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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터졌다고?"


"네.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준비는 무슨. 어차피 터질 거 각오하고 보냈던 건데.

진행만 제대로 되도록 확인해줘."

 

"알겠습니다. 다만 대원 분들의 반응이..."



시끌벅적. 인이어 너머가 상당히 북적북적하다.



"야!! 달리잉!!! 그거는 절대 안 하기로 했잖아!!!"


"사령과안! 이번에 돌아오면 팔 다리 하나는 박살날 각오를 해라!!"


"... 칸 님과 레오나 님이 제일 극성이시네요.

건투를 빌겠습니다."


"... ... 그래. 수고해줘." 



 

아쉽게도, 플랜 z가 시작된 지금 나는 그렇게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케스토스 히마스의 해킹도, 시스템 장악도, 전부 오르카에서 원격으로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방 안에 대중없이 놓은 의자 중 하나를 끌고 와 창가 앞에 앉아 밖을 쳐다보는 것이었따.

밖에선 주인 없는 비명 소리들이 기류를 타고 하늘을 향해 질주하는 듯했다.

 

 

또각! 또각! 또각!

 

 

저 날카로운 구두굽 소리의 주인을 위해, 또 그 주인의 주인을 위해 몇 명의 삶이 망가졌을까?

또 앞으로 얼마나 망가지게 될까? 제 의지도 없는 마리오네트들은 그것이 슬프다는 사실조차 자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주운 왕자는 아침이 밝을 때까지 그 구두를 손에서 놓지 않고 매만졌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심정으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신경질적인 발소리에 대적하고자 몸을 돌렸다.

 

 

 

“인이어에서 소리가 끊어졌다 했더니, 결국 터져버렸구나? 회장놈.”

 

“네 놈... 네 놈!!!!”

 

 

 

옷에 묻은 피를 지울 틈도 없이, 델타가 나를 향해 쏘아붙이듯 다가왔다.

 

 

 

“지금 네까짓 놈이 감히 나를 능멸해?! 회장님을 사칭한 것으로 모자라 감히 내 눈 앞에서...!!”

 

“회장놈을 터트리기까지 했지.

그 놈이 전생에 지었던 죄에 비하면 좀 약한 처벌이긴 하지만, 난 사람이 살덩어리로 전락하는 꼴에 이골이 난 사람이라서 말이야.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선 그 정도로 끝내야 해. 더한 걸 바라지는 마.”

 

“!!! 아... 아직도 그딴 식으로 말할 여유가 있는 모양이지?

어디 몸 속에 총알이 몇 방이나 박힐 수 있을 지 한 번 확인해볼까?”

 

 

 

철컥! 델타의 뒤를 호위하던 수십 명의 마리오네트가 나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조명에 번쩍이는 수십 정의 총을 보고 있자니 솜톨이 섬찟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회장이 죽는 광경을 눈 앞에서 보느라 진짜 정신이 나가긴 한 모양이군. 정말 날 상대하고자 했다면 혈혈단신으로 왔어야지.

창가를 가만히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을 뱉었다.

 

 

 

“뭐해? 돌려.”

 

“?!! 어떻게 네 놈이...!!”

 

 

 

내 말에 수백 명이 일제히 총의 화구를 델타를 향해 돌렸다.

철컥, 하는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에 델타는 화들짝 놀라 뜬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마리오네트가 여러 모로 결함이 많긴 하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던 것은 기본적으로 바이오로이드.

레모네이드 급도 아닌 일개 마리오네트 따위가 인간의 명령을 무시할 수 있는 없는 노릇이다.

 

 

 

“회장놈이 죽은 게 충격이긴 했던 모양이야. 내가 인간이란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 애들을 데리고 온 걸 보면 말이야.”

 

“감히... 감히...!!”

 

“뭐, 노처녀가 수십 년 만에 님을 만났는데 눈 앞에서 펑 하고 터져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지.

괜찮아. 난 다 이해해줄 수 있어.”

 

“네가 정말로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델타가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부스럭 부스럭 바쁘게 손가락을 놀렸다.

그러자 마리오네트들이 팔을 부들거리며 자신의 머리를 향해 총을 돌렸다.

 

탕! 연이어지는 수십 발의 격발음이 있었고, 마지막 마리오네트가 쓰러질 때까지 델타는 이를 악 물며 나를 쳐다보았다.

바닥이 온통 시체밭이 되어서야 이 방에서 진동하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이게 델타가 원래 살던 방의 모습이었다.

 

 

 

“자! 이제 나를 협박할 무기도 없어진 것 같은데 어떻게 할 셈이지?

다른 숨겨둔 무기가 있다면 지금 당장 꺼내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네 놈의 목이 먼저 날아갈 테니까!”

 

“오우, 천하의 델타가 그렇게 자비롭게 끝내준다고? 이거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인데.”

 

 

 

평소의 말투에 약간의 비아냥을 첨가하자 델타의 이마에 두꺼운 핏줄이 울긋불긋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여튼 얘네들은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참지를 못한다니까. 성큼성큼 다가오는 델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반대편으로도.

 

 

 

쿠궁!

 

“쿠궁? 지금 뭐 하는 거지?”

 

 

 

나와 마주보고 있던 창문에 붙어 있던 손잡이를 있는 힘껏 밀어 당겼다.

미리 가장자리를 망치로 두드려놓았던 탓에 창문은 힘없이 부스러지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휘이이잉--- 마천루임을 과시하듯이 세찬 바람이 방 안을 온통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온 사방 대중없이 놓여져 있는 마리오네트의 시체들마저 덜컥거리며 총과 함께 뒤섞였다.

 

 

 

“있지,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신데렐라를 기다리던 왕자는 밤을 지새우는 동안 뭘 했을까?”

 

“갑자기 그게 무슨...”

 

 

주인 잃은 유리구두가 촛불에 반짝이는 걸 보면서, 왕자는 신데렐라의 얼굴을 그렸을 것이다.

내일 당장 사람을 보내 온 마을을 뒤졌을 것이고, 그리하여 찾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연습을 했을 것이다.

 

종교가 있었다면 신에게 기도했을 지도 모른다. 부디 신데렐라를, 그 아름다운 공주님을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치정 싸움과 탁상공론이 가득한 이 지옥 같은 궁전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준 그녀를 다시 보게 해달라고.

 

아마,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랬을 것이다.

이곳은 궁전이었다. 사람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궁전.

 

 

 

“왕자는 느긋느긋 넘어가는 달을 보며 원망했겠지. 빨리 지나가지 않는 모래 시계를 보며 괴로워했을 테고.

너도 그랬을 거야. 델타. 안 그래? 회장 모양의 고기 인형을 보자마자 앞뒤 가리지 않고 맞이하러 갔잖아.”

 

“... 지금 어줍잖은 말로 시간을 끌려는 속셈인가? 하지만 시간 같은 건 끌어봤자 도움 될 게 없을 텐데?”

 

 

 

델타가 저 멀리, 도심을 지키는 방어막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은 내 궁전이다. 나와 회장님만을 위해 내가 수십 년 동안 가꾸고 지킨 궁전이라고!

그런 곳에 네 놈을 도와줄 사람이 남아 있을 것 같아? 있다고 해도 저기 멀리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겠지!!”

 

“그러겠지. 지금은 말이야.”

 

“하! 여유로운 척 하는 것도 이젠 안쓰러울 지경이구나.

네놈 하나 처리하는 데에는 마리오네트를 쓸 필요도 없겠지. 당장 케스토스 히마스의 도움만 받는다면...”

 

“그거 이젠 마음대로 안 될 걸?”

 

 

 

델타가 다시 한 번 패널을 조작하려고 했지만, 벽에서 튀어나온 포탑들이 일순 스파크를 튀며 베베 꼬이기 시작했다.

 

벽과 연결되어 있는 케이블, 프레임들이 콰득, 콰득, 으스러졌고, 이내 툭, 하고 잡힌 모기처럼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경고! 치명적인 오류 발생!]

[경고! 치명적인 오류 발생!]

[즉시 시스템을 재가동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케스토스 히마스의 통제권 장악. 해킹하느라 우리 애들이 애 좀 먹었단다.

설마 레모네이드 두 명을 데리고 있어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상상도 못했어. 

이 건물 전체가 하나의 단말기 역할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알파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건물은 통째로 델타의 실험실과 같은 곳이었다.

마천루의 감시 시스템은 물론이거니와 도시 규모의 마리오네트 생산 설비, 재료 전달, 재활용 처리까지, 모든 것이 케스토스 히마스 하나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거다.

 

이 건물 지하 2~5층은 그 전부가 케스토스 히마스의 부가 연산 장치들이 집속되어 있는 집합체였고, 데이터 수집 및 기타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플로어가 따로 있었을 정도.

말 그대로 건물 크기의 컴퓨터였던 셈이다. 그러니 해킹에 시간이 그렇게나 오래 걸렸을 수 밖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델타는 조금 다른 부분에서 놀랐던 모양이다.

 

 

 

“... 잠깐, 레모네이드 두 명? 그럼 혹시 네 놈이...”

 

“그래. 알파랑 오메가, 덮밥으로 먹으니까 맛있더라? 물론 알파가 조금 더 낫긴 하지만.”

 

 

 

노처녀로 평생을 살아왔던 델타에게 이 말은 가히 화룡정점과 같은 도발이었으리라.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한 델타가 성큼 성큼 걸어와 내 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몸 전체를 간이 역장으로 두르고 있었기에 아프진 않았지만, 델타가 어디까지 할 지 궁금해서 한 번 놔둬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회장님의 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전부 네 놈이 꾸민 짓이었단 말이냐?!!”

 

“뭐, 대충은?”

 

“감히 네가 나를 능멸해?! 

이 레모네이드 델타를?! 고작 인간 따위가!!”

 

 

 

회장 앞에서 보였던 겸손과 노블레스 오블리쥬는 어디에 갔다 버렸는지, 지금의 델타의 표정은 순수한 분노로 완연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미간에 잡힌 짙은 주름, 속았다는 사실에 분해하며 흘린 눈물이 짙은 화장을 지워 검은 물줄기로 뺨에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모습에 나는 신기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일말의 동정심마저 사라진 고요한 감정. 그저 발 끝에 땅이 닿지 않아 조금 불안했을 뿐이었다.

 

 

 

“고작 인간? 넌 회장이 아닌 인간들은 전부 다 그런 식으로 여기는 모양이지?”

 

“하! 그럼 네가 네 놈에게 회장님과 같은 취급을 해줄 거라 생각했나?

회장님께선 네 놈 따위는 쳐다볼 수도 없는 고귀한 곳에 계신 분이시다!

멸망하지만 않았더라도 네 놈은 고개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높으신 분이시지!!”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일개 시민이었고, 펙스의 회장은 전 세계를 좌지우지했던 기업의 총수였으니까.

나는 일개 평민이었고, 그들은 귀족이었으니까, 왕족이었으니까 그들과 나의 신분은 하늘과 땅의 차이였을 것이었다. 델타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난 마지막 남은 인류다. 신분을 따질 인간이 전부 사라진 세계의 마지막 사람.

굳이 신분을 따지자면 공석이 된 왕좌에 앉기를 거부하지 않을 평범한 욕심쟁이였다.

 

그러니 이젠 내가 왕자다. 왕이면서 왕자인 욕심쟁이. 하지만 왕족이고 싶진 않다.

지금 내 눈 앞에 그 빌어먹을 왕족의 후계가 추악한 악행을 일삼고 있었기에 그런 것이 첫 번째였고, 

무엇보다 지금 나에겐 데리고 가야 할 평민 아가씨가 있다.


 

 

“대신, 왕자는 그럼에도 신데렐라를 골랐지.”

 

 

 

동화 속 왕자는 정략 결혼을 해 정치적 이점을 꾀했을 수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여성은 전부 취하여 첩으로 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왕자는 유리구두를 들고 온 마을을 헤집어 신데렐라를 찾았다.

숯검댕이로 얼룩진 시골 아가씨를. 그리고 그 발에 유리구두를 신겼다.

 

신분도, 그 어떤 이해관계도 없이 그저 유리구두에 발이 맞기만 하면, 

스스로를 신데렐라라고 증명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아셴푸텔, 숯에 얼룩진 처녀라 하여도 자신의 아내로 받아들인 것이다.

 

 

 

“델타. 이 미친 계모야.

너는 네 욕심 하나를 위해 지금까지 몇 명의 신데렐라를 죽였지?”

 

 

 

벽지에 스며든 피 냄새는 그저 뿜어져 나온 것들과 궤를 달리하는 독특한 냄새가 난다.

조금 쿰쿰한 곰팡이내 섞여 있는, 썩어버린 바다의 비릿한 향기가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은 채 영원히 그 자리에 남게 된다.

 

이 방이 그러했다. 그러니 알 수 있었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신데렐라가 여기서 죽어갔을 것이라는 것을.

오드리 드림위버라는 신데렐라를, 올리비아 스타수어라는 신데렐라를, 

저 도심 지하에서 셀 수 없이 만들어지는 마리오네트라는 신데렐라를, 이 계모는 거리낌없이 학살했을 것이다.

 

단 한 명의 왕자도 없이, 수많은 신데렐라가 천천히 흘러가는 모래 시계를 원망하며 죽어갔을 것이다.

 

 

 

“내가 네게 회장과 동등한 취급을 받길 기대했냐고? 아니, 그 딴 건 기대한 적도 없었어.

난 평민이고 회장놈들은 왕족이니까, 너희 레모네이드들은 회장이 아닌 인간은 전부 소모품 취급하는 게 현실이니까. 

그러니 당연히 기대도 안 했지.”

 

“하지만 빌어먹을 현실 따라 살려고 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어. 이 개새끼야.”

 

 

 

나는 주머니에서 중계기를 꺼내 깨진 유리창 밖으로 휙, 하고 던졌다.

바람이 제법 거칠었지만 다행히 중계기는 아무 문제 없이 아래를 향해 떨어졌다.

 

그런 다음, 내 목을 쥐고 있던 델타의 팔을 있는 힘껏 짜내듯이 쥐었다.

인간의 몸으로 나올 리 없던 괴력에 델타가 깜짝 놀라 나를 잡던 손에 힘을 풀었다.

 

 

 

“있지, 내가 재미있는 거 하나 알려줄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전이 플랜 z거든? 근데 사실 이건 어떤 멍청이 덕분에 그렇게 된 거야.

원래대로라면 이건 플랜 j라 하는 게 맞았거든.”

 

“이... 인간이 어떻게 이런 힘을...?”

 

“내 정체는 차차 알아가는 거로 하시고, 앞을 보세요.

내 친구 중에 워울프라는 애가 있는데, 얘가 멋을 엄청 중시하는 애란 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세운 작전들 중 한 개의 이름을 지어달라 했는데, 이 바보가 스펠링을 틀려버린 거야.”

 



델타가 붉게 달아오른 자신의 팔을 멍하니 바라보는 동안, 나는 몸을 쭈구린 채 델타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쥐라기의 영어 스펠링은 뭘까요?

 

 

 

정답은 Jurassic. 그런데 워울프는 이걸 Zurassic으로 착각해버렸다. 


덕분에 이 작전은 플랜 j가 아니라 플랜 z가 되어버렸고.

 

그런데 이 작전명이 왜 쥐라기냐고? 글쎄, 그건 굳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아래를 보는 편이 빠를 것이다.

 

 

 

“마리오네트는 살리는 게 불가능한 인형. 그런 애들을 지하 곳곳에서 만들고 있으니 내가 하나하나 부수기엔 시간이 너무 없겠더라고.

그래도 우리 대원들 중엔 부수는 거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하는 애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이 건물의 높이는 대략 1 km. 이제 3초 정도 뒤면 중계기가 바닥에 닿을 것이었다.

 

 

 

“그게 누군지 너희도 아주 잘 알 거야.

연합 전쟁에서 정부가 기업을 상대하겠다고 꺼내 들었던 애들이거든.”

 

 

3초.

 

순간 위기감을 느낀 델타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2초.

 

하지만 간이 역장 생성기를 최대치로 끌어 올려 다가오는 델타를 강하게 밀쳤다. 덕분에 역장 생성기가 파괴되긴 했지만.

 

1초.

 

일순 고요해진 분위기에 나자빠진 델타가 조용히 주변을 바라보았다.

 

 

 

“... 하... 하하하! 그래! 그저 블러핑이었겠지! 네놈 따위가 무슨...”

 

쿵!

 

“계략 같은 걸... ...”

 

쿵! 쿵! 쿵!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발소리. 나는 깨진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붉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바라보았다.

탁 트인 장소에서 열린 차원문, 리멘은 건물 2, 3층 높이 수준으로 거대하게 커졌고, 땅을 구르는 이 굉음은 그 안에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델타의 패널에서 마리오네트들의 긴급한 목소리가 들렸던 것은 그 때였다.

 

 

 

“델타님! 위험 대상을 발견했습니다! 신속히 대피를...”

 

콰직!

 

“대상 위험 등급. 데이터 베이스 참조 중... 10등급 이상의 위험 분류 확인됨.

델타님 안전을 최우선으로...”

 

콰직!

 

“공략 방법을 검색 중입니다. 자폭을 활용한 저지를 시도하는 중입니다.”

 

콰직! 콰직!

 

“저지 불가! 저지 불가! 대처 불가능의 대상을...”

 

“크르르르...”

 

“아... 아아아... ...”

 

 

 

겁에 질린 듯한 마리오네트들의 비명 소리가 델타의 수화기 너머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혼비백산이 된 델타가 바닥에서 무릎을 꿇은 채 연신 고개를 저었다.

 

 

 

“마, 마리오네트들이 공포를 느껴...? 아냐아냐, 설마...”

 

 

 

그 말을 끊으며 나는 내 패널에 신경을 집중했다.


멸종해버린 지구의 지배자의 울음소리가 그 안에서 사납게 울리고 있었다.

 

 

 

“아아, 내 말 들리나?

어때, 후회 없는 싸움을 하게 해준다고 했지?”

 

“크흐흐흐... 그래... 날 다룰 자격은 충분한 것 같군.”

 

“거 아래 잘 찾아보면 마리오네트 말고 AGS도 몇 개 있을 테니까 찾아서 잘 씹어 먹어봐.”

 

“그런 같잖은 통제는 내게 방해만 될 뿐이다.

좀 더 괜찮은 명령을 내리도록.”

 

 

 

지직거리는 기계음. 허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치 맹수를 눈 앞에 둔 것처럼 오금이 저려온다.

 

하지만 이 맹수는 우리 편이다.

그 이름, 폭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것을 다루는 것엔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한 마디면 된다.

 

 

 

“그래. 타이런트.

가서 다 박살을 내라고.”

 

 

 

내 말이 끝나자 천지를 뒤흔드는 포효와 함께, 한 플라즈마 포가 나타나 하늘의 구름을 두 동강 내버렸다.

 

마녀를 태울 아주, 아주 특별한 장작. 그 이름은 타이런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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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건 말도 안 돼!!”

 

 

 

델타가 비명을 지르며 두 조각 난 구름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자기도 아는 거다. 아무리 마리오네트들이 자폭 공격을 해본다고 한들, 타이런트에게 흠집 조금 남기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그나마 델타에게 다행스러웠던 것은 도심의 방어막이었다.

플라즈마 포에 잠시 뚫렸던 방어막은 금새 힘을 되찾고 원상복귀 되었다. 도심 이곳저곳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었던 것이 이 때문이었으리라.

 

 

 

“멸망 전, 정부와 기업 간의 전쟁이 한창 이던 때 한 전장에 타이런트 한 마리가 홀연히 나타났지.

그 때 그 결과가 어땠는지 알아?”

 

“하... 하하하... ...”

 

“전멸이었어. 양측 모두의 전멸.

어디 한 번 잘 막아봐. 운이 좋다면 네 잘난 왕궁이 부서지기 전에 폭주를 멈출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어안이 벙벙해진 델타는 연신 자신의 패널을 미친 듯이 눌러댔다.

벽 안에 있는 포탑, 전기 충격기, 그게 뭐가 됐든 날 잡기 위해 꺼내려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케스토스 히마스의 통제권은 우리에게 들어온 상황.

나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드리가 갇혀 있던 방의 문을 열었다. 전에 눌렀던 타일을 똑같이 누르니 안에 있던 오드리가 다시 모습을 보였다.

 

 

 

“알파, 이젠 풀어줄 수 있겠지?”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삐빅. 1초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짧은 신호음이 울리더니 수십 년간 오드리를 묶고 있던 구속구가 풀려버렸다.

 

힘없이 떨어지는 그녀가 바닥에 닿기 전에 그녀의 몸을 팔로 받아 들었다.

여전히 몸 상태는 최악이었기 때문에 강아지를 드는 듯이 조심스럽게 안을 수 밖에 없었다.

 

 

 

“눈은 뜨셨나요? 마드모아젤.”

 

“하... 하하... 밖에서 왠 굉음이 들린다 했더니 당신이었군요...”

 

“호박 마차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나는 호박 마차가 아니지만.

 

오드리를 들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나에게 델타가 널브러진 마리오네트의 총을 들어 겨눴다.

 

 

 

“어딜... 감히 어딜 도망가려고! 날 기만하고, 기어코 모든 걸 망친 주제에 멀쩡히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아니겠지?!!”

 

“그럴 생각이었지. 내가 원래 이런 데에선 뻔뻔하거든.

근데 그 총은 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적어도 탄창이 장착되어 있는 지 아닌지는 확인하고 들었어야지.”

 

 

 

오메가의 블러핑, 눈 앞에서 터져버린 회장, 자신의 왕국을 짓밟고 있는 괴수의 울음소리.

정신 차릴 새가 없었던 탓에 델타는 탄창도 장착되어 있지 않은 총을 주워버렸다. 총은 총알도 없이 틱, 틱, 부딪히는 철 소리면 내뱉을 뿐이었다.

 

약간의 부끄러움과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델타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총들을 미친 듯이 살펴보았다.

그러든 말든, 나는 가만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도심의 방어막으로 꽁꽁 둘러 쌓인 하늘을.

 

 

 

“알파?”

 

“네, 주인님.”

 

“몇 초 남았어?”

 

 

 

내 물음에 알파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5초 남았습니다. 충격에 유의하세요.”

 

 

 

콰과과광!!!!!!!!!!!!!!!!!!

 

일순 타이런트의 난장판을 한순간 묻어버릴 만큼 거대한 굉음이 도심의 방어막을 때렸다.

 

메이가 날린 핵폭탄이 방어막의 상층부를 때리고 약간의 균열을 만든 것이었다.

순간 밝은 빛에 눈을 찌푸리던 오드리를 대신해 내가 그녀의 눈을 가려주었다.

 

 

 

“므슈... 저건 대체...”

 

“우리가 빠져나갈 쥐구멍이라고 해두지.”

 

“빠져나가?!! 빠져나간다고오?!!!!”

 

 

 

핵의 충격에 몸이 나자빠진 델타가 총 찾기를 포기하고 우리를 향해 유리 조각을 던지며 말했다.

 

 

 

“하! 그래! 어디 한 번 빠져나가 봐!!

저 빌어먹을 미사일, 분명 핵이겠지? 그럼 그 폭심지는 초고열에 방사능 범벅일 텐데 어디 그 천박한 년이랑 같이 빠져나가 보라고!!!”

 

“므슈... 제가 생각해도 저 말이 맞을 거에요.

저 열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면 방어막은 다시 충전될 테고. 저도 도망쳐보려고 했지만 소용 없었어요.”

 

 

 

오드리가 입술을 꾹 깨물며 내 옷을 쥐었다. 델타 역시 내 멍청함을 비웃으려는 듯 마녀처럼 낄낄대기 시작했다.

 

둘의 말이 맞다. 하지만 타이런트에게 우리가 있는 곳만 제외하고 부수라 말할 수도 없는 노릇.

만약 기다린다고 하면 저 열기가 식기 전에 타이런트의 플라즈마 포가 우리가 있는 VIP룸을 반으로 갈라버릴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플랜 z. 최후의 수단답게 도망칠 방법도 있었다.

 

 

 

“오드리. 신데렐라는 너무 옛날 이야기잖아?

그러니까 한 번 생각해봐. 최신식 호박 마차가 온다면 어떻게 올 것 같아?”

 

“호박 마차라니... 그게 무슨...?”

 

“정답은.”

 

 

 

나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쳐다보았다.

 

 

 

“’날아온다.’야.”

 

 

 

초고온과 방사능이 응집되어 있는 핵의 폭심지. 리리스의 로자 아줄도 그 안에서는 입에 물린 사탕처럼 녹아날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 그걸 버틸 수 있는 방어막이 있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균열을 뚫고 유성우처럼 활활 타오르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델타를 향해 말했다.

 

 

 

“우리도 예전엔 너 같은 인간 한 놈 때문에 고생 많이 했지.

어찌나 고생을 했으면 그 때는 드론 한 마리도 제대로 만들 기술이 없었어.”

 

“그런데 이젠 아니지. 격세지감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봐.”

 

 


실제로도 내가 이 게임을 처음 했을 무렵, 이 녀석 하나를 뽑겠다고 가지고 있던 자원을 다 써버린 적이 있었다.

사람들한테 가장 좋은 AGS가 뭐냐고 물으면 이 녀석이라고 대답해줬었거든.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이유로 수도 없이 많이 놀림 받았던 녀석. 그러나 실상은 제법 괜찮았던 녀석.

설정과 실제 성능 사이의 괴리 때문에 언제나 놀림의 대상이었던 녀석. 그럼에도 언제나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었던 녀석.


나는 오늘, 그 녀석에게 불명예를 씻을 기회를 주고자 한다.

타이런트의 포를 직격으로 맞아도 아무렇지 않은 채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려오는 녀석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보아라.”

 

 

 

그것은 신데렐라를 데리고 갈 위대한 황금 마차였다.

 

 

 

“하늘에서 ‘최강’이 내려온다.”

 



푸슈슈슈슈슈------------


 

 

“------HQ1-알바트로스.

강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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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싸개. 강림.


멋있음. 확정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