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쯧, 도망 한번 잘 치는군. 거의 다 잡은 고기였는데."


펙스 AGS 부대의 엄중한 호위를 받고있는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자신의 패널을 들여다보며 혀를 찼다. 난데없는 철충의 공격으로 빈틈이 생기자 오르카호에선 그 틈을 파고들어 신속의 칸을 사령관과 합류시켰다. 이에 사령관이 칸을 앞세워 작정하고 도망치자 붙잡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나마 사령관이 도망가기 시작하자 철충들은 펙스와 싸우는 것을 관두고 그를 쫓아갔기에 병력을 재정비할 여유가 조금 생겼다. 철충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인간. 그것들이 펙스에게 덤빈 것은 단순히 인간에게 가는 길을 펙스가 막고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철충을 사냥개삼아 사령관을 쫓게 놔두면 사령관 일행의 힘을 빼면서 몰아붙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뛰어봤자 내 손바닥 안이지만... 음?"


그녀가 들고있는 패널에 뜬 경고창, 또 하나의 전파탑이 파괴되었다는 알림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본진 근처에 있는 전파탑,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부사령관 그 인간이 또다시 자신이 자리를 비운 본진을 습격했다.


그러나 오메가는 예상했다는 듯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본진으로 병력을 돌리긴 커녕 그를 나지막이 비웃으며 패널에 뜬 경고창을 꺼버렸다.


"훗, 어리석기는... 정말로 내가 두번이나 본진을 무방비하게 놔뒀을 거라고 생각한건가? 기껏 놓아줬더니 기어코 제 발로 무덤에 들어가는군." 


오메가는 사령관 추격을 속행하기 위해 병력을 재배치하면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집 지킬 개를 준비해둔 보람이 있는걸..."



*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워싱턴 주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장엄한 요새, 현재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본진으로 삼고있는 장소다. 약 1년 전까지만 해도 오메가 산업의 본사였던 곳으로서 나름 평범한 대기업 빌딩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한번 부사령관의 빈집털이에 호되게 당한 오메가는 그 건물을 보강해 요새화시켰다. 벙커 못지않은 두터운 벽과 수많은 터릿을 갖췄으나 정작 오메가 휘하의 병력이 거의 전부 부재중인 이상 저것은 쓸데없이 튼튼하기만 한 건물에 불과하다.


"꺄하하하! 수류탄~ 투척!!"


하이에나가 신나게 웃으며 프로 야구선수 뺨치는 솜씨로 건물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맨손으로 던졌는데도 마치 홈런 친 것 마냥 멀리 날아간 수류탄은 건물의 유리창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 폭발했다. 수류탄 몇 개로 실내를 난장판으로 만들자 본진 수비 목적으로 남아있던 AGS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허나 그 수는 고작 수십 기, 일반적으론 AGS 분대라면 1개 분대만으로도 위협적이지만 오르카호와 사령관이 상대하고 있는 본대 병력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도 안되는 수였다.


건물 정문에서 몇 백 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모여있는 두 바이오로이드와 두 AGS는 적들을 육안으로 확인하자 일제히 총구와 포구를 올렸다. 이윽고 적들이 사거리 안에 들어오자 리디아가 큰 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사격 개시!!"



리디아의 경기관총에 하이에나의 자동샷건, 트레저의 대구경 쌍포, 그리고 포트리스의 세 쌍의 기관포까지, 돌격팀이 가진 모든 무기를 총동원해 아낌없이 탄을 퍼부었다. 다 합쳐도 열 대도 안되는 인터셉터는 대공 능력을 가진 트레저가 전담했으며, 적 지상 병력은 대응사격을 시도했으나 이쪽 포트리스의 방벽을 뚫지 못한 채 차례대로 고철이 되어 쓰러졌다.


적 AGS들이 거의 다 밖으로 나온 것처럼 보이자 유미는 잠입팀을 건물의 뒷문으로 안내했다. 오렌지에이드가 자신의 휴대용 슈퍼컴퓨터, 카두세우스로 뒷문의 보안장치를 해제하고 옆으로 비켜서자 애니가 문을 확 열여제꼈다. 곧바로 건물 안에 남아있던 펍헤드 한 대를 발견했고, 펍헤드가 미처 경보를 울리기도 전에 애니가 권총 한 방으로 코어를 맞춰 깔끔하게 정리했다.


아직 적이 남아있을까봐 권총을 내리지 않은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애니는 동물 유전자 덕에 예민한 시청력을 지닌 히루메에게 의견을 물었다.


"히루메, 어때? 또 누가 남아있는 것 같아?"


"아무도 없는 것 같구나. 다들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거라!"


히루메가 귀를 몇번 쫑긋거리다가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리고선 오렌지에이드, 유미와 함께 애니를 따라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한편, 전장터가 된 오메가의 요새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숨어있는 부사령관은 표정에 불만 가득한 리리스를 애써 무시하며 그녀한테 빌린 리시버를 귀에 꼽은 채 알바트로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사령관이 망원경을 들고 멀리서 돌격팀이 싸우고 있는 전선을 바라봤지만 달도 구름에 반쯤 가려진 어두운 밤하늘 밑에서 양측의 총구에서 내뿜는 불빛만이 반짝거리고 있었기에 보는 것 만으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십 분 정도 어색한 침묵을 견디자 마침 알바트로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까이 있는 전파탑 파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보고였다. 이 일대의 통신을 막고있던 방패전파가 끊겼으니 저기서 임무중인 리디아, 유미와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부사령관은 임무를 마친 알바트로스에게 귀환을 명령한 뒤 리디아에게 연락했다.


"리디아, 통신이 복구됐어! 지금 그쪽 상황은 어때?"


[놈들의 저항이 거세서 다 처리하는 데 좀 걸릴 것 같아! 저 자식들, 고장난 AGS를 방패로 삼고있어!]


"알았어, 계속 시선을 끌어줘. 유미! 너희들은 잘 되가?"


[네 부사령관님, 지금 목표에 거의 다왔어요. 이 문만 뚫으면 되는데, 예상대로 보안이 철저합니다. 오렌지에이드 양이 문을 해킹하고 있는... 어...?]


"...유미? 왜그래?"


유미가 내뱉은 짧은 탄식, 그 다음엔 술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아... 어떻게... 저 사람이 여기에...?]


[누구냐!? 분명 누구도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거늘...!]


[공격! 공격해!!]


애니의 권총에서 난 총성을 기점으로 리시버 너머는 대판 싸우는 듯한 소란스러운 소리로 가득찼다. 상황을 눈으로 볼 수 없었기에 부사령관 입장에선 어떻게 된건진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무언가 잘못됐다.


"유미, 어떻게 된거야!?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부사령관님! 여기 레모ㄴ---]


유미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무언가 다급하게 전달하려 했지만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통신이 끊겨버렸다. 다시 유미에게 연락을 걸어도 응답이 없는 게 아무래도 유미 쪽의 패널이 부숴지거나 한 모양이었다.


"...레몬? 설마 레모네이드?"


"부사령관, 무슨 일입니까?"


리리스는 리시버를 넘겨줬기에 상황을 듣지 못했지만, 부사령관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선 그녀 또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하고 묻자 부사령관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입팀에게서의 연락이 두절됐어,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마지막에 레모네이드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말도 안되요, 에이다가 분명 오메가는 현장에 나와있다고 했잖습니까. 그새 돌아왔을 리가 없다고요."


리리스는 황당해했으나 이 상황에서 유미나 부사령관이 농담을 할 리도 없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미와 다른 애들이 누군가 있다고 했어. 레모네이드... 설마, 오메가 외의 다른 레모네이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맹점이었다, 그들이 당장 상대하고 있었던 건 오메가 뿐이었지만 실제로 펙스는 알파를 제외한 여섯 레모네이드 시리즈의 세력이 합쳐진 거대 세력이다. 그리고 폐공장이 있던 공업단지에 들어가기 전, 오메가의 세력이 아닌 펙스 AGS 부대를 본 적이 있다, 현재 북미대륙 안에 있는 레모네이드는 오메가 한 명 만이 아니었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잠입팀이 당장 도움이 필요한 게 분명하다. 부사령관이 돌격팀에게 잠입팀을 지원하라고 요청하기 위해 통신기를 들고 전선으로 고개를 돌리자 또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적 AGS들이 돌격팀을 놔둔 채 퇴각하고 있었다. 무방비하게 노출된 등에 총탄이 박혀도 아랑곳않고 돌격팀으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적들이 다 사라지자 불안한 정적에 휩싸인 리디아 일행은 저걸 쫓아가야 하나 당황하던 중 정면의 건물에서 들린 굉음에 다시 경계태세를 갖췄다, 마치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무언가가 저 건물 안쪽에서 견고한 쇠문을 부숴버리고선 빨간 빛을 내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자신들을 향해 돌진했다. 


크기로 봐선 좀 전까지 싸웠던 군용 AGS에 비하면 훨씬 작은 게 사람 같기도 했다. 어둠 탓에 정체를 확인할 순 없었으나 돌격팀은 본능적으로 저것이 적이라고 느꼈다. 리디아와 하이에나가 저것의 접근을 막기위해 견제사격을 가하자 그것은 순식간에 위로 점프해서 피했다. 


인간은 두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바이오로이드라 해도 보통 자기 몸의 몇 배 높이를 뛸 순 없지만 저것은 거뜬히 수십미터 위로 뛰어올랐다, 이 어처구니 없는 광경에 리디아와 하이에나가 입을 떡하니 벌리고 공중에 뜬 그것을 쳐다봤다.


그것이 한손에 든 거대한 둔기를 앞세워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떨어지는 게 보이자 트레저는 냅다 발치에 있는 포트리스를 번쩍 들어올려 방패로 삼았다.



트레저, 포트리스와 그것이 격돌한 순간 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주위를 뒤덮었다. 만약 저 둘이 나서지 않았다면 그 공격 한번에 지면이 뒤짚히며 리디아와 하이에나가 충격파에 휩쓸렸을 것이다.


리디아는 그제서야 그것의, 그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들고있던 둔기라고 생각한 것은 그녀의 오른손이었다.

포트리스를 박차고 조금 떨어진 곳에 착지한 그 여자는 붉게 빛나는 눈으로 돌격팀을 노려보며 호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안그래도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적이 쳐들어와주다니, 이거 아주 재밌게 됐는걸! 오메가한테 고마워해야겠어!"


"넌 뭐냐? 오메가의 부하냐!?"


"부하? 하하, 그럴리가! 그 년과는 동맹 관계일 뿐이라고!"


눈 앞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여자는 오른팔에 장착된 제 몸만큼 거대한 건틀렛을 까딱거리며 다시 자세를 취했다.



"방금 인사를 버틴 건 칭찬해주지, 저 안에 있던 년들은 일격에 뻗었는데 너희들은 그나마 싸울 맛이 나겠어. 안그래도 용과의 결판이 흐지부지되서 많이 아쉬웠는데, 부디 재밌게 해주라고!"



*



"니미 씨발, 감마 저년이 왜 여기있는 거야!?"


예기치 못한 감마의 등장으로 상황이 꼬여버리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왔다. 감마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나 그 전투력은 잘 알고있다. 저기있는 돌격팀 네 명 만으로 상대하기엔 감마는 터무니없는 강적이다. 


쟤들을 남겨둔 채 후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망했네 이거. 감마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았으면 오지도 않았지 시발... 난 쟤가 바다에서 물놀이나 하고 있을 줄 알았다고... 


"감마? 저게 레모네이드 감마라고요!? 감히 주인님의 지휘소를 기습했던 그 년!?"


리리스는 감마라는 소리를 듣자 표정에 당혹감이 드러나더니 곧바로 분노로 채워졌다. 아니 그보다 기습이라니, 쟤가 뭐 사령관한테 위해를 가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인사차 방문했던 것 뿐인데 그리 죽이려 들 필요가 있나? 아무튼 그건 제쳐두고, 리리스가 또 급발진하려 했기에 서둘러 제지했다.


"리리스, 잠깐!"


"당신은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가서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내가 널 무시하는 건 아닌데, 니가 가도 저거 못이기거든? 감마는 무적의 용이랑 일기토 떠도 결판이 안났던 년이라고!"


"그렇게나 위험한 적이라면 더더욱 제가 가야만 합니다! 아님 다른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그건..."


잠입팀은 벌써 당해버린 모양이고, 돌격팀도 곧 그렇게 될 테고, 남은 건 여기있는 잉여팀 뿐인데... 나와 리리스, 그리고...


"...알바트로스. 알바트로스는 어디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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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보스 감마 등장

9지역 배경이면 감마도 한번 나와줘야지


 

(대충 다음화 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