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면장치 안의 인간이 깨어났다. 어떤 실험같은 것에 동원된 것일까? 건장한 몸과 어깨까지 자란 만년설과도 같은 순백의 숱많은 머리카락과 수염, 열대의 바다를 연상시키는 담청색 눈, 창백한 피부, 마치 옛 시대의 바이킹에게 어울리는 용모와 환자복을 연상시키는 순백의 가운과 펜리르를 연상시키는, 허나 그보다 더 묵직해보이는 손목의 구속구의 조합이 이러한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장군이라기에는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용모였다.
이제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듯 주변을 서서히 둘러본 노장군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자네는 누군가? 그리고 여긴 어디지? 동면시설은 아닌것 같은데."
"저는 잠수함 오르카호의 사령관입니다. 무너진 연구소 지하에서 저희 조사팀이 구스타브 장군님을 발견하여 이곳으로 모셔왔습니다."
"내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나?"
"지금은 2174년 입니다. 장군께서 2089년에 동면에 들어가셨으니....85년간 동면장치안에 계셨습니다."
"85년이라고..? 연구소 건물이 무너질만도 했군. 잠깐, 85년동안 유지보수할 인원이 한명도 안왔다는 소린가? 뭔가 이상하군, 내가 잠든 사이 연합전쟁이 한번 더 벌어지기라도 한건가?"

 나는 기억의 방주에서 읽어본 내용을 바탕으로 기억을 되짚어가며 현재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2102년에 2차 연합전쟁이 발발했고, 2111년, '철충'이라 불리는 기계에 잠식하는 외계생물이 전 세계적으로 침공했고, 잠에 빠져 영영 깨지 못하는 휩노스병의 발발로 인해 지구의 인류는 멸망했다. 그리고 2171년, 궤도상에서 지구로 추락한 채 발견된 내가 기억상실증 상태로 바이오로이드 저항군에게 발견되었고, 여러 일을 겪으며 여기까지 와 있다는것 까지.

".......잠든 사이 무어라 말하기 힘든 대참사가 벌어질 줄이야, ....잠시 생각을 정리해도 되겠나?"
"잠시 이곳에서 계시죠. 혹시 몸에 이상이 생기시거나 필요한게 있으시다면 조치해드리겠습니다."
"고맙네."
노장군은 한동안 침묵에 잠겨있었다.

"...다들 왔어? 그럼 회의 시작할게."

 방을 옮긴 후, 현재 오르카호에 있는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들과 리리스와 닥터를 호출해 상황을 설명하고 회의를 진행했다.
여러 의견이 오갔고, '장성급 장교이니 능력은 있을것이므로 들이는게 이득이다.' '그래도 멸망 전 구인류이므로 믿을 수 없다.' 의 두가지 의견이 주축을 이루었다. 수시간 동안 이어진 회의의 결론은 찬성파의 의견이 근소한 차이로 채택되었다. 다만 반대파의 의견도 틀린말은 아니었기에 일단 오르카호의 빈 방에 임시로 들이고, 당분간은 눈에 띄지 않게 관찰을 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방으로 돌아가 앉아있는 두번째 인간에게 말을 걸었다.
"생각은 좀 정리가 되셨습니까?"
"음, 충분히 된듯 하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동면에서 깨어나신지 얼마 안되셨으니 몸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모르니 검진을 한번 받아보시는게 어떠시겠습니까?"
"아직까진 큰 문제는 없는것 같네만. 흠...그래, 설마라는게 있으니까 한번 받아보도록 하지."
"그럼 저쪽으로 가시죠."

"간단한 검사니까 금방 끝나요~"
"아, 그,그래."
두번째 인간은 닥터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그럴만도 한것이 닥터는 천재적 지능의 소유자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어린아이의 모습이기 때문이리라. 멸망 전에도 10명이 전부였던 닥터였으니 이전에도 보기는 힘들었겠지.
몇가지 검사가 끝나고, 구스타브 장군을 방으로 보낸 뒤, 닥터는 나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검사결과를 가져왔다.

"오빠,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다른건 대부분 정상이야. 신체도 나이와 동면에서 깨어난것 치고는 상당히 건강하고. 다만..."
"다만? 뭔가 문제가 있는거야?"
"응, 혈액과 호르몬 검사에서 처음보는 혈청이 검출되었어. 신체의 근력과 민첩성을 강화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중추신경계에 이식된 장치에서 신호가 가해지면 추가적으로 반응속도와 동체시력을 증강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어. 문제는 공격성도 같이 강화된다는 점이지만."
"뭔가 문제가 생겨서 우리를 공격할 가능성도 있을까?"
"아직은 몰라. 펜리르 언니가 차고 있는 구속구랑 비슷한 장비를 차고 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동면장치 안에 있어서 제대로 작동할수 있는지는 미지수야. 신체의 노화면 몰라도 기계의 수명은 동면장치로 멈출 수 있는게 아니니까."

 닥터의 말을 듣고 후회와 불안감이 덮쳐왔다. 나는 어째서 그저 두번째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원조차 확실치 않은 구시대의 인류를, 언제 폭주해 우리를 해칠 수 있는 폭탄과도 같은 존재를 이 안에 들였단 말인가? 어째서 더 신중하지 못했을까? 지금이라도 결정을 뒤엎고 추방해야하나?

생각을 이어나가던 중, 총성과 남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굵직한 고함소리, 그리고 금속이 찌그러지는 굉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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