움의 결연한 목소리에 임펫은 목을 좌우로 한 바퀴씩 돌리며 대답했다. 그녀의 기다란 은색의 머릿결 아래로, 적갈색의 눈동자가 번뜩이는 것은 그와 동시였다.

 

“-가자! 애들아! 우리의 6박 7일 휴가를 위해서!”

 

“예-!”

 

자박-! 자박!

 

 당찬 외침과 함께 햇볕 하나 들지 않는 숲길 언덕으로 걸어나가는 스틸라인 병사들, 그녀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결연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한 매서운 눈빛이 번뜩이고 서 있었다.

 

-------------------------------------------------------------------------------------------------------------------------


진짜 인생이 바빴다. 원래 문과였는데 이과로 이번 학기에 학교를 완전히 옮겨서 학교 진도 따라가랴 실습 따라가랴 바빴다.

거진 한 달만에 쓰는 문학이라 속도도 안 나서 이번 편은 미완이다. 사실 154에 리제 넣으려고 했는데 또 8시에 서울서 내려온 친구랑 약속이 있었다. 라오 터진 거 때문에 나도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그거 때매 우선 다 쓴 거 올리고 갔다 온다. 미안하다. 오랜만에 왔는데 주고 가는게 미완품이라.

그리고 진짜 니들 어디 가지마라. 나 이 게임 떠나면 이제 갈 곳 없다.

카사도, 븎람도, 깡겜도, 에7도, 공주겜도, 블앜도. 다 해봤다. 그리고 다 접었다. 결국 나는 여기 있어야 한다 말이다.

나 혼자 외롭다. 씨발. 같이 침몰하자.


※ 4월 17일 자로 154 플룻이 추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