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서류를 결제하고,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사랑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몸의 피로가 부족한 것은 아니였다. 헛된 공상을 꿈으로 바꾸는 연금술에 실패한 나는 침대를 일어났다. 


야심한 밤.

가볍게 페널을 열어본다. 업무를 처리할 만큼 정신이 맑지는 못하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겼나 버릇처럼 확인한다. 오늘의 당직사령이 기록한 것엔 특별한 이상사항은 없다. 탈론페더가 아직도 자위를 하고 있긴 하지만 흔한 일이니 넘어가자. 그렇게 무사함을 확인하자 꼬르륵 소리와 함께 아침의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침대에서 어기적어기적 기어나와 주방으로 향한다.


아침에 내 건강을 걱정하는 이에게 한 소리 먹고, 소완에게도 뭐라 욕을 먹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 밤은 길고, 아침은 멀었다. 어쩌면 오르카호가 폭발해 내일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복도를 아무렇게나 걸으며, 취사실을 찾는다. 소완도, 포티아도, 아우로라도 전부 자고 있을 시각. 그 주방에는 불이 켜져있었다. 신매뉴를 연구하는 소완이라도 있는 것일까?


"에효 시발....."


욕을 하며 냄비에 라면을 넣는 닥터가 있었다. 닥터는 안경도 쓰지 않았고,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묶지도 않은체 시발시발 거리며 불위에 오른 냄비를 보고 있었다.


"인생...."


아무레도 쌓인게 많은듯 한탄하며 냄비를 바라보는 닥터. 최근들어 시설 연구에 집중하느라 야근을 자주 해서일까? 아니면 원래 저런 모습이였을까? 나에게 보여주는 당찬 여동생의 모습은 어디가고(멸망전의 자료에 따르면 이게 진짜 여동생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인생에 찌든 여자만 남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묘하게 먹을 마음이 사라졌다. 배는 고프지만, 닥터가 있는 곳에서 먹기는 싫었다. 탕비실이 있었지? 거기로 갈까? 냄비라면이 컵라면으로 격하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불편함 속에 같이 하는 것 보단 좋았다. 나는 소리 죽이고 벗어나려고 했다. 그래, 내 몸이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면.


꼬르륵-


"....누구?"


잠이 안오는 것 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내 마음을 안따라주는 몸이다. 이대로 도망쳐 봤자 수상함만 가중될태니 그냥 모습을 들어내기로 했다.


"안녕.....닥터...."


"아.........오빠.....?"


나도, 닥터도 어색함을 가진체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고보니 지금의 닥터는 묘한 모습이다. 평상시에 입던 가운은 어디가고 와이셔츠만 대충 걸친체, 그것도 스카라비아 처럼 묘하게 흐트러진체 이 앞에 있다. 평상시 처럼 명랑한 표정이 아닌 어딘가 피곤해 처친 눈매에선, 있어서는 안될 어른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꼬르륵-


".....라면 먹을래?"


"어.....어....."


유혹아닌 유혹에 나는 동의했다.


잠시 뒤.


"다 끓였어 오빠. 취향일진 모르겠지만."


"뭐든 잘 먹어."


"그래? 그럼 다행이고."


닥터와 나는 냄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짭짤한 MSG의 향에 혀가 아릿해짐이 느껴진다. 


"잘먹을게."


"응."


국자로 서로의 몫을 분배한다. 혹여나 국물이 튀겨서 소완에게 한 소리 듣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릇을 냄비에 딱 붙이고 먹기 시작한다. 딱 적당하게 국물이 밴 면발, 언제나 우리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조미료의 맛, 약간의 식감을 더해주는 후레이크. 적당하게 맴도는 매움과 짠맛, 감칠맛의 조화. 무엇보다 이 모든 만남을 극적이게 만들어주는 내 배의 허기속에 이 라면은 소완의 특식보다 맛있다. 물론, 소완이 끓인다면 랍스터 같은걸 넣어서 고급진 맛을 내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좋고 이건 이거대로 좋은거다. 닥터도, 나도 5분간은 모든 이성을 내려놓은체 음식을 탐하는 원시인으로 돌아가 먹었다.


"잘먹었어. 잘끓이네."


"빈말이지만 고마워."


"아냐, 지금은 이게 최고야."


"그래? 흐응, 내가 다른 어떤걸 해갔을 때 보다 이 라면 하나가 좋았단 거지?"


"아, 아니! 평상시 해주는 정말 고마워 하고 있어. 역시 닥터가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고, 오늘도 고마울 뿐이야."


"......역시 오빠한텐 못당하겠네."


닥터는 얼굴이 붉어진체 괜히 라면 국물을 호로록 거렸다. 아까전의 낯선 모습으로 인한 어색함은 사라졌고, 포만감과 함께 밀려오는 편안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제 허기를 달랜다는 목표는 체웠다. 나도, 닥터도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도 상관 없겠지만 그건 싫다. 아직 라면이 남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국물이 식탁에 튀지 않게 조심스럽게 라면을 떴다.


"한그릇 더?"


"응. 떠줘."


나는 닥터의 라면을 국자로 펐다. 면을 젓가락에 잔뜩 감아서 다시 입 안으로 넣는다. 여전히 맛있다. 뜨거웠던 첫 그릇 보다 약간 식어서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하기 딱 좋은 수준이 됬다.


"맛있네."


"그러게. 오빠랑 먹어서 그런가?"


어쩨 가면 갈수록 요망함이 날로 늘어가는 여동생이다. 혈연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기에 언젠가는 그녀를 한 명의 여자로 대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긴 했지만, 오늘따라 들어오는 공격이 매서웠다. 아니, 다른 날과 다를 바 없긴 하다.


"그런것 같네. 나도 닥터랑 먹어서 더 맛있네."


"으.....그러면서 안해줄거 다 알거든?"


"미안해."


"괜찮아. 내가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니까."


오늘따라 어른스러운 닥터다. 아니, 닥터는 원래 마음만은 어른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닥터는 어떤 기분이였을까? 나는 상상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내가 소년의 몸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성적으로 거절받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특히 마리와 요안나는 좋아하겠지). 마음은 어른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겐 아이의 모습으로 보여야 하는 심정은 어떨까? 심지어 그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미뤘다. 더 중요한 연구과제들이 많으니까. 갑자기 닥터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온다. 그 감정을 이해해도, 모두를 지켜야 하는 사령관이란 입장으로는 닥터의 연구를 지원해주기가 어렵다. 


"흐응~ 오늘따라 날 그윽하게 바라보네."


"기특해서 바라보는 거거든?"


"그래? 정말로."


도발하듯 셔츠 깃을 내리는 닥터. 평상시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을 장난이지만, 오늘은 저 약간 들어난 쇄골이, 길게 풀어해쳐진 머리카락이, 새벽이 끌어올린 본능이 시선을 못 때게 만들었다. 


"...저기 오빠?"


"....아, 응?"


"그.....갑자기 그렇게 뚤어저라 쳐다보면 좀 부담스러운데....."


"아, 미안! 내가 피곤해서 어떻게 됬나봐."


"아, 아냐...먼져 유혹한 내 잘못이지 뭐...."


다시 감도는 어색함. 대화를 하기엔 부끄러웠기에 다시금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약간은 식어버린 국물과 불어버린 면을 넘긴다. 두그릇을 비웠지만 아직 라면은 남았다. 아마 닥터도 나도 한 그릇만 더 먹으면 이 냄비를 비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세번째 그릇을 위해 국자로 손을 뻗었다.


""아.""


나와 닥터의 손이 국자에서 만났다. 어색함과 부끄러움이 국자위에서 마주친 것이다. 어떤 말을 해야할까. 이런 상황에 흔들리는 나의 지조 없는 성욕을 원망해야 할까? 오늘따라 이상하게 색기 넘치는 닥터의 잘못일까? 아니면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낸 새벽의 마력을 탓해야할까? 내가 지휘한 그 어떤 전장보다 혼란스러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까? 침착하자. 나는 이보다 더 한 상황을 수십번이고 겪었다. 이럴 때는.....솔직하게 말하자. 애매하게 돌렸다간 닥터도 나도 상처만 될 뿐이다. 변명하지 말자. 그저 진심을, 솔직하게.


"저기"


"사령관"


닥터도, 나도 같은 생각에 도달했던 것 같다.


"사령관이 먼져 말해."


"아니 닥터부터."


"괜찮아. 사령관 부터 말해줘. 듣고싶어."


"그렇다면 말할게."


잠깐 심호흡을 한다. 내가 해야하는 말을 하나하나 곱씹어 본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앞으로 닥터를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게 맞을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의 닥터에게 이상한 매력을 느끼고 있어. 응. 예전에 했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지금의 넌 매력적인 여성이야 닥터. 그 동안 닥터를 좋아하지 않았던건 아니야. 하지만 방금전 느꼈던 거랑은 달랐어. 지금은.....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네 모습에 흔들렸어."


"......이제와서?"


닥터의 목소리는, 화나있었다.


"미안해."


"오빠 진짜 나쁜거 알지?"


"응."


"내가 그 동안 오빠가 나를 보게 하려고, 그게 내가 원하는 거랑 달라도 나를 좋아한다는건 맞으니까 노력한 것도?"


".....응."


"오빠를 위해서 내가 여자로서 행복도 포기한것도.......에이미 언니나 시라유리 언니가 불려갈때마다 부러웠던 것도.....흐윽....."


닥터는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오는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안통할걸 알고 장난 친건데...흑....왜 진심으로 했을땐 안통하고 지금에서야 봐주는건데. 어차피 오빠가 유일한 인간이니 아무래도 상관 없는 거잖아....흐으윽....."


"미안해."


그리고 이어지는 긴 침묵. 닥터는 말 없이 코를 훌쩍였다. 나는 할 말 없는 죄인이므로 가만히 있었다.


"후우.......내가 이래도 오빠 좋아하는거 알지?"


".....정말, 미안해."


"미안하면 다야?"


"앞으로 잘해줄게."


"어떻~게?"


어느세 닥터의 목소리엔 평상시의 장난기가 담겨있었다. 설마 방금 전 그것도? 아니다. 그건 진심이였을 것이다.


"원하는걸 말씀하시죠 닥터 박사님."


"흐음.....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닥터는 잠깐 고민하더니 손바닥을 딱 쳤다.


"오빠아~?"


"왜?"


"여기 볼래?"


"알았.....어....."


닥터는 자신을 감싸던 와이셔츠를 벗어던졌다. 분명히 작지만 존재감이 들어나는 가슴, 소녀가 아닌 여자가 되어감을 알려주는 허리라인, 아까전에 내 정신을 날려버릴 뻔한 가느다란 쇄골, 여성스러움을 한껏 들어내는 긴 머리카락, 아아......


"이히히, 어때?"


나는-


"어? 오빠?"


과학의 발전을 위하여-


"갑자기 그런눈으로 바라보면 좀 많이 무서운데에?!"


도덕을 잠시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마지막 인류인데 뭐.


"뒷정리는 하시고 방에 가서 하시옵소서. 식당에서 피냄새 나면 불쾌하옵니다."


자다 깬 소완에게 걸려 설거지를 하고 쫓겨났다.

그래,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뭐.

아, 그렇다고 안한건 아니다.

다음날엔 다른 인원들의 경멸과 쓴소리를 각오했지만, 탈론페더가 밤세 자위로 인한 탈수와 질경련으로 실려간것과 에이미와 시라유리가 닥터에게 축하 파티를 열어줘 잔뜩 부끄러워 했다는 것 말곤 특별히 소리를 듣는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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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페도는 아니라서 본방은 생략함.

근데 뭔가 분위기는 묘하니 페도 넣음.

닥터는 빨리 성장약 만들어서 이프리트랑 함께 합법이 됫음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