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애호해줘)



전편 모음집  

 



그는 아스널에게 실존주의를 설명했을 때처럼 그녀에게도 그 자리에서 강의를 진행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단순히 그의 견해를 물으며 표정을 관찰하려 했던 칸은 갑작스럽게 시작된 그의 강의에 기대 반 놀람 반으로 흥미를 가지고 경청할 준비를 했다.

 

“칸 씨, LRL이나 안드바리, 코코와 에밀리가 그리는 그림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음, 귀엽고 기특하지. 고사리손으로 그림을 꼼꼼하게 그려온 모습에 미소가 나와.”

 

“그렇죠. 그 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웃는 것이지, 그림을 잘 그렸네 마네를 두고 논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그림을 왜 그렸을까요?

 

“글쎄... 보속의 마리아가 수업을 진행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요?”

 

“음....”

 

한참동안 답변을 고민하던 칸은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자 리마토르에게 그냥 답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리마토르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거절을 표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주장을 책으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글로 자신의 생각을 남기는 것보다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무지를 자각시키고 진리로 향하게 도와주는 것을 더 중시했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칸 씨가 직접 생각해보시면서 답에 도달하는 소중한 과정을 빼앗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군. 그럼 한 번 해보도록 할까.”

 

칸은 그의 세심한 배려에 미소를 만연에 띠고 다시 생각에 고민했다. 그 시각, 실시간으로 칸의 개인실 내부를 도촬하던 탈론 페더와 다른 호드 대원들은 자신들의 대장과 리마토르가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거 왜 이렇게 지직거려?”

 

“칸 대장님이 자신의 방에는 설치하지 말라고 하셔서 몰래 설치했더니 상태가 안 좋아요. 잘 집중하면 돼요.”

 

“대장님이 하지 말라는데 해도 되는 거야?”

 

“어어, 들린다! 조용히 해봐!”

 

그녀들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여서 음질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대화 내용을 판독할 정도는 되었다.

 

「칸 씨... 소중한.... 빼앗고... 싶...습니다...」

 

“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리마토르의 목소리에 그 자리의 모두가 경악했다. 상황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는데 이내 칸이 입을 열자 그녀들은 다들 집중했다.

 

“잠깐만, 대장님 말씀하신다!”

 

「그럼... 해보도록... 할까...」

 

“에엑-!”

 

“야, 탈론 페더! 카메라! 카메라 켜봐!”

 

“잠깐만요, 이것도 몰래 설치한 거라서 화질이 안 좋아요!”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당최 알 길이 없었던 그녀들은 제한적이지만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동원해서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방 안에서는 그녀들의 생각과 달리 평화로운 철학 대담이 오갈 뿐이라는 사실을 그녀들은 알 턱이 없었다.

 

“그냥 좋아서?”

 

“네, 정답입니다.”

 

반쯤 고민하다가 찍은 게 정답에 들어맞자 칸은 신나서 목소리를 올렸다. 리마토르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아이들은 그저 좋아서 그림을 그립니다. 화가처럼 자신의 예술관을 완성하겠다는 목적도, 그림을 팔아서 참치를 벌겠다는 생각도 없지요. 순수하게 즐거움을 위해 그림을 그릴 뿐입니다.

 

우리가 그걸 무목적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요? 전시회 같은 곳에 내다 팔수도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게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이라고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권리를 박탈해도 되는 건가요?”

 

“그렇지 않지! 가당치도 않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목적을 정하지 않고 그냥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효율성과 경제성과 거리가 한참 멀다고 해도, 재미를 느끼기 위해 쓸데없는 행동을 하고는 합니다.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구름을 관찰한다든가, 책의 여백에 낙서를 하는 것처럼요.”

 

“그렇지만 전시상황에서는 그게 제한될 필요가 있지 않은가? 마리 소장의 말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칸의 질문에 리마토르는 한 번 생각해보자면서 펜을 들더니 그림을 하나씩 그리면서 그녀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출처: 고동우(2002). 재미진화모형을 적용한 여가체험: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를 중심으로. 관광레저연구, 16(2), 85-105)

 


“이건 재미 진화 모형입니다. 예전에 제가 읽었던 논문에 실려 있었던 그림인데, 이번 상황을 설명하기에 있어 이보다 더 좋은 자료가 없는 것 같습니다.

 

보시죠. 재미 진화 모형에 따르면 사람들은 보기-가지기-하기-되기 단계로 자신의 재미를 심화시켜 나갑니다. 쉽게 비유하면 흐레스벨그가 매지컬 모모 시리즈를 보다가 굿즈를 사고, 코스프레를 하다가 자신이 직접 매지컬 모모에 출연하는 것이죠.”

 

“참... 놀랍군. 이런 것까지 분석한 논문이 있을 줄을 몰랐네.”

 

“학자들은 대부분 덕업일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그 학문이 좋아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들이니 이런 연구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자, 본문으로 돌아가 보죠. 칸 씨가 보기에는 흐레스벨그가 돈을 받아서 그렇게 열성적으로 매지컬 모모에 빠져 산다고 생각하시나요?”

 

리마토르의 질문에 칸은 흐레스벨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LRL, 안드바리, 코코, 더치걸과 함께 매지컬 모모 공연을 보던 그녀가 눈을 빛내는 모습은 순수한 흥미로 가득 차있었다.

 

“아니, 그렇지 않네. 돈을 받는다고 해도 그렇게까지는 못할 거야.”

 

“그렇죠. 흐레스벨그가 그리 행복한 이유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금전적인 보상이 아니라 해도요.”

 

“궁금해지는군. 지금 이 대화가 쓸모없을 용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리마토르가 꺼내는 말이 점점 본질과 멀어지는 것 같자 칸은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다며 본질이 흔들리는 건 아니라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인문학은 하나만 봐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소위 말해 ‘큰 그림’, 돌아가더라도 이야기한 모든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지는 설명을 추구합니다.

 

자, 다시 흐레스벨그를 한 번 봅시다. 흐레스벨그는 경제성이 없는 행위를 하는 겁니다. 스스로 행복을 느낄 뿐 그 외에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이득은 없으니까요. 브라우니들이 과일에 그림을 그리는 행동만큼이나 의미 없는 일이죠.

 

그렇지만 그건 누가 판단한 것이죠? 흐레스벨그가 아닌 제3자의 시각에서 경제성을 기준으로 값어치를 매긴 겁니다. 흐레스벨그 본인에게는 그렇게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이야 말로 값지고 행복한 시간이겠지요.”

 

“맞는 말이지. 그녀가 취미생활을 하는 시간에 강제로 일을 시키면 경제성이 향상될지는 몰라도 그녀 개인에게는 좋은 결과를 내지 않을 걸세.”

 

칸의 말을 들은 리마토르는 반색했다.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의 흐름을 따라왔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이제 이론적인 이야기를 꺼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칸 씨가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더 던질 수 있죠.

 

쓸모 있다는 건 누가 정한 것인가?

 

브라우니를 포함한 모두가 하는 일, 공부와 취미와 노동을 포함한 모든 일들 중에 무엇이 쓸모 있고 무엇이 쓸모없는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나요?

 

지금 우리가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건 누구의 쓸모인가요? 어느 시대의 쓸모인가요? 철충과의 전쟁 중이니까, 지금 당장 필요하니까 개인이 의미 없이 행복할 수 있는 행동은 쓸모없다고 선언한 뒤 박탈해도 되는 건가요? 지금 이 순간 쓸모없어 보인다고 나쁜 건가요?”

 

리마토르의 말을 들은 칸은 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자신도 휘하 바이오로이드들을 지휘하는 장성의 입장으로 그동안 경제성을 따져왔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호드는 각 부대원들의 뚜렷한 특징을 대장인 칸이 잘 존중해주는, 다시 말해 자율성이 넘치는 부대였으나 대장으로서의 그녀는 자신이 경제성과 효율성을 근거로 내세워 부하들에게 압박을 가한 것은 아닌가 죄책감이 합쳐진 고민에 빠졌다.

 

혼란에 빠진 그녀의 표정에서 불안함이 묻어나자 리마토르는 빈 칸의 잔에 다시 물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자책하실 필요 없어요. 스스로 그렇게 반성하시는 건 좋은 모습이지만, 제가 하는 이야기는 실존하는 모든 개별 존재에게 해당하는 보편적인 이야기지 칸 씨를 꾸짖는 게 아니에요.

 

칸 씨는 정말 좋은 대장이고 부하 분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동안 잘해오셨고, 앞으로도 잘하실 테니까요.”

 

티백에서 우러나온 색이 물을 물들이자 그녀의 마음도 다시 평안이 물들었다. 칸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태연하게 누르며 그에게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럼요.”

 

리마토르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흔들림 없는 그의 목소리와 곧은 눈빛은 그녀에게 그녀 스스로 살아온 삶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고맙네. 그리 말해주니 안심이군.”

 

“전 그저 사실만 말했을 뿐입니다.”

 

리마토르는 마른입을 컵 아래에 마지막으로 남은 차로 축이고 본격적인 이론을 꺼내들었다. 오르카호에 처음 합류했을 때부터 연구했던 존 롤스의 <정의론>과, 모든 인간과 바이오로이드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며 찾은 자료였다.

 

“이렇듯 가치 판단이란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멸망 이전 인류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매달렸습니다. 정의(正義, Justice)를 무엇인지 정의(定義, Definition)하게 되면 하고 있는 일과 할 예정인 일들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고,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수정해야 정의로운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죠. 이를 연구하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모든 가치가 상대적이니 정의라는 가치도 상대적이라는 입장과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처럼 모든 사회에서 금기로 여겨지는 절대적인 정의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대립했었죠.

 

저는 그 중에서도 후자를 지지했습니다. 정의의 가치마저 상대적으로 정해지면 인권이나 자유처럼 ‘보편적 권리’라고 인정한 것마저 특수한 상황맥락 아래에서는 무력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상황이 아무리 긴박하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릴 수 없는 정의가 존재한다는 것이 저의 믿음이었습니다.

 

이번 브라우니의 경우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겠군요. 브라우니들이 여가시간에 무엇을 할지 마음대로 정하게 두는 것이 정의로운 걸까요? 이 질문에 마리 소장은 그렇지 않다고, 저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 사상가들의 의견을 근거로 하기 때문입니다.”

 

리마토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들고 다니는 태블릿으로 나이가 지긋한 서양 철학자 두 명의 사진을 찾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의 얼굴을 처음 본 칸은 그들이 누구인지 그에게 물었다.

 




“왼쪽에 있는 사상가의 이름은 존 롤스입니다. 40년의 세월동안 정의 하나만 연구하여 <정의론>과 <정치적 자유주의>를 저술한 자유주의 철학자죠. 오른쪽에 있는 사상가는 마이클 왈저입니다. 롤스를 비판하며 하나의 기준으로 정할 수 없는 정의를 설명하기 위해 <정의와 다원적 평등>이라는 저서를 쓴 공동체주의 철학자죠.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라는, 서로 대치되는 사상가 두 명의 주장을 근거로 삼는 것은 일견 모순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두 사람의 의견을 모두 끌어와 현재의 사태를 비판해도 논리에 허점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한 명씩 살펴보도록 하죠.

 

존 롤스분배를 통한 정의를 중시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특정한 계급이나 상황에 예속되어 불공정한 분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죠. 쉽게 말해 누구는 삼안의 김지석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마어마한 돈을 상속받고, 누구는 하류층 집안에서 태어나 빚더미에 오른 채로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결코 정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롤스는 <정의론>에서 이를 비판하면서 원초적 입장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속된 말로 ‘계급장 떼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삼안의 후계자든 빚쟁이의 아들이든 인간1, 인간2라는 동등한 상황에서 봐야 공정한 분배가 가능하다고 보았죠. 인간 대 인간으로 보더라도 사회적 지위나 가문의 후광처럼 분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무지의 베일’이라는 걸 가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온몸을 천으로 가려서 누가 누구인지 아예 모르게 하고, 오로지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만 인식 가능하게 만들어야 분배가 이루어지기 위한 기본 조건이 생긴다는 뜻이었죠.

 

이렇게 준비작업이 끝났으면 본격적인 분배를 해야겠죠? 롤스는 분배를 위한 2가지 규칙을 주장했습니다. 모든 이가 동등한 기본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제1원칙가장 불리한 이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만 사회적 지위에 접근할 권리가 평등하게 부여된다는 제2원칙. 복잡하게 들리지만 롤스의 주장을 요약하면 ‘각자에게 정당한 각자의 몫을 주자’였습니다. 모두가 한 명의 인간이라는 동일한 출발선에서 출발하여 누구나 노력과 능력에 따라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고,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사회 공동의 세금으로 기회의 평등을 부여해야한다는 것이었죠. 이를 사회적 시스템에 접목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내용이 <정치적 자유주의>에 담겼던 것입니다.

 

칸 씨에게는 케시크라는 이전 기종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휘관 개체의 부재라는 상황에서 케시크는 스스로 지휘능력을 보여주어 신속의 칸이라는 지휘관이 되었죠. 낮은 지위에서 노력을 통해 높은 지위로 올라가는 게 가능해야한다는 롤스의 주장에 부합하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브라우니의 경우는 어떤가요? 브라우니가 최선을 다해도 지휘관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바이오로이드의 태생적 한계라고 항변할 수 있더라도, 태생적으로 지휘관 개체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본질적인 자유까지 침해받아서는 안 됩니다.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무지의 베일을 쓴 한 명의 인간으로 봐야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리마토르는 여기까지 설명하고 바싹 마른입을 우물거렸다. 차를 다 마셨기에 궁여지책으로 입에 수분을 보충하려는 행위였으나, 그 사실을 눈치 챈 칸이 그의 컵에 따뜻한 물을 한 잔 더 따라주면서 말했다.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이군. 내 자신이 하나의 케시크 모델에서 개조된 존재지만... 개조 사실조차 제쳐두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바라봐야한다는 생각은 처음 해보게 되었네. 바이오로이드인 내가 인간이 제시한 원초적 입장에 서도 되는 게 오만이 아니라면, 나는 이 이론을 받아들이고 싶네.”

 

“칸 씨 스스로 생각하시는 정체성에 대해 제3자인 제가 왈가왈부할 점은 아니지만, 저는 모든 바이오로이드와 인간은 철학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AGS 역시 마찬가지이며, 인간과 바이오로이드와 AGS는 하나의 실존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러니 저나 사령관님도 칸 씨와 다를 바 없다는 뜻이죠.”

 

그녀의 자기 고백을 들은 리마토르는 목을 축인 뒤 그녀에게 자신의 지론을 설명해주었다. 하르페이아와 네오딤이 자신에게 던진 물음을 고민하여 마침내 검증 가능한 수준의 답에 도달한 그는 자신이 지금 말하는 내용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다.

 

그의 생각은 빗나가지 않았다. 자신과 그가 인간-바이오로이드라는 이분법적 시선으로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의 ‘실존’이라는 범주에 묶인다는 의견을 들은 칸은 머리를 한 대 맞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멸망 전 시대를 살았던 그가 그런 주장을 한다는 점에서 그녀는 그의 말을 더더욱 믿기 어려웠다.

 

“뭐, 이 부분은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니 논문을 완성하면 따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마이클 왈저의 사상을 한 번 살펴볼까요?”

 

그 주제로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가는 오늘 밤이 새도 답이 나오지 않을 거라 판단한 리마토르는 왈저의 사상을 설명하는 방향으로 말을 돌렸다. 그는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그녀에게 태블릿으로 책 한 권을 보여주며 말을 시작했다.

 

“이 책은 왈저의 저서 <정의와 다원적 평등>입니다. 왈저는 자신과 같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롤스를 비판하면서 이 책을 썼습니다. 왈저는 롤스가 주장한 ‘원초적 상황’이 가정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실제 삶과 동떨어졌다고 롤스를 비판했습니다. 인간은 공동체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완전히 독립된 개인으로만 보는 것이 오류를 범한다는 비판도 덧붙였죠. 이를 대신하기 위해 왈저는 복합평등이라는 개념을 주장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의 자격, 안전과 복지, 돈과 상품, 공직, 힘든 노동, 자유시간, 교육, 혈연과 사랑, 신의 은총, 명예와 처벌, 정치권력이라는 11개의 영역이 각자 다른 분배 기준에 따라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이었죠. 필요에 따라 분배하냐, 자유교환에 따라 분배하냐와 같은 식으로요.

 

이 점이 중요한 게, 왈저는 ‘서로 다른 영역은 분배 기준도 다르니 어떤 영역이 다른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어요. 하나의 영역 안에서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영역의 불평등이 다른 영역으로 넘어와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죠. 예를 들어, 나이트 앤젤은 스트라토 엔젤보다 가슴이 작지만 그 사실이 사령관님과의 동침 횟수 차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여가의 경우에도 이 주장이 똑같이 적용됩니다. <정의와 다원적 평등>의 7장을 한 번 볼까요?

 

 

다원적 평등의 상황 하에서 임금과 봉급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오늘날 더욱 불평등할 뿐이다. 휴가가 사회생활과 문화의 중점적인 사안이 되자 어떤 형태의 자치적인 규정들이 필요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분배가 부와 권력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받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선택의 범위를 보장하고 개인의 계획적인 실체를 유지하게 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모든 개인에게 어떤 휴가를 보낼지 강압적으로 동일한 결정을 내리게 할 수 없으나, 어느 정도 선택의 범위는 보편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이처럼 왈저는 돈과 사회적 지위라는 영역이 여가의 영역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사안처럼 마리 소장이 자신의 계급을 내세워서 브라우니들이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할지 선택 범위를 제한한다는 발상을 왈저가 보았으면 고개를 저었을 겁니다. 복합평등에 맞지 않는다고 덧붙이면서 말이죠. 그래서 저는 왈저의 주장을 근거로 들어 마리 소장의 주장에 반대합니다. 계급이 높다는 이유로 당사자인 병사들의 권리를 소통도 거치지 않고 제한한다는 발상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병사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합당한 몫을 받는 것은 자유에서 말미암은 '쓸모없는 행동'입니다. 남들이 효율성을 기준으로 손가락질하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용기 있는 행동이죠. 그래서 저는 이 사안이 '쓸모없을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리마토르는 그렇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뒤 차를 홀짝였다. 미지근하게 식어서 먹기 좋은 온도였던 차는 그의 목에 충분히 수분을 공급해주었다.

 

“이것 참...”

 

그의 말을 들은 칸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볼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스널 이외에 자신과 사적인 신체접촉이 있었던 적은 없었기에 리마토르는 칸의 행동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카, 칸 씨? 지금 무슨...”

 

“신기한 일이야. 당신에게는 흐르는 피와 따뜻한 살이 있어, 인간이 자연적으로 타고난 신체지. 인간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본 따서 나, 바이오로이드를 만들었지만 그저 ‘만들었을’ 뿐이었네.”

 

그녀는 리마토르의 손을 잡아 자신의 볼에 갖다 대었다. 따뜻한 그의 온기가 그녀의 뺨에 느껴졌고, 그의 손에도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만져보니 어떤가? 모방된 피부와 혈액에 불과하지만 인간과 다르지 않을 걸세. 바이오로이드가 인간과 다른 점은 골격과 신경망이었지만 휩노스병을 피하기 위해 인간들도 신경을 우리와 동일한 전자 신경망으로 교체하고 척추에 금속을 씌웠지.

 

인간과 바이오로이드가 생리적으로 다른 점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구 인류는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바이오로이드를 인정하지 않고 배척했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던 끝에, 난 인간들이 우리를 만들기만 하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서라고 판단했네. 보이지 않는 숫자에 화폐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모든 피조물들은 의미를 가져야 비로소 존재하는 이유가 생기지.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는 어땠나? 일단 개발되었을 뿐이었네. 그 뒤에 인류보다 낮은 존재로서 부려지다가 죽음을 맞아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 인간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물체에 특별함을 불어넣지만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았네. 겁 많은 케시크였던 내가 칸이 될 수 있도록 성격이 바뀐 계기가 어쩌면 그런 의미부여를 스스로 행한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난 그게 결코 완전한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분명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어떤 목적이 있겠지.”

 

칸은 그의 모습을 자신의 눈에 담아내며 담담히 말했다. 그녀는 리마토르의 뺨을 쓰다듬더니 질문을 던졌다.

 

“리마토르 그대라면 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 

 

알려주게나. 바이오로이드는, 나는, 대체 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인가?”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게 호드를 이끌어 온 대장인 그녀가 갖고 있던 존재에 대한 물음. 그녀의 질문을 들은 리마토르는 아스널과 LRL에게 해주었던 실존주의나 장화에게 들려준 카시러 이야기를 해줄까 싶었으나, 스스로 운명을 바꾼 경험이 있는 칸에게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을 뒤져 떠오른 책을 태블릿에 쳐서 그녀에게 보여주며 말문을 열었다.

 

“칸 씨, 트라우마가 왜 생긴다고 생각하시나요?”

 

“과거에 안 좋은 일을 당한 기억이 남아서 아닌가?”

 

리마토르의 질문에 칸은 간단한 답으로 되물었다. 맞는 말이었으나 리마토르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며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럼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모두 같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나요? 어렸을 때 불에 화상을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모두 불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나요?”

 

“음... 그건 아니지.”

 

“원인이 있어서 현재의 결과가 있다는 주장을 원인론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의 아버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고안한 이론이죠. 구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도 심리학의 당연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졌을 정도로, 심리학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주장이죠.

 

그러니 이와 반대되는 주장을 편 사람도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과 더불어 심리학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알프레드 아들러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아들러는 목적을 위해 원인을 만들어낸다는 목적론을 주장했습니다. 불에 데인 경험이 있어서 트라우마가 생기는 게 아니라, 불을 만지고 싶지 않다는 목적이 무의식적으로 설정되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불에 데인 기억을 원인으로 끌어다 온다는 것이죠.”

 

리마토르의 말에 칸은 또 다시 머리를 얻어맞는 느낌을 받았다. 여지껏 상식으로 받아들였던 이론을 뒤집는 새로운 이론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아 그에게 질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해가 되지 않네.”

 

“걱정 마세요. 아들러 심리학을 처음 듣는 분은 다들 그러시니까요.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서 다루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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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조절 실패다.... 이번 이벤트 내용에서 본 칸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해석해서 이번 에피소드의 주제랑 엮어보려고 했는데 내용이 너무 길고 방대해졌네.


여기까지 부족한 글을 읽어준 사람들에게  정말 고맙고,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 

난 이 글을 처음 쓰면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문학'을 추구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전문적인 내용이 추가되더니 이번 에피소드를 쓸 때는 논문까지 찾아보고 인용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어. 당연히 초기 목표와 결이 많이 달라졌을 테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아니라는 의미기에 내가 여기서 글을 쓰는 방향을 점검할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했어. 





글을 받아들이는 건 읽는 사람들의 몫이기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투표나 댓글을 통해 의견을 남겨주면 정말 고맙겠어. 짧고 가벼워도 좋으니 의견 표현 부탁할게. 모두 좋은 하루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