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내가? 하핫! 난 생각보다 단순하다 생각하는데."


쉼 없이 바쁘게 서류를 처리 하면서도 그는 내 말에 반응해 웃어주었다. 평소라면 그가 내게 말을 걸어오고, 나는 그런 그에게 업무 중에 잡담할 시간이 어디에 있겠느냐 대꾸 했겠지만 오늘 만큼은 정 반대의 상황이니 어색함이 공존하는 미묘한 분위기였다.


"그보다 레오나가 웬일이야? 먼저 말을 걸어주고."

"어머, 그럼 차가운 내가 좋은 거야? 그런 취향인지는 몰랐네."


장난기를 더해 슬며시 그에게 냉기를 품은 대답을 들려주자 그는 내게 시선을 돌려 윙크를 하며 대답했다.


"설마~ 물론 레오나라면 그런 차가운 모습조차 예쁘긴 하지."

"실없기는."


속이 깊은 것 같으면서도 금방 저렇게 능글 거리는 대답을 하는 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없이 가벼운 모습과 한없이 깊은 속마음이 있는 이 남자를 나는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것일까. 아니, 나 답지 않은 멍청한 의문일지도 모르지. 아마 나는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게 됐을 테니.


"참 신기하지~ 한없이 깊어 보이다가, 어느새 돌변해서 한량 같은 모습을 보이니까."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맞지?"

"후훗, 그럼 이 자리에 사령관과 나 말고 누가 더 있겠어?"


한량이라는 말에 살짝 토라진 것일까, 그는 하던 업무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서 내게 다가와 곁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럼 한량 사령관 답게, 오늘은 아리따운 여성을 유혹해 볼까?"

"내가 목덜미 어루만지는 것 싫다고 했지?"


자연스레 성희롱과 같은 손놀림으로 부드럽게 목덜미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 사실 이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사랑하게 된 남자의 손이 내 신체에 닿는 것은 묘한 충족감과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내는 온기가 느껴졌으니까.


그 역시 내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일까. 그는 부드러운 스킨십을 멈추지 않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난 레오나가 좋아."

"그거, like의 좋아야? love의 좋아야?"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표현조차 그의 앞에서는 하게 된다. 이미 마음이 녹아버린 나는 그의 앞에서는 완벽을 추구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단 1초라도 더 이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전장을 떠도는 군인에게 하루, 또 하루 이어지는 삶이란 그 무엇보다 소중했으니까. 이런 식으로 조금이나마 그의 흔적을 내게 남길 수 있다면 사실은 여린 내 본성을 드러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게?"

"상관없어... 진지하든, 장난이든."


어떤 방식의 '좋아'라도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감미로운 목소리를 내 심장에 남겨 놓을 수 있다면, 나는 충분하니까. 하지만 그런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최후의 자존심이라는 녀석이 방해를 하는 것일까.


"이럴 때는 역시 진지하게 해야겠지."

"갑자기? 사령관에겐 어울리지 않는데."


진심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져 나를 응시했다. 그래, 이거였어.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모습이란. 언제나 가볍던 그가, 언제나 느긋하던 그가 짓는 이 표정이 내 마음을 뒤죽박죽 흔들어 버려.


"love의 좋아야. 처음부터 널 좋아했어. 아니, 사랑하고 있었어."


그의 낯 뜨거운 고백에 대답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손이 내 턱을 붙잡고, 그의 진지한 시선이 내 눈을 응시하며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으니까.


"후으... 정말, 무드 없네..."

"미안, 난 생각보다 이런 일에는 서툴러서."


이미 심장은 터질 것 같이 뛰어 다른 소리 들은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여전히 나는 그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내 왼손을 살며시 붙잡고 귓가에 속삭이자 그제서야 내 왼손 약지에서 빛나는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레오나의 대답을 듣기 무서웠거든, 혹시.. 거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사령관..."

"네 대답은 뭐야?"


대답이라, 처음부터 그건 정해져 있었다.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서투른 남자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나 같은 반려자가 필요하겠지.


"대답이라니.. 그야 뻔하잖아.."

"응?"

"뭐, 달링도.. 나 말고 믿을 사람이 없겠지."


그를 부르는 호칭이 바뀐 것을 아무리 둔감하고 눈치 없는 그라도 파악한 것인지, 그는 나를 강하게 끌어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마워! 난 레오나, 네가 없으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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