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군인이었다. 철충으로부터 세상을 지킨다는 사명을 가진 것은 똑같았지만, 각자가 추구하는 이념이 달라 마찰을 생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한 쪽은 군인으로써의 정신을, 


다른 한 쪽은 암울한 상황 속에서 다수의 생존을 위하여 최대의 이익과 최소의 손해만을 추구하였기에, 서로가 기름과 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커맨더 HQ-1 알바트로스, 여기는 사령관 아더다. 들리나?"


"수신 확인했다, 사령관 아더."


"최소한의 AGS 병력을 지원해 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건 의미 파악을 위해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비 효율적이다, 사령관. 날 비난할 거라면 직설적으로 하는 것을 권한다."


알바트로스의 무전에 불편한 기색이 드러나자 아더는 난간을 움켜쥐며 알바트로스를 저 멀리서 내려다보았다.


"아니, 그런 의도가 아니야. 나 역시, 네 의도를 충분히 이해해. 이제야 겨우 상황이 나아졌는데 병력 대부분을 27번 아일랜드에 투입한다는 것은 사실상 미친 짓이나 다름 없었으니, 네가 강하게 반대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어."


"....."


알바트로스의 침묵 속에서 저 멀리 AGS 병기고의 입구가 열리더니 폴른 여러 대가 모습을 드러내며 전열을 유지하고 대기중이던 AGS 병력들 사이로 끼어들기 시작했다.


"철충 지원 병력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 더 이상의 병력 지원은 불가하다. 이해해 주길 바란다, 사령관. HQ-1 알바트로스, 교신 종료."


"...고맙다, 알바트로스. 사령관 아더, 교신 종료."


한편 데드 오스트 대원들은 알바트로스의 추가 지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참, 그렇게 튕겨대더니 좀 더 보태준다는게 고작 폴른? 못해도 포트리스나 좀 보태줄 것이지."


"브라우니."


"죄송합니다."


"겨우 포트리스가 뭐에요? 최소한 스트롱홀드 정도는 되아죠."


"둘 다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군."



곧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무기들을 실어나르던 실키들이 일시에 경례를 갖추었다. 이를 가볍게 답한 아더는 27번 아일랜드를 향해 출격 준비를 하는 이들을 둘러보았다.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호드는 불가피하게 공병 위주의 병력만을 출격시킬 수 밖에 없었지만, 그들 역시 갖출 수 있는 모든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 후에 탑승하도록! 페더, 철충들의 지원 통신 차단용 재머는 충전되어 있겠지?"


"한계치까지 충전시켜 놓았습니다, 칸 대장님! 벌레 놈들이 아무리 통신병을 닥달한다 해도 보고 들을 수 있는 건 오직 오늘을 위해 준비해 둔 제 레전더리 콜렉션 영상들 뿐입니다!"


"...크흠! 이 쪽도 전부 준비되었습니다, 대장님! 탄약, 포탄 전부 다 세팅했습니다."


"이 쪽도 준비 끝! 네이팜도 최고급으로 꽉 채워놓았고, 장갑판들도 전부 깔끔하게 교체해놓았어!"


"어...우린 뭐, 여기 남아 있으면 되는거야? 아깝네. 평지였다면  바로 짐 챙기고 준비 했을텐데."


출격을 못하게 되자 내심 섭섭해하는 워울프들을 지켜보던 칸은 조용히 그들을 위로해주었다.


"다음에 분명 기회가 있을거다. 이번만큼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오르카 호의 방어를 담당해주도록."


"...알았어. 대장이 그리 말한다면야, 못할거 없지."


워울프들은 칸의 위로에 마지 못해 함선 내부에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이쪽! 이쪽으로 좀 더! 아니 왼쪽으로 더 꺾어! 야,  4중대! 탄약 박스 도착했다! 총알 아직 못 챙긴 애들은 이쪽으로 와서 담을 수 있는 한 최대한 챙겨!"


각 중대의 임펫들이 형광봉을 흔들며 탄약 박스들을 뜯어내 격납고 바닥에 전부 쏟아붇자,  굶주린 사냥개들마냥 수북히 쌓인 총알 더미에 많은 병사들이 몰려들어 탄창에 총알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뱀! 탄약 이 정도로 채우면 되겠습니까?"


"야 이 등신아! 누가 탄창 6개만 채우래! 최소 기관총 탄창 기준으로 8통 정도는 챙겨가야지!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많으니까 빨리  빨리 끼워!"


지상 방어전을 담당할 병력들은 산처럼 쌓인 총알들을 있는대로 쓸어담아 탄창에 넣느라 온 정신이 팔려 있었으며, 탄약 상자들을 잔뜩 짊어진 실키들은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여기 105미리 포탄이랑 플레어 언제 줄거야?! 빨리 좀 갖다 달라고!


"그만 징징대고 좀 기다려요! 우리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이는 곧 실키들의 스트레스 또한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뜻했다. 자신보다 높은 계급에 위치한 이들에게 거칠게 답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실키들은 짐을 한번 내리자마자 또 다른 짐을 실어날라야만 했다.



"그렘린들은 포탑 최종 점검하고 바로 수송선에 올라타! 샌드걸들은 탄약을 한계치까지 챙겨서 출격 준비하고, 베라! 알비스들 탄창 주머니에 초코바가 들어 있는지 확인해! 발키리! 오르카 호 갑판으로 이동해서 저격 포인트를 사수해! 서둘러!"


발할라는 완벽을 추구하는 레오나의 성격으로 스틸라인 못지 않게 분주히 점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둘 넷 여섯 여덟...좋아, 통과! 초코바 꿍쳐놓은 거 걸리면 바로 안드바리에게 보내버릴거야! 좋게 얘기할 때 탄창 확실히 챙겨놔!"


"씨...죽기 전에 하나라도 먹어볼려고 했더니만..."


"씨?"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한 편 스카이 나이츠와 둠 브링어 측에서는 계속되는 브리핑 및 작전 계획을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잘 들어, 내가 요약할 수 있는 한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 줄 테고, 두 번 반복해서 얘기 안 할거야! 병력을 잔뜩 실은 수송선들과 스틸라인 측 피닉스들, 그리고 둠 브링어를 우리가 호위하게 될 거야! 


철충들의 대공 사격은 둠 브링어 측에서 최대한 저지해 줄 테지만, 그 쪽에서 바빠질 경우, 대공 사격 저지 및 놈들의 공중 지원 병력 섬멸이 우리의 주 임무로 변경될 테니까 그렇게들 사전에 숙지들 해놓고 있어!


다들 명심해! 우리가 하늘을 장악해야 지상 측이 오래 버틸 수 있어! 


우리는 스카이 나이츠고, 죽는 한이 있어도 저 벌레들에게 절대 하늘을 내어줄 수는 없어! 알아 들었어?!"


"예!!"


"10분 후에 출격한다, 미사일, 탄약, 재머, 플레어든 뭐든 있는대로 다 챙겨!"




"...뭐, 내가 할 이야기를 저 굴 슈트가 다 이야기 한 것 같으니, 난 더 간단하게 설명해주겠어."


"초반에 철충의 대공 화망을 정밀 폭격하여 무력화 시킨 후, 스틸라인 측 피닉스들과 합류하여 공중 지원으로 지상군을 도울거야. 적 공중 병력은 스카이 나이츠 측에서 처리해줄테니 우린 우리의 할 일만 집중하면 돼. 


브리핑 끝, 모두 준비해서 출격할 준비해."



스카이 나이츠와 둠 브링어가 오르카 호의 활주로를 향해 이동하는 사이, 아머드 메이든과 캐노니어는 모든 준비를 마쳤는지 다른 부대와는 달리 여유로움이 넘쳤다.



"그 쪽은 벌써 다 준비 마치신 겁니까?"

"얼마나 오래 걸릴거라 생각했나?"

"뭐...마음이 그리 편치 않으신 것 같아서 못해도 이십 분 정도 걸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만큼은 잊어버리시고 포격에 집중하십시요. 괜히 잡 생각 많아지면 좌표 입감 제대로 못하실 겁니다."

"...알겠다. 이만 가보도록 하지."



팬서와 아스널의 짤막한 대화를 끝으로 두 부대는 서로 갈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팬서는 아스널의 표정에 수심이 가득한 것에 살짝 걱정이 들기 시작했지만, 곧 투입될 이들을 바라보며, 그 생각을 곧바로 떨쳐내었다.



"다들 출격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연설할 시간적 여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더치와 이그니스들은 어디 있지?"


"현재 7번 수송선에서 대기 중입니다."


"....솔직히 더치를 데려가는게 잘 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악몽과도 같은 장소로 다시 데려가는 건 너무 지나친 처사가 아닙니까?"


걱정 섞인 레프리콘의 말에 아더는 고개를 저었다.


"난 그 아이를 믿는다. 눈동자가 전혀 흔들리지 않았어. 거짓말을 했다면 처음부터 눈동자가 흔들리거나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렸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


"...알겠습니다. 7번 수송선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더와 데드 오스트 대원들은 수송선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고, 곧 대다수의 부대들이 출격준비를 마쳐 수송선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점차 수면하는 오르카 호의 앞으로 희미한 해무가 걷히더니 검게 물들기 시작한 27번 아일랜드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었다.



                                                                                                                                                                                        

27번 아일랜드에 자리 잡은 철충들은 섬을 사수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며,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오르카 호에 경악을 감출 수 없었으나,

 이에 경악하는 것은 일개 졸병들인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놈들이 온다, 이 섬을 빼앗으러 온 것이겠지."


철충 특유의 언어로 대화하는 스토커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잔뜩 서려 있었다.



"우린, 이 섬을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얼굴 한 쪽이 화상으로 일그러진 트릭스터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쉭쉭거렸다.


"사수라고 했나? 네가 그 쥐새끼들에게 정신이 팔리지 않았다면, 이 섬을 사수하기 위한 선발대의 머릿수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 행동 덕분에 선발대의 4분의 1이 바위 속에 파묻혔고, 이는 위대하신 분의 분노를 사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지!


우리 둘이 연옥 속에서 영원한 벌을 받을 뻔 했단 말이다!"


스토커의 노기 섞인 울음 소리에 트릭스터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져 갔으나, 곧 누그러졌다.


"네 전략적 가치 덕에 지금 당장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음에 감사하라, 스토커. 


위대하신 분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셨고, 지원 병력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조하셨다.


이 섬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우린 이 섬을 저 어리석은 살덩이들로부터 지켜낼 것이며, 성공한다면 위대하신 분께서 우릴 다시 자식으로 받아들여줄 것이다."


"섬을 지킨다고? 무슨 수로? 지원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저 군세를 어떻게 막는단 말이냐!"


"내게 계획이 있다, 스토커."


 

"계획?"


스토커의 붉은 눈들에 의심이 맴돌자 스토커는 푸른빛 혀를 낼름거리며 어두컴컴한 광산을 둘러보았다.


"내 예상이 맞다면, 살덩이 무리는 우리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알 것이며, 이는 곧 해변에 모든 병력을 투입하여 섬을 탈환하려는 무모한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살덩이들이 섬기는 새로운 마귀가 이 광산의 근원을 파괴하기 위해 쥐새끼마냥 몰래 숨어드는 것 또한 내 예상 범위내에 포함되겠지."


"...본론이나 논하라, 트릭스터."


"넌 해변의 살덩이들을 죽이는 데 집중해라, 마귀는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트릭스터의 말에 스토커의 붉은 눈들은 불신을 가득 가지기 시작했다.


"미친 소리! 처형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는데 네가 무슨 수로 마귀를 처리하겠다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계획에 난색을 표한 스토커의 말에 트릭스터는 화상 투성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을 뿐이었다.


"이 지하의 길들은 미궁이나 다름없다. 길을 아는 이들은 나와 너, 그리고 그 작은 쥐새끼들 뿐이지만 놈들은 오래전 우리를 막기 위해  멍청하게도 스스로 무너지는 광산 안에 남기를 택했지.


이 지하의 미궁을 궤뚫은 이는 이제 우리 둘 뿐이다.


데몬은  분명 길을 찾느라 온 힘을 낭비할테고, 그 틈을 타 내가 그 존재를 베어버리면 전황을 충분히 역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그럼, 다른 계획이라도 있나, 추적자? 있다면 한 번 얘기해 보도록."


"....알겠다. 광산 내부는 너에게 맡기겠다."


달리 계획이 없었기에 마지못해 트릭스터를 따르기로 한 스토커는 의심의 눈길을 어느 정도나마 거두며 지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