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갓진 오후, 함내를 걷던 사령관은 닥터의 공방에서 금속음이 나지 않자 호기심을 느끼고 열린 문틈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틈새로 보이는 닥터는 책상에 얼굴을 바짝 대고 열심히 펜을 놀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닥터의 이론가적 모습에, 그녀가 무엇을 연구하는지 흥미가 동한 사령관은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닥터, 뭐하고 있어?"


"아, 오빠야? 머리 식힐 겸 마방진을 풀고 있었어."


닥터가 환하게 웃으며 종이를 내밀자 사령관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지능을 고려하면 100x100 마방진을 해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닥터는 토모도 풀 수 있는 3x3 마방진을 잡고 있었다.


"마방진?"


"뭐야, 모르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가로세로 대각선의 합이 똑같은 수학 퍼즐이잖아. 네가 푸는 문제치고는 쉬운 거라서 의외라고 생각했었어."


"가끔은 쉬운 게 더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 오빠도 풀어볼래?"


닥터는 그렇게 말하며 사령관에게 간단한 마방진 하나를 주었다.


4 9  2

3 □ 7

8 1  6


"이 마방진에서 가운데에 들어갈 수는 뭘까?"


문제를 빤히 처다보던 사령관은 2분 정도 있다가 답을 말했다.


"답은 5야. 가로와 세로에 놓인 3개 수의 합은 15, 가운데를 중심으로 성립하는 식들이 모두 □+10=15의 형태이므로 □=5라는 계산이 성립하지."


"오, 깔끔한 풀이인데?"


"이 정도는 두뇌 풀이지."


닥터의 칭찬에 사령관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그는 닥터가 자신에게 마방진을 준 보답으로 자신도 그녀에게 마방진을 주어야겠다며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닥터, 마방진은 수학으로만 가능할까?"


"음? 수학말고 다른 게 가능해?"


닥터의 반문에 사령관은 짓궃은 미소를 띠며 작은 메모지에 쓴 글귀를 그녀에게 건넸다.


"문학으로도 가능할 것 같아서. 이거 한 번 읽어볼래?"


"뭔데?"


닥터는 그가 건네는 종이를 받아 천천히 눈으로 훑었다.



수학보다 네가 좋아

학문이 새기는 은연

보이는 길로 나가도

다 새길 수 없는 마음

네 기로 없는 마음을

가는 나는 마냥 섧네

좋은가, 마음 섧 없는

아, 연도 음을 다는 너



사령관이 쓴 시를 본 닥터는 이게 왜 마방진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그녀가 금방 눈치채지 못하자 김이 샌 사령관은 그녀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자 봐, 이 글자들의 띄어쓰기를 없애고 보면..."


수학보다네가좋아

학문이새기는은연

보이는길로나가도

다새길수없는마음

네기로없는마음을

가는나는마냥섧다

좋은가마음섧없는

아연도음을다는너



"...8x8 마방진이네. 가로세로가 똑같은."


"그렇지?"


사령관이 칭찬을 바라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자 닥터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하하, 이게 뭐야 오빠~


머리 굴리느라 애썼지만 이건 수학이 아니잖아.


뭐, 끝부분이 아쉽기는 해도 오빠가 신경쓴 흔적은 있네."


"그렇지? 생각하느라 고생했다니까."


사령관도 닥터를 따라 웃었다. 둘은 그 상태로 한참동안 마방진을 푸는 놀이를 즐겼다.



닥터가 성장약 앰플을 몰래 삼키고 타이탄으로 문을 막기 전까지, 사령관은 육체의 마방진을 풀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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