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존재했다. 비밀이 없는 사람, 인간은 누구나 비밀을 갖는 법이었고 그것은 약점이 되기도, 몰락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고는 했다. 높고 고고한 자리에 앉은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 그것은 결코 들켜서는 안될 비밀을 지키고, 평소에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사령관 님은 어느 쪽일까 생각했었는데.."


곤히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많은 연구와 정보 수집을 했지만 끝끝내 찾지 못했다. 그는 정말로 비밀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보통 비밀이라 함은 갖고 싶은 것을 부정하게 얻을 때 생기는 법이지만, 그는 무욕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뭐, 홀로 남으신 인간 님이니..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지만."


그나마 그가 욕심을 내는 것이란 어떻게 하면 우리들을 더 웃게 할 수 있을까. 혹은, 뜨거운 육체적 사랑을 나누며 쾌락을 탐하는 것 정도였다. 옛날의 도덕적 기준이라면 그것도 나름 약점이 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통용되지 않는 과거의 부산물일 뿐.


"그 덕분에 사령관 님에겐 비밀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가 잠든 침대에 앉아 그의 평온한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를 관찰했다.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준 남자이자, 지금은 내 모든 것이 되어버린 남자. 스파이로 태어나 스파이로 살아오며 그 누구도 믿지 않고 약점을 잡아 이용하며 필요하다면 제거하거나 버리는 삶을 살아온 내게, 모든 것들을 맡겨준 남자.


"정말, 저도 한심해요. 이런 방식으로는 사령관 님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먼저 반해버린 쪽이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니, 얼마나 불합리 하던가. 그럼에도 그를 사랑하게 된 것에는 후회가 없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정을 품으며 그의 자는 얼굴을 바라보는 도중 그가 신음하며 몸을 뒤척였고, 그 덕분에 이불이 벗겨지며 그의 상체가 드러났다.


"어머, 내가 선물해드린.. 잠옷.."


그에게 도착하는 선물은 매일같이 트럭 단위로 쌓이고도 남는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는 유일한 남자. 그의 사랑을 원하는 이들을 발치에 차이고도 남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그는 그 많은 선물들을 받으면서도 귀찮음을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상 웃으며 감사를 표현했다.


"입어주시는구나..."


내 흔적이 그에게 남겨졌다는 사실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을까. 옛날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분명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보겠지. 기관의 스파이란 녀석이 한 남자를 홀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홀려버려 몸도, 마음도 모두 내어줬으니.


"이 모습을 찍어 다른 사람들에게 거래를 요청하면... 역시 유리해지겠..."


들고 온 카메라를 들어 그의 모습을 촬영하고 자연스레 이권을 계산하던 도중, 결국 난 이 사진을 팔 수 없음을 자각했다.


"....그냥, 홀로 간직해야겠어요."


이런 사소한 모습조차 나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어, 다른 이에게 넘긴다는 것은 절대로 하지 못할 테니까. 결국 피식 웃으며 그의 얼굴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깊게 잠든 모습. 지금이라면 평소 부끄러워 하지 못했던 말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활이 없으면... 화살이 별 볼일 없어진다는 것. 사령관 님도 잘 아시나요?"


대답이 없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말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그가 깨어 있다면 절대로 하지 못할 내 마음속 비밀이니까.


"저, 시라유리도 그래요... 저도 어느새 사령관 님이 너무 소중하게 변해버려서... 사령관 님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답니다."


숨겨왔던 비밀, 들켜서는 안될 비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스파이에게 치명적인 약점이자 자격을 잃었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백하고 싶었다. 적어도 그에게 만큼은, 내 모든 것들을 바쳐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제가 이토록 흠모하고... 또, 곁에서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은 사령관 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랍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령관 님을 사랑합니다."

"나도 그래, 나도 시라유리를 정말 사랑해."

"사, 사령관 님?"


어느새 눈을 뜨고 살며시 상체를 일으킨 그가 나를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아, 그래. 나는 들키고 말았구나. 


내 마음을, 내 사랑을, 그리고 내 비밀을.


"정말.. 스파이 실격이네요.. 이게 전부 사령관 님 때문이에요?"

"걱정 마, 나도 너에게 내 비밀을 알려주면 되니까."


그의 손길이 옷 사이로 파고들며 내 육체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남자의 비밀을 듣게 될 테니, 이것으로 우리는 동등한 거래를 한 셈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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