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남들의 뒤에서 드러나지 않게 활동하는 것에 불만은 없느냐 묻는 그에게 짧게 대답했다. 기관의 상징을 함축하는 저 문구야 말로, 가장 최적의 대답이 아닐까 생각되었고, 별다르게 비유할 말도 없었으니 적당한 대답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난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별로야." 


넋두리를 섞은 듯 짧게 탄식하는 그. 확실히 그의 성품으로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며,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들 기관의 모습은 썩 유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 입을 비집고 나오는 웃음이란, 그의 그런 성품을 잘 알기 때문에 나오는 미소일까? 아니면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일까?


그는 그런 말을 하면서 어두운 낯빛으로 커피를 한입 마셨다. 내 기분이야 어떠하든, 지금 그의 기분은 가라앉아 있겠지.


"사령관 님."

"응?"

"저희 기관은 옛날부터 이랬어요."


철충이 도래하기 이전부터 우리들은 항상 그림자 속에 숨어있었다. 그보다 이전인 멸망 전의 세상에서도 우리들은 양지에서 활동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하며 그저 기관을 위한 톱니바퀴로써 살아왔을 뿐이니 익숙했지만.


"그게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지..."


확실히 그가 홀로 남겨진 이 세상에서는 딱히 우리들의 존재를 숨길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관습이란 때론 법률보다 무서운 것이다. DNA의 근본적인 부분부터 각인된 스파이로써 갖는 본능이란, 그의 명령이 있다 한들 쉬이 바뀔 리 없고 지금도 우리들의 행동 양식에 강한 지침이 되어주었으니까.


"정말 이래도 상관없어?"

"네, 기관의 동료들 모두 동의했어요."


그는 내가 건네준 문서를 갈무리하며 다시금 질문했다. 보통 그의 일처리란 신속한 것이어서, 대부분의 서류를 별다른 말 없이 승낙해주고는 했지만 역시 저 내용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하... 일단 결재 하기는 하겠지만... 이번 작전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 기관의 공로를 밝히지 말라니..."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미련이 남는 듯 계속해서 눈짓을 보내는 그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다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의 눈을 마주 보면서 그가 싫어하는 이런 문건의 결재를 받는 것은 내게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기관의 모토처럼 우리들은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보다 어두운 달의 뒷면이 어울린다. 언젠가 그의 세력도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니 지금부터 서서히 기관의 양지에서 갖는 영향력을 줄이고, 음지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시점이니 명분도 충분했다.


"사령관 님께서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잘 알고 있어요."

"그럼 지금이라도.."


시야에 잡히는 그의 반색 하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마도 내가 그의 설득에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진 것일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의견을 굽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달이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은 달의 뒷면이 달을 지탱해주기 때문이라는 신념이 있기에, 그를 위해서 누군가 달의 뒷면으로 남아야 한다.


"그래도 저희 기관은 사령관 님을 위해 달의 뒷면이 되기로 결심했어요."

"달의 뒷면이라니..."

"사령관 님께서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앞으로 오르카의 세력은 계속 커질 겁니다. 그렇다면 감시해야 할 인원들 역시 늘어나겠죠."


무어라 말하고 싶은 것인지 그의 입술이 삐죽 거렸으나, 그에게 말할 기회를 남기지 않고 계속해서 의견을 피력했다.


"저도, 아니... 저희들도 잘 알아요. 사령관 님께선 새로 합류하는 인원들의 감시를 싫어한다는 것은..."


그러나 혹시, 설마 하는 일이 벌어지고 후회하면 늦는 법이다. 누군가는 모두가 싫어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이 세상에 눈을 뜨고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남자의 미움이라도, 그것을 감내하고 나아가야 한다.


"미움... 받아도 좋아요. 음흉하고 더럽다고 하셔도 좋아요. 하지만, 그것이 사령관 님을 위한 일이니 저는 포기할 수 없어요."


두렵다. 외롭다. 고독하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그 옆자리를 허락 받지 못할지라도, 다른 모든 동료들에게 기피 당하더라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애석하게도 내게, 우리에게 그를 지키는 방법이란 이런 더럽고 음울한 뒷공작 뿐이니까.


"뭐? 내가 너를.. 아니, 너희를 왜 미워해?"

"네? 그치만..."


예상 밖의 대답에 잠시 멍해진 내 곁으로 그가 다가와 앉으며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계속 냉정을 가장하며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내 얼굴이 달아올라, 새빨갛게 무르익었다는 것은 전신을 감싸는 열기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내가 걱정한 것은 그게 아니야."

"그럼... 무엇을..."

"시라유리가 기피 당하는 존재가 될까, 그게 걱정됐어."


그는 애초부터 우리들을 피하지 않았다. 더럽고 밝히지 못할 임무를 수행하는 우리를, 나를 품어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며 생각을 정리하다 나를 살며시 끌어당겨 품에 안아주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이렇게 하자! 공식적으론 너희들을 숨기겠어."

"네..."

"대신 이건 양보 못해! 나에게 까지 너희들을 숨기지 말아줘. 언제든 찾아와서, 지금처럼 같이 떠들고 웃으면서 곁에 있어줘! 약속이다?"


해맑은 표정으로 손가락을 건네는 그의 모습에 다른 동료들이 본다면 놀라 자빠질 만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의 우려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그에게 까지 거리를 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가 달의 앞면이라면, 나는 '그'라는 달의 뒷면으로 남을 생각이었으니.


"어머, 그렇게 저와 거리를 두는 것이 힘드셨나요?"

"물론이지! 나와도 거리를 두려 한다면 명령이라도 할 거야."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얼굴은 반짝반짝 빛나는 달님처럼, 내 가슴에 깊이 남겨졌다.


"정말이지 사령관 님은... 곤란한 분이네요.. 저희들을 아직도 모르시겠나요?"

"곤란하더라도 양보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어! 시라유리가 곁에 없는 삶이라니... 어후~ 끔찍해."


지나친 걱정이라 생각했다. 처음부터 나는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까.


"후훗... 아쉬워서 어쩌죠?그러한 자는 존재하지 않는데."


그러한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뒤편에 언제나 함께한다.

달의 뒤에서, 빛나는 달의 앞면을 지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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