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어디서 또 이상한 것을 본 것 아닌지 헛소리를 하는 그를 보고 있으니 머릿속이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하하..."


맥없는 웃음이 입 밖으로 비집고 나오는 것은 진지한 표정으로 어이없는 질문을 하는 저 녀석을 향한 것일까. 아니면 저런 멍청한 모습마저 좋아하게 된 스스로를 향한 비웃음일까. 이유야 무엇이든, 그에게 대답을 하기는 해야겠지.


"쉽지~ 내 혀는 의외로 섬세하니까."

"직접 보여줄 수 있어?"


미리 준비해 둔 것처럼 체리를 내미는 그의 행동에 더욱 이게 뭘 하는 짓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과거에는 다른 것들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주로 칼을 얼마나 잘 사용하는지, 얼마나 용이하게 대상을 죽일 수 있을지 같은. 그러나 그가 하는 질문들이란 주로 이런 것들 뿐이었다.


"직접 보여 달라고? 굳이?"

"설마.. 못해?"

"핫팩.. 너 말이야.. 하.. 알았어! 보여줄게! 보여주면 되는 거지?"


과거의 내가 본다면 배를 뒤집고 웃을 일이지. 혀로 체리 꼭지를 묶으라니, 게다가 저런 얄팍한 도발에 구태여 응하는 내 자신의 모습이란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정도니까. 그를 만나고 많은 것들이 변했는데 그 변한 것들 중에서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웃음이 나온다.


"자, 봐봐! 으음..."


체리를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혀로 꼭지의 위치를 조절한다. 설마하니 이런 방식으로 혀를 사용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어차피 도발에 응하기로 했으니 실패는 용납하지 못했다. 지금도 눈 앞에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저 녀석을 보면, 내가 뭐가 좋아서 저 녀석에게 다 허락한 것인지 웃길 지경이었다.


"어때?"


손으로 묶는 것 보다 완성도는 떨어져도 묶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혀는 갈라져 있으니 더욱 유리하기도 했고, 뱀의 유전자가 섞여 혀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으니까.


"와... 정말 이게 가능한 거였네..."

"내가 뭐라고 그랬어? 나한테 그 정도는 쉽다니까."


순수한 감탄을 보내는 그를 보고 있으려니 이게 뭐라고 우쭐거리게 된다. 대부분 처음 보는 이들은 갈라진 내 혀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심하면 징그럽다고 표현하고는 했는데, 그는 그런 선입견 없이 나를 봐주기 때문에 더욱 기쁜 기분이 들었다.


"근데 괘씸하네."

"뭐? 야! 하, 핫팩! 그걸 왜 먹어!"


괘씸하다는 말과 함께 체리를 한입에 집어먹는 그의 모습에 기겁하며 질문하자, 그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니, 체리 주제에 천아의 입 안을 즐겼다니... 뭔가 괘씸해서."

"핫팩... 너 용케 아직도 사령관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저런 바보 녀석이 아직도 사령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진지한 회의감이 몰려온다. 주변에서 보좌하는 이들이 유능하기 때문일까? 자주 곁에서 지켜본 녀석의 모습은 의외로 일처리가 허접하지는 않았기에 저런 괴리감에 찬 모습은 적응되지 않았다.


"그보다 체리 꼭지에 질투한 거야? 진짜로?"

"내가 부탁했지만 괘씸했어."


그래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런 모습에 다른 녀석들도 그에게 반한 것이겠지. 진지한 모습으로 일하는 그의 모습도 멋지지만, 이렇게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웃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이 모습에 나도 반했으니까.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저 녀석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푸훗! 야 핫팩!"

"응?"

"내가 이거보다 핫팩을.. 아니, 남친을 더 좋아한다는 걸 증명해 줄게."


그의 앞에 바짝 다가가 코트를 벗고 옷을 탈의하며 가슴을 비추자 그는 말을 할 틈도 없이 강하게 나를 끌어안았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덩치도 훨씬 좋은 남자가 볼록 솟은 하반신을 숨기지도 않은 채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달려드는 모습이란, 언제 보아도 유쾌한 웃음이 나온다.


"킥! 뭐야~ 이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안아주는 거야? 누구 남친인지 눈치 되게 빠르네~"


이 덩치만 큰 발정난 강아지를 어떻게 달래줘야 할까.


"뭐, 나야 따뜻해지니 좋지만... 우리 남친 무리하는 거 아닐까 몰라?"

"천아 님 전용 핫팩은 장시간 사용 가능합니다."


어느새 가볍게 날 안아 들고 침실로 향하면서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과거의 나는 절대로 짓지 않았을 그런 미소가 지어졌다. 바보 같은 남자를 사랑하려면, 나 역시 바보가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살아가는 것의 행복을 깨달았으니.


"그럼 이번에는... 가볍게 4시간 정도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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