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와 브라우니, 그리고 밖에서 대기하던 데드 오스트 대원들은 오르카 호의 격납고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알바트로스와의 심한 의견 대립으로 인하여 AGS 병력의 도움 없이 바이오로이드 대다수를 운용하게 된 것은 아더에게 있어서 걸림돌이나 다름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알바트로스 지휘관의 태도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요구를 해도 굳이 그런 방식으로 요구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습니까?"


"브라우니,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알바트로스 지휘관님을...깡통 지휘관이라 부르는 것은 무례했어요. 그 분은 전 사령관 시절부터 오르카 호를 살리기 위해 최대의 이익과 최소의 희생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는 거 아시잖아요. 


...그때의 강박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는게 문제이긴 하지만요."


"깡통 지휘관이라..."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까지야 있나?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디자인이 살짝 구렸거든."


무거운 분위기를 덜어내려 했던 아더의 농담에 뒤를 따라오던 셋은 침묵에 잠겼고, 그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더더욱 후회할 뿐이었다.



오르카 호의 격납고에서 무수히 많은 군용 바이오로이드들이 무기를 점검하며 수송선에 올라타고 있었다.


둠 브링어와 스카이 나이츠의 정찰 보고에 따르면 27번 아일랜드를 장악한 철충들이 섬을 빠른 속도로 감염시키고 있으며, 벌써 탑 구조물의 뼈대를 증축시키고 있다는 불행한 소식이 담겨 있었다. 


이를 방치하는 것은 철충의 인프라 구축 및, 62명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것이었기에 오르카 호는 방향키를 돌려 27번 아일랜드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스틸라인 측에서는 27번 아일랜드의 해안가에 바리케이트를 친 후, 광산 밖으로 빠져나온 철충들을 상대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탄약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를 증명하듯 탄약 박스들을 잔뜩 짊어진 실키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캐노니어와 아머드 메이든 역시 실어나를 수 있는 최대한의 포탄과 탄약들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아스널의 표정은 그리 편치 않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그녀의 심리 상태는 중요치 않았다.


호드는 27번 아일랜드의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타 부대에 비해 병력 투입이 그리 많지 않았다. 워울프 같이 기동력 위주인 전투원들은 방어전에 그리 적합하지 않았으며, 대신 철충들의 지원 요청 방해 및, 방어전을  위해 탈론 페더, 퀵 카멜, 샐러맨더들을 위주로 작전에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발할라에서는 해안 지역의 방어전을 위하여 베라, 알비스, 그렘린, 님프 위주의 병력을 파견하는 동시에, 대형 철충들을 저격하기 위해 발키리 기종들을 해상 위로 모습을 드러낸 오르카호 갑판에 배치시켜 놓기로 결정하였다. 


둠 브링어와 스카이 나이츠는 섬을 포위하여 철충의 공중 지원 병력을 상대하기로 하였으며, 지상에서의 아군 피격을 고려하여 공중 지원을 필요시에만 하기로 결정하였다.


HQ-1 알바트로스는 아더와의 의견 대립으로 인해 예의상 스파르탄 2 소대와 폴른 1 소대, 그리고 램파트 1소대만을 제공하고는 그 어떤 행동도 보이질 않고 있다. 만약 그에게 표정이라는 것이 존재 하였다면 아더에 대한 불편함과 그의 시점에서의 비 효율적 작전에 대한 불만이 여과 없이 드러났을 것이다.


지휘관들은 알바트로스의 행동이 그 답지 않게 매우 무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전 사령관의 무능함으로 인해 효율적 가치 판단에 집착하는 그의 행동에 대해 달리 반박할 수 없었다.


"...."


아더는 알바트로스와의 대화를 재개하는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하며 격납고를 둘러보았고, 그 와중에 저 멀리 익숙한 둘, 그리고 그 뒤에서 여러 이그니스들이 강화복을 입고 걸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치?"


"사령관, 그 섬으로 가는거지? 나도 데려가 줘. 부탁이야."


"더치, 이그니스. 이건 지원 테스트하고는 차원이 다른 일이에요. 이렇게 부탁하신다고 들어드릴 수..."


"제 작업팀도 더치의 이야기를 듣고 그 섬으로 투입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부디 허락해주십시요."


이그니스의 말대로 죽을 수도 있는 작전을 위해 그녀가 테스트에서 임했던 대로 강화복의 팔 쪽에 쇠사슬과 철조망을 휘감은 이그니스들 또한 굳은 표정으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마음은 알겠다만, 이건...훈련과는 다르다. 정말로 투입되고 싶은건가?"


"저희는 모든 걸 불태우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 얘기는, 동료들을 위협하는 철충 또한 불태우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과 마찬가지겠죠."


뒤에 서 있던 한 이그니스의 대답에 다른 이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방어구 가슴팍에는 '아일랜드를 위하여'라는 문구가 스프레이칠이 된 채로 적힌 것을 본 아더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좋다, 중장형 병력과 동행한다는 조건 아래에 투입을 허가한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다들 움직여! 아일랜드를 위하여!"


이그니스들의 구호를 들으며 아더는 이번에는 더치를 향해 눈높이를 맞추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더치,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하니? 그들의 몫까지..."


"이번에는 내 말을 먼저 들어주면 안 될까? 부탁이야."


"....그래, 얘기해보렴."


더치는 품에서 낡은 종이들을 꺼내 아더에게 건네주었다. 빛바랜 종이들에는 광산 내부의 구조와 관련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각 지도들마다 점선으로 표시된 구역들 또한 그려져 있었다.


 

"오래 전, 우리가 선발대와 교대하면서 파냈던 갱도들에 대한 지도들이야. 점선으로 표시된 부분들은 만일을 대비하여 만들어낸 비상용 통로들이었고."


"비상용 통로라고요?"


"말 그대로야. 27번 아일랜드의 광산 곳곳에 지반들이 약한 공간들이 여럿 있어서 붕괴 사고가 꽤 여럿 있었거든. 그때 굴착 경험이 많았던 반장님을 위주로 붕괴를 포함한 여러 사고들을 대비해서 비상용 통로들을 파내는 동시에 주 갱도를 파내는 작업을 했었어.


혹시 철충들이 어디로 빠져나왔는지 알 수 있을까?"


더치걸의 질문에 브라우니가 태블릿을 켜 사진을 확대시킨 후 더치걸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이 쪽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따개비가 많이 붙은 커다란 바위로부터 약 2킬로미터 부근인데,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다행이네. 벌레들이 그 쪽까지는 파내지 않은 모양이야. 저 바위 근처에 12번 비상용 통로 입구가 있어. 그 쪽으로 들어가서 주 갱도로 갈 수 있을거야."


"주 갱도는 매몰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놈들의 둥지가 위치한 심층부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거니?"


"선발대가 심층부로 향하는 주 갱도를 거의 파내다 몰살 당했고, 날 제외한 작업팀들이 주 갱도 내에서 비교적 약한 지반들을 폭파시켜서 그 곳의 일부를 포함한 입구 쪽을 완전히 매몰시켰으니...매몰된 부분만 피하면 심층부 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을거야."


"그리고 네가 길 안내를 하겠다는거니?"


"...맞아. 난 그 곳으로 가야 해. 아니, 가야만 해."


더치걸의 말에 아더는 이를 악물 수 밖에 없었다.


"더치, 네가 그 광산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어. 지도만 주면, 우리가 직접 들어가서 놈들을 처리할게."


"그 지도만으로 미로 같은 갱도를 돌아다니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 없어. 이제 그 갱도 지리를 잘 아는 더치걸은 나 하나 밖에 남지 않았으니, 내가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줘. 부탁이야."


"...사령관님, 더치의 말 또한 일리가 있습니다. 광산 내부의 지리를 아는 이가 있어야 신속하게 놈들의 둥지를 파괴하고 빠르게 후퇴할 수 있습니다."


아더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더치의 어깨를 토닥였다.


"....좋아, 길 안내를 도와주되, 되도록 우리와 함께 행동하도록. 그 정도는 해줄 수 있겠니?"


"...알았어."


더치가 이그니스를 따라 격납고로 향하자 아더는 바이저를 올리며 우려의 의사를 표했다.


"...알바트로스의 말대로 내가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닌가 모르겠군."


"...아직도 알바트로스 지휘관님의 말씀이 마음에 걸리시는 겁니까?"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으니...최소의 피해와 최대의 이익이라...."


"생각은 수송선 안에서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이제 격납고로 이동하셔야합니다."


"...그래, 브라우니 말대로 생각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겠지. 지금은 아일랜드 27 탈환 작전에 집중한다. 모두 이동하도록."


복잡해진 마음을 뒤로 한 아더는 세 명의 대원들과 함께 격납고의 승강기에 탑승하였다.


그리고 투명한 유리창 밖으로 아더와 알바트로스의 시선이 서로 교차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