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법이다. 그에게 맞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역시 나쁘지 않겠으나, 

역시 그가 나에게 어울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으니까.


'쉽게 말할 수 있다면 말이겠죠...'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혹시 그가 싫어하진 않을까. 혹시 자상한 그가 싫은 내색도 못하고

지루해 하지는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처럼 얌전히 그의 손에 이끌려 강을 따라 걷는 이 시간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때 그 무대 이후로 단 둘이 시간을 보낸 건 처음인가?"


"예.. 후훗, 돌이켜보니 꽤 오랫동안 단 둘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군요."


마주 잡은 그의 손에 살며시 힘이 들어갔다. 별 생각 없이 대답한 말이었지만 그는 한동안 둘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미안해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역시, 그는 너무 자상해.'


그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성격 상 이럴 때 그가 할법한 말은.. 


"정말 미안해!"


"괜찮습니다. 사령관 님께서 바쁘시다는 것은 저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요."


"대신, 오늘은 흐레스벨그가 좋아하는 것을 준비해 놨어."


"어머, 그거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치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딱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지 않아도 그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 역시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보물이 될 테니까.


그러니 한발 물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에게 권유하기 보다는, 그가 좋아하는 이런 시간들을 더 즐기자.

이렇게 어깨를 맞대고, 보폭을 맞춰 함께 걸어나가자.


'난 그것으로도 충분해.'


산책이 끝나고 그의 방에 도착해서도 데이트는 이어졌다. 그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는 사소한 것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얼굴에 피어난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함께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내가 이야기 하는 것 보다는 언제나 그의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그래도 괜찮아.'


그저 곁에서 이렇게 이야기만 들어도, 나는 충분히 소중하게 느껴졌으니까.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군인에게 소중하지 않은 일상이란 없다. 그가 사령관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

매일같이 이어졌고, 실제로도 당시 전황은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도 내 옆에 앉아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지난 과거들과 지금의 오르카를 비교하게 된다.

지금은 하루 하루가 즐겁다. 돌아오면 웃으며 반겨주는 그가, 어려운 작전이 끝나면 수고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그가 있으니까.


'매일같이 그의 옆에 내가 머물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상처 입지는 않는다.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어서 와' 도 '잘했어' 도 '수고했어' 도 듣지 못했으니까.

새삼스럽게 단지 옆에 머물지 못한다는 이유로 상처 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나는 그의 옆에서 이렇게 바라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어.'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그가 모르더라도 상관 없다. 그의 잘못이 아니니까. 이건 내가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말하지 않았으니까.

용기를 낼 자신이 없더라도, 이렇게 그를 바라볼 수 있으니까. 나는 행복하다.


"그때는 솔직히 놀랬어."


"그때라니요?"


"아이돌 무대 말이야."


"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서 참여했던 무대. 노래에는 큰 관심이 없었으나 그에게 들려줄 생각으로 필사적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제가 노래를 부른 것이 놀랄 일인가요? 후훗."


"아니, 노래 말고.. 내 자신에게 놀랬지."


"사령관 님에게 놀라요?"


그는 주섬주섬 근처에 놓인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에게 놀랬다는 말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의 손에 들려 상자에서 나온

DVD들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 그것들은..."


"이야~ 이것들 원본 구하려고 덴세츠 본부까지 탐색 보내서 털었다니까? 무려 포장지도 뜯지 않은 소장본과 재생용 DVD 세트!

어때? 같이 보지 않을래? 흐레스벨그 너, 모모 시리즈 정말 좋아하잖아."


그는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를 것이라 단언했던 내게, 그는 정 반대의 행동을 보여주었다.

말하지 않았어도, 내색하지 않았어도, 필사적으로 숨겨왔어도. 그는 알아봐 주었다.


"어, 어떻게..."


"좋아하는 여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하지는 않거든."


그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쿵쾅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재생되기 시작한 DVD에서 나오는 OST와 대사들도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해해주고, 함께해준다. 언제나 바라던 일이지만, 용기내어 말하지 못했던 일이 실현되었다.


계속해서 흘러가는 시간과 같이, DVD역시 1기를 끝으로 2기의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옆모습이 시야에 가득 차고, 그의 가슴에서 들리는 심장 소리가 내 귀를 막는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아.

나에게는 당신만 보여.



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