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달링, 당신은 오늘도 정말 매력적이야.”

 

“글쎄, 달빛 아래의 너만큼은 아닌 걸?”

 

장화가 떠난 후 업무를 보던 사령관은 그 날의 동침 일정을 이행했다. 동침 상대는 꽤 오랫동안 그와 밤을 보내지 않았던 레오나였다. 그녀는 한동안 다이어트를 한다며 엘븐이 만든 특제 버터밀크를 꼬박꼬박 마셨지만, 버터밀크가 버터를 탄 우유였기에 생각과 정반대로 살이 불어 사령관과 잠자리를 갖지 않았었다. 지휘관 회의처럼 반드시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부관인 발키리를 보내며 대외활동을 줄인 그녀는 티에치엔의 무술 다이어트로 힘들게 다이어트를 진행했고, 꽤 힘들기는 했지만 살을 전부 정리했다며 사령관에게 당당히 동침을 신청했다. 그는 그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비밀의 방에서 보려고 했으나 그녀는 오랜만에 보내는 시간이라며 장소를 바꾸기를 원했다.

 

비밀의 방 이외에는 장소가 여의치 않았음에도 사령관은 그녀의 응석을 받아들여 빔 프로젝터로 방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천장에 수놓아진 오르카호 바깥의 아름다운 밤하늘은 세계에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느낌을 주었다.

 

“저걸 봐. 저 수많은 별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인류가 멸망한 후에도 별들의 이야기는 이어지겠지.

 

레오나, 지금 너와 나의 이야기를 저 밤하늘에 새기자. 어떤 별에 우리의 시간을 기록할까?”

 

“어느 쪽이든 다 좋아. 달링과 나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거니까. 그렇지만 나는 별 중에서도...”

 

불을 끄자 어둠에 빠진 비밀의 방은 완전히 야외처럼 보였다. 나체로 침대에 누운 둘은 하늘을 비추는 영상을 보며 자신들의 시간이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기를 바랐다. 같은 곳에 있지만, 사령관과 레오나가 바라는 기록자 역할의 별은 달랐기에 그녀는 사령관의 위에 올라타 엎드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 둘의 아이가 어떤 성별일지 알고 싶어. 달링은 아들이 좋아, 딸이 좋아?”

 

레오나의 질문에 사령관은 싱긋 웃으면서 팔을 둘러 그녀를 안았다. 그러더니 그녀의 귀에 입을 바짝 갖다 대고 절대 잊히지 않도록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속삭였다.

 

“너를 닮으면 돼. 그러면 완벽할 테니까.”

 

사령관의 말에 레오나의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었다. 오르카호 내에서도 동침횟수를 따지면 상위권에 들어가는 그녀였지만, 오랜만의 동침이라 유예되었던 감정이 한 번에 밀려오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고민 없이 사령관의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강렬하게 빨았다. 그의 목덜미에 키스마크가 새겨지면 적어도 하루 내내 사령관은 목을 가리고 다녀야 할 것이다. 그가 그녀만의 소유물이라는 뚜렷한 증거를 남기는 행위였기에 그녀는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절대 까먹지 마, 달링. 당신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야. 아무한테도 주기 싫고, 줄 수 없고, 줄 생각을 할 수도 없어.”

 

“북방의 암사자가 이렇게 욕심이 많았어? 그런 줄은 몰랐는데.”

 

“암사자니까. 한 번 정한 목표는 절대 놓지 않아.”

 

대화를 하며 둘은 서로의 몸을 어루만졌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호흡이 가빠져갔다. 볼에 홍조가 점점 달아오르자 레오나는 그에게 본 게임을 요구했다.

 

“오늘은 들어서 해줘. 당신에게 들리고 싶어.”

 

“알겠어, 내일 허리에 파스 붙일 준비나 하라고.”

 

사령관은 그녀를 안아서 들 준비를 하며 생각했다. 평소와는 달리 들어서 하는 체위를 요구한다는 점은 그녀가 체중 감량에 성공했음을 과시하기 위함이라고 말이다. 그 생각은 놀라울 정도로 정답에 근접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레오나 자신은 자신이 사령관에게 깃털처럼 가볍게 들리는 모습을 보며 자존감을 채우고, 사령관에게는 자신이 노력을 통해 체중을 감량했다고 말해 자신을 다시 보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녀 스스로도 꽤 좋은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우쭐해했으나 그녀는 그만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말았다.

 

누구나 한 대 얻어맞기 전까지는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는 말로 대변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말이다.

 

“안 떨어지게 잘 잡아.”

 

“걱정 마, 이제 일어난다.”

 

사령관을 마주보며 그의 어깨에 자신의 다리를 걸고, 자신의 체중 대부분을 사령관의 팔에 의지하여 지탱하는 그녀는 해냈다는 생각에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사령관도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틸만하다고 생각하며 본 게임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몸을 움직이자 돌아오는 그녀의 반동에 그만 다리가 흔들리고 말았다.

 

“어?!”

 

무게중심이 쏠린 앞으로 몸이 넘어가자 사령관과 레오나 모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계획이 완전히 수틀렸음을 깨달은 레오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달링은 바보! 멍청이! 물근육! 약골!

 

어떻게 나 하나를 못 버티는 거야!”

 

“미안해, 갑자기 움직이니까 다리 위치를 잘못 잡아서 그만. 다시 해볼래?”

 

“몰라! 달링이 다 망쳤어!”

 

분위기는 다 깨진지 오래요, 삐질대로 삐진 레오나가 앙탈을 부리자 사령관은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넘어갈지 고민했다.

 

“치잇... 내가 힘들게 시간 투자해서 운동을 해도 어떻게 달링은 그러는 거야...”

 

“정말 미안해. 하지만 레오나, 나도 투자는 성공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사령관은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한국말은 끝까지 듣는 거야’ 방법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그 역시 방금 전의 레오나처럼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그 방법을 쓰려면 상대방이 첫 문장을 듣고 다음 문장까지 기다려줄 정도로 기본적인 참을성이 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투자한 것 중에 두 배로 불어난 건 너밖에 없어.”

 

 

 






 

 

“...령... 사...관님....!”

 

“으음...?”

 

어둠 속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애타게 들리자 사령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멈춰있던 정신을 다시 움직였다.

 

“사령관님! 정신이 드셨군요!”

 

“리마토르 씨...? 당신이 왜...”

 

“다프네! 사령관님께서 정신을 차리셨어요!”

 

사령관은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니 리마토르가 그를 애타게 깨우고 있지를 않나, 다프네와 닥터가 달려와 그의 몸 상태를 상세히 묻지를 않나, 자신이 휩노스병처럼 죽을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호들갑인지 몰랐다.

 

“걱정 마, 우려하는 것처럼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라고.”

 

사령관이 다들 안심하라며 일부러 너스레를 떨었으나 리마토르와 다프네, 닥터는 모두 그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빠, 안 심각하기는 뭐가 안 심각해?”

 

“왜? 휩노스병이라도 걸렸어?”

 

“차라리 휩노스병이면 겉보기에 문제라도 없지...”

 

“응? 그게 무슨 뜻이야?”

 

닥터의 말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던 그는 옆에 서있는 다프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를 바라보던 리마토르는 다프네에게 거울을 갖다달라고 한 뒤에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령관님, 마지막에 기억하는 게 무엇인가요?”

 

“음... 레오나와 비밀의 방에 들어간 것 같은데요...”

 

“네, 그 다음은요?”

 

“그 다음이요?”

 

리마토르의 말에 사령관은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분명 레오나의 동침권 사용을 받아들였고, 같이 밤하늘을 비추는 영상 아래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그 다음부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음....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바로 어제 일인데 말이죠.”

 

“네? 어제요?”

 

사령관은 그에게 사실대로 답했으나 오히려 그의 답을 들은 리마토르는 당황하여 되물었다.

 

“네, 레오나와 동침한 게 바로 어제인데요?”

 

“오빠, 그거 상태 안 좋은 거야...”

 

영문 모를 상황에 어리둥절한 사령관에게 닥터가 혀를 차며 그에게 딴지를 걸었고, 리마토르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설명해주었다.

 

“사령관님이 레오나 씨와 비밀의 방에 들어가신 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굉장히 큰 소리가 났습니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였어요.

 

마침 창고에서 자료를 찾고 연구실로 돌아가던 제가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그 곳으로 갔더니 코트를 거친 레오나 소장과 마주쳤습니다. 저를 매섭게 째려보던 레오나 소장이 기절하신 사령관님을 저한테 넘기길래 저는 사령관님을 들쳐 업고 급히 의무실로 갔습니다.

 

사령관님이 기절해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꼬박 3일이 흘렀습니다. 혼란이 벌어질 것을 감안하여 대외적으로 사령관님은 골반골절로 입원했다고 발표했고 다프네와 닥터가 사령관님의 의식을 되찾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령관님이 조금씩 의식 반응을 보인다는 소식을 듣고 와서 이렇게 있는 것이죠.”

 

“3일?! 전 대체 뭔 일을 당했던 겁니까?”

 

“그건... 아, 마침 거울이 왔네요. 직접 보시죠.”

 

다프네가 거울을 들고 병실에 들어오자 리마토르는 사령관에게 거울을 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따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사령관은 그만 기겁하고 말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치아는 6개가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흔적이 아직도 선명했고, 얼굴은 멍이 들어 붉으락푸르락한 상태였다. 그가 자신의 상태를 보며 더 말을 잇지 못하자 닥터가 말문을 열었다.

 

“레오나 언니가 던진 버터밀크 머그컵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어. 그 결과 이가 부러지고 얼굴에 멍이 든 거지.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오빠니까 그 정도로 끝난 거야. 리마토르 오빠처럼 평범한 인간이 맞았다가는 얼굴이 함몰되었을 거라고.”

 

“아니, 왜 레오나가 나한테 머그컵을 던진 거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령관에게 리마토르가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우선 레오나에게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은 점으로 보아 그녀가 사령관을 다치게 할 목적으로 머그컵을 던진 건 아니라고 말한 뒤, 감정이 격화되어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막 던진 게 운이 없게도 머그컵이었던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의 말에 사령관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던 건가 기억을 되짚어보았으나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3일 간 라비아타 씨와 아르망, 콘스탄챠 씨가 오르카호 내부 업무를 처리해주었습니다. 업무가 밀리지는 않았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와중에 리마토르는 혹시 사령관이 자신의 권력 찬탈 시도로 의심이라도 할까 지난 3일 간 오르카호가 어떻게 돌아갔는가 덧붙였다. 사령관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정밀검사를 받으러 닥터의 손에 이끌려 검사기기로 들어갔다.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단기 기억상실 판정을 받은 사령관은 다른 기억에는 이상이 없음을 검증받자 금방 일선으로 복귀했다. 얼굴의 멍을 약과 분장으로 가리느라 일주일 간 애를 먹었지만 다행히 다들 ‘골반이 골절될 정도면 얼굴로도 했구나’라고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이후 오르카호 내부에서는 한동안 레오나의 밤 기술이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정작 말이 무성한 것과 별개로 소문의 당사자인 레오나는 마이티R의 헬스 강좌를 끊고 샬럿의 펜싱 강좌에도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모습을 본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서 ‘체력이 있어야 밤일도 잘 한다’라는 인식이 퍼져 오르카호 내부 운동 강좌는 불티나는 인기의 중심에 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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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들고오기 미안해서 하나 더 써서 왔어. 뇌물이니 받고 넘어가주길 부탁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