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lastorigin/50050837



새벽에 잠시 소란이 있었다. 물론 그 소란은 내가 일으킨 거긴 했지만… 뭐 그래도 일은 잘 풀린듯 하였다. 아침에 회장님 집 근처를 갔다 왔는데, 거기 근처에는 재물을 훔쳤던 밴이 주차되어 있었고, 회장님이 직접 문자로 잘 해결해 주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거금이 들어간 통장을 오늘 아침 우리 집앞에 가져다 놓고 가셨으니깐 말이다.


나는 점차 이 도시가 마음에 들 것만 같았다. 뛰어난 발전속도로 건물들이 무지막지하게 들어오는 도시였지만, 아직까지 이 도시의 밤은 매우 위험하고, 돈벌 방법이 넘쳐났었기 때문이다. 강도, 마약거래, 협박, 납치 등등(아, 물론 강도는 내 해당사항이 아니다. 나는 남의 돈을 함부로 뺏지는 않는다. 그정도로 양아치는 아니다.)… 심지어 이 도시는 바로 옆에 항구가 있어, 밀수업과 밀입국 또한 행해지고 있어, 바닥에서 성공한 깡패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성공한 깡패와 회장을 나누는 방법은 딱 한가지이다. 회장은 이미 돈이 많은 사람들의 검은 돈을 뺏거나 환수하고, 깡패는 돈없고 약한 사람들의 돈을 뺏어간다. 그래서 나의 양아버지같은 존재이자, 나를 거두어준 사람을 내가 회장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내 회장님은 나와 함께 바이오로이드를 엄청나게 싫어하신다. 유난히 사람 좋고 인심 후했던 회장님은 공장을 하나 운영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시급도 후하게 쳐주면서 즐겁게 일을 하셨다고 하는데, 눈감았다 떠보니 어느순간부터 다른 회사들은 전기값도 안나가고 단백질 블럭 하나면 몇달동안 식비또한 해결되는 바이오로이드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었고,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많이 나갔던 회장님 회사의 제품들은 그렇게 경쟁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회장님의 회사는 망해버렸고, 그렇게 남은 자금으로 그 돈많은 자본가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 조직의 회장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도 사람들이 꽤 있었고, 우리가 하는 일은 낮에는 강연이나 교육운동을 통한 서민의식 향상과 반바이오로이드 세력 강화, 그리고 밤에는 마약 밀매를 하여 부잣집 아들딸들에게 공급, 낮에는 행할 수 없는 살해협박이나, 살인청부,  스토킹 등을 통해 자금을 충당하였다.


물론 이 살해협박, 살인청부는 무조건 윗대가리들이 다른 윗대가리들에게 행해달라는 의뢰만 받는다. 그것이 제일 안전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도 가지 않으니깐 말이다. 우리 조직은 다른걸 원하지 않는다. 그저, 바이오로이드를 사용하는 시스템의 몰락과, 이를 부추기는 자본가들의 자식들을 타락시켜 위상을 추락시키는 것 뿐이다. 그렇기에 나랑 회장님은 약속을 하나 했는데, ‘마약을 팔더라도 고위층 사람들한테만 팔자’ 였다. 군대에 가기전, 그 약속을 했는데, 아직까지 도시에는 내가 어렸을 때랑 비슷하게 노숙자들이 있는 것을 보니, 약속은 잘 이루어 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새벽 소동이 있었던 그 다음날 우리 조직이 사용하는 비밀 은신처에 잠깐 들려 회장을 뵈러 갔었는데, 나랑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애들이 몇명 있어 보였다. 회장님께서는 나와 비슷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단한 실력을 가진 2명의 인재를 확보했다고 했는데, 각각 이름이 정수하와 김영지였다.


정수하는 꽤나 잘나가는 공대생으로, 해외 유학을 통해 미국에 유명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와 기계공학과를 이중전공해 둘다 수석으로 졸업한 친구였지만, 학연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취업 시장과, 모두들 자신의 지식을 이용하여 바이오로이드를 대량 생산하려는 생각만 가지고 있어, 그 바닥에서 환멸을 느끼고 회장에게 스카우트 당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필요한 말만 딱딱 내뱉으면서, 그래도 필요한 물건이나 해킹툴들을 가지고 있거나, 빠르게 만들어 주는 등의 기술을 보면 꽤나 좋은 친구 같아보였다. 단점으로는… 몸이 너무 빈약해 보였고, 항상 다크써클이 껴있으며 퀭해보일 정도로 잠을 못자는 친구인 듯 하였다.


다른 한명은 김영지라고, 고등학생때까지만해도 촉망받는 모델 겸 배우였지만, 바이오로이드 모델들과 배우들, 그리고 덴센츠 등의 회사들이 바이오로이드들과 AGS들을 내세워 대성공을 이루자 인간 모델계는 거의 파멸에 이르렀고, 배우와 모델을 하기 위해 살아왔던 김영지는 순식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냥 예쁜 사람으로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직업을 되찾기 위해 이곳에 자진해서 들어왔고, 그날 그곳의 사람들 중 회장을 포함한 12명의 지갑을 미인계로 훔친 것을 보여주면서 회장이 그녀를 받아주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조직의 집합장소는 다리 밑에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였는데, 이런 곳에 저런 사람들이 모이는 걸 보니 그래도 회장이 대단한 사람이구나를 새삼 다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 둘과 함께 활동하면서 수많은 일을 함께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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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충유시에 도착해 이곳에서 지낸지 대략… 6개월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꽤나 굵직굵직한 일들이 있었다. 대충 몇개 이야기해보자면… 마약을 원하는 오렌지 족이 늘어나, 나중에 대량으로 마약을 들여오게 된 점이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뜻과 맞아 조직이 조금 더 커지게 된 점 등등이 있다. 이 생활에 마음이 들었을 때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항상 가득 차있던 내 항우울제 약통이, 어느 순간부터 비어져 있었고, 군에서는 정확한 시간에 개수를 맞춰 먹었던 그 약을 어느 순간부터 비규칙적으로, 우울한 기운이 생기면 입안에 털어넣기 시작한 그 알약을 담은 통이 텅 비어있었다.


나는 그것을 며칠동안 인식하지 못했고, 할 일이 많아 그것을 까먹으면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날 밤, 큰 것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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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아도 어둡고, 눈을 떠도 어두웠다.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나는 간신히 온 몸의 감각을 동원하여 내가 어딘가에 누워 있다는 것만 어느정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눈을 부릅 떠도, 보이는 것은 없었고,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온 몸의 정신을 느낄려고 했다. 그리고, 눈에 초점이 천천히 들어왔고,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소리를 치는 듯 하였고, 내 선명해진 눈 앞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조금 많이 이상했다.


…이마 왼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붉은 피가 줄줄 흘려내리고 있었다.


“...!”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지독한 악몽을 꾼 듯 하였다. 가끔 기분 나쁜 오묘한 꿈을 자주 꿔왔는데, 혹시 이건 항우울제 양을 줄이면서 생긴 부작용일까, 그리고 그 부작용이 이번에 크게 터진 것일까…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그러면서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미루고 미루었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원래 이 지옥같은 곳을 다시 돌아올려 하지 않았다. 아니, 그 새끼를 찾아야만 해서 이곳에 다시 들어왔다. 평화롭던 가정을 작살내, 나를 이지경까지 만들었던 그 년말이다.


“...”


이마를 부여잡고, 정신을 차렸다. 차려야만 했었다. 천천히 침실에서 나섰고, 계단에서 내려와 커다란 거실을 건넌다음, 냉장고에서 보드카 한병을 꺼내 벌컥벌컥 마셔댔다. 목에도 술이 조금 묻는 느낌이 들었다. 술병이 가벼워지고, 입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자, 나는 보드카병을 곧장 쓰레기통에 집어넣었고, 거실로 가서는 생각에 잠겼다. 술을 마셔야 후유증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옛 생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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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초여름 날씨였을 것이다. 인간인 나에게도 당연히 부모는 있었다. 아버지는 어느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었고, 어머니는 중견기업에서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래도 평범하게 잘 살 수 있었다. 보모 바이오로이드인 마리아도 두고 있었으니깐 말이다.


나는 마리아를 정말 좋아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녀와 함께 생활을 했었기 때문이다. 총 4명이였던 우리 가족은 그 초여름 날씨에 도심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렇게 맑은 날씨와 공기를 만끽하며, 도심을 휘젖고 있던 중이였다.


하필, 하필 그때, 지금까지도 악명 높은 인간승리 전국노동조합, 전노조들이 기습 시위를 벌였던 것이였다. 모두들 소리를 지르며 불붙은 술병을 집어던지고, 거리를 완전히 망쳐버렸었다. 그것으로 인해 경찰들이 투입되었고, 거리에는 시민과 노조원, 경찰이 엮여 정말 지옥을 방불케 하였다.


우리 가족은 어린 나를 데리고 있었기에, 아버지는 우선 상황파악과 길을 터주기 위하 한참을 앞장섰고, 나는 그때 무의식적으로 어머니를 찾았고, 어머니 역시 긴장한 나를 안고 마리아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나서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더 빠르게 길을 파고들기 위해 큰길 대신 골목으로 향하였고, 어머니 또한 아버지를 따라 한낮에도 어둑어둑한 길목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그 골목으로 향해서는 안됬었다.


붉은 머리띠를 한 노조원이 저 멀리서 경찰관과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었다. 그 경찰관은 검은 피부를 하고있어서, 미스 세이프티로 예상되었다. 그 씨발년은 노조원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고, 결국 싸움 도중 경찰의 권총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노조원과 미스 세이프티는 서로 권총을 들며 다시 싸우기 시작했고, 그때, 총성이 울렸었다.


‘타앙-!’


그리고… 내 얼굴에서는 피가 쏟아져 내렸었다. 뭔가가 내 얼굴에 튀었다는 것에 깜짝 놀랐던 나는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봤고, 그때 어머니는 왼쪽 이마에 커다란 구멍이 나있었다.


어머니는 그자리에서 사망했던것 같았다. 그자리에서 미끌어지며 쓰러진 어머니로 인해 나는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하지만 나는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당시 멍한 얼굴로 경직된 어머니의 얼굴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았다. 나 또한 몸이 굳어버렸다. 아버지는 총성에 고개를 돌렸고, 그 상황을 보자마자 어머니께 달려들어, 형용할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어머니를 끌어안으셨다. 마리아는 나를 데리고 계속해서 뛰어갔다. 계속 뛰어 집으로 날 데려다 주었다.


“...”


집에 와서 몇시간동안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바이오로이드, 미스 세이프티가 쏴버린 그 총으로 인해서 말이다.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저녁때까지 말이다. 나는 충격으로 새벽까지 자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깊어졌을때, 아버지는 돌아오셨다. 입고 가셨던 셔츠는 피와 물로 젖어 있었고, 손에는 서류더미와 두꺼운 종이봉투가 있었고, 얼굴은 완전히 죽은 듯이 멍해 있었다.


마리아는 평소대로 아버지의 재킷을 벗기려 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그녀를 밀쳐내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선,


통곡하셨다, 5일 내내.


5일동안 아버지의 방에서는 울음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마리아가 들어갈려 해도 들어오지 말라고 명령하신 바람에 아버지는 그렇게 방안에서 계속해서 우셨다. 그 울음소리는 5일이 지나고서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었다.


아버지의 울음소리는 서서히 작아지지 않았다. 울음소리가 극에 달했을때, 그때 울음소리가 마법같이 사라졌었다. 나와 마리아는 너무나도 무서워했고, 결국 내가 잠긴 문 사이에 카드를 집어넣어 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천장에 이불을 찢어 줄을 만들었고, 그걸로 목을 매 자살하셨다. 기다란 혀가 쭈욱 떨어져 있었고, 아직 살아 계셨던 건지, 아니면 사후경직인지,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셨다.


마리아는 오열했고, 나역시 그자리에서 기절했다.


일주일도 안된 시간에 나와 마리아는 부모와 주인을 잃어버렸다. 어머니는 어디 계신지도 몰랐고, 아버지는 앰뷸런스가 가져가선 어디 빈 납골당에 집어넣었다. 초등학교 졸업도 한참 남은 내게, 이런 시련이 닥쳐왔다.


모든 것이 싫었다. 시위를 터뜨린 노동조합원, 그리고 강경진입한 경찰들, 우리 엄마를 쏜 경찰, 그걸 막지 못한 마리아와 아빠, 아빠의 자살도 못막은 마리아, 그리고 이 시련을 준 세상 모든 것이 싫었었다. 그중에서도, 그 경찰 바이오로이드, 미스 세이프티와 마리아가 너무나도 싫었다.


누군가의 명령을 수행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 바이오로이드들이 너무나도 무기력해보이고 싫었다. 혐오스러웠다. 눈앞에서 엄마의 명령이였던 ‘아들 밥은 항상 챙겨줘라’밖에 하질 못하는 그 마리아를 더이상 볼 수가 없었다.


“...마리아…”


“...네, 도련님…”


“...너는… 너는… 엄마를 지켜줬어야지… ㅇ, 왜… 왜 날 구해준거야…?”


“...저는 그때 당시 도련님이 최우선 보호대상으로 지정되어-”


“보호대상 그놈의 보호대상! 엄마가 아팠잖아! 엄마를 구해줬어야지! ㅊ, 차라리… 엄마도 같이 데려왔어야지… ㅇ, 이게뭐야… 아빠는… 아빠는 병원에 실려갔다가 납골당에 뉘였고… 이게 다 너같은 바이오로이드들 때문이야! 너가 생각이라도 해서 우리 엄마를 지켜줬으면 지금까지 이렇게 됬겠어?! ㅁ, 말해봐… 마리아, 너… 아니, 너랑 같은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나를 싫어하는거지? 나를 싫어하니까… 이딴 일이 일어나는거 맞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


“나가.”


“...네?”


“나가, 나가라고! 다시는 너같은 바이오로이드들한테 기대지 않을거야! 너희같은 바보 바이오로이드들은 전부 필요없어! 다 나가! 당장!!!”


그 이후로 마리아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잠든 밤, 짐을 싸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사실 아무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했다. 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패닉에 빠져 엄마만 찾지 말고 마리아한테 업혀 도망쳤다면, 빨리 가자고 재촉하지만 않았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옳았다.


그 미스 세이프티 씨발년이 우리 엄마를 시위대로 오인해 쏘지 않았다면, 그랬었다면… 나는 이렇게 자라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우욱!”


잊고 있던 내 옛날 이야기를 생각하니, 위속에서 매스꺼운 느낌이 장난이 아니였다. 나는 곧장 입을 막고, 화장실로 뛰어가선 변기에 코를 박고 뱃속을 게워냈다. 옛 생각만 하면 속이 어질어질하다. 충유시에서 열심히 일하며, 까먹은 일을 이제 다시 실행해야 할 듯 하다.


그 씨발년을 잡아 온 몸을 도륙내고, 가족을 잃은 고통을 몇십배로, 수십배로 갚아줄 것이다.


“...일단 약이나 받아야지. 악몽때문에 뭘 하지도 못하겠네.”


몸을 깨끗이 씻고, 캐주얼 정장을 차려입은 다음, 약을 받기 위한 정신과 의사의 뇌물을 조금 챙겨 집 밖으로 타박타박 걸어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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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썼던 글은 방주챈은 냅두고 삭제할까? 뭔가 내가 쓴 글 내가 리메이크하니까 작가가 스포하는거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