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릭스터는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찡그리며 지상에서의 포격으로 떨어지는 흙먼지를 털어내며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스토커가 지상에서 병력을 지휘하는 동안 자신은 길을 찾느라 힘을 다 써버린 아더를 사냥하여 전세를 단번에 역전 시킨다는 무모한 계획을 성공 시키기를 기대했으나, 몇 가지 변수가 그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었다.



"어디 보자...나비 모양에 칼 자국이면..."


"얼추 중간쯤.. 온 거니?"


"아마도, 여기 기준으로 오른쪽 방향으로 가서 토미 워커 모양으로 새겨놓은 자국을 찾으면 주 갱도로 금방 갈 수 있을 거야."


"정말이지...미궁도 이런 미궁이 따로 없네요."


"멸망 전에 유행했다는 방탈출 카페인가 뭔가하는 데에서 이런 테마로 장사했었다면 떼돈을 벌었을텐데 참 아깝게 됬습니다."


"브라우니, 목소리 낮춰요. 아직 이 광산 안에 적들이 남아 있을거에요."


"쓸데 없는...변수가 늘었군."


분명 이 미궁과도 같은 갱도 구조를 아는 이는 이제 자신 말고 아무도 없을 것이라 믿어왔던 트릭스터에게 27번 아일랜드의 유일한 생존자인 더치의 존재는 데몬이라 불리는 아더보다 더 성가시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겁도 없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4명을 쥐새끼마냥 가지고 놀다 죽이려고 하였지만, 지상에서 자신만 믿고 절박한 상황을 이용하여 병력을 지휘하고 있는 스토커의 상황으로 인해 트릭스터는 결국 약간의 재미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스토커 그 머저리 때문에 흔치 않은 재미를 포기해야 한다니...."


더치를 볼때마다 트릭스터의 일그러진 흉터들이 욱신거리자 낮은 신음을 토해낸 그는 오래전 더치걸들의 희생으로 인해 자신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 것을 떠올렸고, 곧 신음 소리는 노기가 스며 들어오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아더 일행이 더치를 따라 걸어가는 가운데, 트릭스터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그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런 썅...."


더치의 욕지기에 아더는 대원들에게 정지 수신호를 내리고는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더치, 무슨 문제라도 생긴거니?"


"저거 보여? 저 벽 말이야."


"벽? 뭐가 있길ㄹ..."


순간 아더의 표정이 굳어졌고, 뒤에서 지켜보던 대원들 역시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훼손된 토미 워커의 표식이 새겨진 벽에는  발톱에 베인 것 마냥 갈라진 토미 워커의 잔해가 나뒹굴고 있었으며, 벽에는 피로 추정되는 물질로 새겨진 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서...와...?"


"놈들이 우리가 올 거라는 걸...알고 있었던 걸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핏자국이  마르지 않은 걸 봐서는...집들이를 하러 온 저희를 실시간으로 손님으로 대접해주려는 것 같습니다."


"젠장..."


"모두 경계 태세를 철저히 하도록, 더치, 내 곁에 꼭 붙어 있으렴."


하지만 더치는 반파된 토미 워커의 파손된 흔적을 바라보다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야, 그럴리가...놈은...놈은 그 때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분명히 들었어...광산이 매몰될 때 놈의 비명소리를 들었단 말이야...!"


"더치? 그게 무슨 말이야? 놈이라니? 놈이 누구길ㄹ...."


더치를 진정시키던 아더 역시 반파된 토미 워커를 바라보았고, 이내 더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레프리콘, 혹시...저 토미 워커를 저렇게 만들 수 있는 철충 개체가...존재하나?"


"...지휘관 개체 중 딱 한 놈 뿐입니다."


"....트릭스터죠. 그 누구보다 교활하고...간악한 놈입니다."


순간 레프리콘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아더 일행이 총구를 겨누고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움직이는 소리가 점차 여러 군데에서 들리기 시작했고, 곧 소름 끼치는 웃음 소리들 또한 광산 내부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사령관님, 제가 감히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분위기가 점차 스산해지는 가운데, 브라우니의 목소리에 조금씩 두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희 아무래도 이번만큼은 정말, 좆 된 것 같습니다."


"오, 이런. 손님이라니!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들이 오실 줄 알았으면 진작에 준비를 했을텐데!"



"...트릭스터...!!"


데드 오스트 대원들은 물론, 더치 역시 트릭스터의 말에 경계심과 함께 드릴을 꺼내들며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지만, 아더는 무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띄며 총구를 겨눌 뿐이었다.


"...레프리콘, 저 트릭스터라는 놈...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사령관님? 녀석의 말이...안 들리시는 겁니까?"


"왜 안 들리시는지는 나중에 생각하시고, 일단은 저희가 간단하게나마 통역 하겠습니다. 그러니  총구 내리시지 마십시요."


"놈은 저희를...환영하고 있습니다. 귀한 손님들이라고 하는군요."


"개소립니다. 절대 믿지 마십시요."


곧 트릭스터의 목소리가 다른 굴 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했고, 곧 붉은 눈들이 어둠 속에서 조금씩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게 누구야! 내 이웃들이었던 생쥐 가족들 중 한 마리잖아! 오 맙소사! 이게 얼마만에 다시 만나는 거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아서 큰일이야! 


생쥐들에게 물어보고 싶지만...내 정신 좀 봐라! 다 죽어버렸지! 한 마리만 빼고 말이야!"


".....!!!!"


"...이젠 죽은 62명의 더치걸들과 더치를 대놓고 조롱하는 중입니다. 더치, 저 벌레 말 듣지 말고, 사령관 님 옆에 단단히 붙어 있으렴.


"...이젠 놈을  찢어 죽일 명분이 충분해졌군."


어둠 속에서 트릭스터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더 많은 붉은 눈들이 빛나기 시작했고, 이제 간악한 존재의 목소리는 현이 망가져버린 바이올린 마냥 끽끽대기 시작했다.




"오, 이렇게 좋은 날에 다과회를 열어야 하는데 준비한게 없어서 큰일이야! 무엇을 준비하지? 쥐고기? 바닷물로 절여진 다진 살점?


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건 너무 식상해! 식상하다고! 더 진귀한 디저트가 뭐가 있을까?


그래, 생각 났어! 생각 났다고! 왜 몰랐을까?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게 진귀한 디저트 그 자체인데!


...데몬, 네놈의 머리가 이미 진귀한 존재 그 자체인데 말이야."





"....!!!!"


"사령관님, 고개 숙이십시요!"


어둠 속에서의 혼잣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날카로운 발톱과 함께 마침내 트릭스터가 모습을 드러내며 달려와 아더를 향해 손톱을 휘두르려 하였다.


하지만 데드 오스트 대원들의 제압 사격과 노움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인해 균형을 잃은 트릭스터는 저 멀리까지 넘어져 굴렀고, 노기 섞인 울음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킨 트릭스터의 뒤로  풀 아머 빅 칙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제 발로 무덤에 기어 들어온 걸...환영하마.


그러니...이제 그만 죽어라, 데몬."



"...놈이 날 죽이려는 건가?"


"맞습니다, 사령관님을 악마라 부르는군요."


"...레프리콘, 브라우니, 노움."


"예, 사령관님."


"너희의 의무를 수행해라. 트릭스터는 내가 처리하겠다. 그리고...더치?"


"얘기해, 사령관."


"데드 오스트 지원 테스트를 봤을 때 트릭스터를 상대해야만 했던 걸 기억하니?"


"...당연히 기억하지."


"...이제 그걸 실전에서 응용할 때가 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