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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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한적한 주말 오전, 당장에 할 일과도 없다는 통보를 받아 몸 하나는 편안하기 짝이 없는 오늘. 나는 그런 몸과는 정반대로 조금은 오싹오싹한 기분으로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서 있었다.

 

-그러니까, 거기에 있는 길고양이를 입양하고 싶다?

 

“어, 응. 그게 그러니까..”

 

-대뜸 고양이용 이동장 하나를 전역날 전에 준비해달라고 하다니. 우리 아들? 군대 가더니 간 하나는 많이 커졌네?

 

‘...일났다.’

 

 휴대폰의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 정확히는 열 받은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물고 있던 칫솔을 으적으적 씹어대었다. 아, 이 치약. 맛 제법 괜찮네.

 

-아빠한테 말해보고 엄마한테 전화한 거니?

 

“...아뇨. 엄마가 처음인데..요.”

 

-...하아-아.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기다란 한숨이 어째 서늘하게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이 아닐 터다. 어째서인지 눈앞에 놓인 거울 속 남성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것 같은 것도 내 착각이 아니겠지.

 

“아니. 그 뭐냐. 1가구 1 동물 시대라고 하잖아?”

 

-...그래서?

 

“어, 응. 그래서 그 우리 집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귀여운 반려동물 한 마리 키워보십사..”

 

-이미 집에 개똥 강아지가 둘인데. 엄마보고 이제는 또 길고양이 한 마리를 더 부양해라?

 

“죄송합니다. 어머님.”

 

 아버지, 어머니가 저희보고 똥개래요. 순식간에 자랑스러운 아들내미에서 개똥 강아지로 추락할 줄이야. 쉽사리 설득되지 않는 어머니 탓에 나는 칫솔에서 손을 놓고선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무마하려 들었다.

 

“어, 그 뭐냐. 옛날에 내가 그 선임 탓에 산행하다가 마주쳤다는 고양이 이야기한 적 있잖아?”

 

-그랬지? 그때 마주친 아기니?

 

“응응. 그래서 그 뭐시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쩌다 마주친 녀석이랑 자대 배치 받은 이후부터 쭉 함께 있었거든.”

 

-....

 

“그, 나말고도 제법 있나 봐. 이런 식으로 고양이 한 마리씩 데리고 가는 사람들이. 그래서 그 뭐냐..”

 

‘쩝. 할 말이 없네.’

 

 솔직히 내게 별로 얼버무릴 변명거리 하나 없었다. 엄연히 내 독단으로 생각한 거기도 하고, 부모님 의사도 안 물어보고선 냅다 부탁하는 꼴이기도 하니. 그 사실은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내 목소리는 점차 막 잠이 깬 사람처럼 목구멍 안으로 슬슬 기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어머니는 이윽고 탄식이 섞인 한숨과 함께 마지못해 내 고집을 받아주었다.

 

-...하아. 알았다. 알았어.

 

“-! 진짜?!”

 

 수화기 건너편의 어머니가 문제 아들 탓에 한숨을 푸푸-내쉬는 것이 쉽사리 연상되었지만 내 목소리는 그와 반대로 들떠버렸다. 효도는 나중에 해도 괜찮겠지, 나는 그런 불효막심한 생각과 함께 어머니의 허락을 다시 한번 확인하려 들었다.


“...진짜지? 무르기 없기다?”

 

-그래. 뭐, 갑자기 아가씨 한 명 데려와서 결혼하겠다고 땡깡 부리는 것도 아닌데. 아빠는 엄마가 설득해 볼게. 그러니..

 

"어어-나머지 수속은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았어요. 알았어. 에휴. 군대 가서 철 좀 들어서 오나 했더니. 남자는 나일 먹어도 소용이 없다니까. 정말.

 

‘예쓰!’

 

 어쩐지 아침 댓바람부터 어머니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오게 만드는 불효자식이 된 것 같지만 그러한 사실은 지금의 내게는 별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지금의 나는 그저 매일 취사장 뒤에서 애옹-애옹 거리는 거리는 녀석을 집에 가둬놓고 키울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그럼 조금 있다가 사진 보낸다?”

 

-네네. 어련히 하세요~엄마는 오늘 아빠 설득하느라 바쁠 예정이니 내일 또 연락해요? 우리 똥강아지?

 

“-넵.”

 

삑-!

 

“---!”

 

 수화기 너머에서 통화를 끊자 나는 소리 없는 비명을 부대 내 세면실 안에서 질러대었다. 그러자 아까부터 내 곁에서 통화를 엿듣던 동기가 한심하다는 눈초리와 함께 내 어깨 위를 툭툭 때려대었다.

 

“그리 좋나?”

 

“어, 존나 좋다.”

 

“아이고, 마. 세상에라. 느그 어무이도 진짜 니 땜시 고생하신데이?”

 

“야야, 애당초 네 입에서 나온 아이디언데 왜 너만 쏙 빠져나가려고 하냐?”

 

“얌마. 대충 생각 없이 아이디어 내놓은 새끼랑 그 아이디어를 당당하게 들고 가서 결제받겠다는 놈이랑. 누가 더 잘못..아이네. 생각해보이 내도 할 말 읍는 놈이네.”

 

“그렇지. 그렇지.”

 

 일주일 중 거의 없다시피 한 일과가 하나도 없는 느긋한 주말 오전, 나는 크게 한 건 해냈다는 뿌듯한 얼굴로 거울 속 내 얼굴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어대었다. 그 행동에 동기 놈의 얼굴이 더 썩어들어가는 건 덤이다.

 

“와따야. 고마 니 그리 하기 싫다던 분대장 달아가꼬 어제까지 좀비마냥 걸어 댕기다카드만. 다 뻥이었네.”

 

“...아. 맞다. 야, 너희. 왜 너희는 분대장 안 달고 나만 다냐? 씨발?”

 

 동기 놈의 입 밖에서 튀어나온 말 한마디에 방금까지 둥글게 무지개를 그리던 내 눈썹이 순식간에 벼락처럼 내려앉았다. 그러자 동기 녀석은 귀파는 시늉을 하며 담담하게 궁시렁대었다.

 

“아니, 뭐. 우리 아들 군번이 좀 잘 풀맀다 안 카나. 니도 알제?”

 

“...”

 

“고마 그래서 다 분대장 안 달아도 된다 카길래. 고마 전역 아직 남은 선임들 카고 아들 카고 이래저래 누구 먼저 분대장 보내삘까 야기 해봤는데. 다들 니만한 아가 읍다 안 카나?”

 

“...이 새끼들이?”

 

 이 자식들. 분명 자기들도 곧 분대장 달 짬인데 나부터 먼저 귀찮게 만들고 자기들은 느긋하게 있다가 병장 달고 나서 분대장 달 생각이다. 분대장 이딴 귀찮은 견장을 누가 먼저 달아서 좋다고 하겠는가.

 

“...씨벌. 무슨 시궁창 걸레 빨아 먹는 소..”

 

 나는 계속해서 내 시선을 피하려는 동기 놈의 옆구리를 찌를 심산으로 입에 물고 있던 칫솔을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가 조용한 오전의 세면실 안에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들어섰다.

 

“-서약 떴다아아!”

 

“-푸읍!”

 

“아 씨바-! 드르비라!”

 

 상황에 맞지 않는 어떤 이의 부끄러운 대사에 내 입에 물려 있던 치약 거품이 기침과 함께 동기의 군 보급 티 위로 날아들었다. 그 때문에 동기 녀석의 얼굴이 방금 내 얼굴과 비슷해졌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단숨에 고개를 홱 돌려 성큼성큼 세면실 안으로 들어서는 선임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서약 떴다! 서약! 새끼야!”

 

“...미쳤습니까? 꼴초뱀? 예? 아침 댓바람부터 뭔 개소리를..”

 

“하-이래서 뉴비는. 야야, 이 게임 나온 지가 얼만데 이제 서약 떴다니까? 응?”

 

“...와. 씨발.”

 

 분명 대화라는 건 상호 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존재한다 들었는데. 이 양반은 왜 가끔 의사소통이 잘 먹히는 것 같으면서도 안 먹힐까. 세상 어느 빡빡이가 군대 안에서 서약이니 뭐니를 지껄인다 말인가.

 도대체 문맥을 파악하기 어려운 말만 지껄이는 선임을 째려보고 있자니 그의 주변으로 그를 아는 분대원들이 속속히 몰려들었다.

 

“꼴초뱀. 아침부터 뭔 소립니까? 결혼합니까? 꼴초뱀이?”

 

“꼴초뱀한테 여친 있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언제부터 연애하고 있었습니까?”

 

“하, 짜식들. 내가 여친 만들 돈이 어디 있냐? 내 담배 사기 바쁜데.”

 

“그럼 서약은 대체 뭔 소립니까? 우리도 좀 알기 쉽게 이야기해 주십쇼.”

 

 군대라는 유희가 극단적으로 제한이 되어 있는 동네에서 대뜸 전 분대장이 붐버맨 폭탄을 들고 들어오니 분대원들의 관심사가 그의 손에 들린 휴대폰으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내 얼굴을 썩어들어가다 못해 이목구비가 제 형상을 유지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발 떠들지 마라. 이 부끄러운 거 모르는 양반아.’

 

“내가 저번에 이야기 안 했었나? 예전부터 하던 모바일 겜 있었다고.”

 

“아, 그 씹덕겜 말입니까?”

 

“그 가슴인지 미사일인지 구분 안 되는 거 달고 나오는 괴랄한 게임 말하는 겁니까?”

 

‘씨발.’

 

 군대라는 공간은 서로의 취미를 쉽사리 숨길 수 없는 공간이다. 그 탓에 바깥에서 씹덕인 녀석들이 당당하게 군 막사 내로 자기들이 읽던 소설 같은 걸 반입하는 게 일상이었기에 유희에 목말라 있는 병사들 사이에선 씹덕질이 딱히 눈밖에 나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선이지. 아침 댓바람부터 이렇게 깽판을 쳐놓고 당당하게 웃을 수 있는 건 저 양반의 인덕 탓일까, 아니면 그의 흡연(吸緣) 탓일까.

 

“그 게임에 이번에 서약 시스템이 추가되었다 하지 않냐?”

 

“와-꼴초뱀. 볼썽사납슴다. 암만 주변에 여자가 없다 쳐도 그 게임 속 캐릭터한테 막..”

 

 저 봐라. 바로 반작용이 튀어나오지 않냐. 나는 최대한 저 무리에서 관심을 뗀 채 열심히 치약범벅인 입안을 헹구기 시작했다. 나는 일반인이다. 일반인. 저런 미친 양반과는 다른..

 

“야, 자 봐라. 이 정도면 반지 줄만하다 인정?”

 

“...오. 쥑이네.”

 

“현실에 이런 여자랑 결혼하는 거였으면 꼴초뱀 오늘 걸어서 여 못 나갔슴다. 이야, 딴 년들도 좀 보여주소.”

 

‘나는 관계없다. 나는 관계없다.’

 

 당장에 어젯밤에 저 양반한테서 도움받았던 기억 따위는 세면장 유리창 바깥에 내던졌다. 나는 수건으로 거칠게 입 주변을 닦아 내린 뒤, 빠른 걸음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분대원 무리를 지나치려 들었다. 그러나 그때,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내 발을 잡아 세웠다.

 

“얌마! 니 치약 두고 가믄 으짜노! 챙기라!”

 

“...”

 

“...야야. 서약 나왔다니까?”

 

“...”

 

 왜 그런 호응을 바라는 눈으로 절 보는 겁니까. 꼴초뱀. 저는 댁이랑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내 의사와 상관없이 꼴초뱀의 휴대폰 액정에 꽂혀 있던 분대원들의 시선이 모조리 내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상병님도 이 게임하고 있었습니까?”

 

“상병님이 이런 이상한 겜에 취미가 있는 줄 몰랐는데..”

 

 당장에 내일 분대장 교육받으러 다른 대대로 전출 가야 하는 판국에, 당장에 어젯밤 일병이 벌여놓은 일 처리하기도 바쁜 판에, 당장에 종교활동 나갈 인원들 체크하고 나도 교회 출석 도장 찍으러 가야 하는 판국에.

 

“꼴초뱀이 꼬셨습니까? 같이 하자고?”

 

“아니? 저번에 외출 나가고 돌아오니까 자기가 알아서 깔아서 왔던데?”

 

“...평소에 라노벨에 관심도 없으시더니. 여태 숨어 있었습니까?”

 

‘씨발. 나도 좀 쉬자. 진짜..’

 

 분대원들과 선임의 이상야릇한 시선이 방금까지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던 내 기분을 강제로 지옥 밑바닥으로 내리꽂았다. 그러자 그 반동으로 나는 손에 들려있던 젖은 수건으로 제일 만만한 분대원의 등짝을 후려갈기며 비명 아닌 고함을 내질렀다.

 

짝-! 짝!

 

“...왜. 뭐. 나 한다. 어, 씨발. 그래. 한다. 왜! 씨발!”

 

“왜 화를 내십니까? 하면 하는 거지. 뭘?”

 

“그러게. 왜 저렇게 화를 낼까? 이해 못 할 분대장이다. 그치?”

 

“꼴초뱀처럼 당당하게 하십쇼. 저희가 뭐 게임하는 거 가지고 뭐라 합니까? 물론 좀 놀리기야 하겠지만.”

 

‘...진짜 막 나간다. 우리는 동기 생활관 안 하나 진짜.’

 

 분대원들은 자고로 한 몸 한뜻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기 생활관을 일부만 시행하는 식으로 눈 가리고 아옹하는 여단장의 고집이 오늘따라 유독 내 짜증을 돋구었다. 제발 나 좀 조용히 전역하게 해줘!

 

158)

 

 인류가 멸망한 지도 어언 100여 년에 가까워진 지금, 그들에 대한 역사와 지식이 옅어진 지금에도 임펫은 한 가지 사실 아닌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바스락-! 바스락!

 

“...후우.”

 

 그녀가 바라보는 멸망 전 인류는 문화를 즐기는 데에 도가 텄던 것 같았다. 음악이면 음악, 영화면 영화, 소설이면 소설. 그들은 한시도 손에서, 귀에서, 그리고 눈에서 즐거운 것을 놓치기 싫었는지 그들의 오락은 그들이 죽기 직전까지 꾸준히 양산해 왔었다.

 

“...야. 이프리트. 뇌파 감지는?”

 

“여전히 이 숲 안쪽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래?”

 

 그들이 세상에서 종적을 감춘 이후로 그들의 오락은 현재 그녀들의 오락이 되어 세계 곳곳에서 발굴 혹은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사령관과 지휘관들의 엄격한 검열 아래 일부만이 그녀들에게 허락되고 있었다.

 

바스락-!

 

“...여기 숲. 생각보다 너무 우거진데?”

 

 바깥에서 볼 때는 단순히 우거진 정도로만 여겨졌던 요안나 아일랜드의 산림 깊숙한 곳, 임펫은 일찍이 연등 시간에 병사들과 함께 관람했던 멸망 전 인류의 공포 영화의 무대를 연상케 하는 수해(髓海)의 그늘막에 눈살을 찌푸렸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무가 더 높아지는데. 나뭇가지도 더 얼기설기 얽혀져서 햇빛이 잘 들어오지도 않고.’

 

“...이런 데에 우리 동무가 숨어 있다고? 배경 하나는 멋나네.”

 

 높디높은 나무들의 그늘막 아래는 시원하다 못해 이곳이 열대지방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늘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도리어 방문객의 기분을 더욱더 소름 돋도록 만들었다.

 

 그때, 그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 뒤를 따르던 병사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주-륵!

 

“꺄-악!”

 

“뭐야?!”

 

“아..아무것도 아닙니다! 수풀이 우거져서 그만..”

 

“...그래?”

 

 자신의 등 뒤를 따라오는 병사들의 안색 역시 점차 나빠지기 시작하는 걸 그녀는 그제야 눈치채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 임펫 자신 역시 안쪽이 이렇게 우거져 있을 줄 몰랐을 진데 토끼 사냥이라고 착각한 채 즐거운 마음으로 이벤트에 참전한 병사들은 어떻겠는가.

 

‘...혹시 사령관이 진심으로 우릴 쓰러뜨리려고 여기로 유인하는 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 무대가 전부 세팅된 것이라면 어떡하나라는 가능성이 떠오르자 임펫은 진중한 얼굴로 걸음을 멈춰 세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급박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뭔갈 찾았슴다! 여기로 와보십쇼!”

 

“! 야! 뭘 찾았는지는 몰라도 함부로 손대지 마!”

 

 생각보다 긴 산행 탓에 성질이 났던 걸까, 한껏 짜증에 받쳐 있던 브라우니의 목소리에 화색이 돌고 있는 것을 깨달은 임펫은 무언가 심상찮음을 깨달아 재빨리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이동하려 들었으나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쉽사리 그녀에게 길을 터주지 않았다.

 

바스락! 바스락!

 

“에이-씨! 나무도 이렇게나 많은데 수풀은 왜 또 이렇게 우거진 거야?!” 

 

 그녀가 조금씩 수풀을 해치며 나아가는 사이, 그 근방에 있던 병사들은 그녀보다 앞서 브라우니가 찾아낸 공터에 옹기종기 모여들어 어깨를 으쓱대는 브라우니에게 말을 걸었다.

 

“뭘 찾았다는 거야? 브라우니. 또 뭐 별 시답잖은 거면..”

 

“이것 보십쇼. 이뱀. 이거 우리 사령관님 발자국 같지 않슴까?”

 

“..확실히. 우리 애들 발이라기엔 조금 사이즈가 많이 크네. 군홧발인 것도 눈에 띄고.”

 

“그리고 확정적으로 보십쇼! 저기 저 겉옷! 분명 오늘 오전에 사령관님이 입으시던 검다!”

 

“-오.”

 

 옅지만 확연히 햇빛이 들어오는 어느 숲속의 공터, 그곳에는 브라우니의 말마따나 이 주변을 누군가 빙빙 돌고 있었다는 발자국과 커다란 암석 위에 놓인 남서용 해변 가디건이 놓여 있었다.

 

“확실히 사령관이 종종 입던 오드리제 가디건이네. 근데 이게 왜 여기 있지?”

 

“사령관님도 저희처럼 군복차림이 않겠슴까. 그리니 여기서 탈의하신 거 아님까?”

 

“...흐흥.”

 

 생각 외로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세우는 브라우니의 말에 그녀들 무리에서 가장 짬이 높은 이프리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게슴츠레 뜬 눈으로 암석 위의 가디건을 노려보았다.

 

“그럼..저건 줍는 사람이 임자겠지?”

 

“예? 아니! 그런 게 어딨슴까! 이뱀! 제가 발견했지 말임다?!”

 

“아, 하하하..다..다들 왜 사령관님 가디건에 그렇게 목을 매세요? 싸우지들 마요. 네?”

 

스슥-

 

 이프리트의 사적인 감정이 가득 섞인 발언에 그 자리에 모여 들어 있던 병사들의 눈빛이 일순간 돌변했다. 사령관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또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으로 응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병사가 그의 친절에 만족하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와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과 또 독점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가 지녔던 소지품은 그녀들 사이에서 고가의 자산가치로 인정받고 있었다.

 

스슥-

 

“아니. 내가 나중에 사령관한테 직.접. 돌려주려고 그래.”

 

“엑?! 그런 거면 제가 건네야 하는게 맞슴다!”

 

“그..그 브라우니가 못 미더우시면 제가 직접..”

 

“하..하하하. 아뇨. 레프리콘. 제가 분대장이니까..제가 직접..”

 

스슥-

 

 마치 작은 새 하나를 두고 사냥 준비 자세를 잡는 고양이처럼 서로 살짝이 밀어대며 공터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스틸라인 병사들. 지금 그녀들 사이에는 계급장도, 또 상호 간의 존중도 중요치 않았다.

 단지 그녀들이 노리는 건 단 하나, 어떻게든 사령관이 입었던 저 가디건을 누가 먼저 가지느냐가 우선이었다.

 

바-스락!

 

“야! 이 녀석들아! 거기 가만히 있어!”

 

“-!”

 

 우거진 수풀을 거의 다 해쳤는지, 방금보다 가까워진 임펫 중사의 외침이 그녀들의 귓방망이를 두들기자 그녀들은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단숨에 땅을 박차고선 가디건을 향해 내달렸다.

 

파-바박!

 

‘중사님이 이걸 보면 무조건 중사님이 전달한다고 한다! 그 전에-!’

 

 사뭇 보물을 발견한 트레져 헌터처럼 비장한 얼굴로 공터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병사들. 지금 그녀들의 머릿속에는 이벤트 중이라는 상황 인식도 없이 오로지 눈앞에 놓인 저 가디건을 누가 가지느냐 밖에 없었다.

 

탁-!

 

“이익-! 저건 내 거야!”

 

“아님다! 이건 제 껌다!”

 

 순식간에 좁혀진 가디건과의 거리, 이프리트는 재빨리 몸을 날려 가디건을 낚아채려 들었으나 작은 체구 탓에 팔이 마음대로 길게 늘어나진 못하였다. 그리고 큰 체구 탓에 출발이 느렸던 노움이나 어버버하다가 늦게 출발한 레프리콘은 이프리트보다 한 걸음 늦은 박자로 공터로 들어선 탓에 가디건의 근처도 가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녀들보다 조금 빨리 출발하고 이프리트보다 조금 더 큰 체구를 가진 브라우니의 손은 가디건의 옷자락에 닿는 것에 성공했다.

 

파박-!

 

“-제가 건졌슴다! 으하하핫!”

 

 마치 이미 이벤트 승리 보상이라도 얻은 것처럼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바위에 놓여 있던 가디건을 하늘 위로 들어 올린 브라우니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높이든 가디건을 공중에 들고 빙글빙글 돌려대었다.

 그러다 임펫 중사한테 들키면 어쩌려는 건지, 그런 그녀를 어이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분대원들의 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브..브라우니!”

 

“레후 상뱀님, 그렇게 가지고 싶다는 눈빛을 보내도 소용없슴다!”

 

“아-아니! 그...그 핀들은 대체?!”

 

“-튀어!”

 

“?”

 

 수상한 정황을 어떻게든 브라우니에게 전달하려는 레프리콘과 달리 금세 상황을 판단한 이프리트는 공터 바깥으로 몸을 날리려 들었다. 그런 그녀들의 행동에 브라우니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그녀의 발치 아래로 무언가 동글동글한 것들이 굴러 나왔다.

 

데굴-

 

“...어?”

 

“-숙여요!”

 

 노움은 반사적으로 가디건을 쥔 채 멍하니 서 있는 브라우니에게 달려들었으나 그것보다 브라우니의 발아래의 물건이 터지는 것이 한 발 더 빨랐다.

 

달-칵!

 

퍼-버벙!

 

펑!

 

“으게에에엑!”

 

“꺄아악!”

 

 브라우니와 레프리콘, 그리고 노움의 비명이 적막만이 흐르던 숲속의 한가운데서 폭발음과 함께 동시에 울려 퍼지자 그 소리에 공터 가까이 걸어오던 임펫과 남은 분대원들의 걸음이 다급해졌다.

 

“무-무슨 소리야?! 이게!”

 

“저..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부스럭-부스럭!

 

“....?”

 

“이...이게 뭠까?!”

 

 우거진 수풀을 해치며 한달음에 공터로 합류한 나머지 스틸라인 대원들은 새파래진 안색으로 분홍빛으로 물든 공터 일대를 둘러 보았다.

 

“으으...”

 

“으갸아...”

 

 브라우니를 껴안은 채 쓰러진 노움과 그 근처에 쓰러진 채 머리를 좌우로 빙글빙글 돌려대는 레프리콘. 그리고 땅바닥에 엎드린 채 자신의 머리카락 색으로 온몸을 덮은 이프리트까지.

 

“이게 대체..야! 너 임마! 일어서 봐! 대체 무슨 일이..”

 

-찰칵!

 

“응? 이 소린..”

 

 도무지 정황이 유추되지 않는 사건 현장에 임펫과 스틸라인 멤버들의 어안이 벙벙해져 있을 때, 그 빈틈을 놓치지 않은 총격이 수풀 속에서 동시에 날아들었다.

 

투-타다다다!

 

“-전부 숙여!”

 

“으-와아앗?!”

 

 노리쇠가 장전되는 소리와 함께 수풀 속으로 몸을 숨긴 임펫과 달리. 여전히 멍한 얼굴로 땅바닥에 쓰러진 전우들의 시체(?)를 관람하던 병사들은 갑작스레 자신들을 향해 날아드는 총격에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퍽!

 

“으갹!”

 

퍼-벅!

 

“으아앗?!”

 

“-쯧!”

 

 브라우니부터 레프리콘들까지. 아무리 B등급이라지만 수어 번의 전장을 헤쳐온 병사들이 마치 허수아비처럼 쓰러지는 광경에 임펫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차고야 말았다.

 

‘이벤트라고 정신 놓지 말라니까! 진짜!’

 

“모든 병사는 지금 당장 은엄폐 실시! 엄폐하라고!”

 

“예..옛!”

 

 전우들의 비명에 속속이 몰려드는 스틸라인 대원들을 향해 은엄폐를 명령한 임펫은 조심스레 자신의 옆에 쓰러진 레프리콘을 훑어보았다.

 

“으에에...”

 

‘..어디서 날아온 거지? 쯧. 사방이 나무니 이거 진짜.’

 

 이런 우거진 수풀은 먼저 색적에 성공한 쪽이 유리하다. 특히나 상대가 이런 산간 지역 전투에 능숙하다면 더욱더 그렇다.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던 임펫은 조심스레 몸을 숨기고 있던 수풀의 옆을 흔들었다.

 

부스럭-!

 

타-탕!

 

‘...방향은 확인.’

 

 수풀이 흔들리자마자 수풀 사이를 비집고 터져 나오는 페인트 볼. 임펫은 소리로 상대의 위치를 파악한 뒤, 저자가 누구인가를 유추해 가기 시작했다.

 

‘...발할라인가? 발할라의 님프? 아니야. 발할라라기엔 교전 거리가 너무 짧아. 그렇다면 앵거 오브 호드인가? 하지만 또 그렇다기엔 그쪽은 자동화기를 이렇게나 정밀하게 쓰는 녀석이..’

 

부스럭-

 

“주..중사님. 대체 이게 무슨..”

 

타-앙!

 

“꺄-악!”

 

 낮은 포복으로 조심스레 자신의 근처로 기어오던 노움의 엉덩이 위를 정확히 맞추는 사격 실력, 임펫은 그 실력에 저쪽이 발할라 부대원이라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그녀들이 자신들을 먼저 공격하는 것인가.

 임펫은 곁으로 다가온 노움이 흘린 발포 콘크리트 수류탄을 매만지며 지금 이 대치 상황을 어떻게 자신들 쪽으로 유도할 지에 대해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사령관의 소재지를 파악했나 보네. 쳇.’

 

찰-칵 찰칵

 

‘..발할라의 화력은 우리보다 못 미칠 터. 한 방에 밀어붙이고 알비스만 조심해서..’

 

 바스락-!

 

“...응?”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임펫 중사가 머릿속에서 산간 전투 시뮬레이터를 구체적으로 짜 내리던 그때, 갑자기 그녀의 머리 위로 나뭇잎 여러 개가 투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건?”

 

 숲속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 별로 신경 쓸 일도 아니다. 하지만 떨어진 나뭇잎이 아직 색이 새파란 어린 잎사귀라면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임펫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옅은 햇빛이 들어오는 숲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옅으나 어두운 공간에 익숙해진 탓에 평소보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햇볕, 그 탓에 반사적으로 좁혀들어가는 속눈썹. 그리고 흐릿한 시야 사이로 보이는-

 

 -나뭇가지를 한 손으로 붙잡은 채 다른 손으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거구의 사나이. 그는 바로 그녀가 알고 있는 사령관의 모습이었다.

 

“-뭣?!”

 

으-직!

 

 예상 밖의 상황에 반쯤 감겼던 임펫의 눈이 휘둥그레 떠짐과 동시에 남성은 그녀에게 흔들어대던 손에 걸린 기다란 연통의 핀을 이빨로 거칠게 뜯어내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임펫은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총의 총구를 그를 향해 겨누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상공을 주시! 사령관이다! 사령관 동무다!”

 

“예? 사령관님이라뇨? 갑자기?”

 

“하이. 하이.”

 

달칵-!

 

투-다다다!

 

 사령관의 손에서 연통이 떨어지는 순간, 임펫은 그를 향해 페인트 총탄을 뿜어내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으니 어디로든 도망가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녀의 중론이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임펫이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자 곧장 붙들어 매던 나뭇가지를 놓아버리며 아래로 훅-하고 스스로 떨어져 그녀의 사선에서 벗어났다.

 

탁-!

 

“에? 에? 사..사령관님?”

 

“오! 레프리콘. 잠깐 실례할게.”

 

 사뿐히 흙과 나뭇잎이 뒤섞인 땅바닥에 착지한 사령관을 반기는 것은 임펫의 명에 따라 조신히 바닥에 엎드려 있던 레프리콘 하나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사령관이 자신의 허리를 사이에 두고 양 무릎을 구부리고 있자 레프리콘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응? 레프리콘. 얼굴색이 왜 그래?”

 

“사..사령관님?! 어디서?!”

 

“...음. 위에서?”

 

찰-칵!

 

 레프리콘의 당혹 섞인 물음에 사령관은 언제나 입가에 머금고 다니는 반듯한 미소를 지으며 허벅지 옆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어 들었다. 그 모습에 레프리콘은 화들짝 놀라 그의 가랑이 사이에서 빠져나오려 했으나-

 

“미안해. 하지만 이건 게임이니까. 화내기 없기?”

 

탕-!

 

“꺄-악!”

 

 사령관은 가차 없이 레프리콘의 텅 빈 등 뒤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 발포음을 신호로 사방에 있던 스틸라인 병사들이 재깍 몸을 일으켜 세워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사령관! 얌전히 투항해!”

 

“사령관님! 가만히 계시면-!”

 

“음..미안하지만 순순히 안 잡혀줄 건데.”

 

치-이익!

 

 자신을 향한 투항 권고에 사령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꿇고 있던 무릎을 살짝 일으켜 세우곤 방금 자신이 떨군 연막탄의 희뿌연 안개 속으로 내달렸다. 그 모습에 스틸라인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는 사이, 가뜩이나 어두운 숲속 그림자 아래서 희뿌연 안개가 점차 짙어지기 시작했다.

 

“야이 멍청이들아! 모두 연막에서 멀어져!”

 

“예?! 아, ㅇ-”

 

탕-!

 

“꺄악!”

 

 임펫의 고함에 병사들이 재깍 다시 몸을 숨기려는 들었으나 그 사이에 안개 속에서 또 한 번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또 한 명의 탈락자가 생기자 임펫은 혀를 쯧-하고 차며 분홍빛 바다가 되어버린 공터 쪽을 등진 채 몸을 숨겼다.

 

‘설마 사령관이 역으로 우릴 공격해올 줄이야.’

 

탕-! 탕탕!

 

“꺄악-!”

 

“사..사령관님! 언제-?!”

 

탕-!

 

 연막이 점점 퍼짐에 따라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의 머릿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하자 임펫은 생각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재빨리 손에 쥐고 있던 발포 콘크리트 폭탄을 제 등 뒤 공터 방향으로 터트렸다.

 

우득-! 까드득-!

 

“-읏쌰.”

 

 공터 쪽에 터트린 발포 콘크리트의 벽으로 몸을 확실히 숨긴 임펫은 작은 미소와 함께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상상 밖인데. 이거.”

 

 사령관은 기본적으로 지휘관이다. 하지만 그 탓에 사령관은 전장에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비록 나선다고 하더라도 컴페니언의 보호를 받으며 전술 지휘관으로 활약하지 직접 총을 들고 나서 싸우진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 아니, 그 이전에 사령관이 저렇게 몸을 놀릴 수 있을 줄이야. 임펫은 처음 겪는 사령관의 면모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식은땀을 흘려 대었다.

 

탕-! 타-다당!

 

“으갹-!”

 

“...우리 애들. 사령관 동무한테 다 따이겠는데?”

 

 시시각각 다른 곳에서 터져 나오는 총성은 분명 무자비한 사령관의 권총일 터.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들려오는 하찮은 비명은 방금까지 의기양양하던 자신의 부하들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권총 사격을 배웠을까, 임펫은 자신의 질문에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방에 권총술의 대가들이 득실득실한 데. 유추하는 게 우습지. 암.’

 

“...핫. 사면초가 그 자체네.”

 

 임펫은 잡생각을 멈추곤 자신의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려 들었다. 우선 자신이 애용하는 바주카도 없고, 심지어 주변 환경마저 불리하다. 그나마 내세울 만한 것이라면 자신들의 머릿수겠지만..

 

“브라우니들 모두 탈~락!”

 

“..사령관 동무! 너무 그렇게 우리 애들 괴롭히진 마!”

 

“하하하-! 미안! 임펫! 선처할게!”

 

‘...여유 그 자체네. 우리 동무♪’

 

 아마도 대부분은 단숨에 저 연막 속에서 탈락했으리라. 임펫은 연막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사령관의 말에 핀잔을 내던지며 손에 든 자동소총의 페인트 탄알을 확인했다.

 

찰-칵

 

‘...총알은 넉넉한데. 상황이 썩..’

 

 괜히 포위망을 풀고 이 공터로 모여든 것이 되려 독이 되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임펫은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나 품었다.

 

‘..설마. 이 모든 게 우리 동무 아이디어는 아니겠지?’

 

“자자! 임펫! 이제 너 하나 남은 거 같은데?”

 

‘...너희 모두 돌아가면 연병장 100바퀴.’

 

 설마하니 채 2분을 못 넘길 줄이야. 임펫은 사령관의 말에 눈살을 좁히며 혀를 끌끌 찼다. 아니면 그만큼 그의 총탄이 매서운 걸까. 임펫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연막 너머로 총구를 겨눈 채 엎드려 누운 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의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동무와의 데이트라면 언제나 환영이긴 한데. 장소가 별로네? 어때? 동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내일 나랑 같이 느긋하게 해수욕이나 즐기지 않을래?”

 

“음. 매력적인 제안이긴 한데. 하지만 그걸 순순히 받아들였다가는 하늘에서 우릴 보고 있는 애들이 가만히 안 있을걸?”

 

“어머. 동무가 남의 시선에 그렇게 연연할 줄이야. 브라우니들한테서 듣기로는 탈론허븐가 하는 거 동무가 허락한 사이트라며?”

 

“-허락한 적 없어! 그거 전부 낭설이야! 낭설!”

 

‘...방향 확인. 거리 확인.’

 

 정곡을 찔렀는지 격하게 반박해오는 사령관의 외침에 임펫은 조준경에 오른눈을 살짝이 가져다 대었다. 연막 탓에 시야가 흐릿하기는 하지만 이 넓은 숲속 전체를 메꾸기에는 부족한 분량 탓인지 점차 주변 사물들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한 타이밍이었다.

 

‘..여기서 동무의 약한 부분을 한 번 더.’

 

“사령관 동무. 그거 알아? 라붕이 대장은 사령관 동무를 꽤 싫어한다는데?” 

 

“-어? 어어?! 그..그거 정말이야?! 임펫?”

 

‘물론 사령관을 기피하는 정도지만...보였다.’

 

 어젯밤 술에 거나하게 취한 부하가 제 상관을 비웃으며 내뱉은 말 중 하나를 콕 집어 조금 부풀려 던지자 그녀의 총구가 향한 방향에서 당혹 섞인 대답이 곧장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걸 신호로 임펫은 사령관의 어깨로 머리로 유추되는 인영을 향해 총성을 내질렀다.

 

투-다다다!

 

“-으으읍!”

 

“?!”

 

 분명 머리다. 둥그스레한 것이 분명 머리가 틀림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어깨 쪽을 겨누고 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영 시원찮은 걸 임펫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겨눈 대상을 흐릿하게나마 가리고 있던 연막이 완전히 걷히자 그 속에서 튀어나온 건 다름 아닌 입이 테이프로 막힌 노움이었다.

 

“-뭣.”

 

“읍! 읍! 읍!”

 

“흐음. 이건 좀 비겁해 보이려나?”

 

 전투복 상의를 전부 분홍색으로 물들인 노움의 입 막힌 탄성에 임펫이 채 정신을 못 가다듬는 사이, 또 한 번 사령관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속을 파고 들어왔다. 문제는 그 거리가 그녀의 바로 옆이라는 것이었다.

 

“-사령관 동무!”

 

“여! 임펫. 어때? 영화에서 본 위장술이긴 한데 부하들을 상대로 써먹긴 좀 그렇지?”

 

타-다다다!

 

 어느새 자기 옆으로 다가온 사령관이 여전히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자 임펫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향해 다시 총성을 내뿜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그와 동시에 그녀의 품 안쪽으로 쏙 들어섰다.

 

“이런-!”

 

팍-!

 

 갑자기 자신을 향해 파고들어 사선 바깥으로 벗어난 그의 행동에 임펫은 난색을 하며 개머리판으로 파고든 그를 내려치려 들었다. 허나 사령관 역시 그걸 예상했다는 듯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개머리판을 양손으로 흘려버리며 단숨에 텅 빈 그녀의 겨드랑이에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읏챠!”

 

탁! 타-닥!

 

“크윽-!”

 

 오른팔을 시작으로 오른 어깨, 그리고 왼 다리를 걸고선 넘어지는 사령관의 육탄공세에 임펫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려 흙바닥 위에 철퍽 엎드린 꼴이 되어버렸다. 

 

쿠-당!

 

 눈 깜짝할 사이에 품을 파고 들어온 사령관에게 온몸의 자유를 빼앗긴 임펫, 그녀는 한순간에 벌어진 사령관의 몸놀림에 약간의 배신감과 희열을 동시에 느끼며 신음 대신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몸동작은 대체 누구한테서 배운 거야? 우리 동무는?”

 

“음-세이프티였나? 아닌가. 리엔에게서였나?”

 

“...역시 우리 동무야. 배우는 거 하나는 빠르다니까? 다시 한번 반했어.”

 

“칭찬 고마워. 임펫.”

 

 거친 숨을 내 몰아쉬는 임펫과 반대로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사령관은 담담한 얼굴로 그녀의 종아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리고 이윽고 단 한 발의 총성을 마지막으로 어두운 숲속에 다시 한번 적막이 내려앉았다.

 

159)

 

덜-컹! 덜걱!

 

“...어라? 이거 잠겨 있었네?”

 

 서늘한 바닷바람이 들어오는 한적한 비축창고의 내부, 불도 켜지 않은 창고의 그늘막 아래서 한 남성이 자신의 머리 위에 쓴 방탄모를 긁적이며 중얼대고 서 있었다.

 

“이거 니퍼 같은 거 가져와야 하나?”

 

 뭔가 맘대로 일이 안 풀린다는 듯 중얼대는 남성의 앞에는 거대한 컨테이너가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남성은 그 컨테이너의 문에 걸린 자물쇠를 매만지다 이내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야! 짬 타이거! 너 때문에 안드바리가 철저히 문단속하고 다니잖아!”

 

“-여기 왔을 때부터 그랬다! 그 아이는!”

 

“..그래?”

 

 배기관에서 웅웅 울려 퍼지는 여성의 앙칼진 외침에 남성은 할 말 없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며 뒷머리를 긁적이려 들었다. 하지만 이내 제 머리 위에 달린 방탄모 탓에 머리를 긁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짜증을 한껏 표했다.

 

“...아오. 더워 죽겠는데. 쯧. 여기라면 근처에 아무도 없겠지. 리리스도 없는데. 뭘.”

 

달-칵!

 

 뭔가를 혼자서 중얼거리던 남성은 이내 거친 손놀림으로 제 머리 위에 놓인 방탄모의 끈 잠금장치를 풀어버렸다. 그리고는 방탄모를 벗겨 심히 오랜만에 세상 밖 공기에 노출된 자신의 정수리 위를 매만졌다.

 

“어우. 이제 좀 살겠다.”

 

“대장-님! 대장님 뇌파가 느껴지는데요?!”

 

 저 멀리서 들려오는 여성의 외침에 방탄모를 벗어 던진 남성, 라붕이 작전관은 이 창고 어딘가에 있을 부하를 향해 자신 역시 목청을 세웠다.

 

“벗었다. 잠깐! 것보다 증폭기들은 다 있냐?!”

 

“네-! 여기 이게 마지막에요!”

 

“알겠다-!”

 

 부하의 보고가 들려옴에도 라붕이 작전관의 찌푸려진 인상은 펴질 줄을 몰랐다. 날씨가 더운 탓도 있거니와 지금 눈앞의 컨테이너가 쉽사리 열리지 않는 것도 그의 짜증에 한몫했지만 제일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리리스가 여기 없을 줄이야. 하긴. 내가 여기 올 줄은 리리스도 모르고 있었겠지.’

 

 그가 여기를 방문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자신의 든든한 우군을 찾아 이곳까지 수풀을 헤쳐가며 왔건만 정작 그 우군은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았던 탓에 그의 미간에 잡힌 주름은 펴질 줄을 몰랐다.

 

‘...리리스가 여기 아니면 어디에 있으려나. 애당초 이번 게임에 참가는 했으려나?’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연병장 주변에서 아르망과 리제를 찾는 편이 나았을지도. 라붕이 작전관은 속으로 다른 우군을 떠올려 보았으나 이내 그녀들의 마지막 모습을 상기하며 온몸을 부르르 떨어대었다.

 

‘아니야. 리리스나 소완은 몰라도 아르망이랑 리제의 그 눈빛은 심상치 않아 보였어. 분명..’

 

“...젠장. 하나 안 풀리면 열까지 안 풀린다더니. 딱 지금이 그 꼴이네.”

 

 자신의 작금의 상황에 라붕이 작전관은 저도 모르게 팔짱을 끼고선 눈앞의 컨테이너 자물쇠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 그에게 있어 가장 의지할만한 대상은 아무리 추산해봐도 열 손가락 내외였다. 그 사실이 땀을 뻘뻘 흘리는 그의 메마른 목을 더욱더 바싹이게 만들었다.

 

“아이고. 목도 말라 죽겠는데 이놈의 컨테이너는 열리지도 않고.”

 

“주인님. 열쇠 드릴까요? 아니면 니퍼를 드릴까요?”

 

“열쇠가 있으면 니퍼가 왜 필요하겠니. 열쇠 있으면 열쇠나 다오.”

 

“네~♡여기 있어요.”

 

“응. 그래.”

 

 자신의 혼잣말에 스리슬쩍 시야로 들어오는 검은 장갑과 흰색 장갑,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반듯한 열쇠 꾸러미. 라붕이 작전관은 그제야 턱을 매만지는 것을 멈추곤 서로 색이 다른 장갑을 타고 올라가 제 옆에서 싱글벙글 웃고 서 있는 그의 경호원과 눈을 맞추었다.

 

“...?”

 

“? 왜 그러세요? 주인님. 찾으시는 열쇠가 이 컨테이너 열쇠가 아니셨나요? 아! 제가 열어드릴까요? 후훗. 그럼 겸사겸사 주인님의 음료수도 따드릴..”

 

“아니. 너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

 

 너무나 자연스레 자신의 왼편을 차지하고 서 있는 리리스의 행태에 라붕이 작전관은 기쁘다기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그녀에게 물음을 건네었다. 그러자 그녀는 여전히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그의 멍한 시선을 받아내었다.

 

“이 근방을 아이들과 함께 탐색하고 있었죠. 그러다 주인님의 뇌파가 느껴져서..”

 

“애들? 아, 안드바리랑 실키? 걔들은 그럼 지금 어디 있냐?”

 

“..한 3km정도 떨어진 곳에요.”

 

“...”

 

 방탄모를 벗은 지가 거진 20초가 안 되어가는데 그 찰나의 시간에 3km의 거리를 주파해서 왔다는 건가. 라붕이 작전관은 속으로나 겉으로나 할 말을 잃었다는 눈치로 그의 경호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게 SS랭크 바이오로이드인가?’

 

“어머. 주인님. 아무리 오랜만이라지만 그렇게 빤히 바라보시면 리리스는..”

 

“...너 어젯밤에도 봤잖아.”

 

“그랬나요? 후훗.”

 

 매일같이 보는 그녀의 미소인데. 오늘따라 어딘가 평소보다 더 께름칙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착각일까. 라붕이 작전관은 게슴츠레 뜬 눈으로 한 손을 뺨 위에 얹은 리리스의 위아래를 훑다 이내 그녀에게서 열쇠를 건네받았다.

 

잘그락-!

 

“그럼 안드바리랑 실키들도 이번 이벤트에 참가하는 거냐?”

 

“...네. 후훗. 주인님도 이번 이벤트에 참가하신 모양새네요?”

 

“못 봤냐. 하늘에 걸린 전광판. 내가 바로 상품이란다. 상품. 그것도 걸어 다니는 잭팟.”

 

찰칵!

 

‘..이프리트의 말마따나 내가 괜히 자의식 과잉을 한 건가? 평소보다 조금 께름칙하다는 것만 빼면 평소의 리리스 같은데.’

 

덜-컹!

 

“후우. 드디어 열렸네.”

 

 방금까지 열릴 기색이 없던 문이 열리자 라붕이 작전관은 잡생각은 치워 둔 채 컨테이너 안에 놓인 여러 박스 중 하나의 봉인을 뜯어내었다. 그리고는 그 안에 놓인 색색의 음료수 캔 중 서너 개를 끄집어내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서 있는 그녀에게 선뜻 내밀었다.

 

“너도 사령관 때문에 고생이 많다.”

 

“후훗. 아니요. 주인님. 저는 이렇게 주인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걸요?”

 

‘어우. 낮 뜨거워.’

 

 내민 음료수 캔 중 레몬 쥬스를 집는 리리스의 얼굴에는 아까와 여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누가 봐도 편안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그 얼굴 탓에 라붕이 작전관의 얼굴은 조금씩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어젯밤의 일은 완전히 잊었나?’

 

 어젯밤, 사령관을 습격한 리제와 라붕이 작전관와의 관계는 지휘관들 덕택에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 사건을 직접 목격한 리리스와의 오해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그였다.

 거기다 본대의 리리스가 건넨 여러 의심스러운 정황도 있었기에 그는 그 세 명 중 그나마 가장 침착한 그녀와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지만 저렇게 방긋방긋 웃고 서 있으면 물어볼 것도 목구멍 아래로 쏙 내려갔다.

 

‘어떻게 서두를 뗀다? 끄응.’

 

딸-깍!

 

“주인님. 주인님 먼저 드세요. 후훗.”

 

“...오냐.”

 

 자신이 마시려고 들어 올린 줄 알았는데. 그걸 도리어 따기만 하고 자신에게 순순히 건네는 리리스의 행동에 라붕이 작전관은 생각을 멈추곤 한쪽 팔에 남은 음료수 캔들을 몰아 들곤 그녀가 내민 캔을 받아들였다.

 

꿀꺽-꿀꺽

 

“-크으! 레몬 맛 괜찮네!”

 

“후훗. 그렇죠? 여기 처음 배정을 받았을 때 안드바리양이 제게 건네준 음료수랍니다. 저도 꽤 좋아해요.”

 

“오. 그러고 보니 안드바리는 널 꽤 많이 따랐지? 어떻게 그렇게 친해진 거냐?”

 

“어머. 그렇게 말씀하시는 주인님은 처음 뵙자마자 안드바리양을 무릎 위에 앉히셨다 들었는데.”

 

“..그거야 애가 울고 있으니까 얼떨결에 앉힌 거지. 뭐.”

 

‘그래. 이거야. 이거. 이렇게 잡담을 나누는 정도면 충분하지.’

 

 세상에 이런 미인과 이렇게 자연스레 대화할 기회가 몇이나 있겠는가. 라붕이 작전관은 자신이 처한 작금의 사태도 잊은 채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곤 아직 캔에 남은 음료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지금의 그는 세상 어느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샌님 그 자체였다.

 

 그때, 창고 안쪽에 있던 노움이 양팔 한가득 증폭기를 끌어안은 채 그들을 향해 황급히 달려와 말을 건네었다.

 

“대장님! 증폭기 다 회수-어라?! 리리스씨. 언제 오셨어요?”

 

“...어머. 노움양. 계셨네요?”

 

 방금까지 없던 인물이 훅 나타나자 당황한 노움과 반대로 아까까지 생글생글 웃고 있던 리리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확-하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걸 눈치챈 노움의 입에서는 히익-하는 비명이 새어 나왔으나 정작 라붕이 작전관은 노움에게 음료수를 건네느라 보지 못하였다.

 

“뭘 그렇게 울상을 짓냐? 수고했어. 증폭기는 나한테 주고 이거나 받아.”

 

“아, 네. 네. 대..대장님. 그런데 리리스씨..”

 

“-쯧.”

 

 왠지 누군가가 혀를 찬 거 같은데. 라붕이 작전관은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려 이리저리 둘러다 보았다. 하지만 이곳에는 지금 언제나처럼 나긋나긋한 리리스와 왜인지 울상인 채로 제 곁에 달라붙는 노움, 그리고 얼굴도 안 비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

 

“기분 탓인가? 피곤하긴 한 갑다. 응? 노움. 왜 그렇게 안색이 허옇냐? 자, 캔 따줄게. 마셔.”

 

딸-각!

 

 라붕이 작전관은 자신이 예민해진 탓이라 여기며 노움에게 건네려는 음료수 캔의 따개를 열어 재꼈다. 그러자 또 한 번 등 뒤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려온 것만 같았지만 그는 여전히 기분 탓이라 넘겨짚었다.

 

“자, 자. 여기. 이거나 마시고 울상 좀 풀어.”

 

“네..네에..대장님.”

 

“덩치도 산만 한 녀석이 산행 좀 했다고 상관한테 삐지기는.”

 

“...주인님. 혹시 노움양과 함께 걸어오셨나요?”

 

“응?”

 

 경호원의 물음에 라붕이 작전관은 노움과 품에 있는 물건을 교환하려던 중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분명 방금과 다를 바 없는 얼굴인데 눈빛이 조금 옅어 보이는 건 들어오는 햇빛이 옅은 탓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연설장에서 얘 만나서 같이 데리고 왔는데.”

 

“...흐응. 주인님. 어째서 여기로 바로 안 오시고 노움양을 먼저 찾으신 건가요? 네?”

 

‘얘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꼬치꼬치 캐묻는 느낌인데.’

 

 평소라면 그러셨나요? 하고 넘겨짚었을 점잖은 아가씨가 마치 그날이 온 여친처럼 되물어오자 라붕이 작전관의 눈썹이 또 한 번 이마를 향해 올라섰다.

 

‘어젯밤 일 때문에 아직 꿍해 있나? 그리고 차마 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그랬다고 할 수는 없으니..’

 

“아니. 뭐, 제일 가까이에 있는 녀석이기도 했고. 또 얘도 믿을 만한..”

 

“...믿을 만한? 후후. 주인님. 저와 노움양에 대한 주인님의 신뢰도는..비슷한가요?”

 

“...”

 

 마치 스무고개를 하듯 계속되는 질문에 라붕이 작전관은 그제야 무언가 심상찮음을 느끼며 음료수들을 끌어안은 채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뚜벅-

 

“아..아니. 그야 당연히 우리 리리스가 최고지. 어!”

 

“그렇죠? 그렇죠? 주인님. 그 요리사도 아니고, 그 스토커도 아니고. 그 폐하폐하 하면서 주인님 곁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꼬마도 아니고. 주인님의 최고의 바이오로이드는 바로 저겠죠? 그렇죠?”

 

또각-!

 

 자신이 한 걸음 뒷걸음질을 칠 때마다 또각대는 굽소리와 함께 거리 간격을 넓히지 않는 리리스의 행동에 라붕이 작전관의 안색은 급격하게 어두워져 갔다. 그의 뒤로 몸을 숨긴 노움 역시 마찬가지.

 

뚜벅-!

 

“어어-가..가까이 오지 마라.”

 

또각-!

 

“네? 주인님. 어째서요? 이렇게 주인님을 사랑하는, 주인님도 사랑하시는 리리스가 앞에 있는데. 어째서 거리를 넓히시려는 건가요?”

 

뚜벅-!

 

“아..아니. 거리를 넓히려는 게 아니라..”

 

또각-!

 

“그렇게 주인님께서 저를 피하시면 리리스는 너..무. 슬프답니다?”

 

‘그야 네가 지금 어젯밤 리제랑 똑같은 눈을 하고 있으니까!’

 

 이제야 눈치챈 것이지만 그녀의 눈빛이 옅어져 보인 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다. 햇빛이 무색해질 만큼 번쩍거리는 리리스는 금빛 눈동자는 그야말로 사냥감을 목전에 둔 뱀의 눈이었다.

 

‘다른 의미로 리제보다 더 무서워!’

 

“그..그 리리스. 우리는 이만 합류 포인트로 먼저 가 봐야 하니까..너..너는 안드바리랑 애들 데리고..”

 

“...합류 포인트요? 주인님. 혹시 저 이외에도 협력자가 밖에 있나요? 네?”

 

‘씨발! 말실수했다.’

 

 요동치는 심장 탓에 헛나오고 만 자신의 말에 리리스가 웃음기를 싹 지우곤 고개를 오른쪽으로 천천히 기울이자 라붕이 작전관의 양팔에 소름이 우수수 솟아나기 시작했다.

 만약 눈앞에 있는 게 리제였다면 머리에 꿀밤 한 대 넣는 정도로 대응을 했을 테지만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언제나 맏언니 행세를 하던 리리스.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리리스의 정색이 그에게 가져다주는 공포는 그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그게 말이다? 응? 사방에 본대 애들이 있으니까 밖..밖에 또..”

 

“주인님. 밖에 어떤 분들이 도와주신다고 주인님을 꼬셨는지 모르지만. 그분들은 이제 주인님께 전혀 필요가 없답니다? 아, 본대 분들이 주인님을 덮쳐올지 모른다는 생각도 접어주셔도 된답니다. 저 하나면 다른 분들은 뭐..후훗.”

 

“아..아니. 그..사령..”

 

“사령관이라는 남자를 잡기 전까지 시간은 많으니까요. 그동안 주인님께서는 이곳에서 저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랍니다? 주인님. 주인님. 뭘 하고 놀까요? 네? 뭘 하고 놀까요? 주인님.”

 

‘이미 사령관을 잡는 건 확정이냐?’

 

 원래 계획대로 사령관을 한 방 먹일 수 있는 것은 원하는 바였지만 그 전에 자신이 한 방 먹게 생겼다고, 라붕이 작전관은 포식자 앞에 선 생쥐마냥 오들오들 떨어대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조차 볼썽사납기보다는 마음에 들었는지 리리스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한층 더 활짝 피어올랐다.

 

“아아-오늘에서야 드디어 주인님과 진정으로 맺어지는 거죠? 후후후. 주인님. 제가 이날만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왔는지, 주인님께서는 모르실 거랍니다?”

 

‘씨발. 이프리트 이 새꺄. 이게 어딜 봐서 호감도 떡락 바이오로이드냐. 씨발.’

 

 결국에는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는 걸 깨달은 라붕이 작전관은 흠칫흠칫-들썩대는 어깨를 주체하지 못한 채 품에 들린 음료수 캔들을 바닥 아래로 떨구고 말았다.

 

땡-! 땡강!

 

“어머? 주인님. 음료수들을 떨어뜨리셨어요.”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음료수 캔들을 줍기 위해 리리스는 오들오들 떨어대는 그를 앞에 두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때, 여태껏 그의 뒤에 숨어 있던 노움이 뭔가를 결심한 눈치로 들고 있던 총기의 어깨끈을 떼어내었다.

 

“대..대장님. 잠깐 실례할게요!”

 

잘그락-잘그락

 

“엥? 야! 노움. 너 대체 뭐..”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등 뒤에 숨어 있던 노움이 자신의 허리춤에 무언갈 둘러매기 시작하자 라붕이 작전관은 때에 맞지 않은 그녀의 행동에 적잖이 당황하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리리스는 시큰둥한 얼굴로 음료수 캔들을 하나둘 집어 들었다.

 

“...노움양. 노움양도 마찬가지랍니다. 여기는 주인님을 위해 제가 안배한 장소이니 이제는 그만 나가셔도 된답니다?”

 

쭉-!

 

“으윽!”

 

 갑자기 허리춤에 무언가 데롱데롱 매달린 듯한 묵직한 감각과 함께 밧줄이 강하게 당겨지는 감각들이 동시에 덮쳐오자 그의 얼굴이 살짝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노움은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뭔가 비장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대..대장님. 대장님 허리에 증폭기들 접어서 묶어뒀으니 이동하실 때 주의하세요!”

 

“뭐?”

 

“? 네?”

 

 노움의 갑작스러운 말에 라붕이 작전관은 무어라 할 새도 없이 자신의 온몸이 하늘 위로 훅-날아오르는 것만 같은 감각에 휩싸여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욱!

 

“어-어어?!”

 

“착지하실 때 주의하세요!”

 

 등과 엉덩이 부근에서 느껴지는 투박한 손길, 분명 노움이 자신을 들어 올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내던지려는 방향은 다름 아닌 햇살이 들어오는 창고 바깥문. 그녀의 의도를 깨달은 라붕이 작전관의 안색은 순식간에 퍼렇게 질려갔다.

 

훙-!

 

“우아아악-!”

 

“-! 주인님!”

 

 갑작스레 가까워지는 햇빛과 흙바닥, 라붕이 작전관은 반사적으로 가까워지는 땅바닥을 향해 왼 어깨를 내밀었다.

 

쿠-당! 탕탕!

 

“으으-..”

 

 한껏 몸을 여러 번 구른 덕택일까, 아니면 오리진 더스트 덕택일까. 생각보다 적은 충격에 그는 금세 벌떡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일어선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리리스의 허리를 붙잡은 노움의 모습이었다.

 

“대장님! 도망치세요!”

 

“쯧! 당장 제 허리에서 떨어지세요! 노움양!”

 

“얼른요! 대장님!”

 

“어, 어어. 아..알았다! 어!”

 

 아무리 이성을 놓은 것처럼 보여도 차마 같은 동료를 공격하는 건 주저하는 건가. 라붕이 작전관은 그런 그녀의 이성에 감사하며 황급히 흙바닥 위를 박차고 뛰어나가 창고 바깥의 도로를 향해 내달리려 들었다. 하지만-

 

“? 대장님! 벌써 여기 와 계셨던 거에요?”

 

“와아-! 대장님이다! 대장님! 얼마나 찾았다고요!”

 

“-윽!”

 

 리리스의 뒤를 쫓아 돌아온 비축창고 인원들이 그 길을 따라 올라오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라붕이 작전관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자신이 지나쳐 왔던 숲을 향해 걸음을 돌렸다.

 

파-바박!

 

“엑? 대장님! 어디 가세요!?”

 

“대장님?!”

 

 그를 향해 손을 흔들려던 안드바리와 실키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드리프트에 화들짝 놀라 자신들에게서 도망치는 그를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녀들의 물음에 라붕이 작전관은 그저 다급하기 짝이 없는 고함으로 회답했다.

 

“-따라오지마아아!”

 

‘쟤들도 리리스와 한패겠지! 젠장!’

 

 뒤에서 들려오는 안드바리와 실키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라붕이 작전관은 숲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방금 풀어놨던 방탄모를 허겁지겁 다시 동여맨 채 인적이 드물다 못해 험난한 숲길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파-박! 팍!

 

“젠장. 젠장! 젠장!”

 

파-바박!

 

“씨발!”

 

 믿었던 리리스에 대한 배신감 탓인지 아니면 자신이 상상했던 최악의 현실을 마주한 탓인지. 라붕이 작전관은 처음 이벤트가 열렸던 그때와 같이 머릿속에서 솟구치는 엔돌핀에 몸을 맡긴 채 수풀들을 가로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사령관 이 개새끼야아아아!”

 

 물론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사람을 향한 울분도 잊지 않고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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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시험기간. 응애. 살려줘. 응애. 내일부터 3일간 연속 시험. 응애.

참고로 전편에 리제 파트 넣어뒀음. 그러니 1주 1문학 공약은 지켰음. 아무튼 그럼. 응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