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나는 노처녀 대마왕, 오메가에이드 님이시다~!"


"...어떻게 거기 앉아서 오메가 흉내낼 생각을 해요? 질나쁜 장난도 정도가 있지..."


부사령관 일행이 레모네이드 감마를 데리고 지하로 내려간 한편, 오렌지에이드와 유미는 윗층으로 올라와 주인없는 회장실을 점령했다. 한쪽 벽면이 전부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창 너머로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보였으며, 그 외엔 쓸데없이 넓기만 한 방에는 오메가가 쓰던 작업용 책상과 컴퓨터, 그리고 낡긴 했지만 딱봐도 비싸보이는 회장 의자가 놓여져있었다.


회장 의자에 앉아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장난치던 오렌지에이드는 컴퓨터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유미의 뒷모습에 호기심이 피어올라 말문을 열었다.


"저기 유미 씨, 지금 뭐하시는 건가요? 오메가가 숨겨놓은 야동 찾아요?"


"야ㄷ... 네? 아뇨. 이 건물의 경보 시스템을 손보고 있었어요. 경보 시스템 자체를 해제할 순 없지만 밖에 있는 오메가한테 알림이 가는 건 막을 수 있겠네요."


오렌지에이드의 갑작스런 섹드립에 유미는 잠깐 황당해하더니 금방 침착함을 되찾고 차분히 대답해줬다.


"오옷! 그럼 그 아줌마가 직접 돌아오기 전까진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절대 눈치채지 못하겠네요! 유미 씨, 솜씨가 제법인데요?"


"오메가가 쓰던 회장 컴퓨터라 이 곳 중추 시스템에 접근하기가 쉬웠어요. 이건 일단락되었으니... 이번엔 감시 기록 장치를 손봐야겠네요."


"감시... 기록...? 그게 뭔가요?"


"아, 오렌지에이드 씨에겐 설명해준 적이 없었네요... 감시 기록 장치는 펙스 소유의 위성카메라를 통해 오메가의 영토 내를 감시하고, 초 단위로 감시 기록이 갱신되는 시스템입니다. 우리 모두 펙스의 감시망에 들어와있는 이상, 이 일을 끝마친 후 무사히 도망치기 위해선 이걸 반드시 무력화시켜야만 해요. 안그러면 그 위성카메라가 저희를 지구 끝까지 추적할거에요...

지금 감시 기록 장치의 서버에 접속했어요."


유미가 책상 위의 패널을 두드리자 홀로그램 화면 위에 위성궤도에서 내려다본 북미 대륙 내 어딘가의 사진이 떠올랐다.


"어디어디! 오오...! 이게 그 위성카메라에서 실시간으로 보내고있는 사진이에요? 아니, 영상이라고 해야 하나?"


"카메라가 이미 어딘가로 초점이 맞춰져있네요... 지금 확대해볼게요."


"으응...? 사진 중앙에 뭔가 보이는 것 같은데... 사람? 저거 사령관님 같은데요?"


"네...!?"


"아, 사령관님 맞네요! 옆에 라비아타 통령도 계시고요! 아직 오메가한테 붙잡히지 않았나봐요! 다행이... 잠깐만요... 그럼 사령관님이 계속 오메가한테 위치추적 당하고 있었다는 뜻 아니에요!?"


"마... 맞아요... 오메가는 자신의 단말기를 통해 언제든지 감시 기록 장치의 서버에 접근할 수도 있으니..."


사진 속의 사령관 일행은 자신들이 이미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쉬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미가 다시 패널을 두드려 줌아웃 하자 사령관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둥글게 감싸서 포위망을 형성한 펙스 AGS들을 볼 수 있었다.


"사령관님이 위험해요! 어떡하죠? 유미 씨, 뭔가 여기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그 순간, 오렌지에이드의 다급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유미와 오렌지에이드가 보고있던 컴퓨터는 자동으로 잠금이 걸려 비밀번호의 입력를 요구했으며, 그들의 등 뒤쪽의 벽면을 이루고있는 창문 바로앞에 금속제 개폐벽이 튀어나와 창 너머로 보이던 하늘을 가려버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건물 내에 배치된 경보기까지 울리기 시작했다.


"이, 이번엔 또 뭔가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화재 경보인가요!?"


"아뇨, 이건... 아무래도 지하 벙커 쪽에서 일을 벌인 것 같은데..."



*



"아 이런..."


펙스 회장이 누워있는 동면 포드를 통째로 가져가기 위해 거기 연결돼있던 팔뚝만한 두께의 전력 케이블을 뽑았더니 갑작스레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지하 벙커의 불이 꺼지고 붉은 빛의 비상등으로 대체된데다 벽 곳곳에서 작은 문이 열리며 터릿이 고개를 내밀었다.


[냉동 수면 장치에 이상 감지됨. 신원 미상자 발견.]


스피커에서 기계음으로 된 경고 메시지가 나오면서 터릿의 총구가 일제히 나를 조준했다. 리리스와 히루메가 급하게 달려와 보호막을 펼치려던 순간 감마가 짜증난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까불지 말고 들어가. 방해하지 말고."


[음성지문 판독... 레모네이드 감마, 확인됨. 특급 경계 태세에서 1급 경계 태세로 전환.]


감마의 한 마디에 경보음이 꺼지고 붉은 빛의 비상등도 하얀 빛의 일반등으로 교체되었다. 거기다 터릿들도 도로 벽의 구멍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히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방금 그거 대체 뭐였냐?"


"여기 보안 시스템, 뭐 그런거겠지. 아마 지금쯤 지상에선 봉쇄조치 들어갔을걸. 엘리베이터도 기동 정지됐을 테고."


"감마가 말한 그대로네요. 위에 있는 유미 양과 통신해보니 건물이 정말로 봉쇄됐다고 합니다."


무전기를 통해 유미와 상황을 주고받은 리리스가 감마의 말을 뒷받침해줬다.


"아니 잠깐, 좀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니 눈깔로 보안 장치 잘 해제하고 들어왔잖아? 그럼 건물 봉쇄 엔딩은 볼 일 없는거 아니었어?"


"그 모든 보안 시스템이 뭘 지키려고 있던거겠냐. 동면 포드를 건드렸으니 경계 태세가 켜진거겠지."


"그럼 그 경계 태세를 해제하는 방법은?"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내 집도 아니고 오메가 집인데."


"젠장, 그건 그렇네. 그보다 아깐 넌 왜 도와준거야? 눈깔 남겨준 보답이나 뭐 그런건가?"


"딱히. 날 이겨먹은 놈이 등신같이 터릿맞고 뒤졌다는 결말을 보기 싫었을 뿐이야."


"...내가 지금 니네 회장 도굴하고 있는거 알지?"


"패장 신세인데 참견할 처지가 되겠나. 너희들이 포세이돈 회장까지 건드리지 않는다면야 얌전히 포로처럼 굴도록 하마."


"...유의해두지. 리디아, 저 동면포드 챙겨!"


리디아를 부르자 그녀는 손짓으로 하이에나를 부른 뒤 둘이서 케이블이 전부 분리된 동면 포드의 양쪽 끝 모서리를 잡아 들어올렸다. 그런데 저 포드가 보기보다 많이 무거운 모양인지 하이에나가 소리를 꽥 지르면서 도로 내려놓았다.


"앗 차거어어어! 그리고 무거워! 야 리디아 잠깐만, 내려놔봐!"


"와씨, 뭘로 만든거야 이거? 더럽게 무겁네."


리디아와 하이에나가 차가워진 손을 싹싹 비비면서 투덜거렸다. 얘내들은 군용 바이오로이드라 근력도 뛰어날텐데 그런 얘들이 못 들 정도의 무게라니?


"그 정도야? 너랑 트레저랑 둘이서 전에 지프차도 들어올리지 않았어?"


"그 땐 몇 초 동안만이었지! 이번엔 엘리베이터도 못쓰게됐으니 이 썩을 냉동 관짝 들고 100층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잖아!"


"아 맞다, 그것도 있었지... 지하 100층, 그래... 개망했네."


"넷이서 들까? 리리스랑 애니도 거들어서?"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군요. 그랬다간 감마를 감시할 인원이 히루메 한 명 밖에 안남습니다."


"이보셔, 나 지금 수갑차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구색만 맞춘 거잖아. 너 그냥 힘으로 수갑 끊을 수 있는거 다 알거든!"


"흠, 알고있었나. 그럼 이렇게 하지."


말을 마친 감마가 팔에 힘을 주더니 수갑 사슬이 콰직하고 끊어졌다. 기겁한 애니가 그녀의 머리에 권총을 겨눴지만 정작 감마는 눈길도 주지않고 태연히 손목을 돌렸다.


"너, 너! 움직이지 마!"


"겁도 많기는. 니들 도와주려고 하는 거니까 저리 좀 비켜봐."


양 손이 자유로워진 감마가 우리가 서있는 동면 포드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자 나는 나서려는 리리스와 리디아를 제지한 뒤 그녀가 뭘 할지 지켜봤다. 감마의 성격상 이제와서 적대행위를 하진 않을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동면 포드 앞에 선 감마는 그 밑에 한 손을 집어넣고선 번쩍 들어올리더니 어깨에 걸쳤다. 케스토스 히마스로 버프받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기본 신체능력부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 그녀었다. 둘이서 낑낑댔던 리디아와 하이에나가 뻘쭘해하길 잠시, 감마는 정지된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비상계단 문을 걷어차서 부수듯이 연 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 가지. 계단으로 올라가야하니 지상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텐데 서둘러야 하지 않겠나."


"수상할 정도로 협렵적인데..."


"패배하고 포로 신분으로 잡혀있는 이상 어쩔 수 없지. 승자가 시키는대로 따르는 수밖에."


"...본심은?"


"솔직히 이거 챙겨서 뭘 하려는건지 궁금하거든."


"허, 저게 우리팀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구만. 오메가가 스트레스 많이 받겠어. 아무튼, 회장 챙겼으니 올라가자. 리리스? 유미한텐 1층에서 만나자고 전해줘."


"그건 알겠습니다만... 부사령관, 정말로 감마를 믿는건가요?"


"안믿으면 우리가 저거 들어야돼..."


동면 포드를 들쳐맨 감마가 힘든 기색 없이 계단을 오르고, 우리팀 맴버들도 총 들고 감마를 노려보면서 그녀의 뒤를 따랐다.



*



회장실에서 1층 엘리베이터 앞으로 내려온 유미와 오렌지에이드가 발을 동동 구르며 부사령관 일행이 올라오길 기다린 지 약 20분. 엘리베이터 옆 비상계단 문의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리자 오렌지에이드가 반가운 기색으로 달려갔다.


"부사령관님! 드디어 도착했군요, 지금 바깥에- 호에엑!?"


그러나 문이 열리고 부사령관이 나올거라 생각했던 오렌지에이드는 발로 문을 차서 열고 나온 감마와 눈이 마주치자 경악하면서 뒷걸음질 치더니 이내 엉덩방아를 찧었다.


"음? 볼일이라도 있나?"


"니가 아니라 나한테 있지! 길 막지말고 비켜!"


"아 예, 예. 성질도 급하기는"


"계단 오르는데만 15분인가 20분인가 낭비했는데 여유부릴 시간이 어디있냐!"



감마의 뒤에서 부사령관이 소리치자 감마는 오렌지에이드를 지나쳐 더 앞으로 나온 뒤 바닥에 동면 포드를 내려놓고, 그녀의 뒤로 리디아한테 업혀있는 부사령관과 나머지 일행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수갑이 풀려있는 감마와 그 감마한테 대놓고 짜증내고있는 부사령관을 보자 당혹감에 머릿속이 정리가 안되는 오렌지에이드가 어버버하는 동안 부사령관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


"부... 부사령관님...? 이게 대체..."


"한 50층 쯤 오르니까 다리가 후들거리는거 있지. 그래서 업혀서 오게 됐어."


"30층이야 형님. 30층부터 형님 체력 바닥났었어."


"지금 그게 중요하냐?"


"아뇨, 그거 말고요! 지하 벙커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레모네이드 감마랑... 협력... 하고있는 거에요?"


"딱히 뭐 한 건 없고. 쟤 성질 긁지 않는 선에서 움직이는 건 봐주겠다고 하던데."


부사령관이 리디아의 등에서 내려서 아직도 차가운 동면 포드를 쳐다봤다. 전력 케이블이 다 뽑힌지 20분은 지났는데도 아직 한기가 느껴지는 걸로 보아 저게 녹기까지 시간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유미가 쭈뼛거리며 걸어와 그 안에 눕혀져있는 미라같은 노인의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펙스의 회장이 잠들어있는 냉동 수면 장치... 정말로 가져왔군요... 그것도 오메가 산업의 회장을..."


"그래. 엘리베이터만 멀쩡했어도 2개는 들고왔을텐데, 아쉽게 됐지."


"저기 형님, 아까부터 궁금했던건데 저 기계는 안에 노친네가 산채로 잠들어있는 냉동 수면 장치인거야 아님 노친네 시체를 보관하는 냉동 보존 장치인거야?"


"나도 잘 몰라, 그냥 후자라고 생각했는데. 까놓고 말해서 말이 냉동 수면이지 의식도 없고 심장도 안뛰는 차가운 고깃덩어리 보관해놓고 있으면 그게 냉동육 들어있는 냉장고랑 뭐가 다르겠어."


"멸망 전에는 전 세계를 주름잡는 기업의 총수들이었는데 못하는 말이 없구만."


"왜냐면 지금은 멸망 후거든."


"하하! 과연, 맞는 말이군!"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애니가 감마에게 팔을 등 뒤로 돌리라고 당돌하게 명령한 뒤 그녀에게 수갑을 3개나 채우는 게 보였다. 그러나 감마는 수갑이 다 채워지자마자 보란듯이 팔에 힘을 줘 끊어버리자 애니는 놀라 숨을 삼켰다.


"으헉...!?"


"미안하지만 이제와서 포로 흉내를 계속할 마음은 없거든."


"이번엔 뭐야? 니 회장 관짝에서 멀리 떨어졌으니 제대로 싸워보려고?"


"딱히. 아직 알바트로스와의 싸움의 여운이 남아있어서 말이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실컷 먹고 배불러서 또 음식을 먹을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럼 다시 근질근질해지면 싸우겠답시고 날뛸거고?"


"그야 물론이지!"


"...그래, 그럼 빨리 나가야 겠구만. 그나저나 오렌지에이드, 아까 하려던 말이 뭐였어?"


아직 감마가 적응되지 않은건지 뻘줌해하며 치마를 털고 일어선 오렌지에이드에게 말을 던지자 그녀가 아맞다 하며 입을 열었다.


"네 네, 그게 말이죠!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요. 좋은 소식은, 사령관님이 아직 오메가한테 붙잡히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는 겁니다."


"그럼 나쁜 소식은...?"


"오메가가 사령관님의 위치를 실시간 추적하고 있는데다, 벌써 사령관님이 있는 곳이 오메가의 병력에 포위되었-"


"뭐라고요!!?"


"아 깜짝이야, 또 시작이네."


"적 병력의 수는 얼마였습니까? 주인님과의 거리는요? 주인님 곁엔 누가 있었죠? 아니, 주인님의 현재 위치는 어디죠!?"


"죄, 죄송해요 리리스 씨! 감시 기록 장치의 서버에 접속하자마자 우연히 보게 된건데... 이 건물이 봉쇄되면서 곧바로 서버가 잠겨버려 자세하게 볼 겨를이 없었어요...!"


"안돼, 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 리리스가 가야하는데 리리스가 가야하는데 리리스가 가야하는데 리리스가 가야하는데 리리스가 가야하는데 리리스가 주인님한테 가야하는데...!"


"리리스! 진정해. 아직 사령관이 잡힌 건 아니잖아, 빨리 여기서 나가서 도우러 가면 돼."


부사령관은 제 머리를 쥐어뜯는 리리스를 말린 뒤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훑어보니 유리 창문은 전부 다 쇠벽으로 덮여있어 바깥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건물 봉쇄란게 단순히 문만 잠그는게 아니라 건물을 통째로 금속 개폐벽으로 덮어 물리적으로 봉쇄하는 무식한 방법일 줄은 몰랐다.


꼼작없이 갇혀버린 부사령관은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 리리스한테 빌린 무전기로 건물 바깥과 통신을 시도했다.


"알바트로스, 거기 있지?"


[그렇다.]


"이 쇠벽 부수거나 아님 구멍 뚫는데 얼마나 걸리겠어?"


[본 기체는 타이런트처럼 화력에 특화된 기체가 아니다. 입자포를 한 곳에 집중사격한다 해도 뚫는 데 몇 시간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트레저가 타고있는 셀주크나 포트리스의 화력을 더해도 마찬가지다.]


"잠깐... 설마 이 벽 부수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거야? 그 최강지휘관이? 이 벽이 대체 뭘로 만들어졌길래?"


[스트롱홀드의 장갑판 이상의 강도를 가졌다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군.]


"아 그럼 단단할만 하네. ...젠장, 갈수록 태산이네 진짜. 감마, 넌 이거 부술 수 있냐?"


"케스토스 히마스 없으면 나라도 못부숴. 어나이얼레이터의 장갑판에 쓰이는 특수 합금이기도 하니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거든. 이걸 부수려면 트리톤이나 어나이얼레이터에 달린 주포 정도의 화력이 없으면 안될거다."


감마가 팔짱끼고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부사령관은 잠깐동안 조용히 생각하더니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니 개박살난 전함은 어디다 버려두고 여기 와있는거냐? 트리톤이랑 같이 분리수거하기라도 했나?"


"그 아까운걸 미쳤다고 버리겠나? 지금 시애틀 항구에 정박중이다. 내가 직접 감독하진 못해도 대신 부관한테 맡겨두고 왔으니 착실히 수리되고 있을걸."


"그렇군... 아무튼 이건 우리 선에선 해결 못한다. 오르카호에 지원 요청해야 돼. 알바트로스와 트레저, 포트리스는 계속 대기하고..."


"지금 장난합니까? 오르카호에서 타이런트를 보내든 스트롱홀드를 보내든 여기 오는데만 두어 시간은-"


"잠깐만, 들어봐. 이 방법이 마음에 안들긴 하겠지만... 그냥 알바한테 맡기는 것보다 더 빨리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리리스가 표정으로 의문을 표하자 그는 주변을 슬쩍 둘러본 뒤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일단 감마한테 들키지 않고 작전을 전달해야하니 전화통화는 안되고... 유미, 이리로 와봐. 니 전화기에서 문자는 어떻게 보내?"


"그런 기능 없는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전화기에 문자 기능이 없다니?"


"자꾸 전화기라고 부르시는데 이건 제가 문서작업 하는데 쓰는 휴대용 패널이에요... 통신 기능은 제가 따로 커스텀해서 넣은 기능이고요. 오메가한테 꼬리를 잡힐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흔적이 남기 쉬운 문자 기능은 처음부터 고려하지도 않았어요."


"그럼... 전화통화 외에 오르카호에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하나도 없는건가?"


부사령관의 질문에 리리스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금방 답을 내놓았다.


"유미 양, 당신 모스 부호 쓸 줄 아시나요?"


"네? 아, 네... 통신병 출신이니까요..."


"제 목에 차고있는 초커엔 위치추적 칩이 삽입돼있습니다. 방해전파가 사라졌으니 지금 실시간으로 제 위치 신호가 전달되고 있죠. 이걸 껐다켰다 하는 식으로 오르카호에 모스 부호를 전달할 수 있을겁니다. 오르카에 있는 저희쪽 유미가 눈치가 좋다면 말이죠."


"해보자! 유미,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전달해줘. 먼저..."


유미가 부사령관의 말을 듣고 머릿속에서 즉석으로 모스부호로 변환해서 쵸커의 전원 버튼을 그 패턴에 맞춰서 눌렀다. 한편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있는 감마와 다른 일행은 부사령관이 뭔가 중얼거리며 유미가 리리스의 쵸커를 꾹꾹 누르고있는, 얼핏 보면 마치 리리스의 목을 조르고있는 것 같은 뭔지모를 광경이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다.


"니들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


"닥쳐 감마! 딴 데 보고 있어!"


호기심이 생긴 감마가 물음을 던졌으나 그녀에게 돌아온건 부사령관의 신경질적인 대꾸 뿐이었다.


"거 참, 왜 나한테만 성질이냐..."


"안그래도 잠도 못자고있어서 예민한데 적한테까지 살갑게 대해줄 이유가 없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널 반으로 접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성별이 여자인 애들은 전부 그럴만한 힘 갖고있는데 그걸 자랑이라고 떠들고 앉아있네."


"흠. 듣고보니 방금 위협은 별로였던 것 같기도... ...이번엔 어떻게 갑자기 간이 커진거야?"


"몰라, 꺼져. 그럼 계속해서, 작전이 뭐냐면..."


감마가 흥미를 잃었다는 듯 시선을 돌리자 부사령관은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유미에게 작은 목소리로 작전을 설명해줬다.


"호라이즌은 시애틀 항구에 있는 어나이얼레이터를 점령할 것... 감마가 자리를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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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용에게 빈집털이의 참맛을 전파하는 라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