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안간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노성에 넌지시 눈을 뜬다.


시선을 돌리자 이미 정오가 지나 pm으로 바뀌어있는 시계가 나를 반긴다.


찌뿌둥한 몸을 풀어보려 기지개를 쭈욱- 펴자, 손 끝에 몰캉이는 무언가.


" .. 눈도 제대로 뜨지도 않고 성희롱이라니. 역시 주인님의 뇌는 하반신에 달려있는게 틀림 없군요. "


" .. 사고야, 진짜로. "


" 어련하시겠어요. "


눈을 뜨자 마자 닥치는 신랄한 비난. 이런 플레이도 나쁘지는 않지만, 모처럼 여유로운 휴일에 나를 깨울 리가 없는 그녀이다.


" .. 언제까지 그렇게 멍청한 얼굴로 멍하니 계실겁니까, 빨리 일어나서 세수라도 좀 하시고, 정말. 저도 빨리 정리해버리고.. "


" 우아아- "


거칠게 나를 잡아 끄는 손길에, 반 쯤 침대에서 떨어진 나는 뻐근한 허리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근육통을 만끽한다.


문득, 코 끝을 간질이는 이질적이며 달콤한 향기가 조금 의식을 각성시킨다.


" .. 어제 그렇게나 거칠게 보내시고도, 아직도 그런 상태신가요. "


바닐라의 시선은 노기를 감추지 못한 나의 하반신에 머물렀다.


" 응, 바닐라에게서 좋은 냄새가 나서말이지.. "

'

슬쩍 추파를 던지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대부분의 경우, 바닐라는 못 이기겠다는 불쾌한 시선 반, 어쩔 수 없다는 멋쩍은 미소 반으로 나의 분신을 보살펴 줄 터이다.


" 칫, "


기대와는 다르게, 바닐라는 매섭게 혀를 차며 허리를 두른 나의 손을 떼어 놓으며 내 몸을 일으켜왔다. 슬쩍 보인 바닐라의 얼굴에는 평소보다는 조금은 짙지만, 그녀의 피부에 어울리는 엷은 화장기가 그려져 있었다.


" 좀 봐주면 안될까? "


" 안됩니다. 오늘은 점령지 내부 시찰을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정말.. 제가 얼마나, 크흠. "


평소와 다른 향수, 엷게 칠한 화장.


눈 앞의 그녀를 빤히 내려다 본다.


" 뭐, 뭐하시는 겁니까. 자, 빨리 세수부터.. "


묘하게 힘이 들어간 치장과 구김 하나 없는 a급 메이드복. 평소와 다른 화장기, 향수까지.


" 으흐흐. 바닐라, 오늘 같이 돌아다니는 거 기대했구나? "


오늘의 점령지 시찰 파트너는 바닐라였다. 그렇기에 어제 그렇게나 무리하지 말라며 신신 당부를 했지만 기어이 늦잠을 자버린 내게 화가 난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미안한 마음과 약간의 장난이 일어 그녀에게 농담을 건낸다.


분명 ' 드디어 미쳐버리셨군요. ' 라던가 신랄하게 비난하겠지, 슬슬 그만 놀리고 빠르게 준비를 하지 않으면.


" 크윽.. " . 바닐라는 순식간에 나와 마주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리곤, 분함을 감추지 못한 그대로 순식간에 귓가와 목까지 빨개지도록 얼굴을 붉혔다. 


" .. "


" 뭐, 뭡니까. 빨리 준비나.. 꺅! "


평소완 다른 솔직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그녀를 품에 안아버렸다. 품에 안긴 그녀는 잠시 버둥거리더니, 이내 포기한 듯 얌전해졌다.


" 늦잠 자서 미안해, 바닐라. "


" 흥. " . 코웃음을 치면서도, 품에 안긴 그녀는 솔직하게 조금 더 깊게 얼굴을 묻어왔다.


" 오늘 화장 너무 잘 어울려. 향수도 평소랑 다른 느낌이라 좋고. "


가슴팍에 안겨있는 그녀의 얼굴이 더욱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델듯 뜨거워진 그녀의 얼굴은 보지 않아도 귀여울 터이다. 너무나 솔직한 그녀의 모습에, 나의 아랫도리 역시 솔직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 바닐라. "


" .. 네, 주인님. "


" 준비는 금방 할 수 있으니까 말야.. "


넌지시, 부푼 사타구니를 그녀의 뱃가를 살짝 찌르듯 밀어올린다.


" .. 변태. "


" 응? 잠깐이면 되니까. 안될까? "


" .. "


빨개진 그녀의 귓가의 머리카락을 슬쩍 넘겨주며, 과감한 유혹을 펼친다. 손끝에 닿은 그녀의 얼굴은 역시나 터질 듯 달아 올라있다.


" .. 새 옷이니까.. 더마세요.. "


그렇게 말하며, 바닐라는 슬쩍 준비해둔 콘돔을 내게 건냈다.


" 뭐야, 바닐라. 기대하고 있었네..? 읍- "


대답 대신, 그녀는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는 듯 내게 달려들어 입을 맞춰온다.




나른한 주말 낮의 분위기, 그처럼 끈적이는 시간을 보낸 뒤에야 우리는 시찰에 나설 수 있었다.


결국 바닐라의 옷과 머리를 잔뜩 더럽히고 말았기에,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시찰을 시작한 우리는, 결국 목표 지점의 절반도 돌지 못한 채 복귀하고 말았다.


" .. 나머지 절반은, 다음 번에 같이 가시는 겁니다. "


끝까지 뾰로통한 얼굴로 조심스레 손 끝을 잡은, 너무나 귀여운 오늘의 바닐라는 그렇게 아쉬움을 고해왔다.


" 정말? 그럼 다음번에도 먼저 세.. 읍- "


" .. 변태. 저질. "


내가 무어라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는 순식간에 손으로 나의 입을 막아버렸다. 


" 으읏.. 그때, 봐서.. 요. "


조금 더 강하게 손을 꽉 쥐어오며, 너무나 달콤한 바닐라 향은 그렇게 나에게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