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귀찮은 잔소리라도 익숙해지면 듣지 않는 것이 어색해지는 법이니, 베라의 잔소리가 그러했다. 잔소리의 정의가 무엇이던가? 듣기 싫은 말을 꾸짖는 것이 아니겠는가. 솔직히 평소의 널부러지는 모습도 그녀의 애정 섞인 잔소리 덕분에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고.


"또 플레이트를 끼우지 않으셨잖아요!"

"괜찮아! 오르카 안에서 설마 무슨 일이 생긴다고."


그럼에도 솔직히 저 방탄 플레이트는 무거워서 걸치기 싫었다. 주렁주렁 화려한 장식이 달린 사령관을 상징하는 겉옷조차 잘 입지 않는 나에게, 저런 두터운 방탄 플레이트 조끼를 속에 끼워 입으라는 것은 고문과도 다름 없었으니까.


"얼른 이리 와봐요."

"하지만..."

"아, 얼른요~"


어떤 의미로 베라는 세레스티아, 마리아, 프리가, 세크메트 등, 내 마망을 자처하는 수많은 여인들 보다 두려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저렇게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불어넣고 슬픈 눈초리를 보내면 결국 굴복하고 마니까. 그녀의 저 행동은 양심을 가차 없이 찌르는 능력이 존재하는 게 틀림 없다.


"입기도 귀찮고... 무겁고..."

"사령관?"


끝끝내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는 내게, 베라가 엄격한 표정으로 양 허리에 손을 얹고 무게를 잡기 시작했다. 그녀 나름 엄격하게 꾸짖는 것 같은 행동이지만 청초하고 귀여운 외모의 그녀가 하는 저 행동이란 근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베, 베라.. 지금 좀 바쁘..."

"사령관?"

"아, 넵."


다시 한번 나를 지칭하는 베라. 무언가 이상하다. 저렇게 귀여운 외모에 상냥한 성격이거늘, 어째서 절대 거부할 수 없단 말인가. 얌전히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경청의 자세를 취하자 그녀가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사령관? 이거, 챙기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맞습니다."

"아무리 오르카호가 안전하고, 경호하는 분들이 늘 곁에 있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언제 어디서 불의의 기습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구요! 혹여 저격이 있으면 어쩌실 거에요?"

"그, 그건 컴패니언이..."

"사령관?"

"맞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용기를 끌어올려 반발해 보았지만, 짧은 그녀의 말 한마디에 쭈구리로 변해버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사령관의 위엄에 금이 가는 것이겠지. 그러나 다른 누구라도 그녀의 앞에선 똑같을 것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는 한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


"혹시... 혹시 사령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돼요... 그러니까, 꼭 챙기셔야 해요!"

"하핫! 알겠어, 앞으로는 꼭 입을게. 약속이야."


눈물을 살짝 글썽이며 말하는 베라의 모습에 결국 두 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그녀가 슬퍼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아마 그녀에게 꽉 잡혀서 이렇게 잔소리를 듣는 이유겠지. 그래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다. 오히려 가슴 한켠이 뭉클해지는 기분이었다.


"사령관.. 후훗, 자 그럼 겉옷을... 어?"


내 약속에 기분 좋게 웃으며 겉옷을 꺼내주기 위해 옷장을 연 베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에서 옷장의 참상을 본 나 역시 함께 굳어버렸다.


"사령관? 저게 다 뭔가요?"

"아, 그게...."


한가득 쌓여, 악취를 풍기는 빈 참치 캔들과, 과자 봉투들 그리고 음료수 캔들이 널부러진 옷장의 안. 분명 어제 LRL과 놀아주며 함께 까먹은 것이었는데, 치우기 귀찮아서 저곳에 몽땅 때려 박고 베라와 밤을 보냈지.


'조졌다.'


"그, 그러니까.. 저, 저건 어제 LRL과 함께..."

"사령관! LRL이 옷장에 쑤셔 넣은 쓰레기들, 사령관도 보셨죠? 이거 제가 한 소리 해도 되는 거죠?!"


사실 LRL은 잠자러 가기 전에 저것들을 치우려고 했었다. 그러나 내가 치울 것이니 그냥 들어가라고 했었지. 결국 보다시피 내 성격 상 바로 치우기는 귀찮고 내일 짬내서 처리하자는 생각에 저곳에 쑤셔 박았지만...


"이익! LRL은 정말..! 정리 하면서 놀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혼내줘야겠어요! 사령관도 이건 말리지 마세요!"


나는 진지하게 고뇌 했다. LRL을 위해, 내 양심을 위해 죄를 자백하고 이곳에서 순순히 죗값을 치르느냐, 아니면 일신의 평화를 얻기 위해 LRL을 팔아 넘기느냐. 하지만 사령관의 위엄도 걸린 중대한 문제. 그렇다면 답을 정해졌지.


'LRL.. 나중에 고추참치로 몇 박스 구해줄게.'


"응, 이건 LRL이 잘못했네."


나는 오르카의 마스코트, 귀염둥이 우좌를 팔아 먹기로 결심했다.

미안하다. 우좌야..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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