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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도 드셔보시죠”

아, 미안 같이 먹었어야했는데”

 

사령관이 젓가락으로 새우튀김 하나를 집어든다. 흰색 튀김옷의 끝에 맛있게 붉어진 새우 꼬리가 보인다. 다이카에게 먹어보라는 듯 그녀 쪽으로 젓가락을 밀지만 다이카는 싱긋 웃기만 하며 다른 도시락통을 열고 있었다. 다른 것도 먹어보라는 의미였을 테다.

어차피 먹어보라해도 자신이 다른 음식들을 모두 맛보기 전에는 한사코 거절할 것이 분명했기에 사령관은 다른 음식들도 한 입씩 먹어본다.

오르카호가 현재 정박한 곳, 구시대의 명칭에 따르면 북유럽, 북극해에 위치한 스발바르 제도는 기후상으로 추울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 탓에 유달리 쌀밥에서 모락모락 오르는 김이 진하게 보인다. 사령관이 젓가락으로 밥을 한 술 뜬다. 오히려 표면이 살짝 식은 탓일까 윤기나는 쌀알 자체의 찰기와 탄력이 훨씬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밥을 씹는 동안 어금니에서 통통한 보리가 터지는 식감이 독특하다. 보리가 섞인 밥을 맛있게 하려면 평범한 백미밥보다 짓는 수고가 훨씬 더 들어간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있는 사령관은 괜한 미안함에 다이카쪽을 슬쩍 바라본다.

바삭한 튀김옷과 쌀밥을 먹고보니 입 안에 고소하지만 무거운 기름기가 남는다.

 

상추가 좀 얇은 거 같다”

어린 상추가 좀 더 부드러워서 치커리랑 같이 그걸 썼어요”

 

무친 상추를 씹자 혀 끝에서부터 초가 새콤하게 입을 씻어준다. 그녀의 말대로 상추 줄기를 씹어도 뻣뻣하다거나 질긴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아삭거리면서도 부드러운 치감이 입을 즐겁게 해준다. 새콤한 맛이 지나자 쌉싸래한 어른의 풍미가 훅 들어온다.

직접 음식을 먹으니 맛의 균형이 상당히 잘 잡혀있을 뿐 더러, 사령관의 어줍잖은 지식으로도 영양의 균형도 꽤나 잘 맞는 듯 했다.

 

다른 것도 드셔보세요”

이건 뭐야?”

날계란에 튀김옷을 입혀서 튀긴거에요”

 

소완이 선물이라며 만들어 준 신기한 요리였다. 튀김옷이 크게 입혀지긴 했지만 가운데에는 확실히 계란의 둥근 모양이 박혀있었다.

 

이것도 네가 한거야?”

아, 네”

 

사령관의 일상적인 질문에 순간 당황한 다이카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긍정해버린다.

 

헤에…”

 

사령관의 감탄사 한마디에 자신의 거짓말을 눈치라도 챘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든다. 다이카가 아는 사령관이라면 분명 이런 거짓말 정도로 본인을 꾸짖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점이 아니었다.

 

겉은 익었는데 노른자는 그대로야, 되게 신기하네”

어”

 

날계란 튀김을 먹고 뜨거운 김을 호호 불고있는 사령관의 시야도 다이카의 목소리를 향한다.

 

사령관님!”

 

오르카호에선 듣기 힘든 하이톤, 시야를 조금 아래로 낮추어야 얼굴이 또렷이 보이는 어린 바이오로이드가 도로변에 서있었다. 사령관이 손짓하자 그제서야 잔디밭을 넘어 두 사람이 앉아있는 나무그늘로 올라온다.

 

코코, 무슨 일이야?”

히히, 사령관님이랑 다이카 언니 보고있으니까 이뻐보여서요”

 

허벅지 위에 찬합을 올려놓고있는 사령관 대신 다이카가 품 안으로 코코를 끌어앉힌다. 바람에 헝클어진 코코의 머리카락을 다이카가 손으로 쓸어넘겨준다.

 

데이트에요?”

 

직설적으로 들어오는 코코의 한마디에 사령관이 씹던 고기를 뱉어버릴 뻔 했다. 오르카호 특성상 어린 바이오로이드들도 남녀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소 성숙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순수한 눈망울로 데이트냐고 묻는 코코의 질문은 대답하기 곤란한 편이었다. 오르카호의 어린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도 유달리 튀지 않고 순수함을 간직해서 그런 것일까, 사령관은 대답을 무어라 해야할지 머리를 골똘히 굴리고 있었다.

 

이거 먹을래?”

 

집었다가 내려뒀던 새우튀김을 코코에게 한 입 먹인다. 코코가 조막만한 입으로 한 입 베어물자, 다음 번엔 다이카에게 가져다준다. 가볍게 입을 벌린 다이카가 베어물고 남은 꼬리와 살은 사령관이 입에 넣는다. 분명 튀김옷을 입고있는데도 속살은 흡사 생새우처럼 탱글탱글함이 느껴졌다.

 

난 새우는 꼬리가 좋더라”

그래서, 데이트 하고있는거에요?”

 

기껏 대화의 화재를 새우튀김으로 옮겼다고 생각했는데, 코코의 질문은 아직 그치지 않는다.

 

그렇지”

히히, 잘어울려요”

 

그제서야 긍정하는 사령관을 보며 코코가 헤실거린다.

 

스파토이아도 했었는데 뭘”

그랬었죠 참”

스파토이아 언니는 얘기 들어보니까 제대로 하지도 못했으면서”

뭘?”

평소에는 맨날 사령관님한테 들이댔으면서 막상 같이 있으니까 자기를 안좋아할거라 했다는둥…”

같이 있으면 부끄러우니까 그런거에요”

 

다이카가 싱긋 웃으며 코코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사령관님이랑 같이 있으면 좋지 않아요?”

코코는 어떤데”

전 사령관님이랑 같이 있는게 좋아요”

 

이번엔 단호박 튀김을 하나씩 나눠먹는다. 단호박을 살짝 쪄내서 튀긴 듯, 촉촉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단맛이 입 안에 들어찬다. 

 

다이카 언니는요?”

네?”

그러게 궁금하다”

 

코코의 질문이 순수히 다이카의 마음을 묻는 것이었다면 사령관의 질문은 순도 100퍼센트의 놀림이었다. 짓궂은 사령관의 놀림이지만 다이카는 오히려 솔직한 웃음으로 화답한다.

 

저는 언제나 다른 분들에 비하면 초라하고 느리니까요. 그런 점이 부끄럽지만…”

 

사뭇 진지한 목소리에 사령관과 코코 모두 다이카를 쳐다본다.

 

그래도 사령관님은 이런 저도 좋아해주실거라 믿으니까, 부끄러워도 같이 있는 게 좋답니다”

 

다이카는 담담하게 자신의 속내를 고백한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데이트의, 혹은 관계의 클라이막스에서 자신의 속내와 감정을 고백하는 걸 생각하면 다이카의 고백은 너무나도 정적이고 고요했다. 방금 전까지 눈을 감고 수 많은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은 오로지 다이카의 목소리 빼고는 아무것도 신경 쓸 수 없었다.

어른의 분위기라는 걸까, 주변의 공기가 한층 성숙해지는 걸 느낀 코코가 다이카의 품에서 일어난다.

 

헤헤, 전 가볼게요 사령관님, 다이카 언니”

 

방금 전 까지 튀김이며 고기며 얻어먹은 코코가 저 멀리 사라진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어색함이 두 사람 사이에 들어찬다. 물론 언제나 다이카가 느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그걸 귀로 듣는 것은 듣는 이에게도, 전하는 이에게도 언제나 새로운 경험일 수 밖에 없었다. 방금 전 까지 재료 하나하나의 맛과 치감과 밸런스를 즐기던 사령관은 금새 도시락통을 비운다.

 

잘 먹었다”

배부르시죠?”

응, 좀 많이 먹은거같긴 한데”

 

못해도 2인분은 됐을 음식양에 두꺼운 고기며 튀김을 거의 혼자 먹었으니 배가 안부른 것이 이상했다. 

 

차, 드시겠습니까?”

응, 움직이려는데 몸이 무겁다”

따뜻한 것, 차가운 것 어떤거로 하시겠어요?”

차가운 거로”

 

다이카는 펼친 보자기에서 찻잎과 찻주전자, 그리고 다른 물통을 치운다.

 

냉침출 차는 하루 정도 우려야 가장 괜찮은 맛이 나서, 미리 추출해왔어요”

하긴, 다이카 식으로 각잡고 차를 마시려면 몇 시간이나 걸릴 테니”

 

예절과 차례를 거의 생략했지만 그럼에도 찻잔은 잘 빚은 명품이었다. 차가운 녹차 한 잔을 사령관에게 건네준다.

 

어디 가고싶은데는 없어?”

후훗, 사령관님께서는 없으십니까?”

글쎄, 사실 요 며칠 데이트니 뭐니 하면서 이 근처는 거의 다 뒤져봤거든”

그럼, 그냥 걷는건 어떻습니까”

응?”

 

사령관이 빈 잔을 내밀자 다이카가 다시 차를 따라준다. 차게 우린 녹차는 가끔 마시던 녹차보다 훨씬 맑고 깨끗했다.

 

그래”

 

사령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차게 우린 녹차는 쉽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단호박 튀김 먹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