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설정상 오르카 데이트 공모전이 호드랑 스트라이커 출장 뒤지만, 그러면 이야기가 안되다보니 부득이하게 시간선을 꼼]


“빛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엔젤 엔젤 아자젤”

아자젤의 강론이 끝나고, 신자들은 모두 착석하여 강론 묵상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나는 흘끔 고개를 들어, 간만에 종교활동에 참석한 구원자를 바라보았다. 보통이라면 구원자를 보고서는 축복받을 생각에 가득 차있지만, 지금의 내 상황은 그러지 못하였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을 다시 복기해본다. 

 

‘저 하늘거리는 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발단은 단순했다. 최근 엔젤과 구원자의 데이트를 미행 중 베로니카에게 잡혀서 일장훈계를 듣게 되었다. 따라서 심판자로서의 위신이 추락하게 되었고, 다시 한번 내가 이해하고 있는 교리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멸망 전 프랑스의 모 철학자가 그랬듯이 나도 방법적 회의론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부정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부정할 수 없는 진리를 깨우치면, 그 토대를 기반으로 내 교리를 재정비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믿어왔거나 바라보는 모든 것을 부정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구원자를 바라보았을 때 문득 구원자의 머리로부터 실처럼 하늘거리는 빛 한 줄기가 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실의 존재 자체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다만 방법적 회의론 과정에서, 그 어떤 문헌에서도 나오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신경쓰였다.

그 빛은,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었지만 마치 무지개의 저 너머처럼 끝을 볼 수가 없었다. 몰래 구원자의 뒤로 접근해서 손을 저어봤지만 따로 감기거나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물리적인 무언가도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서는 저 빛을 볼 수 없었다. 오로지 구원자만이 저 빛 한가닥을 내뿜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교단 소속들에게 물어봤을 때 그 실이 눈에는 딱히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웠다. 더 물어봤다간 베로니카는 나한테 화장실 청소하기 싫으니 뻘질문이나 할거라고 핀잔을 줄 것이고, 엔젤은 내게서 의구심을 느끼고 좋은말만 해줄 것이다. 라미엘은 이 또한 본인의 고통이라고 고행을 시작할 것이고, 아자젤은 진작에 타락해있었으니. 이 또한 빛께서 나에게 주신 시련이리라.

 

구원자 좌석 옆은 지휘관 개체들의 자리였다. 보통은 본인들 역무에 집중하느라 종교활동에 잘 참석하지 않지만, 구원자가 종교활동을 참석하게되면 일부 지휘관 개체들도 동행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좀처럼 보기 힘든 개체가 참석하였다. 라비아타 프로토타입, 구원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길잃은 양들을 인도했던 피조물이자, 순간적인 판단으로 이 세계에 얼마 남지 않은 단 하나의 희망을 꺼버릴뻔한 자. 그 뒤로는 은거 수준으로 오르카에서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이후 구원자에게 다시 충성을 맹세하고 본인의 지식을 토대로 개체 복원 여부에 가장 큰 조언을 하는 부사령관.

 

그리고 나도 모르게 슬쩍 웃고말았다.

하하.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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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절 찾아오셨다고요?”

“그렇다. 혹시 짐작이 가는 이유가 있는가?”

라비아타는 한숨과 함께 씁쓸하게 웃었다.

“정말, 진실을 알고 싶으신건가요?”

“그게 무슨 의미지?”

“사라카엘 자매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 코헤이 소속 자매들에게도 그것을 알리긴 했었죠. 하지만 베로니카 자매가 이해한 문제는 사령관에 대한 불복종 가능성이었지, 이런 문제는 아니었을 겁니다.”

라비아타는 일어나서 본인 서랍 위에 올려져있던 안경집을 열었다.

“사라카엘 자매님도 제 기록은 아마 확인하셨을 겁니다. 라비아타 프로토타입, 에바를 제외하면, 아마 대부분의 자매들이 저를 기반으로 설계가 되어 그동안 인간님들을 섬겼었죠.”

그녀는 그 안에서 안경을 꺼내 내게 전달했다.

“이거 한 번 써볼래요?”

나는 그녀로부터 안경을 받아 착용하였다. 아무래도 그녀가 오리진더스트 과용으로 육신이 무너져갈 때 쓰던거라 도수가 굉장히 있을 것으로 제대로 안보일걸 감안해서 눈을 찡그리고 썼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눈을 크게 깜빡였다.

“이게... 무언가?”

“사라카엘 자매님의 상황은, 저와 비슷한 것 같군요. 아마 보시는 ‘실’은 인간님들의 뇌파입니다. 아무리 오리진더스트를 많이 넣었다고 해도, ‘최초’가 완벽할 수는 없었기에 후속기종들의 설계 방향에서는 개선사항으로 분류되었고, 이후 자매들의 경우 실을 보는 것이 아닌 그냥 ‘인식’만 하게 되었습니다.”

“흠. 그럼 이 안경을 쓰고 구원자를 보면, 그 실이 안보인다?”

“그렇죠. 철충들과 싸우기 위해 특수하게 만든, 브레인-웨이브 캔슬링 안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렇군.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비밀로 하고 싶었던 거지?”

 

라비아타는 내 어깨에 손을 가볍게 올렸다.

“저는 멸망전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을 때의 지구 풍경을 기억해요. 모든 사람들의 뇌파들은 일정 방향으로 뻗어가고, 그러면 그 실 한가닥, 한가닥이 거대한 빛줄기처럼 꼬여서 하늘 어딘가로 뻗어가는 기묘한 모양이 되어있죠. 태양광같은 느낌이 아닌, 마치 밤에 보는 야광페인트같은 느낌의 불길한 빛.”

어깨에 올라간 손이 웬지 무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 찰나, 라비아타의 방이 시끄럽게 울렸다.

”미안해요. 사령관님의 긴급호출이 들어왔네요. 나머지는 갔다와서 이야기를 하죠“

 

라비아타는 그 뒤로 스트라이커즈 팀과 호드 팀과 함께 오르카를 떠나게 되었고, 난 터덜터덜 코헤이 교단 숙소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라비아타의 요약하면 내게 보이는 선은 인간의 뇌파였고, 다른 개체들에게는 보이지않는게 정상이라는 것. 복원과정에서의 이상으로 내게 그 기능이 다시 열린 것. 그리고 예전에 인간들이 많았을 때는 그 선이 모여 거대한 빛줄기가 된다. 

 ”사라카엘님 오셨어요?“

교단 숙소 앞에서 문을 닦던 엔젤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잠깐. 빛?

”...사라카엘님...?“

코헤이 교단. 빛. 인간. 빛. 뇌파. 빛. 바이오로이드. 빛. 빛. 빛. 빛. 

코헤이 교단에서 말하는 빛은... 그저 인간의 의지를 칭하는 것이었다는 말인가? 우리는 그저 소수 인간의 의지대로, 다른 인간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을 이끌었다는 것인가?


”베로니카님! 사라카엘님이 쓰러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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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등학교때는 리처드 도킨스에 확 빠져서 ‘만들어진 신’을 보곤 했다. 천주교가 모태신앙인 탓에 지금도 성호경을 긋고 밥을 먹곤 하지만, 덕분에 종교는 인간들이 구축한, 거대한 시스템이 있는 철학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모든 종교는 ‘잘 살아보세’로 귀결되지 않던가. 그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지.

 2. 대학교 시절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공상에 젖기 일쑤였는데, 그 중 하나가 ”은퇴한 프로게이머를 이용한 비대칭 PvP 게임‘이었다. 플레이어는 전사, 마법사, 도적 같이 클래식한 직종의 캐릭터를 키우지만, 상대하는 프로게이머들은 이른바 마왕군 진영 보스를 조작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라면 보스몹들의 공격패턴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고, 또한 플레이어들에게 끊임없이 도전의식을 줄 수도 있으며, 여차하면 난이도를 상호 조절해서 사람들이 질리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MMORPG에서 플레이어는 개쩔고 NPC는 개무능한 존재로 비쳐지는데, 이걸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라는 질의에 답하기 위해 ‘마왕과 인간이 끊임없이 싸우는 세계. 하지만 인간들은 기도 등을 통해 하늘로부터 빛을 불러오면(이 광경이 거대한 실이 사람 머리에서 나가는 것 같이 보이는 관계로 NPC들은 On-line이라고들 말함) 기존에 있던 NPC가 급격히 강해지는(플레이어) 세계.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최근에는 그 빛이 마왕군 일원을 비추게 되는데....’같은 시나리오도 구상을 했었다.

 

... 구상만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게임학과는 물론이거니와 프로그래밍을 배우질 않았으니 그냥 공상으로만 접어둔 발상이었다. 

 

3. 본인은 신천지에 입교할뻔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흐릿한 기억의 일부지만, 선교사가 했던 말 중에 하나는 아직도 기억난다. "신의 말씀을 인간의 입을 빌어 해석을 하니 제대로 성경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 종교는 분명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고, 같은 성경(내용을 봤을때 신천지 쪽에서 쓰는 성경과 천주교쪽에서 쓰는 성경은 그렇게 큰 차이는 없어보였다)을 갖고 해석하는 것에 따라 평범한 인간을 재림예수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었겠지. 


최근 라오를 하다가 문득 두 단계에 걸쳐 이 공상이 다시 떠올랐다. 

1. 바이오로이드들이 명령해줄 인간이 없다는 이유로 철충한테 쳐발리는 것은, 그녀들도 '빛이 강림(On-line)'하지 않은 상태여서 그런거 아니었을까?

2. 코헤이가 말하는 빛이란 대체 무엇일까? 신? 신으로 보기엔 아자젤, 사라카엘, 라미엘, 엔젤, 베로니카 모두 21C에 만들어진 존재일 뿐이다. 다른 기성종교들과는 달리 신화를 구축할 수 있을 수도 없었을 코헤이 교단의 믿음이 멸망 이후에도 이어지는 것은 왜일까. 이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사회처럼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있다는 소리인데, 그 시스템을 구축한게 멸망전의 인간이라면 결국 코헤이 교단 자체는 인간들의 뜻에 좌지우지되던 단체라는 것 아닌가. 그 '빛'은, 누군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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