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책상에 엎드린 상태로 잠들었던 것일까. 신랄한 매도의 음성이 귓가를 파고들어 눈이 떠졌다.

부스스하게 삐쭉 솟은 머리를 긁고, 턱을 문지르니 어느새 산발한 수염이 손바닥을 찌른다.


"제가 그렇게 말했는데.. 또 실내에서 흡연하신 겁니까?"


재떨이에 수북히 꽂혀있는 담배 꽁초들을 치우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바닐라의 치마가 살며시 딸려 올라가고

자연스레 내 시선이 그녀가 입은 하얀 레이스 팬티로 향하자, 그 음흉한 시선을 눈치 챈 것인지 서둘러 치마를 내리는

애처로운 바닐라의 손짓이 보였다.


"그렇게 가릴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무슨 소리를... 꺄앗!"


가녀린 체구의 바닐라의 뒤를 잡아 끌어안으면 은은한 샴푸 냄새와 향수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아직 불완전한 몽롱한 의식을 단번에 깨워주는 냄새지만, 오늘은 미묘하게 다르다.


"가, 갑자기 끌어안지 말아주시죠..."

"음~ 향수 바꿨구나?"

"그걸 어떻게...!"


그러고 보니 비단 향수만이 바뀐 것이 아니었다. 묘하게 힘이 들어간 화장과 새로운 사복 차림.

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뻔하지.


"오늘의 데이트, 신경 쓰였구나?"

"이, 이상한 억측은 하지 마시죠! 기분.. 나쁩니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방주에서 보내는 휴가 계획 겸 데이트 일정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것을 토대로 지금 상황을 이해해보면 오늘의 데이트 상대인 바닐라는 그것을 위해 찾아온 것이리라.


'뭐, 솔직하지 못한 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목덜미까지 빨갛게 물들고 점점 작아지는 바닐라의 목소리는 정곡을 찔렸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야~ 나만 기대한 것은 아니었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데이트!"


이쯤이면 분명 '드디어 정신을 놓은 것입니까?' 같은 매도의 음성이 들려야 하지만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려 내 품에 얼굴을 파묻는다.


"주인님과의 데이트를... 기대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저도 주인님을.. 그.. 사, 사랑.. 하니까..."


순간이지만 머리가 바닐라의 입에서 나온 말을 이해하길 거부했다. 그 바닐라가 얼굴을 붉히며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다니.

그러나 숱한 경험으로 다져진 몸이기에 이 정도의 상황은 충분히 대처 가능한 범주다.


"여, 역시.. 제가 했던 말은 잊어주세요."

"어째서?"

"감정이 고조되어 헛소리가 나왔을 뿐이니까요."


다시 쌀쌀맞은 어조로 방금 전의 상황을 정리하려는 바닐라. 그러나 이미 들어버린 것을 잊으라니, 그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바닐라의 이런 사랑스러운 모습이란 보기 힘든 광경이니까.


"음~ 어쩌지? 내가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아서 말이야, '저도 주인님을 사랑하니까'라니 잊을 수 없지."

"큭...!"


마침 좋은 분위기이기도 하니 그대로 바닐라의 허리에 감긴 손을 바짝 잡아당기고, 

옴짝달싹 못하는 바닐라의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넘기니 터질 듯 붉어진 사랑스러운 얼굴이 보인다.


"솔직해진 바닐라는 정말 귀여우니까, 난 계속 기억하고 싶은데?"


갈 곳을 잃고 떨리는 눈동자와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떨어지지 않는 듯 오물 거리는 입.

이렇게 몸을 겹치고 있기도 했고, 저런 사랑스러운 모습을 계속 보고 있으려니 서서히 하반신에 피가 쏠리기 시작했다.


"저, 정말... 사랑합니다, 주인님... 이걸로 만족 하셨습니까?"


결국 못이기는 척,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바닐라의 모습에 하반신의 사타구니가 완벽하게 위용을 되찾았다.


"주인님? 이건..."

"앗! 그게..."

"변태..."


사랑을 표현하는 훈훈한 자리에서 결국 딱딱한 몽둥이가 바닐라의 복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물건에 약간의 원망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남성이란 상시 발정하는 짐승인 것을.


"그새를 못 참고 또 이런... 발정이라도 나셨습니까? 어쩔 수 없군요..."

"아니, 그게... 읍!"


이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무언가 변명하려는 입을 봉하려는 듯, 바닐라가 기습적으로 입을 맞췄다. 


"후으... 일단, 이걸로 참으시죠."

'하.. 이러면 못 참는데.'


눈 앞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보고 가만히 넘긴다면 그것은 남자도 아니리라.


"역시 못 참아. 아니, 참지 않을 거야."

"하아~ 역시 그렇겠죠..."

"안될까?"

"그, 그럼 이걸..."


마치 준비해둔 것처럼 바닐라가 콘돔을 꺼내 건네주었다. 역시 그녀도 이런 상황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철저할 정도로 준비성이 좋았지만, 그것을 말한다면 정말 미움 받을지도 모르니 얌전히 콘돔을 건네 받았다.


"그런데 콘돔 이게 전부야? 분명 모자를 것 같은데."

"무, 무슨 소리십니까!"


한 박스를 다 들고 왔어도 모자를 것은 뻔하지. 바닐라가 나를 얕본 대가는 침대에서 받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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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 서약 대사 꼴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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