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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 있니”
“응”
오르카호 내에서는 상호간의 연계작전이 중요하고 규모가 큰 부대의 경우에는 지휘관급을 제외하고 단체 숙소를 쓰지만 페어리처럼 수가 적고 개별적으로 행동하는 부대의 인원은 작은 1인실을 쓰곤 했다. 1인용 침대와 사무를 볼 수 있는 책상, 그리고 책장과 서랍장이 하나 들어가는 방은 겉으로만 보면 소녀의 숙소답지 않게 담백하고 깔끔했다. 책장에는 식물에 관련된 서적들로 빼곡하다.
“뭐야 그건?”
“맥주, 드리아드가 재배한 보리로 만든거야”
“아, 벌써 그렇게 됐나?”
요 며칠간 드리아드가 배양실에 틀어박혀서 나오질 않았는데, 언젠가 주인을 따라가 봤던 푸른 보리밭이 벌써 맥주로 변했단 사실에 놀란다. 새삼 시간이 빨리 흘렀음을 깨닫는다. 레아의 치마폭에서 병 하나를 받는다.
“색이 괜찮네”
“그렇지?”
리제는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술에 대해서 꽤나 잘 아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전공은 와인이나 사이다처럼 나무에서 나는 과일로 만드는 과실주였다.
그런 리제가 보기에도 드리아드의 맥주는 진한 황금색에 붉은색이 보기좋게 섞인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경박한 맥주잔이 아니라 투명한 병에 담긴 모습은 마시지 않고 장식으로 써도 중후한 멋을 살려줄 듯 했다.
리제의 하얀 손 끝이 병을 감싸쥔다. 이미 이슬이 잔뜩 맺힌 병은 닿을 때만 찬 기운을 내뿜고는 금새 미지근하게 변한다.
“시원하진 않네”
“드리아드가 담고 있을 때 받아왔거든”
“에일은 그렇게 차갑게 먹을 필요는 없지만…언니도 같이 마실래?”
리제는 병을 두고는 책상에 달린 서랍을 뒤진다. 오르카호 인원들이 합의하에 현금처럼 사용하는 재화인 참치캔, 그것의 보유량을 다시 전산화해서 발급한 카드였다. 물론 현물 참치캔도 존재하지만 부피나 보급 등의 문제가 있기에 요즘은 사실상 사령관이 보증하는 현금카드로 거래가 통용되고 있었다.
“뭐 사러가게?”
“그냥 간식정도, 밤이니까”
몸을 숙이느라 헝클어진 머리를 리제가 양 손으로 밀어올리며 정리한다. 비단실처럼 부드럽게 밀려 올라갔다가 가볍게 등허리를 때린다.
리제를 바라보는 레아의 표정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있다. 밖에서 다른 바이오로이드를 만나고 놀면 좋으련만 성격 탓인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교류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나갈때도 레아 자신이나 다프네, 드리아드, 아쿠아 등과 함께 나가서 밥을 먹거나 잠깐 바람을 쐬는 정도였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은 언제나 리제가 예민하고 공격적인 바이오로이드라고 생각하겠지만, 최소한 언니로써 리제를 바라본 모습은 그러지 않았다. 물론 리제의 주인에 대한 집착과 그 성격에서 오는 예민함, 공격성 등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일부분에 불과했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은 다프네와 리제를 두고 비교하고는 했지만, 레아가 보는 리제 역시 다프네 못지않게 청초하고 순수한 면을 많이 갖고 있는 바이오로이드였다. 평소에 쓰고 다니는 프릴 모자를 벗은 리제의 모습은 눈동자가 붉다는 것만 빼면 다프네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어찌보면 자매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은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철충과의 전투 혹은 주인이 얽힌 상황이 아니라면 리제 역시 친절하고 상냥한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녀 역시 다른 바이오로이드의 아픔에 공감하고 슬퍼할 줄 아는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녀가 괜히 다프네와 함께 수복실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은 리제와 만나게 될 상황이 전투 아니면 주인이 관련되어있을 상황이 대부분이니만큼, 레아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리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단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인식을 조율하고 동생들이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잘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레아 본인의 역할이었다.
주인이 발견되고 자신이 오르카호에 합류하기 이전에는 셋째인 리제가 페어리를 이끌었다. 물론 그땐 다프네와 아쿠아만 관리하면 됐지만, 오르카호가 지금보다 훨씬 전력이 약했을 때에는 리제가 전투에 출격하는 비중이 훨씬 높았고, 그에 따라 몸도 마음도 훨씬 지쳤을텐데, 애초에 맏언니 역할이 아닌 그녀가 동생들과 자신을 관리하면서 받았을 스트레스는 지금 레아 자신이 받고있는 것 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어쩌면 지친 마음을 달래줬을 자신의 주인이 다른 바이오로이드가 복구됨에 따라 관심을 주지 않았을 테니 리제가 그간 예민하게 굴었던 것도 레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리제를 이상한 눈으로 보더라도 레아는 그녀를 가엾게 여기는 이유가 그 곳에 있었다.
차라리 리제가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리제도 최소한 사리분별은 할 수 있었으니, 다른 바이오로이드나 주인을 귀찮게 하더라도 사과는 레아 자신이 하면 되니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최근엔 리제의 예민함도 많이 죽은 느낌이었다. 물론 주인의 관심이 한동안 너무 멀어졌던 탓에 최근엔 주인이 조금 관심을 줄 때 마다 기절할 정도로 민감해졌지만, 다른 바이오로이드와 싸우는 것 보단 차라리 이게 나았다.
“아, 지금 술 마시면 안되겠다”
“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나가려던 리제가 거울에 비쳐지는 레아를 바라본다.
“내일 다프네랑 수복실 교대거든”
“아, 그러면 어쩔 수 없겠네”
수복실을 관리하는건 24시간을 그곳에서 상주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사실 리제나 다프네가 하는 건 부상에 따라 수복기를 세팅하고 치료 경과를 점검하는 것 정도였다. 전투가 잦은 상황에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도와주지만, 방주에 정박한 지금은 해봐야 정찰 정도라 수복실도 한가했다. 해봐야 전날까지 사령관이랑 진탕 하고는 허리가 빠져서 찾아오는 바이오로이드 정도였다. 리제가 사령관과 관계를 맺은 바이오로이드를 보고도 평정심을 유지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일이니만큼 술을 마시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언니는, 그거 다 건네주고 오게?”
“아니, 너 몇 병 더 마시라고 했지, 너 말고 받아봐야 나랑 다프네 말고 더 있니?”
“주인님은? 안드려?”
“드리아드가 찾아간다고는 했는데…”
레아는 치마폭에서 맥주 두 병을 꺼내 올려놓는다. 드리아드라는 말에 병을 작은 냉장고에 집어넣던 리제가 레아쪽을 바라본다.
“지금 다른 바이오로이드랑 있을 거 아니야”
“아마”
“말렸어야지, 보나마나 주인님이라면 그 카페에서 장화인지 뭔지 하는 애랑 같이 있을텐데”
리제의 표정이 약간 심각해진다.
“주인님이라면 분명 그 장화 신경쓴다고 드리아드한테는 기다리라고 한다거나 돌아가있으라고 할텐데”
“그래도 주인님이나 다른 바이오로이드 곤란하게 하지 말라고 얘기는 해뒀어”
“난 장화인지 뭔지 걔 별로 맘에 안들어, 허구헌날 주인님이랑 붙어다니고. 막상 처음엔 홍련인가 그쪽 부대원들 다 죽을 뻔 했다며”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
지휘관급인 레아는 전후 내막을 자세하게 알고 있었고, 리제 역시 대강은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성에 내재된 질투심은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그리고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말렴. 결국 다 같이 지내야하는 인원인데”
“하지만…하여튼 드리아드가 그 꼴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침대에 걸터앉은 리제가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한다. 다리에 올린 손이 바쁘게 까딱거린다.
“주인님은 나에게 관심이 없어진거야. 주인님이 날 버리실거야. 주인님한테 버려지면 안돼…뭐 이런 생각 하겠지”
“정 심해지면, 내가 주인님에게 잠깐 만나달라고 부탁 할 수는 있는거니까”
“알았어”
레아도 당연히 그런 걱정 정도는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그 상황에 주인님을 만나러 가겠다는걸 뜯어 말리자니 그것도 못지않게 부작용이 날 것이 뻔했다.
“일단 가볼게, 쉬어”
“응”
남은 맥주 몇 병을 챙기고 레아는 다프네의 방으로 찾아간다.
리제 캐릭성 변화를 어떻게든 커버하려고 쓰긴 썼는데
솔직히 리제는 캐릭터를 너무 재미따라서 자주 바꿔버렸어
하드얀데레에서 이벤 나오니까 갑자기 빡머갈되고 이후엔 디얍 흥한다고 햇츙무새 됐다가 소완 아다뗀 이후엔 리쌍말고는 방치되더니 낙원에서 좀 빛 받나 싶었는데 다시 리쌍 원툴로가고 리리스 아다떼니까 또 한 1년 잠수타다가 이제서야 극한 부끄럼쟁이 컨셉이 됐는데
뭐여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