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능력을... 정말 그래도 되나요?”

   

“모처럼이잖아. 카페도 있고 호수도 있어. 잘 보이진 않겠지만 영험한 점집도 열었고, 다른 부대원들도 장터에서 물건도 팔고 있으니까.”

   

“그래도... 제 능력과 욕망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어요.”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랬던 거잖아. 방향이 달랐을 뿐이야. 그리고 그땐 네 옆에 아무도 없었잖아. 지금은 같이 고민하고 도와줄 사람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

   

“정 불안하면 우리 규칙을 정하자. 방 한 칸에 한 명. 안정성을 확인하기 전까진 손님은 하루에 한 명만 받자. 증강현실은 구형 VR에 마키나의 장비를 링크시켜서 출력을 제한하고, 만일을 대비해 의무실 핫라인까지 준비하는 걸로. 이정도면 어때?”

   

“제가...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낙원’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나는 더더욱 해야 한다고 생각해. 과정이 잘못됐을 뿐이지,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었잖아. 인간이든 바이오로이드든 누구든 간에 실수할 수 있어. 하지만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게 훨씬 중요한 게 아닐까?”

   

“...”

   

“나는 오르카 호에 있는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마키나, 너도 마찬가지로. 잘은 모르지만, 남을 행복하게 해주려면 우선 내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억지로 참고 있는 게 행복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마키나도 하고 싶은 걸 해. 그래서 행복해져서, 여기 있는 모두에게 나눠줘. 네 방식대로.”

   

“...해 볼게요.”

   

“정말?”

   

“아니, 할 게요. 꼭 할게요.”

   

“좋아, 잘 생각했어.”

   

“사령관 님에게는 늘 도움만 받네요. 이걸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 그럼...”

   

“...그럼?”

   

“내일부터 사장님이네? 잘 부탁해 사장님!”

   

“사... 사령관 님! 사장님이라뇨...”

   

다음 날 방주 안 인공호수 광장. 부대원들의 복지를 위한 가게가 들어설 거리에 첫 건물이 세워졌다.

완공됐다는 연락을 받고 가게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이미 마키나가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티는 안 났어도 나름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사령관 님. 날씨가 좋네요. 햇살이 기분 좋아요.”

   

가까이 다가가자 얼굴이 조금 상기된 마키나가 웃으며 인사했다.

나는 웃으며 손에 든 입간판을 돌려 마키나에게 보여주었다.

   

“어때? 당장 가게 열어야 하니까 임시로 만들어봤어. 정비가 끝나면 제대로 만들자.”

   

“이걸 사령관 님이 직접... 이요?”

   

“응. 마음에 안 들어?”

   

“아뇨... 너무 마음에 들어요.”

   

「상상을 현실로, 행복을 실제로.

‘증강현실 체험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곳에 들어오는 모두가 웃으며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누가 사장님인데. 당연히 그럴 거야.”

   

진심으로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구나. 입간판을 받아든 마키나가 환하게 웃었다. 이걸로 ‘낙원’으로 무거워진 마키나의 마음의 짐도 조금은 덜어놓을 수 있겠지. 보는 것만으로도 마키나의 설렘이 절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해피엔딩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음 날 늦은 밤. 소란이 잦아든 이후 마키나가 혼이 빠져나간 듯 맹한 표정으로 나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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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건 이후 사령관과 마키나의 대화

   

“아무래도 제 능력으로는 다른 분들을 행복하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너무 마음쓰지 마. 걱정하는 만큼 큰일은 아니었어. 당사자도 괜찮다고 했고.”


“그래도... 낙원에서처럼 원하지 않은 환상을 봤을까 생각하면...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요...”


“정말 괜찮아. 마키나 잘못이 아니야.”


“아니에요. 역시 저는 다른 분들을 행복하게 만들 자격이 없어요. 역시 여기까지 하는 게...”


“음... 그만두진 못할 거 같은데.”


“네? 그게 무슨...”


“...부대원 만족도 별 다섯 개. 탈론페더 선정 '꼭 들러야 할 방주 가게' TOP 1. 내부망 SNS 피드 검색 압도적 1등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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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나의 영업일지

손님 1 - 드리아드

사령관 평가 : 이것이 오르카 평균이다


“어서 오세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입니다.”


(문 빼꼼) “안녕하세요...”



(반가움) “어머, 드리아드 님. 어서 와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신다고 해서 왔는데...”


“네. 드리아드 님이 바라는 상상을 증강현실로 구현해드릴 거에요.”


“...정말 그게 가능해요? 제 상상을 실제처럼 느껴지도록 해주실 수 있는 건가요?”


“그럼요. 혹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이나 꿈이 있나요?”


(귀까지 빨개지며) “사... 아니... 으으...”


“드리아드 님?”


“그게... 혹시 꼭 직접 알려드려야 하나요? 너무 쑥스러워서요...”


“제가 직접 찾아드릴 순 있는데, 그럼 드리아드 님의 머릿속을 모두 들여다봐야 해요. 그럼 본의 아니게 다른 것들을 볼 수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으시면...”


(얼굴 터지기 직전) “아뇨! 아뇨! 제가 직접! 말씀 드릴게요! 다른 건 안 돼요!”


(놀람) “네, 알겠어요.”


“후우우우우... 죄송해요. 잠깐 마음의 준비를... 뭐가 좋을까...”


(아직까진 웃음) “그럼요. 천천히 하셔도 돼요.”

   

잠시 후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사령관 님...”


“네? 사령관 님이요?”


(은은한 미소를 띄며) “주인님... 주인님이 제 옆에 항상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던, 어디에 가던 항상 옆에서... 저만 봐줬으면 좋겠어요...”


(살짝 놀람) “이해가 잘 안되는데... 얼마 전에 엔젤 님과 하셨던 데이트같은 느낌일까요?”


(멘헤라 ON) “아... 주인님이 엔젤 님과... 데이트를... 하셨었죠...”


(놀람) “드리아드 님?"


(멘헤라 MAX) “행복해 보이시던데... 주인님은 아마 제가 없어도 행복하시겠죠... 저는 주인님이 없으면 살 수도 없는데... 저는 주인님을 생각할 때마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데, 주인님은 제가 없어도...”


“드리아드 님. 진정하세요.”


(폭주) “하하하하하... 제가 사라져도 아마 주인님은 모르시겠죠? 주인님한테 버림받았으니까 저 같은 건 없어지는 게 맞겠죠? 그렇죠?”


(애써 침착) “그럴 리가요. 드리아드 님에 비하면 저는 짧은 기간동안 사령관 님을 봤지만, 모든 바이오로이드를 소중하게 대하시는 분인 건 알아요. 사령관 님이 그러지 않으리라는 건 드리아드 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돌아옴) “맞아요...”


“그러니까 말해주세요. 비록 홀로그램이고 찰나의 상상일 뿐이지만, 저는 그 안에서 드리아드 님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걸 위해서 제가 있는 거니까요.”


“마키나 님... 저도...”


“네. 말씀하세요.”


“저도 엔젤 님처럼 주인님과 데이트하고 싶어요. 하루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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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아드는 VR 기기를 쓴 지 30분 만에 과호흡 증세로 의무실로 옮겨졌다.


“처음이에요. 뇌파에 직접 간섭하는 홀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몸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경우는 없었는데. 과호흡이라니...”

   

고객들의 요구사항은 비밀로 해달라는 마키나의 요청으로 드리아드가 무엇을 상상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호송을 맡았던 바이오로이드의 말에 따르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도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아 오히려 섬뜩했다고 한다.

별의 아이보다 기괴했다니.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깨어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드리아드 님은 괜찮으신가요?”

   

드리아드는 의무실로 옮겨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 낯선 곳에서 눈을 떠 혼란스러워했지만 상황을 설명하자 곧 안정을 되찾았다.

   

혹시 ‘낙원’에서의 상황이 재현된 것일까. 나는 드리아드에게 마키나의 환상이 어땠는지 물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담요에 몸을 숨긴 드리아드는

팔만 꺼내 엄지손가락을 슬며시 들었다.

   

“으... 응...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좋았다고 하더라.”

   

드리아드의 코에서 피가 흐른 건 굳이 얘기할 필욘 없겠지.

3D 멀미가 있다는 건... 아니다.

   

“휴...”

   

마키나는 긴장이 풀린 듯 한숨을 토해냈다. 불안한 상황에서 맞은 첫 손님이 실려가는 걸 봤으니 그간 긴장한 것도 이상하지 않겠지.

   

“그나저나 드리아드는 뭘 바란 거야?”

   

“‘사령관 님과 늘 함께 있고 싶다.‘는 바램이 이뤄질 상황을 만들었을 뿐이라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번에 사령관 님이 엔젤 님과 데이트했던 걸 참고해서 비슷하게 증강현실을 만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마 드리아드 님만 알겠죠.”

   

“마키나의 능력은 타인의 욕망을 읽어서 증강현실로 구현하는 거 아니었어?”

   

“그건 그렇지만. 약속했잖아요. 다신 저번처럼 억지로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들여다보지 않기로. 바램을 현실로 만들어 보여준들, 스스로 원하지 않는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니까요. 사령관 님 덕분에 알게 됐어요.”

   

“그렇게 말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아무튼, 마키나. 조금만 더 해보는 건 어때? 드리아드도 좋아했고. 다른 부대원들도 많이 기대하고 있더라고. 예약은 안 받냐고 다들 물어보더라니까?”

   

“좋아해주셨다니 감사하지만... 모르겠어요.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혹시나 다른 분들도 드리아드 님처럼 잘못된다면, 오히려 더 큰일이 나면...”

   

“스스로 원하지 않으면 행복이 아니라고 말했잖아. 마키나가 그런 생각이라면 괜찮을 거야. 그래, 바램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장소와 상황을 만들어주고, 망설이게 되는 선을 스스로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응. 잘할 수 있어.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잖아. 사실...”

   

“사실...?”

   

“사실 권유가 아니라 통보야. 고객들이 좋아해서 이제 그만 두고 싶어도 못 그만 둬. 예약 꽉 찼다니까.”

   

“아... 아...”

   

그날 이후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성 넘치는, 때로는 버겁기도 한, 어쩌면 평범한.

오르카 호의 부대원을 만난 소감을 전하는 마키나의 표정이 편안해지기까지.

늦은 밤, 아무도 없는 함장실에서의 건전한 밀회에 웃음이 섞이기까지.

   

“어서 오세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입니다.”

   

무거웠던 마키나의 마음의 짐이 가벼워지고

그녀가 바라는 모두의 행복이 이뤄질 때까지.

   

“말해 주세요. 상상만 해도 행복해지는 미래가 있다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오르카의 모두를 기다릴 것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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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캐스팅 실패로 인한 연재 재고

드리아드는 콘이 없고

마키나는 고정인데 표정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